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규철"
검색결과 총 32건
곽기수는 조선 전기 예조좌랑, 부안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선조대 문과 별시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예조좌랑과 부안현감 등에 제수되었으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다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시문학(詩文學)과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특히 『주역(周易)』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였다.
곽기수 (郭期壽)
곽기수는 조선 전기 예조좌랑, 부안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선조대 문과 별시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예조좌랑과 부안현감 등에 제수되었으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다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시문학(詩文學)과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특히 『주역(周易)』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였다.
길삼봉은 조선 전기 선조대 정여립 사건의 연루자 심문 과정에서 언급되었던 가상의 인물이다. 길삼봉을 처음 언급하였던 인물은 정여립의 아들 정옥남이었다. 정옥남은 선조의 친국을 받으면서 사건의 주모자로 길삼봉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국문 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진술이 일치하지 않았고, 이름도 다르게 언급되었다. 이후 길삼봉의 이름이 간간이 언급되었고, 역모를 주도하였다거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진술 등이 있었지만,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길삼봉 (吉三峯)
길삼봉은 조선 전기 선조대 정여립 사건의 연루자 심문 과정에서 언급되었던 가상의 인물이다. 길삼봉을 처음 언급하였던 인물은 정여립의 아들 정옥남이었다. 정옥남은 선조의 친국을 받으면서 사건의 주모자로 길삼봉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국문 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진술이 일치하지 않았고, 이름도 다르게 언급되었다. 이후 길삼봉의 이름이 간간이 언급되었고, 역모를 주도하였다거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진술 등이 있었지만,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김성립은 조선 전기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 등을 지냈고,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남편이자 문장가인 문신이다. 선조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장인 허엽과 아내 허난설헌, 처남 허균 등이 포함되었던 '허씨오문장'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김성립 (金誠立)
김성립은 조선 전기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 등을 지냈고,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남편이자 문장가인 문신이다. 선조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장인 허엽과 아내 허난설헌, 처남 허균 등이 포함되었던 '허씨오문장'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문덕교는 조선 전기 형조좌랑, 흥덕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선조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을 사람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전쟁이 끝난 후 흥덕현감에 제수되었으나, 2년 만에 물러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현종 대 함흥에 있는 문회서원의 별사에 배향되었다. 시문집 『동호문집』이 전해진다.
문덕교 (文德敎)
문덕교는 조선 전기 형조좌랑, 흥덕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선조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을 사람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전쟁이 끝난 후 흥덕현감에 제수되었으나, 2년 만에 물러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현종 대 함흥에 있는 문회서원의 별사에 배향되었다. 시문집 『동호문집』이 전해진다.
박숙진은 조선 전기 세조~성종 대에 승정원 도승지, 이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성균관 직강으로 있으면서 『경국육전(經國六典)』을 수교(讎校)[^2]할 때 「병전(兵典)」의 교정을 담당하였다. 대사헌으로 있는 동안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다가 성종의 명에 따라 의금부에서 추국을 받았으니 곧 서용되어 개성부 유수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박숙진 (朴叔蓁)
박숙진은 조선 전기 세조~성종 대에 승정원 도승지, 이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성균관 직강으로 있으면서 『경국육전(經國六典)』을 수교(讎校)[^2]할 때 「병전(兵典)」의 교정을 담당하였다. 대사헌으로 있는 동안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다가 성종의 명에 따라 의금부에서 추국을 받았으니 곧 서용되어 개성부 유수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박심문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예조정랑, 평안도판관‚ 종사관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세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후대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가 실패하여 박팽년·성삼문 등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심문 (朴審問)
박심문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예조정랑, 평안도판관‚ 종사관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세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후대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가 실패하여 박팽년·성삼문 등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팽년은 조선 세종~세조 대 집현전 부제학. 승정원 좌승지, 형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에 제수되면서 세종 대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였고, 혹독한 고문으로 죽었다. 숙종 대 관작이 회복되고 증직 및 증시되었다.
박팽년 (朴彭年)
박팽년은 조선 세종~세조 대 집현전 부제학. 승정원 좌승지, 형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에 제수되면서 세종 대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였고, 혹독한 고문으로 죽었다. 숙종 대 관작이 회복되고 증직 및 증시되었다.
