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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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굴산사지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이다. 굴산사는 신라 하대에 형성된 선종산문 가운데 범일선사가 연 사굴사문의 본거지였다. 1975년 발굴조사에서 ‘屈山寺’ 명문기와 등 많은 유물이 수습되면서 절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었다. 이후 수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굴산사의 규모와 폐사 시기 등을 추정할 수 있었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절터에 율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 건립된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굴산사지 주변에는 굴산사지 승탑·당간지주·석불좌상 등이 남아 있다.
강릉 굴산사지 (江陵 崛山寺址)
강릉 굴산사지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이다. 굴산사는 신라 하대에 형성된 선종산문 가운데 범일선사가 연 사굴사문의 본거지였다. 1975년 발굴조사에서 ‘屈山寺’ 명문기와 등 많은 유물이 수습되면서 절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었다. 이후 수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굴산사의 규모와 폐사 시기 등을 추정할 수 있었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절터에 율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 건립된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굴산사지 주변에는 굴산사지 승탑·당간지주·석불좌상 등이 남아 있다.
강릉 대공산성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산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으로 축조된 석축 성곽이다. 발해의 왕인 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쌓았다고도 하여 대공산성으로 불린다. 총 길이는 약 3㎞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사용되었다가 조선 전기~중기 무렵에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기와편 등이 산재해 있다. 을미의병 때 민용호가 이끈 관동의진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호국유적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공산성은 우리나라 중세 성곽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강릉 대공산성 (江陵 大公山城)
강릉 대공산성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산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으로 축조된 석축 성곽이다. 발해의 왕인 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쌓았다고도 하여 대공산성으로 불린다. 총 길이는 약 3㎞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사용되었다가 조선 전기~중기 무렵에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기와편 등이 산재해 있다. 을미의병 때 민용호가 이끈 관동의진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호국유적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공산성은 우리나라 중세 성곽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노령·폐질·사망 등으로 인한 소득의 상실 및 중단시에 연금급여제도를 실시하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특수법인.
국민연금공단 (國民年金公團)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노령·폐질·사망 등으로 인한 소득의 상실 및 중단시에 연금급여제도를 실시하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특수법인.
양양 진전사지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의선사가 남선종을 전래한 사찰터이다. 진전사는 821년(헌덕왕 13)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참선을 위주로 수행하는 남선종을 신라 최초로 전래한 곳이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가 출가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국보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도의선사탑이 남아 있다. 진전사지는 신라말~고려초에 축조된 산지가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진전사지는 신라말 도의선사가 선종의 법문을 최초로 연 도량으로서 한국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이 높다.
양양 진전사지 (襄陽 陳田寺址)
양양 진전사지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의선사가 남선종을 전래한 사찰터이다. 진전사는 821년(헌덕왕 13)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참선을 위주로 수행하는 남선종을 신라 최초로 전래한 곳이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가 출가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국보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도의선사탑이 남아 있다. 진전사지는 신라말~고려초에 축조된 산지가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진전사지는 신라말 도의선사가 선종의 법문을 최초로 연 도량으로서 한국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이 높다.
강릉 신복사지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신복사의 사찰터이다. 지금까지 두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1탑 1금당 병렬식의 가람으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고려시대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몇 점의 ‘신복사(神福寺)’ 명문기와가 출토됨으로써 사찰명이 정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신복사의 창건 시기는 10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며 조선 중기 무렵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절터에는 고려 전기의 뛰어난 석조미술품인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과 신복사지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강릉 신복사지 (江陵 神福寺址)
강릉 신복사지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신복사의 사찰터이다. 지금까지 두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1탑 1금당 병렬식의 가람으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고려시대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몇 점의 ‘신복사(神福寺)’ 명문기와가 출토됨으로써 사찰명이 정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신복사의 창건 시기는 10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며 조선 중기 무렵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절터에는 고려 전기의 뛰어난 석조미술품인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과 신복사지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춘천 봉의산성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봉의산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 석축 성곽이다. 성 전체 길이는 1,284m로 상부 능선을 따라 자연지세를 활용하여 축성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붕괴되어 일정치 않으나 5~6m 정도로 다소 높게 축조된 구간도 있다.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은 장방형 석재를 사용해 모맞추어 바른층쌓기로하여 내탁식으로 쌓았으며, 미세한 크기로 퇴물림쌓기 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 산성은 신라의 춘천지역 진출 시기에 전략적 주요 거점성으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당시의 역사적 변동상황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유적이다.
춘천 봉의산성 (春川 鳳儀山城)
춘천 봉의산성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봉의산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 석축 성곽이다. 성 전체 길이는 1,284m로 상부 능선을 따라 자연지세를 활용하여 축성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붕괴되어 일정치 않으나 5~6m 정도로 다소 높게 축조된 구간도 있다.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은 장방형 석재를 사용해 모맞추어 바른층쌓기로하여 내탁식으로 쌓았으며, 미세한 크기로 퇴물림쌓기 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 산성은 신라의 춘천지역 진출 시기에 전략적 주요 거점성으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당시의 역사적 변동상황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유적이다.
