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백자"
검색결과 총 42건
조선 전기의 백자 합(白磁盒).
백자 반합 (白磁 飯盒)
조선 전기의 백자 합(白磁盒).
조선시대의 백자 병.
백자 병 (白磁 甁)
조선시대의 백자 병.
조선 전기의 백자병.
백자 상감 모란문 병 (白磁 象嵌 牡丹▽文 甁)
조선 전기의 백자병.
조선 전기의 백자 병.
백자 상감 연화당초문 병 (白磁 象嵌 蓮花唐草文 甁)
조선 전기의 백자 병.
조선 전기의 백자 대접.
백자 상감 연화당초문 대접 (白磁 象嵌 蓮花唐草文 大楪)
조선 전기의 백자 대접.
조선 전기의 백자 주전자.
백자 병형 주전자 (白磁 甁形 酒煎子)
조선 전기의 백자 주전자.
조선시대의 청화백자 항아리.
백자 청화 ‘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白磁 靑畵 ‘弘治二年’銘 松竹文 缸아리)
조선시대의 청화백자 항아리.
백자 청화 칠보수복문 호는 조선 후기 청화안료로 길상문과 화훼문을 그려 넣은 백자 항아리이다. 높이는 31.6㎝이며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수복(壽福)’을 표현하는 길상문은 18세기에 본격적으로 도자기의 장식으로 등장하였다. 이 백자는 ‘壽·福’ 자를 4곳에 써넣어 배치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칠보문을 배치하였다. 백자 아래쪽에는 난초문 등이 시문되어 있는데 이는 18세기 이후 청화백자에 처음 등장한 무늬이다. 유색은 회백색을 띠며 청화의 발색은 회청색이다. 문양의 구획과 다양한 구성에서 18세기 후반 청화백자의 장식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백자 청화 칠보 수복문 호 (白磁 靑畵 七寶 壽福文 壺)
백자 청화 칠보수복문 호는 조선 후기 청화안료로 길상문과 화훼문을 그려 넣은 백자 항아리이다. 높이는 31.6㎝이며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수복(壽福)’을 표현하는 길상문은 18세기에 본격적으로 도자기의 장식으로 등장하였다. 이 백자는 ‘壽·福’ 자를 4곳에 써넣어 배치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칠보문을 배치하였다. 백자 아래쪽에는 난초문 등이 시문되어 있는데 이는 18세기 이후 청화백자에 처음 등장한 무늬이다. 유색은 회백색을 띠며 청화의 발색은 회청색이다. 문양의 구획과 다양한 구성에서 18세기 후반 청화백자의 장식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조선 후기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동체부에 화분문을 그려 넣은 백자 항아리.
백자 청화 화분문 호 (白磁 靑畵 花盆文 壺)
조선 후기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동체부에 화분문을 그려 넣은 백자 항아리.
조선 후기 양각 기법으로 동체 전면에 해서체로 ‘동묘치성병(東廟致誠甁)’을 시문한 백자.
백자 동묘치성병명 병 (白磁 東廟致誠甁銘 甁)
조선 후기 양각 기법으로 동체 전면에 해서체로 ‘동묘치성병(東廟致誠甁)’을 시문한 백자.
백자 사옹원인은 조선 후기 사옹원에서 사용한 백자로 된 인장이다. 손잡이 역할을 하는 사자형 인뉴는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며, 청채(靑彩)와 동채(銅彩)를 동시에 사용하여 조선 후기에 제작된 백자의 조형적 특징을 볼 수 있다. 2018년 2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백자 사옹원인 (白磁 司饔院印)
백자 사옹원인은 조선 후기 사옹원에서 사용한 백자로 된 인장이다. 손잡이 역할을 하는 사자형 인뉴는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며, 청채(靑彩)와 동채(銅彩)를 동시에 사용하여 조선 후기에 제작된 백자의 조형적 특징을 볼 수 있다. 2018년 2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백자 대병은 조선 후기, 연회용으로 제작된 대형 백자병이다. 18세기에 제작된 높이 47㎝의 백자 병으로 목이 유난히 길어 속칭 거위병이라고도 불린다. 18세기 전반 광주 관요에서 제작된 연회용 백자로 주병과 다병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백자 대병은 18세기 영조 때 연회용 다병으로 사용된 왕실용 대형 백자병으로 의의가 있다.
백자 대병 (白磁 大甁)
백자 대병은 조선 후기, 연회용으로 제작된 대형 백자병이다. 18세기에 제작된 높이 47㎝의 백자 병으로 목이 유난히 길어 속칭 거위병이라고도 불린다. 18세기 전반 광주 관요에서 제작된 연회용 백자로 주병과 다병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백자 대병은 18세기 영조 때 연회용 다병으로 사용된 왕실용 대형 백자병으로 의의가 있다.
백자유개호는 조선 전기 제작된 백자 뚜껑과 항아리이다. 높이 25㎝의 뚜껑을 갖춘 백자 항아리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몸체 외형은 구형에 가깝지만 무게중심이 아래로 처진 주판알 형태를 보인다. 무문백자로 빙렬이 없고 맑고 투명한 유백색 유약이 고르게 입혀져 조선 전기 백자를 대표한다.
백자 유개호 (白磁 有蓋壺)
백자유개호는 조선 전기 제작된 백자 뚜껑과 항아리이다. 높이 25㎝의 뚜껑을 갖춘 백자 항아리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몸체 외형은 구형에 가깝지만 무게중심이 아래로 처진 주판알 형태를 보인다. 무문백자로 빙렬이 없고 맑고 투명한 유백색 유약이 고르게 입혀져 조선 전기 백자를 대표한다.
