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군 경수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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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부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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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부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기록화.
내용

종이 바탕에 채색. 세로 55㎝, 가로 620㎝. 199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필자 미상.

1691년(숙종 17) 8월 70세 이상된 노모를 모시고 있는 7명의 시종신(侍從臣: 왕을 모셔 호종(扈從)하던 신하(臣下))이 모친을 위해 올린 경수연의 광경을 담은 기록화이다. 경수연이 치러진 장소는 삼청동의 관아 건물이었다.

연회의 주인공인 7명의 대부인(大夫人)은 병조 판서 민종도(閔宗道)의 모친인 정경부인 김씨(77세), 한성 판윤 정유악(鄭維岳)의 모친인 정부인 윤씨(80세), 홍문관 부제학 권해(權瑎)의 모친인 정부인 이씨(71세), 승정원 도승지 심단(沈檀)의 모친인 정부인 윤씨(71세), 전 광주 부윤 이태귀(李泰龜)의 모친인 정부인 한씨(79세), 세자시강원 필선 허경(許熲)의 모친인 공인(恭人) 권씨(75세), 세자시강원 보덕 이원령(李元齡)의 모친인 유인(孺人) 유씨(72세) 등이다.

경수연이 열리게 된 동기는 노인을 우대하는 뜻에서 숙종이 윤7월 3일에 이들에게 쌀과 비단을 하사하였고, 이들은 이튿날 궐에 모여 전문을 올려 사은한 사실에 있었다. 왕의 은전을 입은 다음에 이를 기념하여 잔치를 벌리는 관례에 따라 이들은 경수연을 열기로 결의하였다.

숙종은 1605년(선조 38)에 거행된 경수연의 전례(前例)를 따라 연수(宴需: 잔치에 드는 물건과 비용)를 보내 주고 사악(賜樂: 임금이 신하(臣下)에게 풍류(風流)를 내리어 줌)하였다. 권해의 모친인 정부인 이씨는 선조 때 경수연의 주인공인 채대부인(蔡大夫人)의 4세손이기도 하다.

원래 이 <경수연도>는 두루마리 횡권(橫卷)으로 꾸며졌으며 그 내용은 대부인들과 며느리들의 좌석 배치를 기록한 배반도(排班圖), 연회 장면, 권해의 서문, 사은전문(謝恩箋文)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림과 글씨 부분을 분리하여 따로 개장해 놓은 상태이다. 그림과 함께 수록된 사은전문은 쌀과 비단을 하사받은 이튿날 올려진 것이며, 배반도·서문과 함께 1711년(숙종 37) 4월에 소망(小望)이라는 인물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연회 장면은 크게 셋으로 나뉘어 묘사되었다. 첫 번째는 대부인과 여자 자손들의 연회 장면이다. 대부인들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고 방석과 소반으로 그 위치만이 표시된 채 아들들이 헌수하고 춤을 추고 있다. 두 번째는 아들과 사위의 연회 장면으로 이들은 사모(紗帽)와 단령(團領) 차림으로 각자 소반 앞에 열좌하였다.

세 번째는 실내가 아닌 바깥의 차일(遮日) 아래 자리한 손자들이라고 생각되는데 흑립에 두루마기를 갖춘 모습이다. 관비(官婢)들이 술과 음식의 시중을 들고 있으며 숙종이 하사한 악공들의 모습도 보인다.

연회가 치러지고 있는 장소를 정면 부감(俯瞰)의 시각으로 포착하여 횡권 형식에 알맞게 평면적으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장면과 장면을 구분하는 역할을 위해 그림의 시작 부분과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수목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여 형식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인물의 얼굴, 동작, 자세 등은 비교적 자세하고 자연스럽게 묘사하였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총람2: 도지정편 』(경기도, 2006)
집필자
박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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