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리문집 ()

녹리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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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고성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5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고성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5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895년 고성겸의 동생인 문겸(文謙)·숙겸(淑謙)과 이만인(李晩寅) 등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권말에 고문겸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14권 7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3에 부(賦) 2편, 시 509수, 권4에 동국시화(東國詩話) 19장, 악부사(樂府詞) 54절(絶), 고악부(古樂府) 117절, 권5∼7에 시 181수, 만(輓) 140수, 권8·9에 서(書) 94편, 권10·11에 서(序) 19편, 기 4편, 지(識) 8편, 발 6편, 상량문 4편, 소(疏) 3편, 권12·13에 전(傳) 4편, 잠 3편, 논 6편, 명 3편, 묘지명 1편, 제문 30편, 유사 2편, 권14에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묘지명·녹리정기(甪里亭記)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다른 문집과는 달리 보기 드문 악부체(樂府體) 시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한성의 문물·인물 등을 운율과 고조(古調)를 사용하여 읊은 「한성악부(漢城樂府)」 28장을 비롯해 「악부사」 등은 중국 장형(張衡)의 「양경부(兩京賦)」와 백거이(白居易)의 「악부(樂府)」에 짝이 되는, 우리나라의 문학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저자는 경사(經史)에서도 독특한 성격을 보여준다. 「항우본기론(項羽本記論)」에서는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둘 다 항우의 실기를 수록하고 있으나, 『사기』에는 본기(本記)에 여러 제왕과 나란히 싣고 『한서』에는 열전(列傳)에 실은 점, 본기에 수록하되 제호(帝號)는 붙이지 않고 그냥 「항우본기」로만 적은 점, 『한서』에는 「항적전(項籍傳)」으로 내리깎아 진승(陳勝)과 같은 반열에 둔 점 등을 비교하여 『사기』와 『한서』 중 어느 쪽의 사필이 춘추대의를 따랐는지를 요연하게 분석하며 전대의 사법(史法)에 예리한 논단을 가하였다.

소 가운데 1855년 5월에 당시 영남유생들에 의해 끊임없이 주창되어오던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추존을 청한 「청경모궁전례소(請景慕宮典禮疏)」는 이 무렵 조정의 형세가 당색을 달리해 어떻게 대치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이다. 「청서원복설소(請書院復設疏)」는 고종 초 서원철폐령이 내려진 지 10여년 뒤 서원의 복설을 청한 상소문으로, 이때 서원철폐가 유림 사이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등에 대한 당시의 사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글이다. 「척화소(斥和疏)」는 일왕(日王)의 국서(國書)를 받아들여 조약을 맺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 상소문으로, 영남 일대 유생들의 배일운동에 대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 밖에 지(識) 8편은 상주 산양현(山陽縣)근품산(近品山) 주위의 경개와 더불어 옛 사벌(沙伐) 때의 성황단(城隍壇) 터와 죽림사구지(竹林寺舊址)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등 그 유래가 자세하지 않은 유적과 유물의 내력에 대하여 하나씩 나누어 밝힌 것으로, 이는 향토사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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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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