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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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윤리강령은 1991년 「국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 행동 강령이자 징계 심사 기준이다. 국회의원의 윤리 및 자격을 심사하는 국회의 윤리 특별위원회의 최초의 규범적 근거이다. 2010년 5월 28일 개정 「국회법」은 국회의원의 윤리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윤리 강령」 및 「국회의원 윤리 실천 규범」을 위반하였을 경우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징계 사유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국회의원 윤리 강령」이나 「국회의원 윤리 실천 규범」을 위반하면, 국회는 윤리 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의결로써 징계할 수 있다.
국회의원윤리강령 (國會議員倫理綱領)
국회의원윤리강령은 1991년 「국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 행동 강령이자 징계 심사 기준이다. 국회의원의 윤리 및 자격을 심사하는 국회의 윤리 특별위원회의 최초의 규범적 근거이다. 2010년 5월 28일 개정 「국회법」은 국회의원의 윤리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윤리 강령」 및 「국회의원 윤리 실천 규범」을 위반하였을 경우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징계 사유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국회의원 윤리 강령」이나 「국회의원 윤리 실천 규범」을 위반하면, 국회는 윤리 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의결로써 징계할 수 있다.
이종린은 일제강점기 독립신문 주필, 천도교월보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종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1907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이후 제국신문, 대한민보, 천도교월보 등에서 기자, 논설위원, 주필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독립신문 주필 활동으로 3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해 일제의 경제 수탈정책과 언론탄압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협력하였다. 이종린의 일제강점기 활동은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이종린 (李鍾麟)
이종린은 일제강점기 독립신문 주필, 천도교월보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종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1907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이후 제국신문, 대한민보, 천도교월보 등에서 기자, 논설위원, 주필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독립신문 주필 활동으로 3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해 일제의 경제 수탈정책과 언론탄압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협력하였다. 이종린의 일제강점기 활동은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운동가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해 광복군이 되었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복역하던 중 옥중 출마해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으로 10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75년 등산 중 의문사했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장준하 (張俊河)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운동가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해 광복군이 되었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복역하던 중 옥중 출마해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으로 10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75년 등산 중 의문사했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개헌안부결반대운동(改憲案否決反對運動)은 1952년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가 국회를 압박하여 결과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전개한 대중집회와 시위이다. 1952년 1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큰 표 차이로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국회의원 소환, 국회 해산 등을 주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1952년 5월 25일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는 부산정치파동으로 이어졌다.
개헌안 부결 반대운동 (改憲案 否決 反對運動)
개헌안부결반대운동(改憲案否決反對運動)은 1952년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가 국회를 압박하여 결과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전개한 대중집회와 시위이다. 1952년 1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큰 표 차이로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국회의원 소환, 국회 해산 등을 주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1952년 5월 25일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는 부산정치파동으로 이어졌다.
국회에 일정 수 이상의 의석을 가지는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국회 내의 정파적 집단.
교섭단체 (交涉團體)
국회에 일정 수 이상의 의석을 가지는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국회 내의 정파적 집단.
중선거구제는 1972년 12월 30일 제정된, 1개의 선거구에서 2~4인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 제도이다. 투표 및 선출 방식은 유권자들이 한 후보자를 선택하고, 후보자들 가운데 다수표를 얻은 순서대로 의원을 선출하는 단기 비이양식 투표(Single Non-Transferable Vote)를 채택하고 있으며, 선거구를 광역화하여 소수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이고, 사표를 줄일 수 있다. 중선거구제는 대선거구제와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안된 제도이다.
중선거구제 (中選擧區制)
중선거구제는 1972년 12월 30일 제정된, 1개의 선거구에서 2~4인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 제도이다. 투표 및 선출 방식은 유권자들이 한 후보자를 선택하고, 후보자들 가운데 다수표를 얻은 순서대로 의원을 선출하는 단기 비이양식 투표(Single Non-Transferable Vote)를 채택하고 있으며, 선거구를 광역화하여 소수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이고, 사표를 줄일 수 있다. 중선거구제는 대선거구제와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안된 제도이다.
친박연대는 2008년 3월 21일 친박근혜 세력들이 급조한 정당이다. 같은 해 4월 9일 치러질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은 박근혜와의 친분을 강조하면서 친박연대를 창당하였다. “박근혜 의원과 친하다”라는 뜻을 가진 당명을 사용하는 정당이 탄생한 것은 한국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속칭 ‘박근혜당’이라 불릴 정도로 박근혜에 기댄 정당이었다.
친박연대 (親朴連帶)
친박연대는 2008년 3월 21일 친박근혜 세력들이 급조한 정당이다. 같은 해 4월 9일 치러질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은 박근혜와의 친분을 강조하면서 친박연대를 창당하였다. “박근혜 의원과 친하다”라는 뜻을 가진 당명을 사용하는 정당이 탄생한 것은 한국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속칭 ‘박근혜당’이라 불릴 정도로 박근혜에 기댄 정당이었다.
