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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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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나 일정한 공간의 둘레를 막기 위하여 축조한 건조물.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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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울타리, 담장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담은 집이나 일정한 공간의 둘레를 막기 위하여 축조한 건조물이다. 담을 쌓는 까닭은 밖으로부터 안을 보호하고 공간을 성격에 따라 나누기 위해서이다. 집터 둘레를 막아 안과 밖을 구분 짓고 집안에서도 담을 두어 공간들의 성격을 나누었다. 담은 성읍국가 시대부터 있었는데 고려시대에는 화초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담은 축조 방법, 재료, 장식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상류층이나 궁궐에서는 벽돌담, 화초담 같은 인공적인 담을 축조했다. 담의 무늬들은 창호의 창살 짜임새나 가구의 장식 무늬와 같게 하여 통일성을 준다.

목차
정의
집이나 일정한 공간의 둘레를 막기 위하여 축조한 건조물.
내용

담을 쌓는 까닭은 밖으로부터 안을 보호하고 침입을 막기 위하여,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공간을 서로 다른 성격으로 나누기 위해서이다. 조선시대의 주택에서 사당(祠堂)을 건축하고 주위에 담을 쌓는 것은 담 안의 공간을 신성화하여 제사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또, 행랑마당이나 사랑마당 등에 쌓은 담은 이들 두 공간 사이에 위계질서를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담을 언제부터 쌓았는지는 확실히 밝히기 어려우나, 대체로 성읍국가 시대를 상한선으로 하고 있다.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간에 주거의 차이가 생기면서, 신분에 따른 위엄을 유지하기 위하여 담과 같은 구조물이 필요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이나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 변진조(弁辰條)에 보면 변한진한성곽에 관하여 언급한 바가 있는데, 이때의 성곽은 바로 담이다.

고구려의 분묘건축인 용강 대총 전실 남벽 누각도(前室南壁樓閣圖)를 보면, 벽화의 아래 중앙에 누각으로 보이는 우진각지붕의 건물이 있다. 그 뒤로 또 다른 전각의 지붕들이 보이며, 그 전각들의 양옆으로 기와지붕을 한 건축물이 줄지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ㄱ’자로 꺾인 담이다. 그 담은 수키와암키와로 지붕을 만들었는데, 조선시대의 주택이나 궁궐의 담과 같은 것이다. 또, 안학궁지(安鶴宮址)에서도 궁의 전각을 중심으로 사방에 성곽을 둘러쌓고 거기에 남문 · 동문 · 서문 · 북문을 건축하였는데, 그 성곽은 바로 궁궐의 담이다.

백제 또한 공주산성 · 사비성(泗沘城) 등의 유적으로 보아 궁궐에 담이 건축되었을 것이다. 또 금강사지(金剛寺址) ·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 등의 절터에서 중문(中門) 밖 남문 좌우로 담이 있었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에 건축된 담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옥사조(屋舍條)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그에 의하면 담 높이가 6두품은 8척을, 5두품은 7척을, 4두품 이하 일반 백성은 6척을 넘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한, 진골 이하에서는 양동(梁棟)을 설치하지 못하고 석회를 바르지 못한다고 규제하고 있다. 이때의 양동에 관해서는 사찰의 회랑(廻廊)과 같은 것이라는 설도 있고, 기와 지붕 밑에 수평으로 둥근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지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뚜렷한 문헌이나 유물이 없으나, 송도의 유적에서 궁벽토장(宮壁土墻)의 흔적이나, 소격전(昭格殿)의 장벽(墻壁)을 발견하였다는 사실로 고려시대의 담건축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사』 「열전(列傳)」에 기와와 자갈로써 담을 쌓고 화초(花草)무늬를 만들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화초담이 고려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담을 축조방법 · 재료 · 장식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생울[生垣] : 농촌주택이나 산간지방의 주택에서 널리 이용하는데, 집터의 주위에 나무를 심어 그 나무 자체가 하나의 울타리 구실을 하게 하는 것이다. 나무로는 가시나무 · 탱자나무 · 개나리 등을 쓴다.

