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생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경상우병사, 겸사복장, 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계지(繼之)
시호
장양(莊襄)
이칭
함성군(咸城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23년(세종 5)
사망 연도
1495년(연산군 1)
본관
함평(咸平)
주요 관직
내금위장|충청도병사|겸사복장
관련 사건
이시애의 난
정의
조선전기 경상우병사, 겸사복장, 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계지(繼之). 사헌부집의 이현우(李玄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무(監務) 이자보(李自寶)이고, 아버지는 선략장군호분위호군(宣略將軍虎賁衛護軍)으로 병조판서에 추증된 이극명(李克明)이며, 어머니는 통사랑(通仕郞) 정혼(鄭渾)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60년(세조 6) 7월 별시 무과에 급제하여 종5품 창신교위(彰信校尉)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10월 북정(北征) 도원수 신숙주(申叔舟)의 군관(軍官)으로 공을 세워 선략장군에 제수되었다. 1461년 5월 도시(都試)에 1등으로 합격하여 선절장군(宣節將軍)이 되어 수직(守職: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관직)으로 의흥위대호군(義興衛大護軍)이 되었다.

1464년 어모장군(禦侮將軍)이 되어 동관진첨절제사(潼關鎭僉節制使)가 되고, 1466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북청 만령(蔓嶺)에서 위장(衛將)으로서 선봉에서 적(賊)을 대파한 공으로 개선 후에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록되고 함성군(咸城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건주위(建州衛) 야인을 친 공으로 영변대도호부사가 되었으며, 1469년(예종 1) 한성좌윤·평안동서중3도절도사(平安東西中三道節度使)가 되었고, 1471년(성종 2) 도총관을 겸하였다.

1473년 내금위장이 되었다가 이어 충청도병사가 되었다. 1479년 윤필상(尹弼商)의 건주위 정벌 때 호분위장(虎賁衛將)으로 출전해 공을 세웠다. 1481년 영안남도병사 겸 북청도호부사, 1485년 경상우병사, 1491년 겸사복장(兼司僕將)이 되었고, 1495년(연산군 1) 부총관을 겸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정직하고 관후하며, 직무를 이행함에 있어 대세를 따르고, 사람을 부드럽게 대했다. 명장으로 주덕(酒德)을 겸했다는 평을 들었다. 시호는 장양(莊襄)이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금남집(錦南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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