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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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암 금양강도지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현일 관련 강학처이다. 이현일이 유배에서 풀려난 후 안동 임하현 금소역에 우거하면서 건립한 집이다. 물력이 부족하여 1700년부터 1704년까지 4년에 걸쳐 건립하였다. 인근에 머물며 학생들을 강학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원래의 건물은 퇴락하여 전해지지 않았는데 1830년 안동 사림이 집터에 단을 설치하고, 1893년에 유허비를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901년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재사로 사용되었다.
갈암 금양강도지 (葛庵 錦陽講道址)
길암 금양강도지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현일 관련 강학처이다. 이현일이 유배에서 풀려난 후 안동 임하현 금소역에 우거하면서 건립한 집이다. 물력이 부족하여 1700년부터 1704년까지 4년에 걸쳐 건립하였다. 인근에 머물며 학생들을 강학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원래의 건물은 퇴락하여 전해지지 않았는데 1830년 안동 사림이 집터에 단을 설치하고, 1893년에 유허비를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901년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재사로 사용되었다.
금오서원은 1572년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원사 중의 하나이다. 1567년 길재를 제향하는 서원 건립의 허가를 받아서 1572년 묘우를 완성하고, 1575년 사액을 받았다. 당시 김종직, 정붕, 박영을 병향하였다. 1602년 중건하면서 남산서원이라 칭하고, 1609년에 재사액 현판이 내려졌다. 1642년 사림의 공의로 장현광을 추향하였다.
금오서원 (金烏書院)
금오서원은 1572년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원사 중의 하나이다. 1567년 길재를 제향하는 서원 건립의 허가를 받아서 1572년 묘우를 완성하고, 1575년 사액을 받았다. 당시 김종직, 정붕, 박영을 병향하였다. 1602년 중건하면서 남산서원이라 칭하고, 1609년에 재사액 현판이 내려졌다. 1642년 사림의 공의로 장현광을 추향하였다.
달성 도동서원은1568년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건립한 서원이다. 1568년 비슬산 기슭에 쌍계서원으로 건립되어 1573년 사액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04년 김굉필의 묘소가 있는 도동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1607년 재사액을 허가받고, 1610년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1871년의 원사 훼철령에도 존속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중정당과 사당, 담장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10일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2019년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달성 도동서원 (達城 道東書院)
달성 도동서원은1568년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건립한 서원이다. 1568년 비슬산 기슭에 쌍계서원으로 건립되어 1573년 사액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04년 김굉필의 묘소가 있는 도동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1607년 재사액을 허가받고, 1610년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1871년의 원사 훼철령에도 존속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중정당과 사당, 담장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10일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2019년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생서원은 1843년 배삼익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1823년 배삼익을 제향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고, 1830년에 도생서당을 중건하기로 했다. 이후 중건을 관리할 임원을 선정하고 단계적으로 서당 터와 건립에 필요한 재목 등을 구매하였다. 1832년부터 7년만에 주사를 건립하고, 1840년부터 3년 동안 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재와 문루 등을 세웠으나 1868년에 훼철되었다.
도생서원 (道生書院)
도생서원은 1843년 배삼익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1823년 배삼익을 제향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고, 1830년에 도생서당을 중건하기로 했다. 이후 중건을 관리할 임원을 선정하고 단계적으로 서당 터와 건립에 필요한 재목 등을 구매하였다. 1832년부터 7년만에 주사를 건립하고, 1840년부터 3년 동안 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재와 문루 등을 세웠으나 1868년에 훼철되었다.
