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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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이포제철소는 1917년 일본 미쓰비시 재벌 계열사인 미쓰비시 제철에 의해 황해도 송림면에 건설된 제철소이다. 황해제철연합기업소(黃海製鐵聯合企業所)라고도 한다. 재령과 은율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철광석을 원료로 선철과 강재를 생산하여 일본에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미쓰비시 재벌의 주력 제철소로 1921년 일본 해군의 군축 방침이 결정되면서 생산에 타격을 입었다. 1934년에 일본제철주식회사 산하의 분공장이 되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전쟁 수행을 위한 선박 건조에 필요한 강재를 조달하는 핵심 군수공장이었다.
겸이포제철소 (兼二浦製鐵所)
겸이포제철소는 1917년 일본 미쓰비시 재벌 계열사인 미쓰비시 제철에 의해 황해도 송림면에 건설된 제철소이다. 황해제철연합기업소(黃海製鐵聯合企業所)라고도 한다. 재령과 은율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철광석을 원료로 선철과 강재를 생산하여 일본에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미쓰비시 재벌의 주력 제철소로 1921년 일본 해군의 군축 방침이 결정되면서 생산에 타격을 입었다. 1934년에 일본제철주식회사 산하의 분공장이 되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전쟁 수행을 위한 선박 건조에 필요한 강재를 조달하는 핵심 군수공장이었다.
경성방직주식회사는 1919년 김성수를 중심으로 한국인 자산가들이 결집하여 설립한 면방직 회사이다. 조선 경제의 부흥과 자립을 표방하며 생필품인 면직물을 국내에서 생산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20년에 자본금 100만 원으로 영등포에 공장부지 5,000평을 구입하여 공장 건설에 착수하여 1923년 완공되었다. 초창기 경영난을 극복하고 1930년부터 공장을 증축하고 만주에 남만방적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정서를 경영자원으로 성장한 민족계 대기업이라는 평가와 함께 식민지 권력과의 유착 및 전시체제기의 협력 등에 대한 비판도 받고 있다.
경성방직주식회사 (京城紡織株式會社)
경성방직주식회사는 1919년 김성수를 중심으로 한국인 자산가들이 결집하여 설립한 면방직 회사이다. 조선 경제의 부흥과 자립을 표방하며 생필품인 면직물을 국내에서 생산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20년에 자본금 100만 원으로 영등포에 공장부지 5,000평을 구입하여 공장 건설에 착수하여 1923년 완공되었다. 초창기 경영난을 극복하고 1930년부터 공장을 증축하고 만주에 남만방적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정서를 경영자원으로 성장한 민족계 대기업이라는 평가와 함께 식민지 권력과의 유착 및 전시체제기의 협력 등에 대한 비판도 받고 있다.
공익사는 1905년 박승직, 니시하라 가메조의 주도로 경성에 설립된 면포 수입 회사이다. 경성의 한국인 포목상들이 일본산 기계제 면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십시일반 출자하여 설립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무역회사로 급성장하였다. 1914년에는 주식회사 체제로 재편하고 국내와 일본에 출장소를 증설하고 만주에도 진출하였다. 1920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불황에 대응하여 자본금을 증자하였다. 이후 무역업 외에도 운송업·수산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일제 말까지 존속하였다. 두산그룹의 모태인 박승직상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익사 (共益社)
공익사는 1905년 박승직, 니시하라 가메조의 주도로 경성에 설립된 면포 수입 회사이다. 경성의 한국인 포목상들이 일본산 기계제 면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십시일반 출자하여 설립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무역회사로 급성장하였다. 1914년에는 주식회사 체제로 재편하고 국내와 일본에 출장소를 증설하고 만주에도 진출하였다. 1920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불황에 대응하여 자본금을 증자하였다. 이후 무역업 외에도 운송업·수산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일제 말까지 존속하였다. 두산그룹의 모태인 박승직상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19년 지물상(紙物商) 김성환 등 종로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무역회사.
대동무역주식회사 (大同貿易株式會社)
1919년 지물상(紙物商) 김성환 등 종로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무역회사.
대창무역주식회사는 1916년 종로 육의전 비단 상인 백윤수가 설립한 무역회사이다. 대대로 이어 온 육의전 비단 점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자본주의 체제에 적극 적응하고자 했다. 설립 후 전시 호황에 힘입어 큰 수익을 냈고 제조업 영역까지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공황으로 1920년 거액의 영업 손실을 입었다. 1920년대 장기 불황과 중국산 비단 수입 두절이 맞물리며 파산했다. 백씨 가문은 대창무역의 재건을 위해 1932년에 (주)대창사를 설립했다. 전통 상인에서 근대 산업자본가로의 전환에 성공하였다.