② 울 : 울타리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이락(籬落) · 파리(巴籬) · 번리(藩籬) · 바자울[笆子籬] 등이라고 한다. 재료는 나뭇가지 · 풀대 · 싸리나무 · 수수깡 등 여러 가지이며, 이들을 짜서 만든다.

③ 판장(板墻) : 나무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위 · 중간 · 아래 세 곳에 가로로 인방(引枋)을 보낸 다음 인방에 널빤지를 붙여 만든 담으로, 서울이나 지방의 서민주택에 쓰인다.

④ 돌담[石墻] : 농촌이나 어촌주택에 많이 쓰이는데, 크고 작은 막돌들을 허튼층쌓기로 쌓고 그 윗면에 초가지붕을 하거나, 그대로 놓아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돌담이라도 서울의 중상류주택 · 궁궐과 기타 사찰 · 문묘 등의 건축에서는 사고석[四塊石]이라 부르는 네모 반듯한 돌들을 바른층쌓기로 쌓은 담이다. 그것을 ‘사고석담’이라 하고 윗면에는 기와지붕을 한다. 또, 궁궐에서는 지붕 밑에 둥근 보[樑]를 보내어 양동을 설치한다.

⑤ 토담[土墻] : 진흙 · 지푸라기 · 석회를 섞어서 쌓은 담으로 중간 중간에 잔돌들을 넣는다. 이와 같은 담은 농촌주택에 널리 쓰이는데, 윗면에는 초가지붕이나 기와지붕을 한다.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널빤지로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진흙 · 돌 · 지푸라기 · 석회 등을 섞어서 굳힌 다음 판장을 떼어내어 담을 만든다. 이를 ‘판담’이라 부르며 널빤지로 만든 ‘판장’과는 다른 것이다.

⑥ 벽돌담[甓墻] : 벽돌을 쌓아 만든 담으로 중상류 주택과 궁궐에서 널리 쓰였다. 벽돌로는 검은 회색 벽돌과 붉은 벽돌이 있다. 주택에서는 검은 회색 벽돌을 쓰고, 궁궐에서는 붉은 벽돌도 쓴다. 윗면에는 암키와와 수키와로 지붕을 만들고, 처마에는 막새기와를 쓰거나 수키와에 아귀토를 물리기도 한다.

⑦ 영롱담[玲瓏墻] : 벽돌로 쌓은 담이지만 중간에 벽돌을 빼내어 구멍이 나게 한 담을 말하며, 보통 ‘十’자형이나 반달모양으로 구멍을 낸다.

⑧ 화초담[花草墻] : 담벽에 꽃이나 그밖에 여러가지 장식무늬를 만든 담으로 ‘화문담[花文墻]’이라고도 한다. 무늬는 주로 길상문자(吉祥文字)로 수복(壽福) · 강녕(康寧) · 부귀(富貴) · 다남(多男) · 만수(萬壽) · 쌍희[囍]등을 새겨넣고, 또 상서로운 동물로 사슴 · 학 등을 새겨 넣는다. 또한, 식물무늬로는 소나무 · 대나무 · 난초 · 국화 등을, 자연물로는 해 · 달 · 산 · 바위 · 폭포 등을 그려 넣는다.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로 구갑(龜甲)무늬 · 완자무늬 · 번개무늬[電文] · 바자무늬 등을 새겨 넣었으며, 또 십장생무늬[十長生文]전체를 넣기도 한다. 십장생무늬는 해 · 산 · 물 · 돌 · 구름 · 소나무 · 학 · 불로초 · 거북 · 사슴 등을 주제로 한 것이다.

경복궁 자경전(慈慶殿)의 바깥담에는 번개무늬 · 바자무늬 등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화초담이 있다. 안뜰 후정(後庭)에는 십장생무늬를 새겨 넣은 화초담이 있는데, 사실 이것은 자경전의 굴뚝과 담을 함께 쌓은 특수한 예가 된다.

