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태부인경수연도 ()

칠태부인경수연도
칠태부인경수연도
회화
유물
문화재
1691년 음력 8월에 관료 7명이 70세 이상 된 모친들을 모시고 경수연을 치른 뒤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조선시대 기록화.
정의
1691년 음력 8월에 관료 7명이 70세 이상 된 모친들을 모시고 경수연을 치른 뒤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조선시대 기록화.
구성 및 형식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63.5㎝, 가로 688.3㎝. 부산박물관 소장.「칠태부인경수연도」는 경수연 장면, 경수연의 주인공인 일곱 명의 태부인과 그들의 아들·사위·손자·외손자의 명단을 적은 좌목[七太夫人會宴座次], 병조판서 민종도(閔宗道, 1633~?)가 왕에게 음식을 하사받은 이튿날 예궐하여 올린 감사의 글[侍從臣兵曹判書閔宗道等老母食物謝箋],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1745년(영조 21) 쓴 서문[慶壽宴圖序]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 횡권이다. 서문은 경수연 참석자 중 한 사람인 권해(權瑎, 1639~1704)가 지었는데, 후에 강세황이 권해의 후손 권조언(權朝彦)의 부탁을 받아 행사 후 54년만인 1745년 음력 7월에 그 서문을 쓴 것이다.

태부인의 좌목은 정경부인 안동김씨(78세), 정부인 파평윤씨(80세), 정부인 신평이씨(71세), 정부인 해남윤씨(71세), 정부인 청주한씨(79세), 숙인 안동권씨(75세), 유인 문화류씨(72세) 등의 순서이며 이는 곧 외명부의 작첩 순으로 배치된 경수연 당일의 자리 배치를 의미한다.

경수연의 설행 동기

『숙종실록』에 의하면 1691년(숙종 17) 윤7월 3일 숙종은 대신 및 재신을 소견한 자리에서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시종신(侍從臣)의 모친으로서 70세 이상인 자에게 음식물을 내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음식을 하사받은 이튿날 민종도 등 16명이 예궐하여 사은전문을 올렸으며, 모친을 모시고 경수연을 베풀어 왕의 은혜를 크게 알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숙종은 선조와 인조 때의 옛 일, 즉 1603년과 1630년에 치러진 경수연의 예에 의거하여 장차 베풀어질 칠태부인의 경수연에도 음악과 물자를 내리라고 명령하였다. 따라서 이 칠태부인경수연은 양로의 은혜를 베푼 성은에 감격한 시종신들이 이에 보답하기 위해 모임을 갖고 노모에게 베푼 연회였으며 실질적으로는 사연(賜宴)의 형식으로 치러졌다. 권해의 서문에 의하면 이 경수연은 많은 손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음력 8월에 삼청동의 한 관아에서 거행되었다.

그림의 내용

「칠태부인경수연도」는 참석자의 신분으로 구별된 세 군데의 연석을 나란히 묘사한 단순한 구도의 그림이다. 첫 번째 건물은 경수연의 중심이 되는 태부인과 여성의 자리가 마련된 공간이다. 주벽에 한 줄로 배치된 7명의 태부인의 자리, 동·서벽에 나누어 앉은 부인들 각 5명의 자리가 산수병풍을 배경으로 표현되어 있다. 태부인을 포함한 여성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헌수하는 술잔을 기녀에게 전해주는 시종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시종신, 헌수 차례를 기다리며 이를 지켜보는 시종신 등 모두 15명이 그려져 있다.

두 번째 건물에는 아들과 사위들이 회합한 장면이 그려졌다. 서문에 의거하면 주벽에 앉은 4명은 이날 경수연에 초대받은 대신, 육조의 판서, 학사대부 등이며 동·서벽에 각각 10명씩 나누어 앉은 사람들은 바로 태부인의 아들과 사위임을 알 수 있다. 마당에 차일이 설치된 세 번째의 연석은 손자들이 자리한 곳이다. 좌차 명단에 의하면 이날 참석한 태부인의 손자와 외손자는 모두 24명인데 화면에는 33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손자들 외에 초대받은 참석 손님들이 추가된 것이라 생각된다.

제작시기와 의의

애초에 「칠태부인경수연도」의 원작은 1691년 행사 후에 화공을 청하여 제작에 들어가 이듬해 1월경에 완성되었다. 이 「칠태부인경수연도」는 이때 제작된 원작이 아니라 강세황이 서문을 쓴 1745년 이전 어느 때인가 개모된 것이다. 후대의 모사본이지만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여 17세기 말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용마루·내림마루 등 건물 지붕의 가장자리를 진하게 표시하는 방식, 어깨가 좁고 세장한 인물 유형, 발끝이 살짝 나온 긴 옷자락, 목덜미까지 내려온 기녀들의 머리 꾸밈새,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한 평면적인 차일의 형태, 소나무의 묘법, 병풍의 수묵산수 화풍, 명암에 대한 무관심 등 17세기 말을 전후한 시기의 기록화 양식과 상통한다.

또한 강세황의 젊은 시절 필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강세황이 33세에 쓴 필적을 포함한 자료라는 점에서도 「칠태부인경수연도」는 가치가 있다.

이본의 현황

같은 내용의 그림으로 199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여주군 경수연도」가 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6세기 조선중기 경수연도의 실적」(이미야, 『부산시립박물관 연보』8, 부산시립박물관, 1985)
집필자
박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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