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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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군후는 조선 후기에 변상벽의 영모화풍을 따른 고양이 그림과 풍속화를 그린 화가이다. 그의 화가로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8세기의 여항시인으로 서화가로도 활동한 마성린과 교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군후의 「묘도」는 사실적인 영모화풍을 구사했던 변상벽을 따랐으며, 이외에 「촌녀채종도」와 같은 풍속화가 전한다.
마군후 (馬君厚)
마군후는 조선 후기에 변상벽의 영모화풍을 따른 고양이 그림과 풍속화를 그린 화가이다. 그의 화가로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8세기의 여항시인으로 서화가로도 활동한 마성린과 교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군후의 「묘도」는 사실적인 영모화풍을 구사했던 변상벽을 따랐으며, 이외에 「촌녀채종도」와 같은 풍속화가 전한다.
변상벽은 조선 후기 「묘작도」, 「모계영자도」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영모화와 초상화를 잘 그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려 '변고양이', '변닭'이라 불렸다. 약관의 나이에 고양이 그림으로 한양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전한다. 초상화 솜씨도 당대의 국수(國手)로 일컬어졌으며, 영조 어진 제작에 두 차례 참여하였다. 어진 제작에 참여한 공으로 귀산첨사, 곡성현감 등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변상벽 (卞相璧)
변상벽은 조선 후기 「묘작도」, 「모계영자도」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영모화와 초상화를 잘 그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려 '변고양이', '변닭'이라 불렸다. 약관의 나이에 고양이 그림으로 한양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전한다. 초상화 솜씨도 당대의 국수(國手)로 일컬어졌으며, 영조 어진 제작에 두 차례 참여하였다. 어진 제작에 참여한 공으로 귀산첨사, 곡성현감 등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부작란도」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김정희가 그린 묵란도이다. 일명 「불이선란도」로 불린다. 김정희는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학문과 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집안이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면서 여러 차례 유배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 작품은 유배에서 풀려나 그린 것으로, 화가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이상적인 난의 형상을 서예적인 필묵으로 완성하였다. 김정희가 추구했던 문자향과 서권기를 표출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부작란도 (不作蘭圖)
「부작란도」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김정희가 그린 묵란도이다. 일명 「불이선란도」로 불린다. 김정희는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학문과 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집안이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면서 여러 차례 유배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 작품은 유배에서 풀려나 그린 것으로, 화가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이상적인 난의 형상을 서예적인 필묵으로 완성하였다. 김정희가 추구했던 문자향과 서권기를 표출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안평대군은 조선 전기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을 엮은 왕족, 서예가이다. 세종의 셋째 아들로, 시문과 서화에 뛰어났다. 신숙주, 박팽년과 같은 집현전 학사들과 어울리며 시와 그림을 즐겼고, 송설체를 바탕으로 서예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중국 역대의 서첩과 그림들을 소장하여 익혔으며, 안견에게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하는 등 조선 전기 왕실의 예술 문화 발달에 이바지했다.
안평대군 (安平大君)
안평대군은 조선 전기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을 엮은 왕족, 서예가이다. 세종의 셋째 아들로, 시문과 서화에 뛰어났다. 신숙주, 박팽년과 같은 집현전 학사들과 어울리며 시와 그림을 즐겼고, 송설체를 바탕으로 서예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중국 역대의 서첩과 그림들을 소장하여 익혔으며, 안견에게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하는 등 조선 전기 왕실의 예술 문화 발달에 이바지했다.
「야압도」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홍세섭이 계절별 새의 서식지 환경과 생태를 관찰하여 그린 영모화이다. 홍세섭은 영모화에서 근대적 감각의 새로운 화풍을 창출하였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 조류의 서식지 환경과 생태를 세밀하게 관찰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야압도」의 '야압'은 청둥오리를 뜻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오리가 아닌 바닷가의 가마우지를 그린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홍세섭의 대표적인 영모화이다.
야압도 (野鴨圖)
「야압도」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홍세섭이 계절별 새의 서식지 환경과 생태를 관찰하여 그린 영모화이다. 홍세섭은 영모화에서 근대적 감각의 새로운 화풍을 창출하였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 조류의 서식지 환경과 생태를 세밀하게 관찰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야압도」의 '야압'은 청둥오리를 뜻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오리가 아닌 바닷가의 가마우지를 그린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홍세섭의 대표적인 영모화이다.
