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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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여러 정치단체가 합동하여 광복 후의 혼란기에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발족시켰던 중도적 정치조직.
민족자주연맹 (民族自主聯盟)
1947년 여러 정치단체가 합동하여 광복 후의 혼란기에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발족시켰던 중도적 정치조직.
1957년 서상일 등 혁신계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창당한 진보정당.
민주혁신당 (民主革新黨)
1957년 서상일 등 혁신계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창당한 진보정당.
1956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공화당 (共和黨)
1956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1945년 광복 직전에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건국동맹 (建國同盟)
1945년 광복 직전에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1947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근로인민당 (勤勞人民黨)
1947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1955년 이승만의 자유당에 반대하는 전진한(錢鎭漢) 등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설립한 정당.
노농당 (勞農黨)
1955년 이승만의 자유당에 반대하는 전진한(錢鎭漢) 등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설립한 정당.
1945년에 창당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정당.
대한여자국민당 (大韓女子國民黨)
1945년에 창당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정당.
일제강점기 때,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법무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김준연 (金俊淵)
일제강점기 때,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법무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1945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국민당 (國民黨)
1945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속씨식물의 유성생식기관.
꽃
속씨식물의 유성생식기관.
김규식은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 명의의 탄원서를 제출한 독립운동가이다. 정치인이자 학자, 종교인이다. 1881년에 태어나 한국전쟁기에 납북되어 1950년에 사망했다. 6세에 고아가 되어 미국 북장로파 선교사 언더우드의 보살핌 아래 성장했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강사와 교회 일에 열중하다가 일제의 교회 탄압이 시작되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8년 모스크바 약소민족대회 및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고, 민족혁명당을 창당했으며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다. 해방 후 통일 정부수립에 힘을 쏟았다.
김규식 (金奎植)
김규식은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 명의의 탄원서를 제출한 독립운동가이다. 정치인이자 학자, 종교인이다. 1881년에 태어나 한국전쟁기에 납북되어 1950년에 사망했다. 6세에 고아가 되어 미국 북장로파 선교사 언더우드의 보살핌 아래 성장했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강사와 교회 일에 열중하다가 일제의 교회 탄압이 시작되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8년 모스크바 약소민족대회 및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고, 민족혁명당을 창당했으며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다. 해방 후 통일 정부수립에 힘을 쏟았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1982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신정사회당 (新政社會黨)
1982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1985년 결성되었던 정당.
신한민주당 (新韓民主黨)
1985년 결성되었던 정당.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전진한 (錢鎭漢)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1949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일민구락부 (一民俱樂部)
1949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일제강점기 한국독립당 군사위원장,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대형(大亨)이고, 서울 출신이다. 1920년 서로군정서를 이끌고 서일(徐一) · 김좌진(金佐鎭) 등과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였다. 1930년 7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창당에 참여, 군사위원장이 되었으며, 별도로 한국독립군을 만들어 총사령관이 되었다. 1940년 9월 17일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부 사령관이 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지청천 (池靑天)
일제강점기 한국독립당 군사위원장,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대형(大亨)이고, 서울 출신이다. 1920년 서로군정서를 이끌고 서일(徐一) · 김좌진(金佐鎭) 등과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였다. 1930년 7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창당에 참여, 군사위원장이 되었으며, 별도로 한국독립군을 만들어 총사령관이 되었다. 1940년 9월 17일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부 사령관이 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이범석 (李範奭)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