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상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형 김득복을 따라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전사한 의병.
이칭
인중(麟仲)
동오(東塢)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5년(명종 20)
사망 연도
1598년(선조 31)
본관
김해(金海)
출생지
경주
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형 김득복을 따라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전사한 의병.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인중(麟仲), 호는 동오(東塢). 경주 출생. 할아버지는 증 호조참의 김을동(乙東)이고,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김문(汶)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은(金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젊어서부터 병법에 밝았다. 28세 때 임진왜란을 당하자 맏형 김득복(金得福)을 따라 의병이 되었다. 그 해 6월에 금오산(金鰲山)으로 가서 의병장들과 회맹에 참여하고, 의병장 권응수(權應銖) 휘하에 들어가 많은 적을 격파하였다. 1594년(선조 27) 5월 산천의 형세, 인물의 됨됨이, 길의 멀고 가까움, 호구의 많고 적음을 환히 알아내자 여러 의병장들이 감복하여 따랐다.

1595년 2월 밤중에 영지(影池) 아래 주둔하고 있던 왜적을 수공으로 격파하였다. 1598년 8월 12일 월성(月城) 동문 밖에서 전사하였다. 1605년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적록되었다.

참고문헌

『동엄실기(東广實紀)』(김득복)
『석주유고(石洲遺稿)』
집필자
권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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