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화방사 석조 석가삼존십육나한상 ( )

남해 화방사 석조석가삼존좌상
남해 화방사 석조석가삼존좌상
조각
유물
문화재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화방사 응진전에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석조석가삼존불좌상과 나한상 등.
정의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화방사 응진전에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석조석가삼존불좌상과 나한상 등.
개설

화방사(花芳寺) 응진전 안에 대좌 없이 봉안된 석가여래삼존상의 양측으로 16구의 나한상과 동자상, 천부상, 사자상 등 모두 22구가 봉안되었으며, 문 입구에 인왕상은 1구만 남아 있다. 석가여래삼존상의 신체는 백분으로 칠해져 있으며, 다른 권속은 모두 채색되어 있다.

사찰의 전언에 의하면 화방사 응진전의 화재로 조각상이 다소 훼손되었다고 하며, 화재 탓인지 나한상 중에는 균열 부위를 나비장으로 서로 접합한 복원 상이 여러 구 있다(제1, 3, 7).

역사적 변천

화방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보광산[금산]에 보광사(普光寺)를 세우면서 망운사 남쪽에 화방사의 전신인 연죽사(煙竹寺)를 세웠다고 한다.

「망운산화방사중창서」의 기록에 의하면, 중창된 건물은 동서양방과 대관음법전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관음신앙을 구현하려는 도량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도량은 1713년에 갖추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망운산영장사기」에 따르면, 대웅전, 나한전, 상실, 만월당, 시왕전 등이 사람들의 시주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고, 현재 응진전 불상은 양식적으로 1713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응진전 불상은 희고 무른 재질의 돌인 불석(佛石)으로 조성되었으며, 신체비례, 얼굴 등의 특징을 매우 닮아 같은 조각승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 현재불의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과거불의 제화갈라보살과 미래불의 미륵보살이 좌우에 배치되어 시간을 의미하는 삼세불의 형태를 취하였다.

삼존상의 자세는 결가부좌하여 허리를 세우고 머리를 앞으로 약간 숙인 채 오른손은 다리 위에 두어 손끝이 땅을 가리키는 촉지인(觸地印)을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서로 대칭을 이루는 협시상은 서로 손의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다.

신체는 머리가 크며, 무릎의 너비와 높이가 높지 않아 다소 하반신이 빈약해 보인다. 머리와 육계의 경계가 모호하여 그 경계에 중간 계주를 두고, 정상에는 원반형의 크고 납작한 정상 계주를 표현했다. 길어 보이는 얼굴은 눈과 입이 나지막한데 눈은 눈꼬리가 사선으로 길게 올라가 있으며, 코는 큼직하고 오뚝하다. 전체적인 인상은 단정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법의는 대의를 오른쪽에 살짝 걸친 변형 편단우견으로 입었으며, 보살상은 오른쪽 어깨에 편삼이라는 옷을 입고 그 위에 대의를 변형 통견으로 입었다. 가슴 아래 승각기는 수평으로 입어 가운데를 대각선으로 접었으며, 승각기 상단면이 둥근 능형을 이루었다.

다리 앞으로는 옷 주름을 큼직하게 양측 2개의 주름으로 나누어 펼쳐 놓았으며, 왼쪽 무릎으로 끝이 뾰족한 긴 소맷자락이 흘러내려 있다. 전체적으로 옷 주름이 큼직하고 매우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하반신 옷 주름 처리는 1767년 중수문이 발견된 울산 백양사 석조불상과 대동소이하다. 좌우 협시 보살상은 본존에 비해 규모가 작고 머리에 문양이 없는 원통형 보관을 쓴 것을 제외하면 다른 특징은 동일하다.

석가여래삼존상 좌우에는 16나한상과 권속들이 배치되었다. 나한상은 모두 민머리 형태이며, 삼존상과 닮은 얼굴에 육모방망이나 염주 등의 지물을 쥐거나 사자, 봉황 등 서수(瑞獸)를 아무렇지도 않게 안아 제압하는 모습으로 자신들의 위엄을 표현하였다. 법의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가사를 걸쳐 입어 원형의 금구 장식으로 고정시켰으며, 옷 주름은 매우 간략하고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천부상(天部像)은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한 자세로 교자에 앉은 천부상의 모습과 다르다. 사자상(使者像)은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 손에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으며, 짧은 상의와 고의를 입고, 목이 긴 장화를 신었다. 그리고 응진전 문 입구에는 꽉 다문 입술과 양다리에 힘을 주어 당당히 선 장군상 1구가 배치되어 응진전의 여러 상들을 호위하는 모습이다.

특징

불석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18세기에 조성된 울산 백양사 석조불상의 특징과 비슷하다. 얼굴에서 눈꼬리가 길게 사선으로 올라가거나, 양측 콧방울이 선명한 점 등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승호의 불상 특징과 유사하다. 이로 보면 화방사 불상은 승호 계보의 조각승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하반신 옷 주름은 큼직하고 대담하게 접어 승호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는 곧 승호파 조각승이 양식적으로 변화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불상은 백양사 불상에 비해 신체의 덩어리감이 줄고, 옷 주름의 탄력도 다소 감소하여 이후에 조성되었음이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화방사 석조석가삼존불좌상과 나한상 등은 조성자나 조성시기를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승호파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18세기에 알려진 석조불상을 만든 조각승은 많지 않으나, 승호파의 명맥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통해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료적 가치가 인정된다.

참고문헌

『조선사찰사료』(조선총독부 내무부 지방국편, 조선총독부, 1911)
『조선후기 경상도지역 불교조각연구』(이희정, 세종출판, 2013)
『조선후기불교조각사』(송은석, 사회평론, 2012)
『전통사찰총서』19(사찰문화연구원, 2005)
「17세기 후반 조각승 승호의 활동과 불상연구」(최선일, 『선문화연구』 제8집, 2010)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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