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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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이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를 사살하려던 항일투쟁.
데라우치 암살 미수 사건 (寺內正毅 暗殺 未遂 事件)
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이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를 사살하려던 항일투쟁.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는 1908년 평양에 설립되었던 자기(磁器) 회사이다. 1908년 50원의 주식 200주를 자산으로 평양 마산동에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1908~1910)에는 평양의 유지 자본가들을 최고경영진으로 두면서 사무직원과 기술인력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여 선발하고, 사무직은 조선인만을 고용하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일제식민지 시기(1910~1919)에 들어서면서 임원이 모두 교체되는 등의 위기를 겪지만, 이후 다양한 건의와 요구가 반영되어 1913년부터 연간 1,200원가량의 정부 지원금이 보조되었다.
평양 자기 제조 주식회사 (平壤 磁器 製造 株式會社)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는 1908년 평양에 설립되었던 자기(磁器) 회사이다. 1908년 50원의 주식 200주를 자산으로 평양 마산동에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1908~1910)에는 평양의 유지 자본가들을 최고경영진으로 두면서 사무직원과 기술인력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여 선발하고, 사무직은 조선인만을 고용하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일제식민지 시기(1910~1919)에 들어서면서 임원이 모두 교체되는 등의 위기를 겪지만, 이후 다양한 건의와 요구가 반영되어 1913년부터 연간 1,200원가량의 정부 지원금이 보조되었다.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한인합성협회 (韓人合成協會)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상해임시정부 내무부 비서국장, 한국노병회 이사장, 인성학교 교장, 임시정부 국무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유필 (李裕弼)
일제강점기 때, 상해임시정부 내무부 비서국장, 한국노병회 이사장, 인성학교 교장, 임시정부 국무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대동청년단, 서로군정서, 광한단, 조선노동총동맹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신백우 (申伯雨)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대동청년단, 서로군정서, 광한단, 조선노동총동맹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신흥학교를 설립하였고,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임시정부 북경주재외무위원 등을 역임한 관료·독립운동가.
이광 (李光)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신흥학교를 설립하였고,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임시정부 북경주재외무위원 등을 역임한 관료·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양산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을 지도한 교육자. 사회운동가.
김홍량 (金鴻亮)
대한제국기 양산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을 지도한 교육자. 사회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도산 안창호 기념관 (島山 安昌浩 記念館)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장형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만주와 경성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한일 강제 병합 이후 만주에서 군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고, 치료소와 만선토지개간주식회사, 미곡상과 정미소 등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조달하였다. 8·15광복 이후에는 단국대학교를 설립하고 백남학원을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교육 활동에 전념하였다.
장형 (張炯)
장형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만주와 경성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한일 강제 병합 이후 만주에서 군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고, 치료소와 만선토지개간주식회사, 미곡상과 정미소 등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조달하였다. 8·15광복 이후에는 단국대학교를 설립하고 백남학원을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교육 활동에 전념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회원, 신흥학교 교두 등으로 활동하였고, 3·1운동 당시에 학생동원 책임자로 체포된 독립운동가.
이관직 (李觀稙)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회원, 신흥학교 교두 등으로 활동하였고, 3·1운동 당시에 학생동원 책임자로 체포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성학교 · 보광학교 · 명동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민족교육을 전개하였고, 임시정부 내무부 북간도 특파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 · 독립운동가.
정재면 (鄭載冕)
일제강점기 때 대성학교 · 보광학교 · 명동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민족교육을 전개하였고, 임시정부 내무부 북간도 특파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 · 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하와이에서 신민회 회장을 역임한 목사.
홍승하 (洪承河)
대한제국기 하와이에서 신민회 회장을 역임한 목사.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청년학우회와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중화 (朴重華)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청년학우회와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공립협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출옥 후 평안도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임치정 (林蚩正)
일제강점기 때, 공립협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출옥 후 평안도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임시군사주비단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임시정부 황해도 재령선전대 책임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승길 (李承吉)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임시군사주비단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임시정부 황해도 재령선전대 책임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조직.
대동청년당 (大東靑年黨)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조직.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황해도에서 임시정부 연통제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용진 (金庸震)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황해도에서 임시정부 연통제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08년 2월 평안북도 용천(龍川)에 설립되었던 상사.
상무동사 (商務同事)
1908년 2월 평안북도 용천(龍川)에 설립되었던 상사.
김하구는 일제강점기에 『한인신보』 주필,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위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한북학회, 신민회 등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신보』와 『선봉』의 주필을 지냈다.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상해파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김하구 (金河球)
김하구는 일제강점기에 『한인신보』 주필,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위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한북학회, 신민회 등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신보』와 『선봉』의 주필을 지냈다.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상해파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105인 사건으로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한족회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만주대학살에 의해 살해된 독립운동가.
김세탁 (金世鐸)
일제강점기 때, 105인 사건으로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한족회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만주대학살에 의해 살해된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