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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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이다.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본당이다. 1890년에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었으나 1895년에 공세리로 이전되면서 공세리본당이 되었다. 드비즈 신부는 옛 공세창 자리를 확보하여 192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숨어 있던 천주교회를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긴 박해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성당이다.
공세리성당 (貢稅里聖堂)
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이다.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본당이다. 1890년에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었으나 1895년에 공세리로 이전되면서 공세리본당이 되었다. 드비즈 신부는 옛 공세창 자리를 확보하여 192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숨어 있던 천주교회를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긴 박해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성당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천주교성당.
합덕성당 (合德聖堂)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천주교성당.
개항기에 건립된 중세풍의 석조건물로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에 위치한 성당건물.
인천 내동 성공회성당 (仁川 內洞 聖公會聖堂)
개항기에 건립된 중세풍의 석조건물로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에 위치한 성당건물.
관후리성당은 평안남도 평양시 관후리 251번지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6년 평천리에서 평양성당으로 설립된 이후 1898년 관후리로 이전되었으며, 1934년 관후리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00년 고딕식 연와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43년 평양대목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으나, 1944년 성당과 부속 건물들이 징발되었다. 1949년 주교와 보좌 신부가 공산당에게 피랍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역대 주임 신부 중 일부가 한국 천주교의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관후리성당 (館後里聖堂)
관후리성당은 평안남도 평양시 관후리 251번지에 있던 천주교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6년 평천리에서 평양성당으로 설립된 이후 1898년 관후리로 이전되었으며, 1934년 관후리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00년 고딕식 연와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43년 평양대목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으나, 1944년 성당과 부속 건물들이 징발되었다. 1949년 주교와 보좌 신부가 공산당에게 피랍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역대 주임 신부 중 일부가 한국 천주교의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산정동성당은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광주대교구 최초의 성당으로, 1897년 5월 8일 전라북도 김제의 수류성당에서 분리되어 목포성당으로 설립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데예 신부가 초대 주임이다. 14대 주임 모란 신부 재임기인 1951년에 경동성당을 분리하면서 ‘산정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5월 23일 한국 천주교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한국전쟁 때 순교한 13대 주임 쿠삭 신부와 당시의 보좌 오브라이언 신부가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산정동성당 (山亭洞聖堂)
산정동성당은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광주대교구 최초의 성당으로, 1897년 5월 8일 전라북도 김제의 수류성당에서 분리되어 목포성당으로 설립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데예 신부가 초대 주임이다. 14대 주임 모란 신부 재임기인 1951년에 경동성당을 분리하면서 ‘산정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5월 23일 한국 천주교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한국전쟁 때 순교한 13대 주임 쿠삭 신부와 당시의 보좌 오브라이언 신부가 한국 천주교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수류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88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베르모렐 신부가 김제시 금구현에 배재성당을 설립하였다. 1895년 성당이 금구 배재에서 수류(현 금산면 화율리)로 이전되면서 수류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893년 조조 신부가 2대 주임이 되었으나 이듬해 7월 피살되었다. 1907년 한옥 목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한국전쟁 직후 성당이 전소되고 신자들이 피살되었다. 1960년 금산면으로 이전해 원평성당이 되었다가 1966년 수류로 복귀했다. 2009년 수류성당 설립 12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수류성당 (水流聖堂)
수류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88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베르모렐 신부가 김제시 금구현에 배재성당을 설립하였다. 1895년 성당이 금구 배재에서 수류(현 금산면 화율리)로 이전되면서 수류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893년 조조 신부가 2대 주임이 되었으나 이듬해 7월 피살되었다. 1907년 한옥 목조 성당을 완공하였고, 한국전쟁 직후 성당이 전소되고 신자들이 피살되었다. 1960년 금산면으로 이전해 원평성당이 되었다가 1966년 수류로 복귀했다. 2009년 수류성당 설립 12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성당.
수색성당 (水色聖堂)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성당.
재령성당(載寧聖堂)은 1899년,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문창리(文昌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5년에 설정된 재령 공소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1899년 4월 22일 재령성당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10월 5일 7대 주임 양덕환 신부가 공산당원들에게 납치되어 피살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재령성당 (載寧聖堂)
재령성당(載寧聖堂)은 1899년,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문창리(文昌里)에 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성당이다. 1895년에 설정된 재령 공소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1899년 4월 22일 재령성당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10월 5일 7대 주임 양덕환 신부가 공산당원들에게 납치되어 피살되면서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평안남도 평양시 대신리(大新里)에 있던 천주교 평양대목구 소속 침묵의 성당.
대신리성당 (大新里聖堂)
평안남도 평양시 대신리(大新里)에 있던 천주교 평양대목구 소속 침묵의 성당.