약리도는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넘실거리는 파도 위로 뛰어오르는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그린 그림이다. 이는 물고기가 중국 황하 상류의 급류가 흐르는 용문에 이르러 용이 되었다는 등용문 고사에 연원을 둔 것으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입신출세하는 것을 상징한다. 어약용문도 혹은 어변성룡도로도 불리는 약리도는 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속해서 선호된 화제였고, 19세기 이후에는 민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약리도 (躍鯉圖)
약리도는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넘실거리는 파도 위로 뛰어오르는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그린 그림이다. 이는 물고기가 중국 황하 상류의 급류가 흐르는 용문에 이르러 용이 되었다는 등용문 고사에 연원을 둔 것으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입신출세하는 것을 상징한다. 어약용문도 혹은 어변성룡도로도 불리는 약리도는 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속해서 선호된 화제였고, 19세기 이후에는 민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양기훈은 조선 후기 평양에서 활동하며 노안도에서 개성적인 화풍을 이룩한 화가이다. 갈대밭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장면을 그린 노안도는 노후의 평안[老安]과 음이 같아 축수용 병풍으로 인기를 끌었다. 수묵 위주의 문인 취향으로 완성된 양기훈의 노안도는 근대기 화단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양기훈 (楊基薰)
양기훈은 조선 후기 평양에서 활동하며 노안도에서 개성적인 화풍을 이룩한 화가이다. 갈대밭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장면을 그린 노안도는 노후의 평안[老安]과 음이 같아 축수용 병풍으로 인기를 끌었다. 수묵 위주의 문인 취향으로 완성된 양기훈의 노안도는 근대기 화단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초문답도는 어부와 초부가 서로 묻고 답하는 장면을 그린 고사인물화이다. 북송 시대 소옹의 「어초문대」나 소식의 『어초한화』와 같은 글에 연원을 두고 있다. 조선 중기의 화원 이명욱이 「어초문답도」를 그렸고, 조선 후기의 사례로는 정선과 이인상의 작품이 전한다.
어초문답도 (漁樵問答圖)
어초문답도는 어부와 초부가 서로 묻고 답하는 장면을 그린 고사인물화이다. 북송 시대 소옹의 「어초문대」나 소식의 『어초한화』와 같은 글에 연원을 두고 있다. 조선 중기의 화원 이명욱이 「어초문답도」를 그렸고, 조선 후기의 사례로는 정선과 이인상의 작품이 전한다.
이광사는 조선 후기 원교체를 완성한 서화가이다. 소론 명문가 출신으로, 양명학의 선구 정제두 문하에서 활동했고, 윤순에게 서예를 배워 동국진체 정립에 이바지했다. 전서, 예서, 해서, 초서에 두루 능했고, 서첩과 금석문, 편액 등의 묵적, 『원교서결』과 같은 서예 이론서를 남겼다. 또한 산수와 인물을 그린 작품도 전한다.
이광사 (李匡師)
이광사는 조선 후기 원교체를 완성한 서화가이다. 소론 명문가 출신으로, 양명학의 선구 정제두 문하에서 활동했고, 윤순에게 서예를 배워 동국진체 정립에 이바지했다. 전서, 예서, 해서, 초서에 두루 능했고, 서첩과 금석문, 편액 등의 묵적, 『원교서결』과 같은 서예 이론서를 남겼다. 또한 산수와 인물을 그린 작품도 전한다.
이성린은 1748년 통신사에 수행화원으로 참여하여 『사로승구도』를 제작한 화가이다. 『사로승구도』는 부산에서 일본의 에도에 이르는 통신사행의 노정과 화가가 접한 실경, 사행의 주요 행사를 30면으로 구성한 사행 기록 화첩이다. 오사카 지역의 화가 오오카 슌보쿠와 교류하며 일본 화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성린 (李聖麟)
이성린은 1748년 통신사에 수행화원으로 참여하여 『사로승구도』를 제작한 화가이다. 『사로승구도』는 부산에서 일본의 에도에 이르는 통신사행의 노정과 화가가 접한 실경, 사행의 주요 행사를 30면으로 구성한 사행 기록 화첩이다. 오사카 지역의 화가 오오카 슌보쿠와 교류하며 일본 화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신흠은 조선시대 문인 관료의 별서도를 그린 화가이다. 별서도 제작을 통해 실경산수화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호민·이경엄 부자의 별서를 그린 「사천장팔경도」와 그들의 모임 장면을 묘사한 「세년계회도」가 전한다.
이신흠 (李信欽)
이신흠은 조선시대 문인 관료의 별서도를 그린 화가이다. 별서도 제작을 통해 실경산수화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호민·이경엄 부자의 별서를 그린 「사천장팔경도」와 그들의 모임 장면을 묘사한 「세년계회도」가 전한다.
이정은 조선시대 「풍죽도」, 「설죽도」, 「우죽도」 등을 그린 왕실 종친 출신 묵죽화가이다.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의 증손자로, 풍족한 경제적 여유 속에 작품 활동을 했다. 임진왜란 중에 팔을 다치면서 공주에 월선정을 짓고 은거했는데, 『삼청첩』을 비롯한 많은 작품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유덕장, 신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일컬어진다.
이정 (李霆)
이정은 조선시대 「풍죽도」, 「설죽도」, 「우죽도」 등을 그린 왕실 종친 출신 묵죽화가이다.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의 증손자로, 풍족한 경제적 여유 속에 작품 활동을 했다. 임진왜란 중에 팔을 다치면서 공주에 월선정을 짓고 은거했는데, 『삼청첩』을 비롯한 많은 작품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유덕장, 신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일컬어진다.