선거구획정위원회는 1994년 공정한 선거구 획정을 목표로 설립된 정부 기구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독립적 지위를 가지는 기구로 1994년 공정한 선거구 획정을 목표로 설립되었으며, 선거인 수와 당선자 정수 비율이 균등해야 한다는 투표 가치의 등가성을 확보하고, 정치적 이해에 따른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정하는 게리맨더링 등을 방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선거구획정위원회 (選擧區劃定委員會)
선거구획정위원회는 1994년 공정한 선거구 획정을 목표로 설립된 정부 기구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독립적 지위를 가지는 기구로 1994년 공정한 선거구 획정을 목표로 설립되었으며, 선거인 수와 당선자 정수 비율이 균등해야 한다는 투표 가치의 등가성을 확보하고, 정치적 이해에 따른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정하는 게리맨더링 등을 방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만섭은 대한민국 언론인 출신의 8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제6, 7, 10, 11, 12, 14, 15, 16대 총선에서 당선되었으며, 제14대와 제16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한국국민당과 국민신당을 창당하였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지냈다.
이만섭 (李萬燮)
이만섭은 대한민국 언론인 출신의 8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제6, 7, 10, 11, 12, 14, 15, 16대 총선에서 당선되었으며, 제14대와 제16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한국국민당과 국민신당을 창당하였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지냈다.
이민우는 6선 의원으로 국회부의장 등을 지낸 야당 정치인이다. 제4대 민의원을 시작으로 제5, 7, 9, 10,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제9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대 이래 야당에서 활동하였으며, 신민당 총재 권한대행과 부총재, 신한민주당 총재 등을 지냈다. 전두환 정권이 주장하는 내각제 개헌 수용 가능성을 밝혀 파문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민우 (李敏雨)
이민우는 6선 의원으로 국회부의장 등을 지낸 야당 정치인이다. 제4대 민의원을 시작으로 제5, 7, 9, 10,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제9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대 이래 야당에서 활동하였으며, 신민당 총재 권한대행과 부총재, 신한민주당 총재 등을 지냈다. 전두환 정권이 주장하는 내각제 개헌 수용 가능성을 밝혀 파문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양찬우는 육군 준장, 육군 교육총본부 작전교육처 처장, 경상남도 도지사, 내무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26년 부산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과를 수료했다. 육군 제32·21사단장을 역임하였고, 5·16군사정변 후 경상남도 도지사,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공화당 소속으로 제7·8·9·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한국국민당과 신민주공화당의 부총재로 활동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이어 낙선해 자유민주연합 고문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청조근정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양찬우 (楊燦宇)
양찬우는 육군 준장, 육군 교육총본부 작전교육처 처장, 경상남도 도지사, 내무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26년 부산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과를 수료했다. 육군 제32·21사단장을 역임하였고, 5·16군사정변 후 경상남도 도지사,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공화당 소속으로 제7·8·9·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한국국민당과 신민주공화당의 부총재로 활동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이어 낙선해 자유민주연합 고문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청조근정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이범준은 해방 이후 제2군단장, 육군 군수사령관, 국방부 방위산업차관보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이다. 1928년 강원도 명주군 육군사관학교를 8기로 졸업했으며 5·16군사정변 이후에도 끝까지 군에 남은 정통파 군인으로 평가받는다. 1965년 9월 베트남 파병 당시 주월 제100군수사령관으로 활동한 이래로, 국방부 군수국장, 제2군단장, 육군 군수사령관, 국방부 방위산업차관보를 역임했다. 1981년 정치인으로 변신해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강릉·양양·명주 지역에 출마해 11대, 1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범준 (李範俊)
이범준은 해방 이후 제2군단장, 육군 군수사령관, 국방부 방위산업차관보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이다. 1928년 강원도 명주군 육군사관학교를 8기로 졸업했으며 5·16군사정변 이후에도 끝까지 군에 남은 정통파 군인으로 평가받는다. 1965년 9월 베트남 파병 당시 주월 제100군수사령관으로 활동한 이래로, 국방부 군수국장, 제2군단장, 육군 군수사령관, 국방부 방위산업차관보를 역임했다. 1981년 정치인으로 변신해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강릉·양양·명주 지역에 출마해 11대, 1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요코하마 항구에서 일제 군수시설 파괴를 계획하였으나 실패하였고 해방 이후,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서장주 (徐璋珠)
일제강점기 때, 요코하마 항구에서 일제 군수시설 파괴를 계획하였으나 실패하였고 해방 이후,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국회의원,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송방용 (宋邦鏞)
국회의원,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부총리, 대한석탄공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태완선 (太完善)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부총리, 대한석탄공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