춘천 소양로성당(春川 昭陽路聖堂)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昭陽路)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0년 1월 5일에 설립되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55년 9월에 완공되었으며, 당시에는 보기 드문 반원형으로 건축되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근대적 양식을 도입한 교회건축물로 평가받아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춘천 소양로성당 (春川 昭陽路聖堂)
춘천 소양로성당(春川 昭陽路聖堂)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昭陽路)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0년 1월 5일에 설립되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55년 9월에 완공되었으며, 당시에는 보기 드문 반원형으로 건축되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근대적 양식을 도입한 교회건축물로 평가받아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시기동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기동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80년대 이전 정읍 지역에 천주 신앙이 전파되었다. 1893년 시기동성당의 기원인 신성리 공소가 금구 배재성당(현재 수류성당)의 2대 주임 조조(M. Jozeau) 신부에 의해 설정되었다. 1903년 김승연 신부는 신성리에 성당 부지와 초가를 매입해 신성리성당을 설립하였다. 1931년에 성당이 정읍 명덕동으로 이전됨과 동시에 정읍성당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85년 현재의 명칭인 시기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2002년 옛 신성리공소의 한옥 사제관이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시기동성당 (市基洞聖堂)
시기동성당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기동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1880년대 이전 정읍 지역에 천주 신앙이 전파되었다. 1893년 시기동성당의 기원인 신성리 공소가 금구 배재성당(현재 수류성당)의 2대 주임 조조(M. Jozeau) 신부에 의해 설정되었다. 1903년 김승연 신부는 신성리에 성당 부지와 초가를 매입해 신성리성당을 설립하였다. 1931년에 성당이 정읍 명덕동으로 이전됨과 동시에 정읍성당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85년 현재의 명칭인 시기동성당으로 개칭되었다. 2002년 옛 신성리공소의 한옥 사제관이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창인동성당(昌仁洞聖堂)은 1935년에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에 설립된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설립 당시 명칭은 ‘이리성당’이었다. 이후 북창동을 거쳐 1977년에 창인동으로 이전하여 1979년 현재의 성전을 봉헌하였다. 본당의 주보는 예수성심이다.
창인동성당 (昌仁洞聖堂)
창인동성당(昌仁洞聖堂)은 1935년에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에 설립된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이다. 설립 당시 명칭은 ‘이리성당’이었다. 이후 북창동을 거쳐 1977년에 창인동으로 이전하여 1979년 현재의 성전을 봉헌하였다. 본당의 주보는 예수성심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소재 감곡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천주교 관련 유물이다. 예수성심기 1점, 성모성심기 1점, 종교행사용 깃발 2점이다. 1914년 6월 제1회 성체거동 이래 천주교 행사의 일환으로 성체현양대회와 예수성심대축일, 예수성심성월에 사용하던 것이다. 부이용(C. Bouillon) 신부가 1913년부터 1914년에 걸쳐 이 성당의 한국인 수녀에게 제작하게 한 것으로, 2002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 지정되었다. 제작 동기와 주체, 그리고 그 기간이 확실하여 초기 한국천주교 모습과 자수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음성 감곡성당 소장 유물 (陰城 甘谷聖堂 所藏 遺物)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소재 감곡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천주교 관련 유물이다. 예수성심기 1점, 성모성심기 1점, 종교행사용 깃발 2점이다. 1914년 6월 제1회 성체거동 이래 천주교 행사의 일환으로 성체현양대회와 예수성심대축일, 예수성심성월에 사용하던 것이다. 부이용(C. Bouillon) 신부가 1913년부터 1914년에 걸쳐 이 성당의 한국인 수녀에게 제작하게 한 것으로, 2002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 지정되었다. 제작 동기와 주체, 그리고 그 기간이 확실하여 초기 한국천주교 모습과 자수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1909년 한성에 설립되었던 초등과정의 학교.
가명학교 (加明學校)
1909년 한성에 설립되었던 초등과정의 학교.
노기남은 한국인 최초의 주교이자 교구장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성직자로, 1930년에 사제품을 받은 후 명동본당 보좌신부로 부임하였다. 1942년에는 서울대목구장에 임명된 후, 주교로 서품되었다. 1962년에 대주교로 승품되고 서울대교구장이 되어 1967년까지 재직하였다.
노기남 (盧基南)
노기남은 한국인 최초의 주교이자 교구장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성직자로, 1930년에 사제품을 받은 후 명동본당 보좌신부로 부임하였다. 1942년에는 서울대목구장에 임명된 후, 주교로 서품되었다. 1962년에 대주교로 승품되고 서울대교구장이 되어 1967년까지 재직하였다.
개항기 때,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
강성삼 (姜聖參)
개항기 때,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
명동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행정동이다. 조선시대 한성부의 남부 명례방(明禮坊)에 속한 곳으로 명례방골 또는 종현(鍾峴)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상업지구로 변모하면서 서울을 대표하는 번화가가 되었다. 6·25전쟁 이후 국립극장과 명동성당 등 근대건축물이 산재하고 문인들이 모이면서 음악·미술·문학·사진·연극 등 문화와 예술의 무대가 되었다. 1970년대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하여 소비문화의 중심지, 유흥의 거리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강남 개발과 함께 영동·반포·여의도 등 부도심의 성장으로 상당히 위축되었다.
명동 (明洞)
명동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행정동이다. 조선시대 한성부의 남부 명례방(明禮坊)에 속한 곳으로 명례방골 또는 종현(鍾峴)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상업지구로 변모하면서 서울을 대표하는 번화가가 되었다. 6·25전쟁 이후 국립극장과 명동성당 등 근대건축물이 산재하고 문인들이 모이면서 음악·미술·문학·사진·연극 등 문화와 예술의 무대가 되었다. 1970년대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하여 소비문화의 중심지, 유흥의 거리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강남 개발과 함께 영동·반포·여의도 등 부도심의 성장으로 상당히 위축되었다.
김대건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된 신부로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다. 1821년,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태어나 1836년, 중국 마카오에서 유학한 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로부터 2주일 뒤인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하여 제주에 표착했다가 10월 12일 충청도 강경을 통해 귀국했으며, 11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46년 5월 프랑스 선교사들의 해상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황해도로 갔다가 체포된 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김대건 (金大建)
김대건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된 신부로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다. 1821년,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태어나 1836년, 중국 마카오에서 유학한 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로부터 2주일 뒤인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하여 제주에 표착했다가 10월 12일 충청도 강경을 통해 귀국했으며, 11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46년 5월 프랑스 선교사들의 해상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황해도로 갔다가 체포된 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평양성당 등에서 사목한 신부.
김성학 (金聖學)
일제강점기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평양성당 등에서 사목한 신부.
조선 후기에, 『성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정혁신 (鄭赫臣)
조선 후기에, 『성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