안동 병산서원은 1605년 유성룡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악서당이었으며, 유성룡의 건의로 병산으로 옮겨 지으며 병산서당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가 1605년 병산서당을 중건하고 1614년 유성룡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서원으로의 위상을 갖추었다. 1863년 사액되었고, 서원훼철령에도 존속하였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안동 병산서원 (安東 屛山書院)
안동 병산서원은 1605년 유성룡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악서당이었으며, 유성룡의 건의로 병산으로 옮겨 지으며 병산서당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가 1605년 병산서당을 중건하고 1614년 유성룡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서원으로의 위상을 갖추었다. 1863년 사액되었고, 서원훼철령에도 존속하였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삼명서원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인 이눌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이눌의 본관은 영천이며, 자는 희인이고 호는 약우이다. 1917~1953년 사이 삼명재로 건립된 후 1968년 경에 서원으로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포항시 향토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명이인인 낙의재 이눌의 행적을 도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삼명서원 (三明書院)
삼명서원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인 이눌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이눌의 본관은 영천이며, 자는 희인이고 호는 약우이다. 1917~1953년 사이 삼명재로 건립된 후 1968년 경에 서원으로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포항시 향토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명이인인 낙의재 이눌의 행적을 도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송곡서원은 1694년 유방택 등을 추모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서산 지역에서 최초로 건립된 원사이다. 당초 서령 유씨 유방택·유백유 부자와 서산 정씨 정신보·정인경 부자를 제향하는 향현사인 송곡사로 불렸다. 18세기 말부터 경주 김씨, 광산 김씨, 남원 윤씨 인물을 합향하여 모두 9위를 제향하였다. 1868년 훼철되었고, 1910년에 복설하였다. 1949년, 1957년, 1964년, 1978년에 중수를 거쳤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송곡서원 (松谷書院)
송곡서원은 1694년 유방택 등을 추모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서산 지역에서 최초로 건립된 원사이다. 당초 서령 유씨 유방택·유백유 부자와 서산 정씨 정신보·정인경 부자를 제향하는 향현사인 송곡사로 불렸다. 18세기 말부터 경주 김씨, 광산 김씨, 남원 윤씨 인물을 합향하여 모두 9위를 제향하였다. 1868년 훼철되었고, 1910년에 복설하였다. 1949년, 1957년, 1964년, 1978년에 중수를 거쳤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영광 미산서원은 1782년 조선 전기 문신 민신 4부자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설립한 서원이다. 계유정란 당시 화를 입은 민신과 그의 세 아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충정사가 전신이다. 민신은 1781년 민치상의 상소로 복관되고, 이듬해 충정이란 시호를 받았다. 이후 양지리에 그의 사당이 지어졌다가 1788년 도내 사림들의 건의로 아들 삼형제도 함께 병향하여 충정사가 되었다. 180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이때 강당과 동·서재를 갖추었다. 1868년 훼철된 후 1984년에 복원하였다.
영광 미산서원 (眉山書院)
영광 미산서원은 1782년 조선 전기 문신 민신 4부자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설립한 서원이다. 계유정란 당시 화를 입은 민신과 그의 세 아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충정사가 전신이다. 민신은 1781년 민치상의 상소로 복관되고, 이듬해 충정이란 시호를 받았다. 이후 양지리에 그의 사당이 지어졌다가 1788년 도내 사림들의 건의로 아들 삼형제도 함께 병향하여 충정사가 되었다. 180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이때 강당과 동·서재를 갖추었다. 1868년 훼철된 후 1984년에 복원하였다.
경주 옥산서원은 1572년 조선 전기 문신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창건한 서원이다. 1573년 사액되었으며, 수차례 치제와 서적이 하사되었다. 경주를 대표하는 서원에서 18세기 말 이래로 영남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자리하였다.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하였으며, 건립 이래로 유지해온 건물과 소장자료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의 부속건물로 지정되었고, 2019년 7월 6일 “한국의 서원”에 포함된 9개 서원 중 하나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경주 옥산서원 (慶州 玉山書院)
경주 옥산서원은 1572년 조선 전기 문신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창건한 서원이다. 1573년 사액되었으며, 수차례 치제와 서적이 하사되었다. 경주를 대표하는 서원에서 18세기 말 이래로 영남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자리하였다.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하였으며, 건립 이래로 유지해온 건물과 소장자료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의 부속건물로 지정되었고, 2019년 7월 6일 “한국의 서원”에 포함된 9개 서원 중 하나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완계서원은 1788년 조선 후기 문신 권도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에 창건한 서원이다. 권도는 문익점을 제향한 도천서원에 병향되었다가 1788년 완계서원을 건립한 후 이안되었다. 권극량은 1708년 두릉서원에 배향되었다가 1719년에 훼철되면서 철향하였다가 1801년에 완계서원으로 이안하였다. 완계서원은 1868년 서원훼철령으로 사라졌다가 1874년 강당을 중건하였고, 대문과 동재, 내삼문, 사당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완계서원 (浣溪書院)
완계서원은 1788년 조선 후기 문신 권도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에 창건한 서원이다. 권도는 문익점을 제향한 도천서원에 병향되었다가 1788년 완계서원을 건립한 후 이안되었다. 권극량은 1708년 두릉서원에 배향되었다가 1719년에 훼철되면서 철향하였다가 1801년에 완계서원으로 이안하였다. 완계서원은 1868년 서원훼철령으로 사라졌다가 1874년 강당을 중건하였고, 대문과 동재, 내삼문, 사당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용강서원은 1820~1822년경 김두남, 김도남 형제의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에 창건했던 서원이다.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두남 형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던 용강사가 전신이다. 1868년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으며, 1915년 옛터 부근에 용강정사를 세워서 김두남 형제를 기렸다. 현재 용강정사 아래에 세덕사를 짓고 김두남 형제의 선대와 함께 제향하고 있다.
