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용무보 ()

시용무보 / 독경
시용무보 / 독경
무용
문헌
조선시대 종묘제례 일무(佾舞)의 순서와 동작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예술서. 무보.
내용 요약

『시용무보』는 조선 시대 종묘제례 일무의 순서와 동작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예술서이다. 필사본 1권 1책이다. 악보를 적고 동작 그림과 동작 설명 술어를 병기했다. 이로 인해 반주음악에 따라 춤이 어떤 동작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다. 또 한 동작을 유지하는 시간이 얼마인지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춤동작 술어는 총 49개이고 모든 동작은 관절의 구부림과 펴는 동작으로 구성되었다. 총 그림 수는 666개로 문무 306개, 무무 360개의 동작을 그렸다. 『시용무보』는 현재 종묘제례 일무의 유일한 무보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정의
조선시대 종묘제례 일무(佾舞)의 순서와 동작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예술서. 무보.
개설

조선종묘제례 일무인 시용보태평지무(時用保太平之舞)와 시용정대업지무(時用定大業之舞)의 순서와 동작 술어를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무보이다. 표기방식은 1행 6박(拍)을 모두 4행으로 크게 구획하고, 행간마다 1행을 더 그어 주1의 악보를 적고 넓은 정간(井間)에는 동작 그림과 동작설명 술어를 병기했다. 따라서 반주음악의 변화에 따라 춤이 어떤 동작으로 이루어졌고, 한 동작을 유지하는 시간은 얼마였는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기록방식이다.

편찬/발간 경위

작자 및 연대 미상이나, 연대추정의 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영조대 『대악후보(大樂後譜)』 이전 편찬 설이다. 1626년(인조 4)에 보태평용광정명의 두 악장을 합치고 선조가 지은 중광장(重光章)을 용광정명 다음에 넣었고, 1769년(영조 45)에 편찬한 『대악후보』에는 용광과 정명이 용광정명으로 합장(合章)된 데 비하여 『시용무보』에서는 용광과 정명이 분장(分章)되고 중광(重光)이 빠져 있는 점에서 『대악후보』 편찬연대보다 오래되었다.

둘째는 세조대 편찬 설이다. 『세조실록악보』 · 『대악후보』 · 『속악원보(俗樂源譜)』와 비교한 결과 『세조실록악보』와 강(綱) · 행법(行法)이 모두 일치하므로 1463년(세조 9)에 제사의 용도에 맞게 개작된 악보와 그 악보에 맞도록 개작된 일무의 교본이라는 주장이다.

서지적 사항

필사본. 1권 1책이다. 일부가 낙장되었는데, 시용보태평지무에서 귀인(歸仁)은 8행이 누락되어 1장이 낙장되었다. 시용정대업지무에서 인입장(引入章)인 소무(昭武) 전체가 빠져 있고, 인출장(引出章)인 영관(永觀) 6행이 누락되었다. 1930년 전후에 이왕직아악부는 누락된 부분의 일무를 새로 만들었으며, 현재까지 종묘제례악에서 시행되고 있다.

내용

『시용무보』에 수록된 일무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시용보태평지무((時用保太平之舞): 희문(熙文) · 기명(基命) · 귀인 · 형가(亨嘉) · 집녕(輯寧) · 융화(隆化) · 현미(顯美) · 용광(龍光) · 정명(貞明) · 대유(大猷) · 역성(繹成). ②시용정대업지무(時用定大業之舞): 독경(篤慶) · 탁정(濯征) · 선위(宣威) · 신정(神定) · 분웅(奮雄) · 순응(順應) · 총유(寵綏) · 정세(靖世) · 혁정(赫整).

춤동작 술어는 첫 곡인 희문(熙文)의 ‘합흉(合胸)’에서 마지막 곡 혁정(赫整)의 ‘합흉’에 이르기까지 총 49개이고, 각 술어가 좌 · 우, 상 · 하, 전 · 후, 내 · 외를 나타내는데, 이것이 신체부위를 나타내는 용어들과 조합을 이룬다. 모든 동작은 관절의 구부림(屈)과 펴는(申) 동작으로 구성되었다. 총 그림 수는 666개로, 문무(文舞) 306개, 무무(武舞) 360개의 동작을 그렸다.

『시용무보』의 춤 구조는 양과 음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즉 양사(陽事)인 문무 보태평지무는 오른손 동작-왼손 동작-두 손이 같은 동작(兩手)-두 손이 대칭 동작(雙手)을 하는 단계로 진행된다. 음사(陰事)인 무무 정대업지무는 5이내의 술어를 한 손과 양수, 쌍수 형식을 혼성한 새로운 무절로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대체로 보태평지무는 정형화된 춤구조를 가진 반편에, 정대업지무는 각 장마다 특징적인 춤사위군으로 구성된 경향을 보인다.

『시용무보』에 제시된 무인의 관복은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 모두 푸른색 남주의(藍紬衣)를 입고, 적색 띠를 맨다. 보태평지무는 주2을 쓰고, 왼손에 약(籥)과 오른손에 적(翟)을 든다. 정대업지무는 머리에 피변(皮弁)을 쓰고 오른손에만 검을 들고 있다. 나머지 창과 궁시를 든 모습은 그림에 보이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시용무보』는 현재 행해지는 종묘제례 일무의 교본이 되며, 우리나라 일무의 유일한 무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시용무보』에 기재된 춤동작 술어에는 음양의 조화와 중정(中正)에 맞도록 동작을 구성한 중용사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신세계가 춤에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

참고문헌

『종묘제례악』(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08)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67)
「현행 종묘일무의 작무법에 대한 비평」(김룡, 『한국사상과 문화』 23, 2004)
「『시용무보』의 무절 구성분석과 현행 종묘일무의 비교 연구」(이종숙, 용인대 박사논문, 2002)
「『시용무보』의 찬간연대고」(김룡, 『한국음악사학보』 20, 1998)
「시용무보해제」(이주환, 민속학보, 1956)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세조가 만든 국악의 기보법. 세종이 만든 정간보를 1행 32정간에서 1행 16정간으로 고치고 율명(律名) 대신 궁(宮)을 기본음으로 하여, 그 위와 아래의 오음(五音)을 한자의 획 따위를 일부 생략하여 간략하게 적는 합리적인 악보로, 오음 음계인 향악을 기보하는 데 편리하다. 우리말샘

주2

문관(文官)이나 유생(儒生)이 쓰던 관. 지위(地位)에 따라서 관량(冠梁)의 수가 달랐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