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 관음보살 좌상 ( )

석조관음보살좌상
석조관음보살좌상
조각
유적
문화재
부산광역시 서구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이후 조성된 석조 불상. 시도유형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이후 조성된 석조 불상. 시도유형문화재.
개설

관음보살은 '관자재(觀自在, Avalokiteśvara) 보살'이라고도 한다. 불교도상학(佛敎圖像學)에서는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에 계시는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보처보살(補處菩薩)로, 다음 생에 부처가 될 보살이다. 인도에서 이 불상은 화려한 장신구를 한 귀족의 남성상이었으나, 이후 중성적이거나 여인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서원(誓願)을 세웠으며, 여러 보살 중에서도 가장 많이 신앙되었던 대상이다. 이 불상은 2012년 10월 30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역사적 변천

우리나라에서 관음보살은 보통 단독으로 조성되지만, 다른 상들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아미타여래의 협시로 대세지와 관음보살 혹은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의 아미타삼존, 혹은 아미타팔대보살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외에 석굴암의 11면 관음의 조각상이나 고려시대 불화에는 백의관음(白衣觀音), 장대관음 등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들의 수준에 맞는 모습으로 변하여 그가 세운 서원을 대중에게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관음보살의 모습은 양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보주를 들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머리에 아미타불을 새긴 보관을 쓰고, 손에 보병이나 연꽃을 잡고 있다. 법의는 허리에는 치마를 입고 양 어깨에 천의 등을 둘렀다. 고려시대가 되면 천의를 숄처럼 양 어깨에 걸치기도 하고, 여래처럼 통견식(通肩式)으로 대의(大衣)를 걸쳐 입기도 한다. 그 외에도 목걸이, 팔찌 등의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석조관음보살좌상은 부드러운 재질의 석재로, 한 돌로 조각되었다. 팔꿈치 양측, 군의 등에 백색의 안료가 남아 있고, 부분적으로 검은색의 칠과 금빛이 확인되어 원래는 전체적으로 도금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불상의 목과 얼굴 측면, 등 뒤에 있는 균열은 크게 훼손된 뒤에 접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래 모습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바닥 면 중앙에는 깊이 12.9㎝의 타원형 복장공이 노출되었는데, 마감재나 복장물은 남아있지 않다.

특징

이 보살상은 손등이 밖으로 드러나게 하여 왼손 위에 오른손을 얹은 변형된 선정인을 하고, 머리에는 화불이 있는 원통형 보관을 쓴 단정한 모습이다. 수인은 주로 고려시대 작품인 통영 안정사 소장 금동여래좌상, 프랑스 기메(Guimet) 박물관 소장 금동여래좌상 등과 유사하다. 신체는 좁은 어깨에 하반신이 사각형을 이루었으며, 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이다.

양볼이 통통한 얼굴은 턱 아래 횡선으로 그어 살집을 표현하였으며, 얼굴 측면까지 치켜 올라간 눈, 콧방울이 뚜렷한 코, 꼭 다문 작은 입 모양이 단정하면서도 근엄한 인상을 준다. 보계는 낮고 뭉툭하지만, 원래는 머리카락을 묶어 세 가닥으로 나누어진 모습이다. 보발은 귀 앞으로 내려와 귓불을 돌아 귀 뒤로 내려온 머리카락과 어깨 위에서 모아져 다시 세 가닥으로 나누어졌으며, 원래 검은색으로 채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원통형 보관은 정면 중앙에 화불이 있고, 넝쿨 문양이 두껍게 양각되었다. 후면은 문양이 없고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흔적만 있다. 대의는 통견식이며, 군의는 가슴 부위까지 높이 올려 입었다. 승각기(僧却崎)는 세 겹으로 자연스럽게 주름이 잡혀있고, 나비형으로 묶은 띠 매듭은 자락이 양손 밑으로 내려와 다리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옷 주름은 간략하고 대칭적이며, 양손 아래로 반원형으로 늘어진 옷자락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옷 주름은 9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부터 보이지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도 다시 나타난다.

이 조각상은 하반신이 사각형에 가까운 신체 비례를 갖추고 있어서 고려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시기의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수인 역시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인다. 살이 있는 양볼, 근엄한 얼굴, 그리고 승각기 또는 군의만 남아 있는 가슴 표현 등은 조선 초기를 넘지 않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이 보살상은 보기 드문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려의 불상 양식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불교 조각의 양식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고려후기 불교조각』(정은우, 문예출판사, 2007)
『종교학대사전』(한국사전연구사, 1998)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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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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