"집필자 : 민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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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는 이은상(李殷相)의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여 김동진(金東振)이 작곡한 가곡이다. 전편과 후편이 있으며, 전편은 1933년, 후편은 1973년에 작곡 및 발표를 하였다. 가사는 모두 10수로 되어 있는데, 전편은 앞의 4수에 곡을 붙인 것이고 후편은 뒤의 6수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고파」라 하면 전편을 의미하며 전체를 말할 때는 「가고파 전, 후편」이라고 한다.
가고파
「가고파」는 이은상(李殷相)의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여 김동진(金東振)이 작곡한 가곡이다. 전편과 후편이 있으며, 전편은 1933년, 후편은 1973년에 작곡 및 발표를 하였다. 가사는 모두 10수로 되어 있는데, 전편은 앞의 4수에 곡을 붙인 것이고 후편은 뒤의 6수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고파」라 하면 전편을 의미하며 전체를 말할 때는 「가고파 전, 후편」이라고 한다.
가곡은 1920년대부터 등장한 새로운 장르의 노래로 한국 시에 곡을 붙인 예술성을 지향하는 노래이다. 예술가곡, 한국가곡, 한국예술가곡이라고도 한다. 한국 시와 선율 그리고 피아노 반주가 유기적으로 결합이 되어 있으며, 피아노 반주가 원칙이지만 실내악 반주 또는 관현악 반주로 연주를 하기도 한다.
가곡 (歌曲)
가곡은 1920년대부터 등장한 새로운 장르의 노래로 한국 시에 곡을 붙인 예술성을 지향하는 노래이다. 예술가곡, 한국가곡, 한국예술가곡이라고도 한다. 한국 시와 선율 그리고 피아노 반주가 유기적으로 결합이 되어 있으며, 피아노 반주가 원칙이지만 실내악 반주 또는 관현악 반주로 연주를 하기도 한다.
『갈잎피리』는 1929년에 발간한 정순철(鄭淳哲)의 창작 동요집이다. 「까치야」, 「길 잃은 까마귀」, 「여름비」, 「봄」, 「나뭇잎 배」, 「늙은 잠자리」, 「물새」, 「헌모자」, 「갈잎피리」, 「우리 애기 행진곡」 등 모두 저자 자신이 작곡한 10편의 창작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갈잎피리 (갈닙피리)
『갈잎피리』는 1929년에 발간한 정순철(鄭淳哲)의 창작 동요집이다. 「까치야」, 「길 잃은 까마귀」, 「여름비」, 「봄」, 「나뭇잎 배」, 「늙은 잠자리」, 「물새」, 「헌모자」, 「갈잎피리」, 「우리 애기 행진곡」 등 모두 저자 자신이 작곡한 10편의 창작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며 자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집약시키는 구심적 기능을 가지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이다. 법률로 제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민의 공통의식에 의해 관습적인 차원에서 정해지는 경우도 있고 역사적으로 정해진 경우도 있다. 그 나라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국체(國體)의 변화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기도 하며, 필요에 따라 그 가사가 변하기도 한다. 또한 외국의 곡을 자국의 국가로 채택한 경우도 있으며 작사자 및 작곡자 미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
국가 (國歌)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며 자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집약시키는 구심적 기능을 가지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이다. 법률로 제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민의 공통의식에 의해 관습적인 차원에서 정해지는 경우도 있고 역사적으로 정해진 경우도 있다. 그 나라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국체(國體)의 변화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기도 하며, 필요에 따라 그 가사가 변하기도 한다. 또한 외국의 곡을 자국의 국가로 채택한 경우도 있으며 작사자 및 작곡자 미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
