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경화"
검색결과 총 18건
김현성은 조선시대 송설체를 대표하는 문신, 서예가이다. 중종 대에서 광해군 대에 걸쳐 활동했다. 조맹부의 송설체를 근간으로 왕희지의 영향을 수용하였다. 조선 전기 송설체의 맥을 이은 조선식 송설체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138수의 시문이 수록된 『남창잡고』라는 문집을 남겼다.
김현성 (金玄成)
김현성은 조선시대 송설체를 대표하는 문신, 서예가이다. 중종 대에서 광해군 대에 걸쳐 활동했다. 조맹부의 송설체를 근간으로 왕희지의 영향을 수용하였다. 조선 전기 송설체의 맥을 이은 조선식 송설체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138수의 시문이 수록된 『남창잡고』라는 문집을 남겼다.
노송도는 늙은 소나무를 소재로 삼아 단독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자 장수의 상징으로서 회화로도 즐겨 그려졌다. 우리나라 노송도의 역사는 신라의 솔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 후기에 웅장한 소나무 그림을 남긴 정선은 노송도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노송도 (老松圖)
노송도는 늙은 소나무를 소재로 삼아 단독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자 장수의 상징으로서 회화로도 즐겨 그려졌다. 우리나라 노송도의 역사는 신라의 솔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 후기에 웅장한 소나무 그림을 남긴 정선은 노송도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노안도는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이다. 기러기와 갈대가 어우러진 풍경을 그린 그림은 이상적인 가을 풍경으로서 감상되었다. ‘노안(蘆雁)’은 ‘노안(老安)’과 음이 같아 평안한 노후를 의미하였으며,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길상적 의미에서 그려지기도 하였다.
노안도 (蘆雁圖)
노안도는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이다. 기러기와 갈대가 어우러진 풍경을 그린 그림은 이상적인 가을 풍경으로서 감상되었다. ‘노안(蘆雁)’은 ‘노안(老安)’과 음이 같아 평안한 노후를 의미하였으며,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길상적 의미에서 그려지기도 하였다.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은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25점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이 화첩 안에는 사농공상의 각 계층이 생업에 종사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놀이, 서당, 우물터, 혼례 등 일상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조선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정취를 더해 풍속화의 예술성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 (金弘道 筆 風俗圖 畵帖)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은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25점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이 화첩 안에는 사농공상의 각 계층이 생업에 종사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놀이, 서당, 우물터, 혼례 등 일상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조선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정취를 더해 풍속화의 예술성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강세황필 「도산서원도」는 1751년 강세황이 이익에게 그려준 도산서원의 전경을 그린 수묵산수화이다. 문인화풍의 그림과, 그림을 제작한 내력을 기록한 제발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평화로운 남종산수화의 분위기를 풍기며, 원근법의 적용을 통해 더욱 현실적인 공간감을 완성하였다.
강세황필 도산서원도 (姜世晃筆 陶山書院圖)
강세황필 「도산서원도」는 1751년 강세황이 이익에게 그려준 도산서원의 전경을 그린 수묵산수화이다. 문인화풍의 그림과, 그림을 제작한 내력을 기록한 제발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평화로운 남종산수화의 분위기를 풍기며, 원근법의 적용을 통해 더욱 현실적인 공간감을 완성하였다.
이명기는 조선 후기 서양 화법을 수용하여 입체적인 초상화법을 구사한 화가이다. 전통적인 초상화법을 바탕으로 서양화의 명암법을 수용하여 입체감과 생동감이 두드러진 인물 표현을 구사하였다. 「채제공초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정조 대 관료 초상화를 남겼다.
이명기 (李命基)
이명기는 조선 후기 서양 화법을 수용하여 입체적인 초상화법을 구사한 화가이다. 전통적인 초상화법을 바탕으로 서양화의 명암법을 수용하여 입체감과 생동감이 두드러진 인물 표현을 구사하였다. 「채제공초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정조 대 관료 초상화를 남겼다.