국민의 체육활동을 진흥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정책지침과 제도들에 관해 규정한 법률.
국민체육진흥법 (國民體育振興法)
국민의 체육활동을 진흥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정책지침과 제도들에 관해 규정한 법률.
강원도 강릉시 범일로(내곡동)에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 부속박물관.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 (Catholic關東大學校 博物館)
강원도 강릉시 범일로(내곡동)에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 부속박물관.
여자모양 집자리는 철기시대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평면형태가 한자의 여(呂)자처럼 생긴 집자리이다. 철(凸)자모양 집자리와 함께 강이나 하천유역의 충적지, 바닷가와 인접한 해안사구에 분포하는 주거건축이다. 기본적으로 출입구인 작은 방과 주생활공간인 큰 방으로 나누어진다. 내부구조는 취사·난방시설과 기둥, 벽체마감, 출입구, 지반다짐, 지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유행한 지역과 거의 겹쳐 있다. 한반도 중부지역의 마한과 예계 집단의 정체성, 활동 영역, 물질문화의 양상 등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고고자료이다.
여자모양 집자리 (呂字模樣 집자리)
여자모양 집자리는 철기시대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평면형태가 한자의 여(呂)자처럼 생긴 집자리이다. 철(凸)자모양 집자리와 함께 강이나 하천유역의 충적지, 바닷가와 인접한 해안사구에 분포하는 주거건축이다. 기본적으로 출입구인 작은 방과 주생활공간인 큰 방으로 나누어진다. 내부구조는 취사·난방시설과 기둥, 벽체마감, 출입구, 지반다짐, 지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유행한 지역과 거의 겹쳐 있다. 한반도 중부지역의 마한과 예계 집단의 정체성, 활동 영역, 물질문화의 양상 등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고고자료이다.
삼척 성북동 갈야산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갈야산에 있는 삼국시대 독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발굴 조사 결과 중형급에 속하는 고분들이 상당수 분포하고 있었고 마구류, 위세품, 무기류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1987년에 출토된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는 5세기 중반경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빠른 것이다. 갈야산 고분군은 5~6세기경 삼척지역의 유력한 정치세력이 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역사적 변동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신라 고분군이다.
삼척 성북동 갈야산 유적 (三陟 城北洞 葛夜山 遺蹟)
삼척 성북동 갈야산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갈야산에 있는 삼국시대 독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발굴 조사 결과 중형급에 속하는 고분들이 상당수 분포하고 있었고 마구류, 위세품, 무기류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1987년에 출토된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는 5세기 중반경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빠른 것이다. 갈야산 고분군은 5~6세기경 삼척지역의 유력한 정치세력이 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역사적 변동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신라 고분군이다.
강릉 병산동 고분군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식돌덧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강릉 남대천 하류역의 남쪽 사구지대와 그 주변의 구릉 일대에 분포하는 신라고분군이다. 고분의 형식은 석곽묘가 주류를 이루고 토광묘와 석곽옹관묘, 옹관묘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출토유물은 경주계 신라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유물로 보아 5세기 전반경부터 고분군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군은 신라의 동해안 진출과정에서 강릉지역을 군사적 거점으로 삼아 효율적인 지배와 경영을 꾀한 역사성을 잘 보여준다.
강릉 병산동 고분군 (江陵 柄山洞 古墳群)
강릉 병산동 고분군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식돌덧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강릉 남대천 하류역의 남쪽 사구지대와 그 주변의 구릉 일대에 분포하는 신라고분군이다. 고분의 형식은 석곽묘가 주류를 이루고 토광묘와 석곽옹관묘, 옹관묘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출토유물은 경주계 신라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유물로 보아 5세기 전반경부터 고분군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군은 신라의 동해안 진출과정에서 강릉지역을 군사적 거점으로 삼아 효율적인 지배와 경영을 꾀한 역사성을 잘 보여준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몸돌·긁개·찌르개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구석기유적·유물군.
동해 구미동 유적 (東海 九美洞 遺蹟)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몸돌·긁개·찌르개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구석기유적·유물군.
원주 가현동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충적대지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수혈유구·화덕자리 등이 발굴된 마을터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4기, 철기시대 주거지 49기, 수혈유구 15기가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토기류 총 49점, 석기류는 70점이 출토되었는데 기원전 13세기~9세기경의 유물로 추정된다. 철기시대 주거지에서는 토기류, 석기류 외에 일부 주거지에서 도가니가 확인되고 있다. 서기 2~4세기경의 취락유적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취락 및 가옥구조의 양상과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연구 자료이다.
원주 가현동 유적 (原州 加峴洞 遺蹟)
원주 가현동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충적대지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수혈유구·화덕자리 등이 발굴된 마을터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4기, 철기시대 주거지 49기, 수혈유구 15기가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토기류 총 49점, 석기류는 70점이 출토되었는데 기원전 13세기~9세기경의 유물로 추정된다. 철기시대 주거지에서는 토기류, 석기류 외에 일부 주거지에서 도가니가 확인되고 있다. 서기 2~4세기경의 취락유적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취락 및 가옥구조의 양상과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연구 자료이다.