대창무역주식회사 (大昌貿易株式會社)
대창무역주식회사는 1916년 종로 육의전 비단 상인 백윤수가 설립한 무역회사이다. 대대로 이어 온 육의전 비단 점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자본주의 체제에 적극 적응하고자 했다. 설립 후 전시 호황에 힘입어 큰 수익을 냈고 제조업 영역까지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공황으로 1920년 거액의 영업 손실을 입었다. 1920년대 장기 불황과 중국산 비단 수입 두절이 맞물리며 파산했다. 백씨 가문은 대창무역의 재건을 위해 1932년에 (주)대창사를 설립했다. 전통 상인에서 근대 산업자본가로의 전환에 성공하였다.
1909년 오카 주로(岡十郞)가 설립하여 한반도 연해의 포경업을 독점 경영했던 회사.
동양포경주식회사 (東洋捕鯨株式會社)
1909년 오카 주로(岡十郞)가 설립하여 한반도 연해의 포경업을 독점 경영했던 회사.
무산철광개발주식회사는 1939년 동양 최대 철광산으로 알려진 무산광산의 개발을 위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광업이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이다. 무산광산은 동양 최대의 노천 철광산이지만 철분 함유율이 37~40%에 불과한 빈광으로 경제성이 없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공업화’의 상징으로 건설한 청진제철소에 철광석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942년 이후부터는 연간 100만 톤 정도의 철광석을 생산하였다. 무산철광개발주식회사는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제국 내 철강자립 정책의 추진과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
무산철광개발주식회사 (茂山鐵鑛開發株式會社)
무산철광개발주식회사는 1939년 동양 최대 철광산으로 알려진 무산광산의 개발을 위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광업이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이다. 무산광산은 동양 최대의 노천 철광산이지만 철분 함유율이 37~40%에 불과한 빈광으로 경제성이 없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공업화’의 상징으로 건설한 청진제철소에 철광석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942년 이후부터는 연간 100만 톤 정도의 철광석을 생산하였다. 무산철광개발주식회사는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제국 내 철강자립 정책의 추진과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
1902년 사토 준조(佐藤潤象) 등이 부산항의 매축을 위해 설립한 회사.
부산매축주식회사 (釜山埋築株式會社)
1902년 사토 준조(佐藤潤象) 등이 부산항의 매축을 위해 설립한 회사.
1935년 부산항 매축업자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가 창고업을 경영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
부산창고주식회사 (釜山倉庫株式會社)
1935년 부산항 매축업자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가 창고업을 경영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
1934년 일본 제지업계의 대표 기업인 오지제지(王子製紙)가 함경북도 길주(吉州)에 설립한 자회사.
북선제지화학공업주식회사 (北鮮製紙化學工業株式會社)
1934년 일본 제지업계의 대표 기업인 오지제지(王子製紙)가 함경북도 길주(吉州)에 설립한 자회사.
1941년 경기도 안양에 고토우(後藤庸視)가 설립한 제지공장.
삼왕제지주식회사 (三王製紙株式會社)
1941년 경기도 안양에 고토우(後藤庸視)가 설립한 제지공장.
1922년 박영근(朴永根)이 서울 종로에 설립한 고무신 제조 공장.
조선고무공업소 (朝鮮고무工業所)
1922년 박영근(朴永根)이 서울 종로에 설립한 고무신 제조 공장.
조선공업협회는 1925년 다가와 쓰네지로(田川常次郞)의 주도로 설립된 제조업자 중심의 경제 단체이다. 제조업자들이 공업 발전과 제조업자의 친목·단결을 위한 제반 활동을 목적으로 최초로 설립하였다. 1928년 조선공업자대회를 계기로 총독부의 인가를 거쳐 새로운 협회가 설립되었으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순수한 민간단체로 출범하였으나 점차 조선총독부의 경제 정책을 민간 제조업계에 전달하는 관변 경제단체로 변모하였다. 특히 1930년대 후반 전시체제기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숙련공 모집과 기계공 양성 등 국책을 수행하는 관변 단체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조선공업협회 (朝鮮工業協會)
조선공업협회는 1925년 다가와 쓰네지로(田川常次郞)의 주도로 설립된 제조업자 중심의 경제 단체이다. 제조업자들이 공업 발전과 제조업자의 친목·단결을 위한 제반 활동을 목적으로 최초로 설립하였다. 1928년 조선공업자대회를 계기로 총독부의 인가를 거쳐 새로운 협회가 설립되었으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순수한 민간단체로 출범하였으나 점차 조선총독부의 경제 정책을 민간 제조업계에 전달하는 관변 경제단체로 변모하였다. 특히 1930년대 후반 전시체제기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숙련공 모집과 기계공 양성 등 국책을 수행하는 관변 단체의 성격이 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