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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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어진은 1923년에 김은호가 제작한 순종의 초상화 초본이다. 순종은 조선 제27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 김은호는 근대기 채색화단의 대표적 화가이다. 어진 제작방식은 먼저 버드나무 숯으로 윤곽을 그린 후 기름종이에 먹선으로 초본을 만든다. 이것이 유지초본인데 이 단계에서 어진이 적합하다고 판명이 되면 계속 그려가게 된다. 이 작품은 순종어진 유지초본이다. 현재 남아 있는 유지초본은 국립현대미술관본과 고려대학교박물관본 두 점이다. 이 작품은 사진을 보고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을 사용했다.
순종 어진 (純宗 御眞)
순종 어진은 1923년에 김은호가 제작한 순종의 초상화 초본이다. 순종은 조선 제27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 김은호는 근대기 채색화단의 대표적 화가이다. 어진 제작방식은 먼저 버드나무 숯으로 윤곽을 그린 후 기름종이에 먹선으로 초본을 만든다. 이것이 유지초본인데 이 단계에서 어진이 적합하다고 판명이 되면 계속 그려가게 된다. 이 작품은 순종어진 유지초본이다. 현재 남아 있는 유지초본은 국립현대미술관본과 고려대학교박물관본 두 점이다. 이 작품은 사진을 보고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을 사용했다.
『순종서북순행 사진첩』은 1909년 순종의 서북 지방 순행의 전 과정을 찍은 총 62장으로 구성된 사진집이다. 1909년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 7박 8일동안 순종이 남대문역을 출발하여 평양, 신의주 등 한반도 서북 지역을 순행할 당시의 사진 기록집으로, 총 6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촉탁 형식으로 고용된 무라카미 텐신의 사진관 소속 사진사들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종서북순행 사진첩 (純宗西北巡行 寫眞帖)
『순종서북순행 사진첩』은 1909년 순종의 서북 지방 순행의 전 과정을 찍은 총 62장으로 구성된 사진집이다. 1909년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 7박 8일동안 순종이 남대문역을 출발하여 평양, 신의주 등 한반도 서북 지역을 순행할 당시의 사진 기록집으로, 총 6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촉탁 형식으로 고용된 무라카미 텐신의 사진관 소속 사진사들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종국장기념사진첩』은 1926년 순종의 국장을 촬영하여 경성사진통신사에서 발행한 사진첩이다. 국장의 준비 과정부터 영결식까지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첩에는 속표지 및 목차에 순종 일대기, 선원도, 국장일기가 부기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이조선보, 순종어연보, 순종어일대기, 궁중일화, 인산일기 등이 실려 있다. 한국 근대사와 식민지 시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순종국장기념사진첩 (純宗國葬紀念寫眞帖)
『순종국장기념사진첩』은 1926년 순종의 국장을 촬영하여 경성사진통신사에서 발행한 사진첩이다. 국장의 준비 과정부터 영결식까지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첩에는 속표지 및 목차에 순종 일대기, 선원도, 국장일기가 부기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이조선보, 순종어연보, 순종어일대기, 궁중일화, 인산일기 등이 실려 있다. 한국 근대사와 식민지 시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곤룡포 부 용문보는 황제의 평상복인 황색 곤룡포 1점과 곤룡포에 부착된 용무늬 표장이다. 조선 시대 왕의 평상복은 다홍색 곤룡포였는데 고종황제 때부터 황색 곤룡포를 착용했다. 이 황색 곤룡포는 순종황제가 입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용무늬 표장인 용문보가 양어깨와 가슴, 등에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해를, 등에는 달을 상징하는 원형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이 곤룡포는 20세기 초기의 단령(깃) 양식을 보여 준다. 이 황제 곤룡포는 대한제국 시기 국왕의 평상시 복식 제도를 참조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황실 유물이다.
곤룡포 부 용문보 (袞龍袍 付 龍紋補)
곤룡포 부 용문보는 황제의 평상복인 황색 곤룡포 1점과 곤룡포에 부착된 용무늬 표장이다. 조선 시대 왕의 평상복은 다홍색 곤룡포였는데 고종황제 때부터 황색 곤룡포를 착용했다. 이 황색 곤룡포는 순종황제가 입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용무늬 표장인 용문보가 양어깨와 가슴, 등에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해를, 등에는 달을 상징하는 원형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이 곤룡포는 20세기 초기의 단령(깃) 양식을 보여 준다. 이 황제 곤룡포는 대한제국 시기 국왕의 평상시 복식 제도를 참조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황실 유물이다.