국립오페라단은 오페라의 국내 보급과 활성화를 목적으로 1962년 국립극장 소속 단체로 창단된 오페라단이다. 2000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기공연을 비롯하여 기획공연·특별공연·시즌공연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공연예술을 이끌 우수 전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하여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國立opera團)
국립오페라단은 오페라의 국내 보급과 활성화를 목적으로 1962년 국립극장 소속 단체로 창단된 오페라단이다. 2000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기공연을 비롯하여 기획공연·특별공연·시즌공연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공연예술을 이끌 우수 전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하여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국립합창단은 한국 합창음악의 전문성과 예술성을 추구하여 한국음악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1973년 국립극장 소속 단체로 창단된 합창단이다. 창단 당시 국립극장 소속이었으며 소재지도 국립극장이었다. 1999년 재단법인 국립합창단으로 변모하였으며 2000년 2월 서초동 예술의 전당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립합창단 (國立合唱團)
국립합창단은 한국 합창음악의 전문성과 예술성을 추구하여 한국음악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1973년 국립극장 소속 단체로 창단된 합창단이다. 창단 당시 국립극장 소속이었으며 소재지도 국립극장이었다. 1999년 재단법인 국립합창단으로 변모하였으며 2000년 2월 서초동 예술의 전당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립군가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조직된 독립군들이 지어서 불렀던 노래이다.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과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의 광복군, 하와이에서 조직된 국민군이 부르던 곡들과 민족청년군가, 학도군가 등을 포함한다.
독립군가 (獨立軍歌)
독립군가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조직된 독립군들이 지어서 불렀던 노래이다.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과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의 광복군, 하와이에서 조직된 국민군이 부르던 곡들과 민족청년군가, 학도군가 등을 포함한다.
「따오기」는 1925년 개벽사에서 발행한 『어린이』 5월호와 8월호를 통해 발표한 한정동(韓晶東) 작사, 윤극영(尹克榮) 작곡의 동요이다. 발표 당시의 제목은 「두룸이」였지만, 광복 후 제목이 「따오기」로 바뀌었고 가사의 내용도 일부 바뀌었으며, 박자도 4분의 3박자에서 8분의 6박자로 바뀌었다.
따오기
「따오기」는 1925년 개벽사에서 발행한 『어린이』 5월호와 8월호를 통해 발표한 한정동(韓晶東) 작사, 윤극영(尹克榮) 작곡의 동요이다. 발표 당시의 제목은 「두룸이」였지만, 광복 후 제목이 「따오기」로 바뀌었고 가사의 내용도 일부 바뀌었으며, 박자도 4분의 3박자에서 8분의 6박자로 바뀌었다.
「봉선화」는 1920년 홍난파(洪蘭坡)가 작곡한 「애수(哀愁)」라는 제목의 기악곡에 1926년 김형준(金亨俊)이 가사를 붙여 만든 가곡이다. 원래의 곡명은 「봉선화」였지만, 광복 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어려운 한자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꾼다는 국어 맞춤법 원칙에 따라 「봉숭아」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봉선화」와 「봉숭아」 둘 다 사용하고 있다.
봉선화 (鳳仙花)
「봉선화」는 1920년 홍난파(洪蘭坡)가 작곡한 「애수(哀愁)」라는 제목의 기악곡에 1926년 김형준(金亨俊)이 가사를 붙여 만든 가곡이다. 원래의 곡명은 「봉선화」였지만, 광복 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어려운 한자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꾼다는 국어 맞춤법 원칙에 따라 「봉숭아」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봉선화」와 「봉숭아」 둘 다 사용하고 있다.
서울바로크합주단은 1965년 전봉초(全鳳楚)가 설립한 실내 합주단이다. 1980년부터 김민(金旻)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현재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orean Chamber Orchestra)로 명칭을 변경하여 활동하고 있다.
