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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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황해도에서 임시정부 연통제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용진 (金庸震)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황해도에서 임시정부 연통제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이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를 사살하려던 항일투쟁.
데라우치 암살 미수 사건 (寺內正毅 暗殺 未遂 事件)
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이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를 사살하려던 항일투쟁.
김진호는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에게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신민회에 가입하며 민족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배포하고 배재학교 학생을 시위에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상동청년학원, 공옥학교, 배재학교, YMCA에서 성경, 한문, 역사 등을 가르쳤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김진호 (金鎭浩)
김진호는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에게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신민회에 가입하며 민족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배포하고 배재학교 학생을 시위에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상동청년학원, 공옥학교, 배재학교, YMCA에서 성경, 한문, 역사 등을 가르쳤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김하구는 일제강점기에 『한인신보』 주필,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위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한북학회, 신민회 등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신보』와 『선봉』의 주필을 지냈다.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상해파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김하구 (金河球)
김하구는 일제강점기에 『한인신보』 주필,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위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한북학회, 신민회 등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신보』와 『선봉』의 주필을 지냈다.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상해파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대한제국기 양산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을 지도한 교육자. 사회운동가.
김홍량 (金鴻亮)
대한제국기 양산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을 지도한 교육자. 사회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청년학우회와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중화 (朴重華)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청년학우회와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
구찬회 (具璨會)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105인 사건으로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한족회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만주대학살에 의해 살해된 독립운동가.
김세탁 (金世鐸)
일제강점기 때, 105인 사건으로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한족회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만주대학살에 의해 살해된 독립운동가.
1908년 2월 평안북도 용천(龍川)에 설립되었던 상사.
상무동사 (商務同事)
1908년 2월 평안북도 용천(龍川)에 설립되었던 상사.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를 결성하였고,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여 민족경제 자립을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
이덕환 (李德煥)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를 결성하였고,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여 민족경제 자립을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임시군사주비단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임시정부 황해도 재령선전대 책임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승길 (李承吉)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임시군사주비단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임시정부 황해도 재령선전대 책임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대동청년단, 서로군정서, 광한단, 조선노동총동맹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신백우 (申伯雨)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대동청년단, 서로군정서, 광한단, 조선노동총동맹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평안북도지회에서 활동하였으며,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독립운동가.
이용혁 (李龍爀)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평안북도지회에서 활동하였으며,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독립운동가.
장형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만주와 경성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한일 강제 병합 이후 만주에서 군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고, 치료소와 만선토지개간주식회사, 미곡상과 정미소 등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조달하였다. 8·15광복 이후에는 단국대학교를 설립하고 백남학원을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교육 활동에 전념하였다.
장형 (張炯)
장형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만주와 경성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한일 강제 병합 이후 만주에서 군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고, 치료소와 만선토지개간주식회사, 미곡상과 정미소 등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조달하였다. 8·15광복 이후에는 단국대학교를 설립하고 백남학원을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교육 활동에 전념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회원, 신흥학교 교두 등으로 활동하였고, 3·1운동 당시에 학생동원 책임자로 체포된 독립운동가.
이관직 (李觀稙)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회원, 신흥학교 교두 등으로 활동하였고, 3·1운동 당시에 학생동원 책임자로 체포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신흥학교를 설립하였고,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임시정부 북경주재외무위원 등을 역임한 관료·독립운동가.
이광 (李光)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신흥학교를 설립하였고,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임시정부 북경주재외무위원 등을 역임한 관료·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상해임시정부 내무부 비서국장, 한국노병회 이사장, 인성학교 교장, 임시정부 국무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유필 (李裕弼)
일제강점기 때, 상해임시정부 내무부 비서국장, 한국노병회 이사장, 인성학교 교장, 임시정부 국무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전덕기는 독립협회, 황성기독교청년회, 신민회에서 활동한 한말 대표적인 기독교 민족 운동가이다. 미감리회 선교사 스크랜턴 가정에 고용인으로 들어갔다가 성경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 남대문 상동교회 전도사와 목사가 되어 남대문시장의 민중 계층을 중심으로 목회하였다. 독립협회와 황성기독교청년회, 신민회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한말의 대표적인 기독교 민족운동가가 되었다.
전덕기 (全德基)
전덕기는 독립협회, 황성기독교청년회, 신민회에서 활동한 한말 대표적인 기독교 민족 운동가이다. 미감리회 선교사 스크랜턴 가정에 고용인으로 들어갔다가 성경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 남대문 상동교회 전도사와 목사가 되어 남대문시장의 민중 계층을 중심으로 목회하였다. 독립협회와 황성기독교청년회, 신민회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한말의 대표적인 기독교 민족운동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공립협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출옥 후 평안도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임치정 (林蚩正)
일제강점기 때, 공립협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출옥 후 평안도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한인합성협회 (韓人合成協會)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