1907년 1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규장각에서 칙명과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일지. 궁중기록물·관청일기.
규장각일기 (奎章閣日記)
1907년 1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규장각에서 칙명과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일지. 궁중기록물·관청일기.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대한제국 (大韓帝國)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남북국시대 때, 진위사로 당나라에 파견된 통일신라의 왕족.
김헌장 (金憲章)
남북국시대 때, 진위사로 당나라에 파견된 통일신라의 왕족.
조선후기 제27대 왕 순종의 탄생부터 즉위까지의 모든 사안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왕실기록물.
동궁일록 (東宮日錄)
조선후기 제27대 왕 순종의 탄생부터 즉위까지의 모든 사안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왕실기록물.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판문군에 있는 고려전기 제12대 순종의 능.
성릉 (成陵)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판문군에 있는 고려전기 제12대 순종의 능.
대한제국기 제2대 순종의 황후.
순정효황후 (純貞孝皇后)
대한제국기 제2대 순종의 황후.
유릉(裕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이다. 오른쪽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어 합하여 홍유릉이라 부르고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홍릉과 유릉은 황제릉으로 건립하였다.
유릉 (裕陵)
유릉(裕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이다. 오른쪽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어 합하여 홍유릉이라 부르고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홍릉과 유릉은 황제릉으로 건립하였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7년 8월 11일에 국왕이 쓰는 물품·의복·거마(車馬) 등을 조달, 관리하며 이에 관련된 회계사무를 맡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 산하 관청.
승녕부 (承寧府)
대한제국 말기인 1907년 8월 11일에 국왕이 쓰는 물품·의복·거마(車馬) 등을 조달, 관리하며 이에 관련된 회계사무를 맡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 산하 관청.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융희 (隆熙)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고려전기 제12대 순종의 제2왕비.
선희왕후 (宣禧王后)
고려전기 제12대 순종의 제2왕비.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황제 (皇帝)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1874년(고종 11) 2월 8일(양력) 창덕궁 관물헌(觀物軒)에서 고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순종, 1874-1926)이 탄생했을 때 산실청(産室廳)에 종사했던 관원들이 기념으로 제작한 계병(稧屛).
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 (王世子誕降陳賀圖 屛風)
1874년(고종 11) 2월 8일(양력) 창덕궁 관물헌(觀物軒)에서 고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순종, 1874-1926)이 탄생했을 때 산실청(産室廳)에 종사했던 관원들이 기념으로 제작한 계병(稧屛).
어사진은 기존 왕의 초상화를 말하는 명칭인 '어진'에서 비롯해 사진으로 촬영한 왕의 초상화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고종은 많은 초상사진을 남겼으나 현전하는 대부분의 사진들은 일본인이나 서양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한국인으로는 1884년 지운영이 처음 고종의 사진을 촬영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히 입증할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해강 김규진이 1905년 경운궁[덕수궁]에서 촬영한 황제복식 차림의 고종황제 초상 사진은 제작자와 시기가 명확하게 기록된 최초의 어사진이다.
어사진 (御寫眞)
어사진은 기존 왕의 초상화를 말하는 명칭인 '어진'에서 비롯해 사진으로 촬영한 왕의 초상화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고종은 많은 초상사진을 남겼으나 현전하는 대부분의 사진들은 일본인이나 서양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한국인으로는 1884년 지운영이 처음 고종의 사진을 촬영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히 입증할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해강 김규진이 1905년 경운궁[덕수궁]에서 촬영한 황제복식 차림의 고종황제 초상 사진은 제작자와 시기가 명확하게 기록된 최초의 어사진이다.
암전사진관은1900년경 일본인 사진사 이와타 카나에가 운영한 경성의 사진관이다. 이와타[岩田]사진관이라고도 불린다. 1907년에는 조선을 방문한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의 기념사진첩을 제작했다. 1909년 4월 5일 순종 친경식을 기록한 사진첩과 함께 순종, 순종효황후 공식초상사진과 고종태황제의 초상사진을 제작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초상사진엽서를 인쇄해서 팔다가 치안방해죄로 걸리기도 했다.
암전사진관 (岩田寫眞館)
암전사진관은1900년경 일본인 사진사 이와타 카나에가 운영한 경성의 사진관이다. 이와타[岩田]사진관이라고도 불린다. 1907년에는 조선을 방문한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의 기념사진첩을 제작했다. 1909년 4월 5일 순종 친경식을 기록한 사진첩과 함께 순종, 순종효황후 공식초상사진과 고종태황제의 초상사진을 제작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초상사진엽서를 인쇄해서 팔다가 치안방해죄로 걸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