용강서원 (龍岡書院)
용강서원은 1820~1822년경 김두남, 김도남 형제의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에 창건했던 서원이다.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두남 형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던 용강사가 전신이다. 1868년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으며, 1915년 옛터 부근에 용강정사를 세워서 김두남 형제를 기렸다. 현재 용강정사 아래에 세덕사를 짓고 김두남 형제의 선대와 함께 제향하고 있다.
의암서원은 1610년 조선 전기 문신 유희춘을 추모하기 위해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에 창건한 서원이다. 담양의 유일한 사액서원으로서 1610년경 삼천사로 건립되어, 시호를 받은 후 향교 근처로 이건하여 백천사라 불렀다. 1667년부터 사액을 준비하여 1669년 사액을 받았다. 1871년 훼철되었고, 현재까지 복설되지 않았다.
의암서원 (義巖書院)
의암서원은 1610년 조선 전기 문신 유희춘을 추모하기 위해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에 창건한 서원이다. 담양의 유일한 사액서원으로서 1610년경 삼천사로 건립되어, 시호를 받은 후 향교 근처로 이건하여 백천사라 불렀다. 1667년부터 사액을 준비하여 1669년 사액을 받았다. 1871년 훼철되었고, 현재까지 복설되지 않았다.
중양서원은 1954년 서섭, 서시복, 서종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중산리에 창건한 서원이다. 장기현 중양촌에 거주하던 후손들이 그들의 현조와 입향조를 추모하기 위하여 1954년 중양재를 짓고, 1975년에 건물을 증축하여 중양서원이라 하였다.
중양서원 (中陽書院)
중양서원은 1954년 서섭, 서시복, 서종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중산리에 창건한 서원이다. 장기현 중양촌에 거주하던 후손들이 그들의 현조와 입향조를 추모하기 위하여 1954년 중양재를 짓고, 1975년에 건물을 증축하여 중양서원이라 하였다.
품목은 유향소나 서원, 향교에서 수령이나 관찰사에게 청원이나 자문을 구하기 위해 올리는 문서이다. 품목을 통해 당시 유향소 및 서원과 향교의 재정 상태 및 운영이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이들에게 어떠한 특권을 내려주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분쟁 등으로 인해 올리는 소지와 양식이 비슷하다. 서식은 문서명 · 기두어 · 내용 · 결사어 · 작성 연대 · 발급자 · 수령의 처분과 서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품목 (稟目)
품목은 유향소나 서원, 향교에서 수령이나 관찰사에게 청원이나 자문을 구하기 위해 올리는 문서이다. 품목을 통해 당시 유향소 및 서원과 향교의 재정 상태 및 운영이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이들에게 어떠한 특권을 내려주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분쟁 등으로 인해 올리는 소지와 양식이 비슷하다. 서식은 문서명 · 기두어 · 내용 · 결사어 · 작성 연대 · 발급자 · 수령의 처분과 서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산서원은 1692년 조선 전기 문신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창건한 서원이다. 조선시대에는 청하현에 속하였다. 1692년 건립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에 일익하던 중 서원훼철령으로 1868년 훼철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하였다.
