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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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
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
회화
유물
문화재
1874년(고종 11) 2월 8일(양력) 창덕궁 관물헌(觀物軒)에서 고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순종, 1874-1926)이 탄생했을 때 산실청(産室廳)에 종사했던 관원들이 기념으로 제작한 계병(稧屛).
이칭
이칭
왕세자탄강진하계병(王世子誕降陳賀稧屛)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05년 08월 12일 지정)
소재지
서울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국립고궁박물관)
목차
정의
1874년(고종 11) 2월 8일(양력) 창덕궁 관물헌(觀物軒)에서 고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순종, 1874-1926)이 탄생했을 때 산실청(産室廳)에 종사했던 관원들이 기념으로 제작한 계병(稧屛).
개설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의 주제는 원자(元子: 순종) 탄생 며칠 후인 2월 14일(양력) 인정전에서 거행된 원자 탄생을 경하하는 진하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경사가 있으면 궁궐의 정전(正殿)에서 왕이 친림한 가운데 진하례를 베풀었다. 19세기에는 진하례가 끝난 뒤 여기에 참여하였던 문문백관들이 이를 기념하여 그림병풍을 만들어 나누어 가졌다. 이를 계병이라고 하는데 주로 당상관의 주도 아래 관청 단위로 만들어졌다. 모든 관청에서 행해진 관행은 아니었지만 여러 관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도 원자 탄생이라는 국가의 경사에 큰 공헌을 한 산실청 관원들의 기념 병풍이다.

내용과 특징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은 10첩 병풍으로 제1첩과 제10첩에는 좌목(座目)이 쓰여 있으며 나머지 8첩에는 인정전에서 거행된 진하례가 그려져 있다. 좌목에는 도제조(都提調) 이유원(李裕元, 1814-1888: 영의정), 제조 박제인(朴齊寅, 1818-1884: 예조판서), 부제조 이회정(李會正, 1818-1883: 승정원 도승지), 무공랑(務功郞) 신일영(申一永, 1845-?: 승정원 주서), 계공랑 김영철(金永哲, 1841-1923: 예문관 검열), 수의(首醫) 이경계(李慶季, 지중추부사), 대령의관(待令醫官) 홍현보(洪顯普, 1815-?: 삭령군수)·이한경(李漢慶, 1811-?: 內醫院正)·박시영(朴時永: 음죽현감)·전동혁(全東爀: 나주감목관), 그리고 별장무관 변응익(邊應翼, 1827-?: 울산감목관) 등 11명의 관직성명이 쓰여 있다. 관직명으로 볼 때 이들은 산실청을 구성했던 내의원의 당상관, 의빈(儀賓), 그리고 우두머리 어의(御醫)인 수의와 의관(醫官)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진하는 19세기 가장 애호된 관청 계병의 주제였으며 「왕세자탄강진하십첩병」은 그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이다. 화면에 묘사된 시각의 범위는 인정전을 중심으로 서쪽의 금호문(金虎門), 진선문(進善門)과 인정문(仁政門), 이문원(摛文院)이 그려지고 동쪽에 선정전과 희정당(熙政堂)을 지나 창덕궁의 경계 부근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같은 내용의 병풍 「왕세자탄강진하계병」이 국립중앙박물관에도 한 건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진연진찬진하도병』(서인화, 박정혜, 주디 반자일 저, 국립국악원, 2001)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박정혜, 일지사, 2000).
집필자
박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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