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만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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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축조된 저수지.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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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축조된 저수지. 시도기념물.
내용

농촌진흥청 북서쪽에 있는 저수지로, 수원화성의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라고도 불린다. 현재는 농촌진흥청의 시험답(試驗畓)과 인근 논의 관개용 수원 및 시민들의 쉼터인 서호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2005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축만제의 축조연대는 1799년(정조 23)으로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로 조성된 관개 저수지이다. 수원성을 쌓을 때 일련의 사업으로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축조하였다고 한다. 당시 정조는 수원성의 동서남북에 네 개의 호수〔四湖〕를 축조하였다.

북지(北池)는 수원성 북문 북쪽에 위치한 일명 만석거(萬石渠)를 말하는 것으로 1795년에 완성한 속칭 조기정방죽을 가리킨다. 또한 남지(南池)는 원명 만년제(萬年堤)라 하여 1798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시설한 것이다. 그리고 동지는 수원시 지동에 위치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형체를 알 수가 없다.

『화성지』, 『수원군읍지』 등에 기록된 축만제의 규모는 제방의 길이가 1,246척(尺), 높이 8척, 두께 7.5척, 수심 7척, 수문 2개로 되어 있다. 제방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에 따라 심은 듯 아직도 고목들이 서 있다. 보수관리는 축제 후 4년만에 축만제둔(祝萬堤屯)을 설치하여 도감관(都監官) · 감관(監官) · 농감(農監) 등을 두어 관수와 전장관리를 맡게 하고, 이에서 생기는 도조는 수원성의 축성고(築城庫)에 납입하였다는 것을 보면 제방 아래 몽리구역(물이 들어와 관개의 혜택을 받는 곳)의 농지는 국둔전(國屯田)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표석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1831년 화성유수 박기수는 축만제 남쪽에 풍광이 아름다운 항미정(杭眉亭)을 지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호낙조’(西湖落照)는 수원팔경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가 되었다. 항미정은 1908년 조선 마지막 황제인 순종융 · 건릉을 방문하고 돌아갈 때 잠시 쉬어간 정자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권업모범장을 설치하여 농사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어 왔고, 이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농촌진흥청이 설치되어 그 맥을 이어왔으나, 현재는 서호공원으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축만제의 역사적 배경과 중요성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2016년 11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제67차 집행위원회에서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국내 최초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수원의 역사, 수원의 문화재』(수원시, 2016)
『토지개량사업이십년사』(토지개량조합연합회,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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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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