이징은 조선시대 「화개현구장도」, 「소상팔경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종실 출신 화가 이경윤의 서자이다. 왕실 및 문인 사대부층과 폭넓게 교유하며 궁중 안팎에서 활약했다. 17세기에 있었던 궁중의 중요 행사에서 도화 작업을 맡았고, 문인 관료들의 주문으로 별서도를 제작하였다. 산수화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한 안견파 전통을 계승하였고, 영모화에서는 절파 화풍을 따랐다. 초상도 잘 그려 태조 영정 개수 때 공을 세웠다.
이징 (李澄)
이징은 조선시대 「화개현구장도」, 「소상팔경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종실 출신 화가 이경윤의 서자이다. 왕실 및 문인 사대부층과 폭넓게 교유하며 궁중 안팎에서 활약했다. 17세기에 있었던 궁중의 중요 행사에서 도화 작업을 맡았고, 문인 관료들의 주문으로 별서도를 제작하였다. 산수화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한 안견파 전통을 계승하였고, 영모화에서는 절파 화풍을 따랐다. 초상도 잘 그려 태조 영정 개수 때 공을 세웠다.
이희수는 조선 후기~근대에 활동한 『이소남서첩』을 남기고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가이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근대기 서화가 김규진의 외삼촌이다. 글씨는 추사체를 따랐고, 그림에서는 산수, 사군자, 괴석, 모란, 정물 등 19세기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제를 두루 섭렵했다. 강원도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제자를 배출했고, 강원 화단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이희수 (李喜秀)
이희수는 조선 후기~근대에 활동한 『이소남서첩』을 남기고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가이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근대기 서화가 김규진의 외삼촌이다. 글씨는 추사체를 따랐고, 그림에서는 산수, 사군자, 괴석, 모란, 정물 등 19세기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제를 두루 섭렵했다. 강원도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제자를 배출했고, 강원 화단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진재해는 조선 후기 숙종 어진과 공신상 등을 그린 화가이다. 초상화에 뛰어나 숙종 어진과 「박문수 초상」 등 공신상 제작에서 공을 세웠고, 사대부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절파 화풍을 따른 「월하취적도」가 그의 산수화로 전칭된다.
진재해 (秦再奚)
진재해는 조선 후기 숙종 어진과 공신상 등을 그린 화가이다. 초상화에 뛰어나 숙종 어진과 「박문수 초상」 등 공신상 제작에서 공을 세웠고, 사대부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절파 화풍을 따른 「월하취적도」가 그의 산수화로 전칭된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은 2007년 장우성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설립된 미술관이다. 한국화의 거장 월전 장우성 화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월전미술문화재단이 장우성 사망 후 그의 유작과 재단의 소장품을 경기도 이천시에 기증하면서 새롭게 건립되었다.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설봉공원 내에 있는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은 2층 건물에 총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利川市立月田美術館)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은 2007년 장우성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설립된 미술관이다. 한국화의 거장 월전 장우성 화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월전미술문화재단이 장우성 사망 후 그의 유작과 재단의 소장품을 경기도 이천시에 기증하면서 새롭게 건립되었다.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설봉공원 내에 있는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은 2층 건물에 총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백동자도는 화려한 정원에서 놀이를 즐기는 사내아이들을 묘사하여 다남과 자손 번창에 대한 길상적 염원을 표현한 그림이다. 백자도로도 불리며 중국 당나라 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곽자의의 삶을 주제로 한 곽분양행락도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의 당, 송 대부터 하나의 화제로 등장했고 명, 청대를 거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려졌다. 조선 후기부터 짙고 화려한 채색의 백동자도 병풍이 많이 제작되면서 다남과 자손 번창의 의미를 지닌 장식화로 활용되었다.
백동자도 (百童子圖)
백동자도는 화려한 정원에서 놀이를 즐기는 사내아이들을 묘사하여 다남과 자손 번창에 대한 길상적 염원을 표현한 그림이다. 백자도로도 불리며 중국 당나라 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곽자의의 삶을 주제로 한 곽분양행락도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의 당, 송 대부터 하나의 화제로 등장했고 명, 청대를 거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려졌다. 조선 후기부터 짙고 화려한 채색의 백동자도 병풍이 많이 제작되면서 다남과 자손 번창의 의미를 지닌 장식화로 활용되었다.
『삼강행실효자도』는 1434년 세종의 명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효행 사례를 글과 그림으로 엮어 집현전에서 간행한 판화 책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효자 110명의 고사가 도, 전, 시찬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질은 전하지 않으며, 초간본 계통의 한문본이 전해지고 있다.
삼강행실효자도 (三綱行實孝子圖)
『삼강행실효자도』는 1434년 세종의 명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효행 사례를 글과 그림으로 엮어 집현전에서 간행한 판화 책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효자 110명의 고사가 도, 전, 시찬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질은 전하지 않으며, 초간본 계통의 한문본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