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을사오적"
검색결과 총 16건
대한제국기 비서원경, 시종원경,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이근수 (李根秀)
대한제국기 비서원경, 시종원경,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조선 후기에, 이조좌랑, 자여도찰방,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면주 (李冕宙)
조선 후기에, 이조좌랑, 자여도찰방,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 중앙감찰위원장, 제헌국회 국회법제정 기초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농민운동가.
서정희 (徐廷禧)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 중앙감찰위원장, 제헌국회 국회법제정 기초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농민운동가.
오적암살단은 1906년∼1907년에 우국지사들이 이완용·이근택·박제순·이지용·권중현 등 이른바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조직이 여러 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6년 군부대신 이근택의 집에 잠입하여 부상을 입힌 기산도가 속한 조직과 나인영·오기호가 주도한 자신회가 대표적인 조직이다. 5적을 처단한 다음 친일정부를 전복하고 신정부를 수립할 계획까지 세운 자신회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권중현을 부상시키는 데 머물렀다. 거사 실패로 투옥되고 유배를 가기도 했지만 조직원들은 일제강점기에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오적암살단 (五賊暗殺團)
오적암살단은 1906년∼1907년에 우국지사들이 이완용·이근택·박제순·이지용·권중현 등 이른바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조직이 여러 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6년 군부대신 이근택의 집에 잠입하여 부상을 입힌 기산도가 속한 조직과 나인영·오기호가 주도한 자신회가 대표적인 조직이다. 5적을 처단한 다음 친일정부를 전복하고 신정부를 수립할 계획까지 세운 자신회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권중현을 부상시키는 데 머물렀다. 거사 실패로 투옥되고 유배를 가기도 했지만 조직원들은 일제강점기에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대한제국기 통정대부, 비서원승 등을 역임한 관료.
장석신 (張錫藎)
대한제국기 통정대부, 비서원승 등을 역임한 관료.
대한제국기 『연재집』, 『근사속록』, 『패동연원록』 등을 저술한 학자. 순국지사.
송병선 (宋秉璿)
대한제국기 『연재집』, 『근사속록』, 『패동연원록』 등을 저술한 학자. 순국지사.
개항기 때, 상의원직장,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하였으며, 을미사변 이후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단식을 거행하여 자결한 문신·의병장·열사.
이중언 (李中彦)
개항기 때, 상의원직장,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하였으며, 을미사변 이후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단식을 거행하여 자결한 문신·의병장·열사.
대한제국기 때, 정용기와 함께 산남의진을 결성하여 중군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이한구 (李韓久)
대한제국기 때, 정용기와 함께 산남의진을 결성하여 중군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자신회(自新會)는 1907년 2월 을사오적 처단과 계몽운동을 목표로 결성한 단체이다. 1907년 1월부터 나철[나인영], 이기, 오기호 등이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를 모집하고 자금을 모금하여 2월 3일, 200여 명의 회원으로 조직한 의열투쟁 조직이자 계몽운동단체이다.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한 거사를 일으켰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자신회 (自新會)
자신회(自新會)는 1907년 2월 을사오적 처단과 계몽운동을 목표로 결성한 단체이다. 1907년 1월부터 나철[나인영], 이기, 오기호 등이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를 모집하고 자금을 모금하여 2월 3일, 200여 명의 회원으로 조직한 의열투쟁 조직이자 계몽운동단체이다.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한 거사를 일으켰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남주로 망명해 대한독립단 총단장, 광복군 사령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조맹선 (趙孟善)
일제강점기 때,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남주로 망명해 대한독립단 총단장, 광복군 사령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석항은 대한제국기, 항일운동을 하고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1905년 9월 김동필 등과 함께 항일상소운동 단체인 유약소를 결성하고 항일서한을 보냈다. 같은 해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기산도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처단하고자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중 이근택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체포되었고, 1907년 7월 옥중에서 국권회복의 간절한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였다.
김석항 (金錫恒)
김석항은 대한제국기, 항일운동을 하고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1905년 9월 김동필 등과 함께 항일상소운동 단체인 유약소를 결성하고 항일서한을 보냈다. 같은 해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기산도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처단하고자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중 이근택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체포되었고, 1907년 7월 옥중에서 국권회복의 간절한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였다.
윤충하는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 및 워싱턴군축회의 청원서 작성에 참여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07년 나인영, 오기호 등이 주동이 된 을사오적 처단 거사에 적극 동참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 유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작성할 때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보내는 청원서에 태극교 대표로 참여하여 일제의 한국 병합 부당성을 설파하였다.
윤충하 (尹忠夏)
윤충하는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 및 워싱턴군축회의 청원서 작성에 참여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07년 나인영, 오기호 등이 주동이 된 을사오적 처단 거사에 적극 동참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 유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작성할 때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보내는 청원서에 태극교 대표로 참여하여 일제의 한국 병합 부당성을 설파하였다.
최상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현, 충청남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최상오 (崔相五)
최상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현, 충청남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황경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황경오 (黃景五)
황경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강윤희는 대한제국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각국 공사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동창의진과 13도창의군에서 활동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강윤희 (姜允熙)
강윤희는 대한제국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각국 공사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동창의진과 13도창의군에서 활동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인국은 대한제국기 1907년 을사오적 처단을 시도하고, 1909년 황해도에서 의병 부대를 일으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듬해까지 의군본부 의병부대의 참모장으로 활동한 의병장이다. 1910년 5월 일제 한국통감부의 해주 경찰에게 피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정인국 (鄭寅國)
정인국은 대한제국기 1907년 을사오적 처단을 시도하고, 1909년 황해도에서 의병 부대를 일으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듬해까지 의군본부 의병부대의 참모장으로 활동한 의병장이다. 1910년 5월 일제 한국통감부의 해주 경찰에게 피살당하여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