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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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계는 고려시대 향리 · 늙은 병사 · 공장(工匠) · 악인(樂人)과 탐라의 왕족,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었던 위계 제도이다.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와 대비되는 위계 제도였다. 고려의 내국인과 탐라의 왕족은 29등급의 무산계를 지급했던 반면에 외국인인 여진의 추장은 대장군 · 장군으로 구성된 별도의 무산계를 지급하였다. 내국인에게 지급한 무산계를 받은 인물들은 전시과를 경제적 대가로 받았다.
무산계 (武散階)
무산계는 고려시대 향리 · 늙은 병사 · 공장(工匠) · 악인(樂人)과 탐라의 왕족,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었던 위계 제도이다.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와 대비되는 위계 제도였다. 고려의 내국인과 탐라의 왕족은 29등급의 무산계를 지급했던 반면에 외국인인 여진의 추장은 대장군 · 장군으로 구성된 별도의 무산계를 지급하였다. 내국인에게 지급한 무산계를 받은 인물들은 전시과를 경제적 대가로 받았다.
조선시대 베[布]로써 세를 바치던 공장(工匠).
납포장 (納布匠)
조선시대 베[布]로써 세를 바치던 공장(工匠).
일제강점기 때, 전라청년연맹 상임위원, 전남청년연맹 위원장, 신간회 상무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제2차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석천 (張錫天)
일제강점기 때, 전라청년연맹 상임위원, 전남청년연맹 위원장, 신간회 상무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제2차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상의원은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복식 일체를 관장하며, 재물과 보화를 관리하고 제조하고 공급하던 공조(工曹) 소속의 관아이다. 이 관아에서는 일상적인 관례에 따라 매달 초하루와 보름, 생일, 명절, 절기에, 대전, 대왕대비전, 중궁전, 세자궁, 빈궁, 현빈궁 등 각전과 각궁에 정해진 물품을 진상하고, 가례, 책례, 존숭, 능행 등 왕실 의례가 있을 때, 또는 왕의 명령이 있을 때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였다.
상의원 (尙衣院)
상의원은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복식 일체를 관장하며, 재물과 보화를 관리하고 제조하고 공급하던 공조(工曹) 소속의 관아이다. 이 관아에서는 일상적인 관례에 따라 매달 초하루와 보름, 생일, 명절, 절기에, 대전, 대왕대비전, 중궁전, 세자궁, 빈궁, 현빈궁 등 각전과 각궁에 정해진 물품을 진상하고, 가례, 책례, 존숭, 능행 등 왕실 의례가 있을 때, 또는 왕의 명령이 있을 때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였다.
조선시대 경외(京外)의 공장(工匠)을 기록한 인명록.
공장안 (工匠案)
조선시대 경외(京外)의 공장(工匠)을 기록한 인명록.
자주관리운동은 해방 직후 노동자들이 일제 소유의 기업과 공장을 자주적으로 관리하였던 운동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전국 각지에서 주민들에 의한 인민위원회가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되어 일본인 기업가들이 철수한 공장을 접수·운영하는 (노동자)자주적 관리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였다. 자주관리운동은 일시적으로 활발히 전개되었지만, 인민위원회와 공장관리위원회의 관계로 인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북조선 지역에는 집중된 대규모 중공업시설의 자주관리운동은 소련군이 공장관리권을 맡으면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자주관리운동 (自主管理運動)
자주관리운동은 해방 직후 노동자들이 일제 소유의 기업과 공장을 자주적으로 관리하였던 운동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전국 각지에서 주민들에 의한 인민위원회가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되어 일본인 기업가들이 철수한 공장을 접수·운영하는 (노동자)자주적 관리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였다. 자주관리운동은 일시적으로 활발히 전개되었지만, 인민위원회와 공장관리위원회의 관계로 인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북조선 지역에는 집중된 대규모 중공업시설의 자주관리운동은 소련군이 공장관리권을 맡으면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아프리카 중서부 내륙에 있는 공화국.
니제르 (Niger)
아프리카 중서부 내륙에 있는 공화국.
공장부(工匠府)는 통일신라시대에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때 전사서(典祀署)로 관호를 바꾸었다가, 신라 제36대 혜공왕(765~780) 때, 다시 공장부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경덕왕 18년(759) 정월 기록에 전사서와 공장부를 함께 전하는 것으로 보아, 공장부를 경덕왕 때에 전사서로 고쳤다고 전하는 것은 『삼국사기』 직관지의 오기로, 공장부와 전사서는 별개의 관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장부 (工匠府)
공장부(工匠府)는 통일신라시대에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때 전사서(典祀署)로 관호를 바꾸었다가, 신라 제36대 혜공왕(765~780) 때, 다시 공장부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경덕왕 18년(759) 정월 기록에 전사서와 공장부를 함께 전하는 것으로 보아, 공장부를 경덕왕 때에 전사서로 고쳤다고 전하는 것은 『삼국사기』 직관지의 오기로, 공장부와 전사서는 별개의 관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적 공장을 ‘母공장’으로 삼아 업종과 지역별로 유사한 공장들을 주위에 배치하는 대규모 공장단지.