백자대병은 조선 후기, 주병과 다병의 용도로 제작된 대형 백자병이다. 높이 47㎝에 원통형보다는 약간 타원형에 가까운 몸통을 이루고 있으며, 이 시기의 병으로는 목이 유난히 긴 편이다. 18세기 전반 왕실 연회 때 사용되는 주병과 다병의 용도로 제작된 대형 백자병으로 의의가 있다.
백자 대병 (白磁 大甁)
백자대병은 조선 후기, 주병과 다병의 용도로 제작된 대형 백자병이다. 높이 47㎝에 원통형보다는 약간 타원형에 가까운 몸통을 이루고 있으며, 이 시기의 병으로는 목이 유난히 긴 편이다. 18세기 전반 왕실 연회 때 사용되는 주병과 다병의 용도로 제작된 대형 백자병으로 의의가 있다.
백자양각시문병은 조선 후기 양각으로 시문이 조각된 백자병이다. 높이 28㎝의 백자로 안정감 있고 탄력 있는 타원형의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당대 시문을 양각한 백자로 유사한 사례가 매우 드물어 사료 가치가 충분하다.
백자 양각 시문 병 (白磁 陽刻 詩文 甁)
백자양각시문병은 조선 후기 양각으로 시문이 조각된 백자병이다. 높이 28㎝의 백자로 안정감 있고 탄력 있는 타원형의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당대 시문을 양각한 백자로 유사한 사례가 매우 드물어 사료 가치가 충분하다.
백자청화매죽문시명병은 조선 후기, 청화로 매죽문과 시를 시문한 백자병이다. 달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몸통의 중앙부 전후면에는 매화와 대나무를 묘사하고 그 사이에 시구를 적었다. 매죽 문양과 시를 조화롭게 표현해 18세기 시대양식을 잘 보여준다.
백자 청화 매죽문 시명 병 (白磁 靑畵 梅竹文 詩銘 甁)
백자청화매죽문시명병은 조선 후기, 청화로 매죽문과 시를 시문한 백자병이다. 달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몸통의 중앙부 전후면에는 매화와 대나무를 묘사하고 그 사이에 시구를 적었다. 매죽 문양과 시를 조화롭게 표현해 18세기 시대양식을 잘 보여준다.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은 조선 후기, 만자문과 운현 명문이 청화로 시문된 백자병이다. 높이 31.5㎝의 병으로 종속문으로 주로 사용되는 만자문을 주제문으로 채택하였다. 굽 안 바닥에 고종의 사가이자 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명이 있다. 독창적인 사방연속 만자문 장식과 '운현' 명문을 통해 사용처와 주문처를 추정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백자 청화 운현명 만자문 병 (白磁 靑畵 雲峴銘 卍字文 甁)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은 조선 후기, 만자문과 운현 명문이 청화로 시문된 백자병이다. 높이 31.5㎝의 병으로 종속문으로 주로 사용되는 만자문을 주제문으로 채택하였다. 굽 안 바닥에 고종의 사가이자 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명이 있다. 독창적인 사방연속 만자문 장식과 '운현' 명문을 통해 사용처와 주문처를 추정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백자이동궁명 사각호는 조선 후기 제작된 이동궁 명문이 있는 소형 사각 백자이다. 높이 10.2㎝이며 크기는 작은 편이다. 소형의 사각호는 당시 화장 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명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정조의 딸 숙선옹주의 궁인 ‘이동궁’ 명문이 있으며, 소형 화장 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여 사료 가치가 크다.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 (白磁 履洞宮銘 四角壺)
백자이동궁명 사각호는 조선 후기 제작된 이동궁 명문이 있는 소형 사각 백자이다. 높이 10.2㎝이며 크기는 작은 편이다. 소형의 사각호는 당시 화장 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명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정조의 딸 숙선옹주의 궁인 ‘이동궁’ 명문이 있으며, 소형 화장 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여 사료 가치가 크다.
백자 철화 용문 호는 조선 후기 산화철 안료로 용문을 장식한 백자호다. 부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01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7세기 중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며 중국으로부터 청화의 안료인 회회청을 수입하기 어려워지자 쉽게 구할 수 있는 석간주를 이용한 백자들을 대량으로 생산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몸통 가운데를 기준으로 위쪽과 아래쪽의 형태가 대칭을 이룬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항아리를 휘감은 용과 풀처럼 보이는 구름이 그려져 있다. 얼굴이 해체된 듯한 용의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지방의 민요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자 철화 용문 호 (白磁 鐵畵 龍文 壺)
백자 철화 용문 호는 조선 후기 산화철 안료로 용문을 장식한 백자호다. 부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01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7세기 중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며 중국으로부터 청화의 안료인 회회청을 수입하기 어려워지자 쉽게 구할 수 있는 석간주를 이용한 백자들을 대량으로 생산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몸통 가운데를 기준으로 위쪽과 아래쪽의 형태가 대칭을 이룬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항아리를 휘감은 용과 풀처럼 보이는 구름이 그려져 있다. 얼굴이 해체된 듯한 용의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지방의 민요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조선시대 생활백자를 굽던 가마터.
군포 산본동 조선백자 요지 (軍浦 山本洞 朝鮮白磁 窯址)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조선시대 생활백자를 굽던 가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