서울바로크합주단 (서울baroque合奏團)
서울바로크합주단은 1965년 전봉초(全鳳楚)가 설립한 실내 합주단이다. 1980년부터 김민(金旻)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현재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orean Chamber Orchestra)로 명칭을 변경하여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960년 서울특별시 산하에 창단된 교향악 연주 단체이다. 1948년에 민간 단체로 창단한 서울교향악단을 모체로 한다. 1950년에 해군에서 창단한 해군정훈음악대와 1956년에 창단한 해군교향악단 및 1957년에 창단한 서울교향악단을 거쳐, 1960년 시립 단체인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재탄생하였다. 1999년 서울시교향악단으로 개칭하였고 2005년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환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市立交響樂團)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960년 서울특별시 산하에 창단된 교향악 연주 단체이다. 1948년에 민간 단체로 창단한 서울교향악단을 모체로 한다. 1950년에 해군에서 창단한 해군정훈음악대와 1956년에 창단한 해군교향악단 및 1957년에 창단한 서울교향악단을 거쳐, 1960년 시립 단체인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재탄생하였다. 1999년 서울시교향악단으로 개칭하였고 2005년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환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뮤지컬단은 예그린악단을 모태로 하여 1961년 10월 서울특별시에서 설립한 뮤지컬단이다. 1960년대 말 일단 해체되었다가 1972년 국립가무단으로 재창단되었다. 1977년 11월 세종문화회관 개관을 계기로 서울시에서 국립가무단을 인수하여 서울시립가무단으로 창단하였으며, 1999년 7월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이 되면서 현재 명칭인 서울시뮤지컬단이 되었다.
서울시뮤지컬단 (서울市musical團)
서울시뮤지컬단은 예그린악단을 모태로 하여 1961년 10월 서울특별시에서 설립한 뮤지컬단이다. 1960년대 말 일단 해체되었다가 1972년 국립가무단으로 재창단되었다. 1977년 11월 세종문화회관 개관을 계기로 서울시에서 국립가무단을 인수하여 서울시립가무단으로 창단하였으며, 1999년 7월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이 되면서 현재 명칭인 서울시뮤지컬단이 되었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은 1964년 서울특별시에서 창단한 소년 소녀 합창단이다. 어린이들의 합창 음악, 합창 단원 교육 및 자질 향상, 한국 동요의 소개와 보급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1978년 4월 세종문화회관 예술 단체 소속이 되었으며, 1999년 7월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서울市少年少女合唱團)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은 1964년 서울특별시에서 창단한 소년 소녀 합창단이다. 어린이들의 합창 음악, 합창 단원 교육 및 자질 향상, 한국 동요의 소개와 보급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1978년 4월 세종문화회관 예술 단체 소속이 되었으며, 1999년 7월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1985년 서울특별시에서 창단한 오페라단이다. ‘한국 오페라의 국제화’와 ‘시민들에 대한 수준 높은 문화 봉사’를 창단 이념을 가졌으며, 1999년 7월 세종문화회관 예술 단체 소속이 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서울시오페라단 (서울市opera團)
서울시오페라단은 1985년 서울특별시에서 창단한 오페라단이다. ‘한국 오페라의 국제화’와 ‘시민들에 대한 수준 높은 문화 봉사’를 창단 이념을 가졌으며, 1999년 7월 세종문화회관 예술 단체 소속이 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은 1984년 서울특별시에서 창단한 청소년 교향악단이다.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과 건전한 청소년 문화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서울 시립 소년 소녀 교향악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하여 1994년 10월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 2007년 10월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활동하다가 2023년 7월 운영이 중단되었다.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 (서울市靑少年交響樂團)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은 1984년 서울특별시에서 창단한 청소년 교향악단이다.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과 건전한 청소년 문화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서울 시립 소년 소녀 교향악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하여 1994년 10월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 2007년 10월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활동하다가 2023년 7월 운영이 중단되었다.
「선구자」는 1933년 또는 1944년에 작곡 및 발표한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가곡이다. 중국 용정(龍井)에서 작곡되어, 원래 제목은 「용정의 노래」였으나 광복 이후 「선구자」라는 제목의 노래로 대한민국에 알려지게 되고 가사도 일부 바뀌었다. 작곡 시기를 비롯하여 작사자의 정체, 선구자의 의미 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는 곡이기도 하다.