연합기업소 (聯合企業所)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적 공장을 ‘母공장’으로 삼아 업종과 지역별로 유사한 공장들을 주위에 배치하는 대규모 공장단지.
덕천시는 평안남도 북부 대동강 상류 유역에 있는 시이다. 태종 13년에 원래 이 고장의 지명이였던 덕주군의 ‘덕’ 자와 강을 끼고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의 ‘천’ 자를 조합해 덕천군이라 명명하였다. 1952년 잠상면과 잠도면을 분리하고 나머지 면으로 군 행정 구역을 개편하였다. 1987년 시로 승격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 구역은 22개 동과 10개 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 소재지는 덕천동이다. 논이 적고 대부분 밭이며 양잠업, 축산업, 임업이 발달하였다. 공업으로는 기계공업이 발달하였으며 그밖에 소규모 지방공장들이 분포해 있다.
덕천시 (德川市)
덕천시는 평안남도 북부 대동강 상류 유역에 있는 시이다. 태종 13년에 원래 이 고장의 지명이였던 덕주군의 ‘덕’ 자와 강을 끼고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의 ‘천’ 자를 조합해 덕천군이라 명명하였다. 1952년 잠상면과 잠도면을 분리하고 나머지 면으로 군 행정 구역을 개편하였다. 1987년 시로 승격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 구역은 22개 동과 10개 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 소재지는 덕천동이다. 논이 적고 대부분 밭이며 양잠업, 축산업, 임업이 발달하였다. 공업으로는 기계공업이 발달하였으며 그밖에 소규모 지방공장들이 분포해 있다.
대안전기공장은 북한 평안남도 남포특급시 대안구역에 있는 주요 중기 생산기지이다. 국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전기·대상 설비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0년 대안중기계종합공장과 통합되어 북한의 주요 중기 생산기지가 되었다. 대형·중형·소형의 각종 전기 설비와 대상설비를 생산한다. 산하에 유리섬유공장, 용강절연물공장 등의 공장과 절연물연구소, 공업시험소 등의 연구소가 설치돼 있다. 또 대안공업대학, 전기전문학교 등의 부속교육기관이 설치돼 있다. ‘김일성훈장’, ‘천리마공장’ 칭호, ‘2중천리마공장’ 칭호를 수훈하였다. 북한에서 모범적인 ‘본보기공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안전기공장 (大安電氣工場)
대안전기공장은 북한 평안남도 남포특급시 대안구역에 있는 주요 중기 생산기지이다. 국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전기·대상 설비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0년 대안중기계종합공장과 통합되어 북한의 주요 중기 생산기지가 되었다. 대형·중형·소형의 각종 전기 설비와 대상설비를 생산한다. 산하에 유리섬유공장, 용강절연물공장 등의 공장과 절연물연구소, 공업시험소 등의 연구소가 설치돼 있다. 또 대안공업대학, 전기전문학교 등의 부속교육기관이 설치돼 있다. ‘김일성훈장’, ‘천리마공장’ 칭호, ‘2중천리마공장’ 칭호를 수훈하였다. 북한에서 모범적인 ‘본보기공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가 건설 시 특별한 공로를 세운 조직에게 수여하는 영예 칭호를 가리키는 북한용어.
근위칭호 (近衛稱號)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가 건설 시 특별한 공로를 세운 조직에게 수여하는 영예 칭호를 가리키는 북한용어.
