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호 ()

유교
인물
대한제국기 때, 중추원의관, 찬의, 주임관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에 벼슬을 그만두고 후학 양성에 전념한 문신 · 학자.
이칭
문약(文若)
죽호(竹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9년(철종 10)
사망 연도
1940년
본관
청주(淸州)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주임관
정의
대한제국기 때, 중추원의관, 찬의, 주임관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에 벼슬을 그만두고 후학 양성에 전념한 문신 · 학자.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문약(文若), 호는 죽호(竹湖). 아버지는 양경기(楊慶基)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택중(權宅中)의 딸이다. 조극승(曺克承)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유천(儒薦)으로 장사랑(將仕郞)이 되고, 이어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찬의(讚議)를 거쳐 주임관(奏任官) 3품에 이르고, 1910년 일본에게 국권(國權)을 빼앗기자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이론보다는 덕성(德性)을 함양(涵養)하고 도덕을 실천하는 데 힘쓴 학자이다. 저서로는 『죽호유집(竹湖遺集)』 2책이 있다.

참고문헌

『죽호유집(竹湖遺集)』
집필자
김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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