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상천왕천제석청명장생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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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년, 김지가 발원하여 간행한 절첩본 형태의 불경 목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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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상천왕천제석청명장생경(佛說上天王天帝釋請命長生經)』은 절첩본의 형태로 한 장은 27행이며 한 면에 5행 15자를 배열한 책이다. 현존 상태는 제1장이 낙장되어 권수제와 역저자 사항을 알 수 없다. 각 장의 연결 부분에 판수제(板首題)나 권차는 없고 장차만 ‘二 ~ 九’까지 새겨져 있다. 이 경전의 서명은 권말제에 의하여 확인할 수 있고, 권말 부분에는 제석천진언(天帝釋眞言), 제석심진언(帝釋心眞言), 제석천왕진언(帝釋天王眞言), 제석천후진언(帝釋天后眞言)의 4종 진언이 한자음 표기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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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390년, 김지가 발원하여 간행한 절첩본 형태의 불경 목판본.
내용

『불설상천왕천제석청명장생경(佛說上天王天帝釋請命長生經)』은 절첩본의 형태로 한 장은 27행이며 한 면에 5행 15자를 배열한 책이다. 현존 상태는 제1장이 낙장되어 권수제와 역저자 사항을 알 수 없다. 각 장의 연결 부분에 판수제(板首題)나 권차는 없고 장차만 ‘二 ~ 九’까지 새겨져 있다. 이 경전의 서명은 권말제에 의하여 확인할 수 있고, 권말 부분에는 제석천진언(天帝釋眞言), 제석심진언(帝釋心眞言), 제석천왕진언(帝釋天王眞言), 제석천후진언(帝釋天后眞言)의 4종 진언이 한자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경전의 내용은 이를 주야로 보고 들으며 전심을 다해 정진하고 사유하면 천제석왕(天帝釋王)과 삼십삼천(三十三天)이 대위신력(大威神力)과 대공력(大功力)으로 장수를 누리게 해 주고 편안히 쉴 수 있게 하며 소원 성취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 법을 수행하면 모든 구하는 바를 모두 성취할 수 있으며 물, 불, 해충, 칼, 화살 등과 같은 무기로부터도 보호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금강수명다라니(金剛壽命陁羅尼)를 외우고 몸에 지니면 수명을 백년 내지 천년을 누릴 수 있고 비를 기원하거나 재앙을 없애고 진병(鎭兵)을 구하는 사람은 이 다라니를 지님으로써 세존(世尊)과 제석(帝釋), 자비보살(慈悲菩薩)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설명하고 제석천과 삼십삼천의 명호를 나열하였다.

이 책의 권말 간행 기록에서는 국학(國學)의 양정재생(養正齋生)인 김지(金祉)가 발원하여 기술자를 모아서 판각하여 배포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때 김지는 초명이 ‘지(祗)’였으며 본관은 영광(靈光), 부친은 김사순(金思順)으로 집안은 고려 후기에 성장한 신흥무장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그는 예종 4년 7월에 두었던 이택재(麗澤齋)에서 공부하면서 중국 송대에 제도 개혁으로 주목을 받았던 왕안석의 주례(周禮)를 중시했으며 공민왕 11년(1362)에 이르러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이후 관직에서 크게 활동하지 못하고 한직인 비서랑(秘書郞)에 있을 때 책을 많이 수집하고 학문이 돈독하였고 해서(楷書)를 잘 쓰는 능력을 인정 받아 일찍이 표장(表章)을 써서 공민왕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김지가 이 경전의 지문(誌文)을 쓴 시기의 경오(庚午)는 1390년으로 당시는 국학의 양정재생으로 양정재는 고려 때 국학에 설치한 칠재(七齋), 즉 일곱 가지 강좌(講座)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칠재는 곧 『주역(周易)』을 전문으로 강의하는 이택재(麗澤齋), 『상서(尙書)』를 강의하는 대빙재(待聘齋), 『시경(詩經)』을 강의하는 경덕재(經德齋), 『주례(周禮)』를 강의하는 구인재(求仁齋), 『예기(禮記)』를 강의하는 복응재(服膺齋), 『춘추(春秋)』를 강의하는 양정재(養正齋), 병서(兵書)를 강의하는 강예재(講藝齋)를 칭하는 것으로, 이 중에서 김지가 양정재에 속해 있었을 때 이 경전을 발원하여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고려 말의 국가적으로 힘든 시기였던 관계로, 새로운 국가 운영을 모색하던 흐름에서 사대부들 사이에는 유교 경전이나 역사서 등을 통하여 새로운 개혁의 방식을 추구하였다. 김지도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활동하였으나 출세하지는 못하였고 자신의 수집한 책을 통하여 『주관육익(周官六翼)』을 저술하였고, 조선 초기에 1395년에 『대명률(大明律)』을 이두(吏讀)로 풀이한 직해(直解)의 편찬 작업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 판본과 같은 서명의 목판이 해인사의 서사간판전(西寺刊板殿) 제9판가에 낙질의 2판이 보관되어 있으나, 한 행에 15자의 배열은 같지만 이 판과는 판식이 다르다. 시기적으로 볼 때 해인사의 목판이 더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권수제의 저자 표시에 ‘실역자명(失譯者名)’이라 하여 번역자를 알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남권희, 『高麗時代 記錄文化硏究』(청주고인쇄박물관, 2002)
집필자
남권희(한국전적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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