성삼문은 조선 세종~세조 대 사간원 우사간, 집현전 부제학. 예조참의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세종 대의 주요 사업에 참여하였다. 특히, 신숙주와 함께 요동에 질정관으로 파견되어 어문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였던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성삼문 (成三問)
성삼문은 조선 세종~세조 대 사간원 우사간, 집현전 부제학. 예조참의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세종 대의 주요 사업에 참여하였다. 특히, 신숙주와 함께 요동에 질정관으로 파견되어 어문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였던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송흠은 조선 전기 16세기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 겸 문신이다. 성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관직에 물러나 후학 양성 및 학문에 힘썼다. 중종반정 이후 관직에 다시 나아갔다. 모친이 연로하자 봉양을 위해 외직을 신청해서 근무하였다. 모친을 잘 봉양하였고, 상을 당해서 관련 의례에 정성을 다해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송흠 (宋欽)
송흠은 조선 전기 16세기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 겸 문신이다. 성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관직에 물러나 후학 양성 및 학문에 힘썼다. 중종반정 이후 관직에 다시 나아갔다. 모친이 연로하자 봉양을 위해 외직을 신청해서 근무하였다. 모친을 잘 봉양하였고, 상을 당해서 관련 의례에 정성을 다해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신말주는 조선 전기 전주부윤, 진주목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司諫院 大司諫)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신숙주의 동생이다. 단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사간원에서 근무하다가 세조 즉위 이후 더욱 중용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되었다. 성종 즉위 후에는 주로 외직을 담당하다가 다시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야사에는 그가 단종 폐위 이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대의 기록과 비교하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신말주 (申末舟)
신말주는 조선 전기 전주부윤, 진주목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司諫院 大司諫)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신숙주의 동생이다. 단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사간원에서 근무하다가 세조 즉위 이후 더욱 중용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되었다. 성종 즉위 후에는 주로 외직을 담당하다가 다시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야사에는 그가 단종 폐위 이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대의 기록과 비교하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양대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자 시인으로, 시문집 『청계집』을 남긴 문인인다. 시문으로 유명하였고, 삼당파 시인으로 불렸던 이달‧백광훈‧임제와 교류하면서 시회를 열었다. 당대를 대표하는 재능으로 평가를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재를 들여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싸웠다. 의병을 모집하고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피로가 축적되어 병사하였다.
양대박 (梁大樸)
양대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자 시인으로, 시문집 『청계집』을 남긴 문인인다. 시문으로 유명하였고, 삼당파 시인으로 불렸던 이달‧백광훈‧임제와 교류하면서 시회를 열었다. 당대를 대표하는 재능으로 평가를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재를 들여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싸웠다. 의병을 모집하고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피로가 축적되어 병사하였다.
이적은 조선 전기 중종 대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와 교리(校理)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적의 성격과 능력 문제 때문에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반면, 『국조인물고』에는 그의 성품이 순박하고 온화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적 (李迪)
이적은 조선 전기 중종 대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와 교리(校理)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적의 성격과 능력 문제 때문에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반면, 『국조인물고』에는 그의 성품이 순박하고 온화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완은 조선 전기 중종 대 천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 대간직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아버지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천으로 유배되었으나 중종 즉위 후 방면되었다. 이후 재행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천거를 통해 관직에 임용되었다. 천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지만, 대간직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하지만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직첩이 회수되었다가 병사한 이후 돌려받았다.
정완 (鄭浣)
정완은 조선 전기 중종 대 천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 대간직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아버지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천으로 유배되었으나 중종 즉위 후 방면되었다. 이후 재행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천거를 통해 관직에 임용되었다. 천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지만, 대간직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하지만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직첩이 회수되었다가 병사한 이후 돌려받았다.
조사수는 조선 중종~명종 대 의정부 좌참찬, 사간원 대사간,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대간 직을 두루 거쳤으며 문장 실력과 인품 등에서 동료 관료들에게 높을 평가를 받았다. 명종 대에는 더욱 중용되어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 등을 모두 역임하였다.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 해결을 위해 주청사(奏請使)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조사수 (趙士秀)
조사수는 조선 중종~명종 대 의정부 좌참찬, 사간원 대사간,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대간 직을 두루 거쳤으며 문장 실력과 인품 등에서 동료 관료들에게 높을 평가를 받았다. 명종 대에는 더욱 중용되어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 등을 모두 역임하였다.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 해결을 위해 주청사(奏請使)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조서로는 조선 전기 태종~세종 대 이조좌랑, 사헌부 지평, 지신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개국공신이었던 부흥군 조반의 아들로, 태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병권 회수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가 창원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 복직되었다. 세종 대 승정원 지신사에 임명되었으나, 강상(綱常)의 죄를 지은 사건을 일으켜 파직되어 영일에 유배되었다. 개국공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추가 형벌을 받지는 않았다.
조서로 (趙瑞老)
조서로는 조선 전기 태종~세종 대 이조좌랑, 사헌부 지평, 지신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개국공신이었던 부흥군 조반의 아들로, 태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병권 회수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가 창원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 복직되었다. 세종 대 승정원 지신사에 임명되었으나, 강상(綱常)의 죄를 지은 사건을 일으켜 파직되어 영일에 유배되었다. 개국공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추가 형벌을 받지는 않았다.