또한, 담은 집에서 뿐 아니라 성이나 능 · 묘에도 쌓았다. 성에 쌓는 담으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몸을 보호하고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성첩(성가퀴)과 여장(女墻) 등이 있다. 능 · 묘에 쌓는 담으로는 곡담[曲墻]이라 하여 능 · 묘의 양옆과 뒤쪽을 낮게 둘러쌓는 것이 있다.

우리 나라 담의 두드러진 특색은 우선 담을 쌓고 생활하는 건축주의 신분에 따라 재료와 축조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서민층에서는 울타리 · 돌담과 같은 자연적인 모습의 담을 축조한다. 중상류 주택이나 궁궐에서는 사고석담장 · 벽돌담 · 화초담과 같은 인공이 많이 드는 담을 축조한다. 담의 높이도 서민주택에 비하여 상류주택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또 담 윗면에 만드는 지붕도 서민층 담장의 경우 몸채가 초가지붕이면 초가지붕으로, 상류 주택의 경우 기와지붕이면 담의 지붕도 기와지붕을 이룬다.

또한, 서민주택의 담은 집터의 경계에 안과 밖을 구별하는 기능으로 쌓는 성격이 강하다. 반면에 상류 주택이나 궁궐에서는 외부에 대한 방어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담이 경사지에 건축될 때는 담의 윗면과 지붕이 경사면을 따라 나란히 축조되는 것이 아니라, 단(段)을 만들며 축조되는 것이 특색으로 율동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주고 있다. 다음으로는, 담이 건축공간의 성격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담은 행랑채와 더불어 집터의 둘레를 막아 안과 밖의 공간 성격을 구분 짓고, 다시 안에서도 담을 건축하여 집으로서 형성되는 크고 작은 공간들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성격을 이루도록 한다. 주택에서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만든 담은 사랑마당과 안마당이라는 두개의 공간을 형성한다. 그 중 하나는 남성적인 공간이 되고 다른 하나는 여성적인 공간이 되게 한다. 또, 행랑채와 본채 사이에 쌓은 담은, 하나는 행랑마당으로서 하(下)의 공간이 되고 다른 것은 상(上)의 공간이 되게 한다.

또, 궁궐에서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담들을 둘러쌓음으로써 이들 담들로 나누어지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공간들은 제각기 독특한 성격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건축공간에 적극적 공간과 소극적 공간의 교차반복을 이룬다. 주택의 안채에 있어 안방 · 대청들은 그 하나 하나가 의도적인 적극적 공간들이다. 그들이 모여 보다 큰 안채라고 하는 적극적 공간이 되고, 그 둘레에 무한하게 펼쳐진 소극적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담을 쌓음으로써 담 안의 공간은 보다 큰 적극적인 공간이 된다. 또 그 밖으로 소극적 공간이 둘러싸이며, 다시 담에 의하여 그것이 적극적 공간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담은 그 장식구성에 있어 주제의 반복과 변화를 이룬다. 즉, 담에 장식한 무늬들은 창호의 창살짜임새나 주택 내의 가구의 장식무늬로도 쓰이기 때문에 주제의 반복에서 오는 통일성을 손쉽게 이룬다.

또한, 담은 정원공간의 구성에 있어서 중요한 시각적 요소가 되며, 이는 수직요소로서 공간에 미치게 된다. 즉, 굴뚝이나 정원의 괴석대와 돌확 등의 수직요소들이나 석상과 석지 등의 수평요소들을 한 공간 안의 것으로 서로 관련시켜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 담에 교창(交窓)이나 살창을 달아 공간과 공간을 서로 연속되게 하여주고, 두 공간이 상호관입(相互貫入)되게 하여주는 것도 중요한 특색이 된다. 즉, 건축공간을 인공적인 공간에서 자연적인 공간으로 확대, 융합되게 해주는 것이다. 서울 안국동 윤보선(尹潽善)가옥이나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의 독락당(獨樂堂)이 대표적인 예이다.

참고문헌

『한국건축의장』(주남철, 일지사, 1979)
「한국건축에 있어 담[墻]에 관한 연구」(주남철, 『한국문화연구원논총』 28, 1976)
「문헌으로 본 한국주택사」(김정기, 『동양학』 7,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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