선구자 (先驅者)
「선구자」는 1933년 또는 1944년에 작곡 및 발표한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가곡이다. 중국 용정(龍井)에서 작곡되어, 원래 제목은 「용정의 노래」였으나 광복 이후 「선구자」라는 제목의 노래로 대한민국에 알려지게 되고 가사도 일부 바뀌었다. 작곡 시기를 비롯하여 작사자의 정체, 선구자의 의미 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는 곡이기도 하다.
「애수의 조선」은 1927년에 작곡 및 발표한 홍난파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창작 기악곡이다. 1927년 8월 5일 중앙기독교청년회 회관에서 악우회 주최로 열린 납량음악회에서 작곡자인 홍난파의 연주로 초연이 되었고, 악보는 1931년 연악회에서 출판하였다.
애수의 조선 (哀愁의 朝鮮)
「애수의 조선」은 1927년에 작곡 및 발표한 홍난파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창작 기악곡이다. 1927년 8월 5일 중앙기독교청년회 회관에서 악우회 주최로 열린 납량음악회에서 작곡자인 홍난파의 연주로 초연이 되었고, 악보는 1931년 연악회에서 출판하였다.
「어린이날 노래」는 1949년부터 불리기 시작한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 기념가이다. 「어린이날 노래」는 모두 3편이 있다. 최초의 것은 헨리 워크(Henry Clay Work)가 작곡한 찬송가 선율에 김기전(金起田)이 가사를 붙인 것이고, 두 번째는 윤석중이 작사, 안기영(安基永)이 작곡한 것이고, 세 번째는 현재 불리고 있는 것으로 윤석중이 작사, 윤극영이 작곡한 것이다.
어린이날 노래
「어린이날 노래」는 1949년부터 불리기 시작한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 기념가이다. 「어린이날 노래」는 모두 3편이 있다. 최초의 것은 헨리 워크(Henry Clay Work)가 작곡한 찬송가 선율에 김기전(金起田)이 가사를 붙인 것이고, 두 번째는 윤석중이 작사, 안기영(安基永)이 작곡한 것이고, 세 번째는 현재 불리고 있는 것으로 윤석중이 작사, 윤극영이 작곡한 것이다.
『음악계』는 1925년 홍난파가 주관하고 연악회에서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잡지이다. 1925년 4월 제1호에 이어 1925년 6월 제2호, 1925년 7월 제3호, 1926년 2월에 제4호를 발행하였다. 1926년, 홍난파가 다시 일본 유학을 떠남에 따라 그 후 더 이상 발간을 하지 못했다.
음악계 (音樂界)
『음악계』는 1925년 홍난파가 주관하고 연악회에서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잡지이다. 1925년 4월 제1호에 이어 1925년 6월 제2호, 1925년 7월 제3호, 1926년 2월에 제4호를 발행하였다. 1926년, 홍난파가 다시 일본 유학을 떠남에 따라 그 후 더 이상 발간을 하지 못했다.
『찬미가』는 1892년, 감리교회에서 선교사 존스(George Heber Jones)와 로드와일러(Louis G. Rothweiler)가 영국과 미국 교회의 유명한 찬송가를 번역하여 간행한 개신교 찬송가집이다. 악보가 없는 가사집이며, 우리나라에서 발행한 최초의 찬송가집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1892년 판은 현존하지 않고 기록으로만 전해 오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1895년 판이며, 그 후 계속 개정 증보판이 간행되었다.
찬미가 (讚美歌)
『찬미가』는 1892년, 감리교회에서 선교사 존스(George Heber Jones)와 로드와일러(Louis G. Rothweiler)가 영국과 미국 교회의 유명한 찬송가를 번역하여 간행한 개신교 찬송가집이다. 악보가 없는 가사집이며, 우리나라에서 발행한 최초의 찬송가집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1892년 판은 현존하지 않고 기록으로만 전해 오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1895년 판이며, 그 후 계속 개정 증보판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