학산서원 (鶴山書院)
학산서원은 1692년 조선 전기 문신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창건한 서원이다. 조선시대에는 청하현에 속하였다. 1692년 건립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에 일익하던 중 서원훼철령으로 1868년 훼철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하였다.
용강서원은 1735년 조선 전기 무신 박순을 추모하기 위해 함경도 영흥군 용흥강 인근에 창건한 서원이다. 순조대에 조상경을 추향하였으며, 1868년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이후 옛터에 기적비를 세웠다. 1980년 박순의 후손들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용강서원을 복설하고, 박서의 위패도 함께 배향하였다.
용강서원 (龍江書院)
용강서원은 1735년 조선 전기 무신 박순을 추모하기 위해 함경도 영흥군 용흥강 인근에 창건한 서원이다. 순조대에 조상경을 추향하였으며, 1868년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이후 옛터에 기적비를 세웠다. 1980년 박순의 후손들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용강서원을 복설하고, 박서의 위패도 함께 배향하였다.
이서는 조선 후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한 명망 있는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가학을 토대로 평생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경서와 제자백가도 깊이 연구하였다. 성호 이익의 형으로서 훈도하고, 그의 문인들이 ‘홍도’라는 시호를 지어 학덕을 칭송하였다.
이서 (李潊)
이서는 조선 후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한 명망 있는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가학을 토대로 평생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경서와 제자백가도 깊이 연구하였다. 성호 이익의 형으로서 훈도하고, 그의 문인들이 ‘홍도’라는 시호를 지어 학덕을 칭송하였다.
손명래는 조선 후기 성균관 학유를 거쳐 삼례도 찰방을 역임한 문신이다. 시와 문장에 뛰어났는데, 특히 대책문은 과거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창설재 권두경, 훈수 정만양, 청천 신유한 등과 도의와 문장으로 사귀었다. 저서로 『창사집(昌舍集)』과 『비희록(悲喜錄)』이 있다.
손명래 (孫命來)
손명래는 조선 후기 성균관 학유를 거쳐 삼례도 찰방을 역임한 문신이다. 시와 문장에 뛰어났는데, 특히 대책문은 과거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창설재 권두경, 훈수 정만양, 청천 신유한 등과 도의와 문장으로 사귀었다. 저서로 『창사집(昌舍集)』과 『비희록(悲喜錄)』이 있다.
김신망은 조선 후기 『가례기의(家禮記疑)』를 저술한 학자로 송시열과 송준길의 문인으로 예학(禮學)에 밝아서 예가(禮家)의 종장(宗匠)으로 불렸다. 향리에서 문인을 양성하며 예법(禮法)을 가르쳐 풍속을 순화하였다. 관찰사가 행의(行義)로서 천거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김신망 (金莘望)
김신망은 조선 후기 『가례기의(家禮記疑)』를 저술한 학자로 송시열과 송준길의 문인으로 예학(禮學)에 밝아서 예가(禮家)의 종장(宗匠)으로 불렸다. 향리에서 문인을 양성하며 예법(禮法)을 가르쳐 풍속을 순화하였다. 관찰사가 행의(行義)로서 천거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강백년은 조선 후기 관각문학(館閣文學)을 대표하는 문한(文翰)이자, 인조·효종·현종·숙종의 4대에 걸쳐 청렴한 관직 생활로 청백리에 녹선(錄選)된 문신이다. 강백년은 관물론적(觀物論的)인 당풍시(唐風詩)를 통해 인정과 주목을 받았으나 이에 얽매이지 않았다. 송풍시(宋風詩)를 통해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수양으로 얻은 도학적 성취를 읊기도 하였다.
강백년 (姜柏年)
강백년은 조선 후기 관각문학(館閣文學)을 대표하는 문한(文翰)이자, 인조·효종·현종·숙종의 4대에 걸쳐 청렴한 관직 생활로 청백리에 녹선(錄選)된 문신이다. 강백년은 관물론적(觀物論的)인 당풍시(唐風詩)를 통해 인정과 주목을 받았으나 이에 얽매이지 않았다. 송풍시(宋風詩)를 통해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수양으로 얻은 도학적 성취를 읊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