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어유고』는 권상신의 시문집으로 5책의 필사본이다. 서문과 발문은 없고,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제1책~3책에 시, 제4책~5책에 문이 실려 있다. 시는 자신이 거처했던 곳의 제목으로 엮은 경우가 많다. 산문은 소(疏) 20편, 서(書) 4편, 서(序) 5편, 기(記) 8편, 전(傳) 1편, 진향문(進香文) 2편, 제문 2편, 상량문 1편, 광지(壙誌) 1편, 묘갈명 1편, 시장(諡狀) 1편, 명(銘) 1편, 설(說) 2편, 찬(贊) 2편, 변(辨) 1편, 잡저 3편, 유록(遊錄) 1편이다.
5책의 필사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권상신(權常愼,1759~1825)의 시문집으로 5책의 필사본이다. 권상신은 초명은 선(襈), 자는 경호(絅好), 호는 일홍당(日紅堂) · 서호(西漁), 본관은 안동이다. 예조 판서를 지낸 도(導)의 손자이고 장인은 신재(新齋) 홍낙명(洪樂命)이다.
저자의 교유 관계는 매우 폭넓었다. 김상임(金相任), 김이양(金履陽), 김이교(金履喬), 김이재(金履載), 이화(李墷), 조철영(趙哲永), 조종영(趙鍾永), 홍인모(洪仁謨), 홍의호(洪義浩), 임이주(任履周), 유만주(兪萬柱), 김려(金礪), 심노숭(沈魯崇), 조정철(趙貞喆), 심상규(沈象奎), 남공철(南公轍), 홍한주(洪翰周), 김조순(金祖淳), 이조원(李肇源), 김병구(金炳球), 김명순(金明淳), 이용수(李龍秀), 조만영(趙萬永), 심응규(沈應奎)와 같은 인물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시기(詩妓)였던 운초(雲楚), 부용(芙蓉), 명애(明愛) 등도 확인된다.
이 책은 서(序) · 발(跋)이 없이 제1책3책에 시, 제4책5책에 문이 실려 있다. 제1책의 첫장에 보면 서어시집의 목록, 즉 일홍당초집(日紅堂初集) · 속집(續集), 현호재집(玄湖再集), 문호삼집(汶湖三集) 부(附) 금성집(錦城集), 자각사집(紫閣四集) 부(附) 남성집(南城集) · 전사집(田社集), 약산오집(藥山五集), 구호육집(鷗湖六集), 성사칠집(星槎七集)이 부전지(附箋紙)로 붙어 있다.
시는 30대 초반까지의 일홍당집(日紅堂集), 흑석동 거주할 때의 현호집(玄湖集), 한산에 있다가 충청도관찰사 시절 지은 문호집(汶湖集), 서울과 광주유수시절의 자각집(紫閣集), 영변 유배시절의 약산집(藥山集), 압구정에 살 때 지은 압호집(鷗湖集), 1803년과 1824년 두 차례의 연행 때 지은 성사집(星槎集)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770여수이다. 제1책에 수록된 시 「한계폭(寒溪瀑)」의 뒤에 붙은 후지(後識)에서는 명 사신 왕유정(王維楨)이 우리나라 한계산을 지나면서 지은 「한계산기(寒溪山記)」를 두고 이는 옥녀담(玉女潭) 폭포를 묘사한 것이지 한계 폭포를 묘사한 것이 아님을 변증하였는데, 저자의 날카로운 고증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산문은 소(疏) 20편, 서(書) 4편, 서(序) 5편, 기(記) 8편, 전(傳) 1편, 진향문(進香文) 2편, 제문 2편, 상량문 1편, 광지(壙誌) 1편, 묘갈명 1편, 시장(諡狀) 1편, 명(銘) 1편, 설(說) 2편, 찬(贊) 2편, 변(辨) 1편, 잡저(雜著) 3편, 유록(遊錄) 1편이다.
소는 우부승지(右副承旨) · 대사간 · 우참찬 등의 관직을 사임하는 내용이 반 이상을 차지하며, 사직하면서 아울러 변무(卞誣)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였다. 이밖에 경기도 관찰사와 충청도 관찰사에 재임하면서 환곡(還穀) · 조운(漕運) 등의 민폐(民弊)를 지적하고, 그 시정책을 강구할 것을 요청한 것이 여러 편 있다.
기(記)에는 수락산(水落山) · 노원천(蘆原川) · 청절사(淸節祠) · 석림사(石林寺) 등의 경관을 묘사한 것 괴산 화양동(華陽洞)에 있는 송시열(宋時烈)의 문집 『송자대전(宋子大全)』의 장판각(藏板閣)에 대한 것이다. 「안시성고」는 『여지승람(輿地勝覽)』 등의 서적을 인용하여 고구려 당시 안시성의 상황을 고증한 글이다.
「남고춘약(南皐春約)」은 권상신과 그 교유 인물들이 남동(南洞)에 있는 심윤지(沈允之,1748~1821)의 집에 함께 모여 상춘(賞春) 계획을 세운다는 내용인데, 과거 시험 공부를 빙자하여 모인 젊은이들이 거문고와 책, 투호 등의 도구를 챙겨 봄놀이를 가려 하는 흥성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아 있다. 1784년 3월 25일에 있었던 이날 모임의 핵심적 구성원은 권상신과 심윤지, 김상임, 임이주이고, “함께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서 왕래한” 주변적 인물들은 유만주, 김상휴, 이도중이 있었다.
「정릉유록(貞陵遊錄)」은 남고의 모임을 가진지 며칠 뒤인 윤3월 1일에 정릉 근처에 만발한 진달래를 구경하러 간 일을 기록한 글이다. 이 모임에 함께한 것으로 언급된 이는 심윤지, 김상임, 유만주, 임이주 등이다. 이 두 작품에서는 경화세족 자제들의 여유롭고 아취 있는 만남이 잘 표현되어 있다. 유만주는 「남고춘약」과 「정릉유록」에 기록된 모임에 함께 했으며 같은 날의 같은 경험을 자신의 일기에 기록하였다.
「은암아집도찬(隱巖雅集圖贊)」은 걸출한 화가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행적과 그의 작품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찍이 주목을 받은 글이다. 이 글은 권상신이 그 교유 인물들과 1788년 3월 7일 대은암(大隱巖)에서 가졌던 풍류 넘치는 한 모임에 대해 기록한 작품으로서, 지금은 전하지 않는 김홍도의 「은암아집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려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한국 미술사와 관련하여 자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