조서안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병조참판,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개국공신 조반의 아들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세종 대 대간으로 있으면서 양녕대군을 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자주 올렸고, 승지 직에 제수되었다.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었으며, 문종과 단종 즉위 후에도 도관찰사 직과 개성부유수 등에 임명되었다. 생활이 검소하였고, 사대부의 풍모를 지녔던 인물로 주변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조서안 (趙瑞安)
조서안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병조참판,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개국공신 조반의 아들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세종 대 대간으로 있으면서 양녕대군을 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자주 올렸고, 승지 직에 제수되었다.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었으며, 문종과 단종 즉위 후에도 도관찰사 직과 개성부유수 등에 임명되었다. 생활이 검소하였고, 사대부의 풍모를 지녔던 인물로 주변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조수량은 조선 전기 세종~단종 대 형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병조참판, 평안도관찰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세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436년 함길도 지역에 발생한 기근과 역질 문제 때문에 경차관으로 파견되어 지역의 실상을 파악하였다. 관찰사 직과 형조참판을 거쳐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되었다. 계유정난 때 김종서·황보인 등과 같은 당파로 몰렸던 형 조수량에 연루되어 귀양을 갔다. 결국, 안평대군과의 관계가 문제되어 처형되었다.
조수량 (趙遂良)
조수량은 조선 전기 세종~단종 대 형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병조참판, 평안도관찰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세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436년 함길도 지역에 발생한 기근과 역질 문제 때문에 경차관으로 파견되어 지역의 실상을 파악하였다. 관찰사 직과 형조참판을 거쳐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되었다. 계유정난 때 김종서·황보인 등과 같은 당파로 몰렸던 형 조수량에 연루되어 귀양을 갔다. 결국, 안평대군과의 관계가 문제되어 처형되었다.
조종생은 조선 전기 태종~세종 대 지신사, 강원도 도관찰사, 병조참판, 평안도 감사, 한성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조계생과 조말생의 동생으로, 태종 대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조정랑, 사헌부 장령, 승정원 좌대언·우대언 등을 거쳐 세종 대에는 지신사에 임명되었다. 뇌물 문제로 파직되었다가 진헌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었고, 여러 지역의 관찰사와 한성부윤, 전주부윤 등의 직책을 맡았다.
조종생 (趙從生)
조종생은 조선 전기 태종~세종 대 지신사, 강원도 도관찰사, 병조참판, 평안도 감사, 한성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조계생과 조말생의 동생으로, 태종 대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조정랑, 사헌부 장령, 승정원 좌대언·우대언 등을 거쳐 세종 대에는 지신사에 임명되었다. 뇌물 문제로 파직되었다가 진헌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었고, 여러 지역의 관찰사와 한성부윤, 전주부윤 등의 직책을 맡았다.
주양우는 조선 전기 중종~명종 대 질정관, 전적, 어전통사를 역임하였고, 뛰어난 중국어 실력으로 역관 임무를 수행한 문신이다. 중종 대 생원시와 진사시 문과에 모두 급제하였다. 스스로 한어를 공부하면서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고, 역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미천한 출신 때문에 명에 파견하는 질정관 임명에 사헌부에서 반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어 실력이 뛰어나고 관련 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질정관에 임명되었다. 문관 중에 한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소수의 인물이었으므로 사행 파견에 자주 참여하였다.
주양우 (朱良佑)
주양우는 조선 전기 중종~명종 대 질정관, 전적, 어전통사를 역임하였고, 뛰어난 중국어 실력으로 역관 임무를 수행한 문신이다. 중종 대 생원시와 진사시 문과에 모두 급제하였다. 스스로 한어를 공부하면서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고, 역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미천한 출신 때문에 명에 파견하는 질정관 임명에 사헌부에서 반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어 실력이 뛰어나고 관련 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질정관에 임명되었다. 문관 중에 한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소수의 인물이었으므로 사행 파견에 자주 참여하였다.
채세걸은 조선 전기 중종 대 예조참의, 병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생원시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사간원 정언으로 근무하면서 규찰 업무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체직되었다. 관직의 제수와 체직을 거듭하다가 문과 중시에 급제하면서 다시 관직에 서용되었다. 파주목사로 재직할 때는 지역을 잘 다스려 포상을 받았다. 참의 직과 관찰사 직을 거쳐 승정원 좌부승지까지 제수되었지만, 전력 문제 때문에 교체되었다.
채세걸 (蔡世傑)
채세걸은 조선 전기 중종 대 예조참의, 병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생원시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사간원 정언으로 근무하면서 규찰 업무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체직되었다. 관직의 제수와 체직을 거듭하다가 문과 중시에 급제하면서 다시 관직에 서용되었다. 파주목사로 재직할 때는 지역을 잘 다스려 포상을 받았다. 참의 직과 관찰사 직을 거쳐 승정원 좌부승지까지 제수되었지만, 전력 문제 때문에 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