화천 용암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하남면 북한강 상류역 충적대지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돌널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유적지는 해발 106m 내외의 평탄한 충적평야지대로 강과 맞닿아 있어 선사시대부터 생활무대로 활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자연·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다. 북한강 유역에서 확인된 마을 유적 중 가장 큰 유적으로, 청동기 전기와 중기에 대규모 취락 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취락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집자리와 석기가 출토됨으로써 청동기시대 북한강 유역의 생활문화와 주거건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화천 용암리 유적 (華川 龍岩里 遺蹟)
화천 용암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하남면 북한강 상류역 충적대지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돌널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유적지는 해발 106m 내외의 평탄한 충적평야지대로 강과 맞닿아 있어 선사시대부터 생활무대로 활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자연·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다. 북한강 유역에서 확인된 마을 유적 중 가장 큰 유적으로, 청동기 전기와 중기에 대규모 취락 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취락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집자리와 석기가 출토됨으로써 청동기시대 북한강 유역의 생활문화와 주거건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강릉 금진리 유적은 강릉시 옥계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야외 화덕자리·철자형 집터 관련 마을터인 취락유적이다. 1984년 서울대학교 고고학조사단과 1994년 관동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다. 2006년에 신석기시대 야외 노지 1기, 철기시대 철자형(凸字形) 주거지 4기, 여자형(呂字形) 주거지 5기, 수혈 유구 3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중심 연대는 2세기 후반에서 4세기 중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유적은 동해안 지역의 철기시대 취락 연구뿐 아니라 주거 건축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강릉 금진리 유적 (江陵 金津里 遺蹟)
강릉 금진리 유적은 강릉시 옥계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야외 화덕자리·철자형 집터 관련 마을터인 취락유적이다. 1984년 서울대학교 고고학조사단과 1994년 관동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다. 2006년에 신석기시대 야외 노지 1기, 철기시대 철자형(凸字形) 주거지 4기, 여자형(呂字形) 주거지 5기, 수혈 유구 3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중심 연대는 2세기 후반에서 4세기 중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유적은 동해안 지역의 철기시대 취락 연구뿐 아니라 주거 건축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조각과 간석기 등이 출토된 선사유적.
강릉 지변동 유적 (江陵 池邊洞 遺蹟)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조각과 간석기 등이 출토된 선사유적.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임호정리마을 주변 구릉지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수혈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양양 임호정리 유적 (襄陽 臨湖亭里 遺蹟)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임호정리마을 주변 구릉지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수혈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영월 삼옥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동강 상류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돌덧널무덤·우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유적이 자리한 곳은 남한강 상류지역인 동강의 회절부 일대로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무대로 이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자연환경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한강 최상류에서는 구석기시대 생활 유적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유적으로는 바위그늘이 처음 조사되어 동굴유적과 상호 비교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고려~조선시대에 걸친 각종 유구를 통해 당시 영월지역의 사회, 문화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고고유적 중의 하나이다.
영월 삼옥리 유적 (寧越 三玉里 遺蹟)
영월 삼옥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동강 상류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돌덧널무덤·우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유적이 자리한 곳은 남한강 상류지역인 동강의 회절부 일대로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무대로 이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자연환경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한강 최상류에서는 구석기시대 생활 유적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유적으로는 바위그늘이 처음 조사되어 동굴유적과 상호 비교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고려~조선시대에 걸친 각종 유구를 통해 당시 영월지역의 사회, 문화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고고유적 중의 하나이다.
철원 와수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서면 남대천 유역충적평야 지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원형수혈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이다.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 및 철기시대 유구 30기와 굴립주유구 1기, 원형수혈유구 3기, 구상유구 1열 등 모두 35개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경질무문토기류와, 중국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류가 있다. 유적은 철원지역의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의 취락구조, 생업경제 방식과 한반도 중부지역의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의 문화 전파경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중의 하나이다.
철원 와수리 유적 (鐵原 瓦水里 遺蹟)
철원 와수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서면 남대천 유역충적평야 지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원형수혈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이다.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 및 철기시대 유구 30기와 굴립주유구 1기, 원형수혈유구 3기, 구상유구 1열 등 모두 35개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경질무문토기류와, 중국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류가 있다. 유적은 철원지역의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의 취락구조, 생업경제 방식과 한반도 중부지역의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의 문화 전파경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중의 하나이다.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 공근면 학담리 일대 충적대지에 있는 철기시대 집터에서 타날문토기·지석 등이 출토된 마을터. 취락유적.
횡성 학담리 유적 (橫城 鶴潭里 遺蹟)
강원도특별자치도 횡성군 공근면 학담리 일대 충적대지에 있는 철기시대 집터에서 타날문토기·지석 등이 출토된 마을터. 취락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