유일관리제는 해방 이후 북한에서 지배인 1인이 전권을 갖고 기업을 운영하던 최초의 공장관리체제이다. 1948년 이전에는 제한적으로 시행되다가 1949년 11월에 제도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지배인이 기업관리, 운영의 모든 권한을 가지며 결과를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여 중간관리층으로서 상부와 하부를 연결한다. 생산자 대중으로 구성된 생산협의회가 생산관리의 문제들을 토의하고 방안을 제시하였다. 유일관리제는 1961년 ‘대안의 사업체계’가 도입되기까지 적용되었다. 이때에 독립채산제와 함께 공장관리체제로 통합되어 기본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일관리제 (唯一管理制)
유일관리제는 해방 이후 북한에서 지배인 1인이 전권을 갖고 기업을 운영하던 최초의 공장관리체제이다. 1948년 이전에는 제한적으로 시행되다가 1949년 11월에 제도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지배인이 기업관리, 운영의 모든 권한을 가지며 결과를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여 중간관리층으로서 상부와 하부를 연결한다. 생산자 대중으로 구성된 생산협의회가 생산관리의 문제들을 토의하고 방안을 제시하였다. 유일관리제는 1961년 ‘대안의 사업체계’가 도입되기까지 적용되었다. 이때에 독립채산제와 함께 공장관리체제로 통합되어 기본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천군은 자강도의 중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 면적 1,001.2㎢, 인구는 10만 6,311명(2008년 추정)이며, 1읍 5노동자구 11리(2003년)로 구성되어 있다. 1949년 전천면을 중심으로 신설된 군이다. 전천은 물살이 화살처럼 빠른 살내가 있는 천이라는 뜻이다. 산림이 90%를 차지하고 있는 산간지역으로 대부분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다. 기계공업, 채굴공업, 임업 및 목재가공업 등 공업이 발달하였다. 1991년 김정일이 정춘실의 충성심과 헌신을 배울 것을 지시하면서 시작된 ‘정춘실 운동’의 발상지이다.
전천군 (前川郡)
전천군은 자강도의 중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 면적 1,001.2㎢, 인구는 10만 6,311명(2008년 추정)이며, 1읍 5노동자구 11리(2003년)로 구성되어 있다. 1949년 전천면을 중심으로 신설된 군이다. 전천은 물살이 화살처럼 빠른 살내가 있는 천이라는 뜻이다. 산림이 90%를 차지하고 있는 산간지역으로 대부분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다. 기계공업, 채굴공업, 임업 및 목재가공업 등 공업이 발달하였다. 1991년 김정일이 정춘실의 충성심과 헌신을 배울 것을 지시하면서 시작된 ‘정춘실 운동’의 발상지이다.
공조(工曹)는 고려시대, 서경에 설치되어 지역 행정을 담당하던 부속 관청이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한 뒤 1138년(인종 16)에 폐지된 부속 관청을 다시 복구하면서 지역 행정을 담당하는 핵심 기구인 6조의 하나로 공조를 설치하였다. 조위총의 정변이 진압된 뒤에 부속 관청을 6조 중심으로 정비할 때에 공조에는 잡재 · 영작원 · 도항사를 분속시켰다.
공조 (工曹)
공조(工曹)는 고려시대, 서경에 설치되어 지역 행정을 담당하던 부속 관청이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한 뒤 1138년(인종 16)에 폐지된 부속 관청을 다시 복구하면서 지역 행정을 담당하는 핵심 기구인 6조의 하나로 공조를 설치하였다. 조위총의 정변이 진압된 뒤에 부속 관청을 6조 중심으로 정비할 때에 공조에는 잡재 · 영작원 · 도항사를 분속시켰다.
고려·조선 초기 왕이 쓰는 기물과 장식품의 제조를 감시하고 수지(收支)를 관장하였던 관서.
공조서 (供造署)
고려·조선 초기 왕이 쓰는 기물과 장식품의 제조를 감시하고 수지(收支)를 관장하였던 관서.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서 김일성이 파견한 정치공작원들의 지도·방조 아래 공장, 기업소들에 조직되었던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기업관리단체.
공장관리위원회 (工場管理委員會)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서 김일성이 파견한 정치공작원들의 지도·방조 아래 공장, 기업소들에 조직되었던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기업관리단체.
북한의 공장에 조직된 노동당의 위원회.
공장당위원회 (工場黨委員會)
북한의 공장에 조직된 노동당의 위원회.
공장계는 조선 후기에 수공업자들이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능률을 올릴 뿐만 아니라 배타적인 독점권을 유지하고 상부상조하기 위해 조직한 일종의 동업 조합이다. 일반적으로 ‘공장계’라는 개념을 상정할 수 있으나, 단순히 ‘수공업자의 모임’이라는 뜻일 뿐 실제로 사용된 역사적 표현은 아니며, 생산 물품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의 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공장계 (工匠契)
공장계는 조선 후기에 수공업자들이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능률을 올릴 뿐만 아니라 배타적인 독점권을 유지하고 상부상조하기 위해 조직한 일종의 동업 조합이다. 일반적으로 ‘공장계’라는 개념을 상정할 수 있으나, 단순히 ‘수공업자의 모임’이라는 뜻일 뿐 실제로 사용된 역사적 표현은 아니며, 생산 물품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의 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북한의 함경남도 단천시 소재의 공장대학.
단천공업대학 (端川工業大學)
북한의 함경남도 단천시 소재의 공장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