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유의 속성(俗姓)은 김씨이고 호는 석옹(石翁)이다. 그는 1851년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어나 18세인 1868년에 함경남도 안변군에 위치한 설봉산 석왕사(釋王寺)에서 출가하여 근 50년을 석왕사의 재건을 위해 분투하였고 68세인 1917년에 입적하였다.
철유는 건봉사(乾鳳寺)의 화승으로 알려진 중봉혜호(中峰慧皓)에게 불화를 배워 약 40년간 불화 제작에 임하였다. 실력이 출중하여 수화승으로서 활약하며 전국에 30점 가량의 불화를 남겼고, 일제강점기에는 동시대 활약했던 고산축연(古山竺演)과 함께 당대 최고의 화승으로 병칭되었다. 또 『근역서화징』과 일제강점기 신문기사, 그리고 현전하는 그의 산수화와 초상화 작품들을 통해, 그가 산수화와 초상화 및 도석인물화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간결한 수묵담채 기법의 「자화상」(간송미술관 소장)은 그의 화승으로서의 자의식과 근대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철유는 1860년대 후반부터 1908년경까지 불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불화들은 민화와 같은 일반회화와 중국소설 삽화의 모티프 등을 도입하기도 하고 전통적인 화법에 서양화의 음영법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개성 있고 새로운 화풍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다름다리(기본적인 채색 후 그 위에 무늬나 명암을 넣어 마무리 하는 일)에 매우 능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 그의 작품들에서 섬세하고 치밀한 작풍이 잘 드러난다.
그는 주로 강원 지역과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축연을 비롯하여 하은위상(霞隱偉相), 허곡긍순(虛谷亘順) 등 여러 화승들과 공동 작업을 하였다. 철유의 대표작으로는 「보현사(普賢寺)십육나한도」(1882년), 서울 「경국사(慶國寺)현왕도」(1887년), 문경 「김룡사(金龍寺)십육나한도」(1888년), 서울 성북구 「미타사(彌陀寺)향로전관음보살도」(1907년), 서울 「수국사(守國寺)괘불도」(1908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