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장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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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역사학자 장도빈이 동학과 농민전쟁의 발생배경·전개과정·실패원인 등에 관해 수록한 천도교서.
갑오동학란과 전봉준 (甲午東學亂과 全琫準)
일제강점기 역사학자 장도빈이 동학과 농민전쟁의 발생배경·전개과정·실패원인 등에 관해 수록한 천도교서.
개성시장은 고려 초기 개경에 형성되었던 시장이다. 고려 태조가 개성에 왕도를 정하고 시가지를 조성할 때 시전을 세웠다는 사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208년(희종 4) 광화문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1,008영(楹) 규모를 가진 큰 시장의 좌우 장랑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시장의 규모를 알 수 있다. 개성시장의 거래 품목은 쌀·소금 등과 같은 일상 필수품에서부터 외국에서 수입된 비단과 같은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개성시장은 개성 상인들의 상인 정신·조직·상술 등으로 상권이 전국에 미쳐 상업의 요충지가 되었다.
개성시장 (開城市場)
개성시장은 고려 초기 개경에 형성되었던 시장이다. 고려 태조가 개성에 왕도를 정하고 시가지를 조성할 때 시전을 세웠다는 사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208년(희종 4) 광화문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1,008영(楹) 규모를 가진 큰 시장의 좌우 장랑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시장의 규모를 알 수 있다. 개성시장의 거래 품목은 쌀·소금 등과 같은 일상 필수품에서부터 외국에서 수입된 비단과 같은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개성시장은 개성 상인들의 상인 정신·조직·상술 등으로 상권이 전국에 미쳐 상업의 요충지가 되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낙규의 시·서·기·설 등을 수록한 시문집.
경산유고 (景山遺稿)
조선 후기의 학자, 정낙규의 시·서·기·설 등을 수록한 시문집.
조선시대 지방행정기관인 이방청·향청·장관청·하리청 등이 사사로이 부역을 징수하는 대신에 주민의 각종 신역을 면제해 주던 마을. 이방청·하리청.
계방촌 (契房村)
조선시대 지방행정기관인 이방청·향청·장관청·하리청 등이 사사로이 부역을 징수하는 대신에 주민의 각종 신역을 면제해 주던 마을. 이방청·하리청.
조선후기 대동법 실시 이후 공물청부를 목적으로 결성된 계.
공계 (貢契)
조선후기 대동법 실시 이후 공물청부를 목적으로 결성된 계.
광산에서 금·은·철·동 등의 금속을 캐는 근로자.
광부 (鑛夫)
광산에서 금·은·철·동 등의 금속을 캐는 근로자.
한 국가를 상징하는 꽃.
국화 (國花)
한 국가를 상징하는 꽃.
조선후기 주민들이 주로 궁방전을 경작하였던 마을.
궁전촌 (宮田村)
조선후기 주민들이 주로 궁방전을 경작하였던 마을.
1893년 초 동학교도가 최제우(崔濟愚)의 신원(伸寃)과 척왜양(斥倭洋)을 목적으로 전라도 금구(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에서 개최한 집회.
금구집회 (金溝集會)
1893년 초 동학교도가 최제우(崔濟愚)의 신원(伸寃)과 척왜양(斥倭洋)을 목적으로 전라도 금구(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에서 개최한 집회.
조선후기 문신 이헌영이 충청도관찰사 재임기간 동안의 사건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금번집략 (錦藩集略)
조선후기 문신 이헌영이 충청도관찰사 재임기간 동안의 사건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개항기 봉성 대접주, 금구의 접주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
김방서 (金邦瑞)
개항기 봉성 대접주, 금구의 접주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
개항기 동학운동에 참여한 천도교인.
김봉득 (金鳳得)
개항기 동학운동에 참여한 천도교인.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의정부좌우참찬, 의정부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김수현 (金壽鉉)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의정부좌우참찬, 의정부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천도교 서생감독, 통무사장의 재정 등을 담당한 천도교인.
김현구 (金顯玖)
대한제국기 천도교 서생감독, 통무사장의 재정 등을 담당한 천도교인.
백낙완이 동학농민군의 진압과 전투 상황에 대하여 기술한 천도교서. 회고록.
남정록 (南征錄)
백낙완이 동학농민군의 진압과 전투 상황에 대하여 기술한 천도교서. 회고록.
둔전촌은 고려·조선시대 둔전을 경작하는 농민이 거주하던 마을이다. 둔전은 수비하는 군사인 수병과 직업이 없는 백성의 노동력으로 빈 땅을 개간, 경작하여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려시대 이후 설치되었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권세가들이 둔전을 사전화(私田化)하자,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철폐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아문의 경비조달을 주요 목적으로, 섬·연해지방·목장·제방과 방죽·산성 아래 등 비교적 넓은 들에 둔전을 설치하였다. 조선 후기까지 확장되던 둔전은 1894년 갑오경장으로 국유화되었다.
둔전촌 (屯田村)
둔전촌은 고려·조선시대 둔전을 경작하는 농민이 거주하던 마을이다. 둔전은 수비하는 군사인 수병과 직업이 없는 백성의 노동력으로 빈 땅을 개간, 경작하여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려시대 이후 설치되었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권세가들이 둔전을 사전화(私田化)하자,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철폐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아문의 경비조달을 주요 목적으로, 섬·연해지방·목장·제방과 방죽·산성 아래 등 비교적 넓은 들에 둔전을 설치하였다. 조선 후기까지 확장되던 둔전은 1894년 갑오경장으로 국유화되었다.
고용주의 집에서 주거하며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
머슴
고용주의 집에서 주거하며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
조선후기 교조신원운동 당시의 천도교인.
박석규 (朴錫奎)
조선후기 교조신원운동 당시의 천도교인.
조선시대 성균관의 사역인들이 거주하던 성균관 동·서편에 있던 동네.
반촌 (泮村)
조선시대 성균관의 사역인들이 거주하던 성균관 동·서편에 있던 동네.
한약우가 경상남도 진주 백곡리 마을에 관하여 기록한 역사서.
백곡지 (柏谷誌)
한약우가 경상남도 진주 백곡리 마을에 관하여 기록한 역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