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10책. 필사본. 이 책은 정상적인 문집 체재를 갖추지 못한 유고(遺稿) 가편집본의 사본으로, 내용의 분류와 편차에 질서가 없고, 서문·발문·지(識) 등 일체의 서지 사항이 누락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시 160여수 및 잡저 일부, 권2·3에 서(書) 40여 편, 권4에 상소·차자(箚子) 60여편, 권5·6에 제문·고사(告辭) 및 잡저 일부, 권7에 서계(書啓)·장계(狀啓), 권8에 상소·차자, 권9·10에 서(書) 7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8 이후의 것은 추후에 수집·등재한 것으로 보인다.
시는 당시 문인들이 일상적으로 짓는 평범한 수준의 것들이다. 권1의 잡저는 저자가 왕의 측근에 있을 때 왕을 대신해 지은 교유문(敎諭文)이 대부분이다. 권6의 잡저에는 성리학에 관련된 단편적인 논변(論辨)들이 포함되어 있다.
서간문은 저자의 스승이며 장인이었던 송준길(宋浚吉)과 송시묵(宋時默)·송시열(宋時烈)·이단상(李端相) 등 서인 노론계 인물들과 아들 진후(鎭厚) 등에게 보낸 서신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당시의 여러 가지 정치 현안 문제에 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예송(禮訟)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다. 그 중 1674년(현종 15)의 제2차 예송에서 대공설(大功說)을 지지한 저자 자신의 견해도 잘 표명되어 있다.
권4와 권8에 수록된 상소·차자는 저자가 관직에 있을 때 올린 여러 가지 정책 건의와, 정적 남인들에 대한 탄핵 및 자신의 사직 표명 등이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권6·7에 수록된 서계와 장계는 저자가 암행어사로 파견되었을 때와 지방관으로 있을 때 올린 보고서들이다. 당시 사회의 실상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강화부군향번고별단(江華府軍餉反庫別單)」과 「각진별비군향(各鎭別備軍餉)」 등에는 당시의 군량미 비축 현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 중기 군사 재정의 실태를 알려 주고 있다.
권9·10의 서간문에는 윤증(尹拯)·박세채(朴世采) 등 소론 인사들에 대한 비판적 논평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조선 중기 당쟁시대에 송시열을 추종한 노론의 대표적 정객이었으며, 훈척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따라서 이 책에는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의 분열·대립·갈등을 보여주는 많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어 당쟁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 되고 있다. 또한, 당시 상류 관료사회의 인맥과 그들의 의식 경향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