이조묵은 조선 후기 「산수도」, 「한강낙안도」 등을 그린 문인 서화가이다. 일생 동안 김정희, 옹방강과 같은 조선과 청나라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학문과 예술에 침잠하였다.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도 전념하였으며, 오세창으로부터 수장가로서 ‘조선의 으뜸’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이조묵 (李祖默)
이조묵은 조선 후기 「산수도」, 「한강낙안도」 등을 그린 문인 서화가이다. 일생 동안 김정희, 옹방강과 같은 조선과 청나라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학문과 예술에 침잠하였다.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도 전념하였으며, 오세창으로부터 수장가로서 ‘조선의 으뜸’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이한철은 조선 후기 「고종어진」, 「이하응초상」 등을 제작한 도화서 화원이다. 1838년부터 1872년까지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초상화에서 가장 두각을 보였다. 철종·헌종·고종의 어진 도사에 주관화사로 참여하였다. 그 외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비롯한 다수의 고종 대 고관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초상화는 섬세하고 화려한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이한철 (李漢喆)
이한철은 조선 후기 「고종어진」, 「이하응초상」 등을 제작한 도화서 화원이다. 1838년부터 1872년까지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초상화에서 가장 두각을 보였다. 철종·헌종·고종의 어진 도사에 주관화사로 참여하였다. 그 외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비롯한 다수의 고종 대 고관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초상화는 섬세하고 화려한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천칠봉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를 역임한 화가이다.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목우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주력 분야는 풍경화로서, 창덕궁을 비롯한 고궁과 북한산 일대의 풍경을 사실적인 시각으로 그렸다. 손응성, 변시지 등과 더불어 고궁의 풍경을 주로 그린 비원파의 일원이다.
천칠봉 (千七峰)
천칠봉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를 역임한 화가이다.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목우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주력 분야는 풍경화로서, 창덕궁을 비롯한 고궁과 북한산 일대의 풍경을 사실적인 시각으로 그렸다. 손응성, 변시지 등과 더불어 고궁의 풍경을 주로 그린 비원파의 일원이다.
한선국은 조선 후기 「허유세이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본관은 청주이며, 한선국의 두 아들과 4촌 형제 등도 화원으로 활동하였다. 궁정의 다양한 도감에서 활약한 기록이 있으며, 1647년에는 연행사 수행화원으로 베이징에 다녀왔다. 전칭작으로 「허유세이도」가 전한다.
한선국 (韓善國)
한선국은 조선 후기 「허유세이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본관은 청주이며, 한선국의 두 아들과 4촌 형제 등도 화원으로 활동하였다. 궁정의 다양한 도감에서 활약한 기록이 있으며, 1647년에는 연행사 수행화원으로 베이징에 다녀왔다. 전칭작으로 「허유세이도」가 전한다.
함제건은 조선 후기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이다. 현종 대부터 숙종 대에 걸쳐 궁중에서 다양한 행사의 도감에 참여하였다. 1682년에는 통신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일본 측 문사들의 요청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한 기록이 전한다.
함제건 (咸悌健)
함제건은 조선 후기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이다. 현종 대부터 숙종 대에 걸쳐 궁중에서 다양한 행사의 도감에 참여하였다. 1682년에는 통신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일본 측 문사들의 요청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한 기록이 전한다.
허필은 조선 후기 「헐성루망만이천봉도」, 「묘길상도」 등을 그린 문인화가이다. 이인좌의 난으로 출사가 어려웠던 허필은 평생의 지기인 강세황과 더불어 시서화에 전념하며 시서화 삼절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현재 20여 점 내외의 작품이 남아 있다.
허필 (許佖)
허필은 조선 후기 「헐성루망만이천봉도」, 「묘길상도」 등을 그린 문인화가이다. 이인좌의 난으로 출사가 어려웠던 허필은 평생의 지기인 강세황과 더불어 시서화에 전념하며 시서화 삼절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현재 20여 점 내외의 작품이 남아 있다.
강세황은 조선 후기 시서화에서 일가를 이룬 문인화가이다. 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기념비적인 70세 「자화상」을 제작하였으며, 실경산수화에 서양식 투시 원근법을 도입한 『송도기행첩』을 제작하였다. 명청 대 회화 사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종화, 문인화풍의 화조화, 사군자화가 조선 화단에 정착하는 데 기여하였다. 풍부한 지식과 안목을 바탕으로 18세기 주요 화가들의 그림에 화평을 적었으며,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강세황 (姜世晃)
강세황은 조선 후기 시서화에서 일가를 이룬 문인화가이다. 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기념비적인 70세 「자화상」을 제작하였으며, 실경산수화에 서양식 투시 원근법을 도입한 『송도기행첩』을 제작하였다. 명청 대 회화 사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종화, 문인화풍의 화조화, 사군자화가 조선 화단에 정착하는 데 기여하였다. 풍부한 지식과 안목을 바탕으로 18세기 주요 화가들의 그림에 화평을 적었으며,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강이오는 조선 후기 「강안주유도」, 「송하망폭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무신이다. 강세황의 손자로서 회화와 공장에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조희룡은 강이오가 회화에 뛰어났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를 증명하는 매화도 및 산수화가 전하고 있다. 그의 초상화는 이재관이 그렸으며, 김정희가 그의 인품을 칭송하는 찬문을 적었다.
