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1946년 2월 24일 조선학술원, 조선문학가동맹, 조선신문기자회 등 25개의 좌익 계열 문화예술 단체가 모여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이다. 예술과 학술, 언론·체육·교육 부문 단체들이 총망라되었으며, 조선공산당의 통일전선 결성 방침에 영향을 받았다. 종합예술제를 개최하고 문화공작단을 지방에 파견하는 등 국수주의 극복과 민족문화 수립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였다.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1946년 2월 24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으로 분열된 문화운동 단체들을 통합해 문화운동의 전체적 통일기관을 형성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강령에 제시된 목표는 민족 문화의 정당한 계승 및 세계 문화의 비판적 섭취, 진보된 과학의 수입 연구 및 그 이론의 확립, 인민의 민주주의적 교육 및 과학적 계몽, 비과학적이고 반민주적인 문화 경향의 배제 등이었다.
해방 후 문화예술 분야의 관계자들이 중심이 되어 전 조선적 문화 단체 결성 움직임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1945년 8월 18일 조직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였다. 임화를 회장으로 하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는 강력한 문화 통일전선을 표방하고 친일적 경력을 지닌 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을 포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곧 이러한 조직 구성 방식에 반발한 이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계급적 선명성을 주장하며 9월 30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을 결성하였다. 이기영, 한설야 등이 주도하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은 1935년 해산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KAPF]을 재건한 것이었다.
이처럼 진보적 문화예술 단체들이 통일전선노선과 프롤레타리아문화건설론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자 1945년 말부터 문학단체들을 중심으로 통합 논의가 시작되었다. 각각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에 속해 있는 조선문학건설본부와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1945년 12월 13일 통합을 결의하고 1946년 2월 8일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주도 아래 1946년 2월 24일에는 각 문화예술 부문을 총망라하여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이 결성되었다. 조선문화단체총연맹에는 조선문학가동맹과 조선연극동맹, 조선음악동맹, 조선영화동맹 등 9개의 예술 부문 단체들과 조선학술원, 조선과학자동맹, 조선사회과학연구소, 조선산업노동조사소, 진단학회 등 학술 부문 13개 단체, 조선신문기자회, 조선교육자협회, 조선체육회 등 언론 · 교육 · 체육 부문의 3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한편 문화예술단체의 통합은 "인민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진보적 민족문화 수립"을 위한 광범한 민족통일전선 결성을 주장하는 조선공산당의 방침에 따른 것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창립 후 좌익계 정당 및 사회단체의 연합체인 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중앙위원회 아래 예술 · 과학 · 교육 · 언론 · 체육 등 5개의 상임위원회를 두고 그 밑에 서기국과 계몽동원본부를 설치하였다. 또한 각 도에 지부를 결성해 활발한 활동에 나섰는데, 우선 창립 직후 문화운동의 통일적 전망을 모색한다는 목적 하에 1946년 4월 15일부터 5일간 민족문화건설전국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당면 임무로서 민족문화 수립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의 잔재 및 주1적 유제 청산과 주2 극복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민족문화 수립과 민주주의 국가 건설이 분리될 수 없다는 관점 아래 "민주주의 조국 건설을 방해하는 제반동"과 투쟁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1947년 1월에는 종합예술제를 개최했으며 그해 12월에는 남조선문화옹호예술가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지방에도 문화공작단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의 활동은 194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미군정의 좌익 탄압으로 인해 제약을 받았으며 단독정부가 수립된 후 1949년 10월 등록이 취소됨으로써 해체되었다.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분열된 좌익 계열 문화단체들을 통합해 조직되었다. 운동 방침으로 통일전선노선을 채택하였으며 좌익 계열의 통일전선체인 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의 좌익 탄압으로 점차 활동이 위축되었고, 단독정부 수립 후 다른 좌익 단체들과 함께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