강이오 (姜彛五)
강이오는 조선 후기 「강안주유도」, 「송하망폭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무신이다. 강세황의 손자로서 회화와 공장에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조희룡은 강이오가 회화에 뛰어났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를 증명하는 매화도 및 산수화가 전하고 있다. 그의 초상화는 이재관이 그렸으며, 김정희가 그의 인품을 칭송하는 찬문을 적었다.
『개자원화보』는 1679년 중국의 학자 이어가 간행한 명화 복제집이자 회화 학습서이다. 17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4집까지 증보 간행되었다. 초집은 산수화 중심의 이론서 및 실습서로 구성되었고, 제2~4집은 꽃과 새, 인물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에 전래되어 18세기 이후 남종문인화의 수용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개자원화보 (芥子園畵譜)
『개자원화보』는 1679년 중국의 학자 이어가 간행한 명화 복제집이자 회화 학습서이다. 17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4집까지 증보 간행되었다. 초집은 산수화 중심의 이론서 및 실습서로 구성되었고, 제2~4집은 꽃과 새, 인물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에 전래되어 18세기 이후 남종문인화의 수용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분벽화는 무덤 안의 천장이나 벽면에 그려 놓은 그림이다. 현세의 부귀영화가 내세에도 계속될 것으로 믿는 내세관이 반영되어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고분벽화는 고구려에서 가장 꽃피웠으며 이후 조선 초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고분벽화는 제작된 시대의 사회문화상을 반영하고 있기에 사료가 드문 고대 사회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되고 있다.
고분벽화 (古墳壁畵)
고분벽화는 무덤 안의 천장이나 벽면에 그려 놓은 그림이다. 현세의 부귀영화가 내세에도 계속될 것으로 믿는 내세관이 반영되어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고분벽화는 고구려에서 가장 꽃피웠으며 이후 조선 초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고분벽화는 제작된 시대의 사회문화상을 반영하고 있기에 사료가 드문 고대 사회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되고 있다.
금오계첩은 1729년과 1742년 정선이 제작한 시화첩이다. 조선시대에는 의금부 신입 도사들의 신고식인 면신례를 기념하기 위해 금오계첩을 제작하여 나누어 가지곤 하였다. 진경산수화 화가인 정선은 1729년과 1742년에 각기 다른 금오계첩을 제작하였다. 1729년 제작된 첫 번째 금오계첩은 측면에서 조망한 의금부 관아와 주변 경관을 담고 있으며, 1742년 제작된 두 번째 금오계첩은 기존의 기록화적인 의금부도에서 벗어나 감상화 형식의 변모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오계첩 (金吾契帖)
금오계첩은 1729년과 1742년 정선이 제작한 시화첩이다. 조선시대에는 의금부 신입 도사들의 신고식인 면신례를 기념하기 위해 금오계첩을 제작하여 나누어 가지곤 하였다. 진경산수화 화가인 정선은 1729년과 1742년에 각기 다른 금오계첩을 제작하였다. 1729년 제작된 첫 번째 금오계첩은 측면에서 조망한 의금부 관아와 주변 경관을 담고 있으며, 1742년 제작된 두 번째 금오계첩은 기존의 기록화적인 의금부도에서 벗어나 감상화 형식의 변모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재로 영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재로와 아들 김치인을 그린 영정이다. 현재 김재로를 그린 중국본과 김치인을 그린 한국본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본은 1738년에 김재로가 주청사로 북경에 갔을 때 중국의 궁정화가 시옥이 그린 것을 받은 것이다. 중국풍으로 그려졌다. 한국본은 변상벽과 한종유가 같이 그린 김치인의 초상화로 얼굴 표현이 매우 치밀하다. 작가가 명확히 알려져 있는 합작 초상화의 드문 예이다. 화면에 ‘51세진’이라 쓰여 있어 1766년 김치인이 51세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초상화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김재로 영정 (金在魯 影幀)
김재로 영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재로와 아들 김치인을 그린 영정이다. 현재 김재로를 그린 중국본과 김치인을 그린 한국본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본은 1738년에 김재로가 주청사로 북경에 갔을 때 중국의 궁정화가 시옥이 그린 것을 받은 것이다. 중국풍으로 그려졌다. 한국본은 변상벽과 한종유가 같이 그린 김치인의 초상화로 얼굴 표현이 매우 치밀하다. 작가가 명확히 알려져 있는 합작 초상화의 드문 예이다. 화면에 ‘51세진’이라 쓰여 있어 1766년 김치인이 51세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초상화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