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민"
검색결과 총 54건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 문화 연구원에서 한인 이민 40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에 간행한 역사서.
아르헨티나 한국인 이민 40년사 (Argentina 韓國人 移民 四十年史)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 문화 연구원에서 한인 이민 40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에 간행한 역사서.
아르헨티나 리오네그로주 라마르케시에 있는 해방 이후 해외한인 관련 기념비.
한국이민최초정착비 (韓國移民最初定着碑)
아르헨티나 리오네그로주 라마르케시에 있는 해방 이후 해외한인 관련 기념비.
이자경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에 저술한 한인 이민 역사서.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Mexico 韓人 移民 百年史)
이자경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에 저술한 한인 이민 역사서.
파라과이 한인 이민의 역사를 기록하여 1999년에 간행한 역사서.
파라과이 한인 이민 35년사 (Paraguay 韓人 移民 三十五年史)
파라과이 한인 이민의 역사를 기록하여 1999년에 간행한 역사서.
1936년 8월 조선에 설립된 선만척식주식회사(鮮滿拓植株式會社)가 만주국 지점으로 신경(新京)에 설립한 조선인 이민사업을 전담한 만주국의 국책회사.
만선척식주식회사 (滿鮮拓殖株式會社)
1936년 8월 조선에 설립된 선만척식주식회사(鮮滿拓植株式會社)가 만주국 지점으로 신경(新京)에 설립한 조선인 이민사업을 전담한 만주국의 국책회사.
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공진회 (共進會)
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남아메리카 중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브라질 (Brazil)
남아메리카 중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본이 한국에 설립한 국책회사이다. 농업 경영과 이민 사업 등 식민지 경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17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 개정 이후 사업 범위를 만주 및 해외로 확장하였고,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개발 금융기관으로 그 성격이 변화되었다. 1930년대 이후부터 식민지 군수 공업화에 편승하여 대출 업무 이외에 관계 회사 설립 및 출자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주회사(持株會社)의 성격을 강화해 나갔다.
동양척식주식회사 (東洋拓殖株式會社)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본이 한국에 설립한 국책회사이다. 농업 경영과 이민 사업 등 식민지 경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17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 개정 이후 사업 범위를 만주 및 해외로 확장하였고,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개발 금융기관으로 그 성격이 변화되었다. 1930년대 이후부터 식민지 군수 공업화에 편승하여 대출 업무 이외에 관계 회사 설립 및 출자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주회사(持株會社)의 성격을 강화해 나갔다.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동회 (洞會)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세석 (李世奭)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경주부윤,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원조 (李源祚)
조선 후기에, 경주부윤,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남아메리카 남부에 있는 공화국.
파라과이 (Paraguay)
남아메리카 남부에 있는 공화국.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김형순 (金衡珣)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192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합자하여 만든 채소와 과일 중간도매를 위한 농산조합.
남가주농산조합 (南加州農産組合)
192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합자하여 만든 채소와 과일 중간도매를 위한 농산조합.
1925년 한미 두 민족간의 친목과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 설립한 단체.
조미구락부 (朝美俱樂部)
1925년 한미 두 민족간의 친목과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 설립한 단체.
미주한인 사회에서 한미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미주한인재단 (美州韓人財團)
미주한인 사회에서 한미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법률로 제정한 민족기념일이다. 미주로 이민한 한인들을 위해 미국 연방의회가 법률로서 제정한 공식 기념일이다. 이 법률의 제정은 미주한인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 사회에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법률로 인해 미주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은 매년 전국적으로 미주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고 차세대 한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미주한인의 날 (美州韓人의 날)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법률로 제정한 민족기념일이다. 미주로 이민한 한인들을 위해 미국 연방의회가 법률로서 제정한 공식 기념일이다. 이 법률의 제정은 미주한인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 사회에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법률로 인해 미주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은 매년 전국적으로 미주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고 차세대 한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는 19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장로교회이다. 다뉴바는 유명한 과일 생산지로 이 지역 과일농장에서 일하는 한인근로자들이 증가하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치완 전도사의 인도로 설립되어 한때 교인이 1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한인의 급감으로 1958년 폐쇄되었다. 중가주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되어 이 지역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 모금, 3.1운동 기념식 개최, 민족운동 단체의 설립,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다뉴바 한인장로교회 (Dinuba 韓人長老敎會)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는 19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장로교회이다. 다뉴바는 유명한 과일 생산지로 이 지역 과일농장에서 일하는 한인근로자들이 증가하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치완 전도사의 인도로 설립되어 한때 교인이 1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한인의 급감으로 1958년 폐쇄되었다. 중가주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되어 이 지역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 모금, 3.1운동 기념식 개최, 민족운동 단체의 설립,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1930년 2월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 델라노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감리교회이다. 1954년 10월 1일 교회 건물을 클린턴 스트리트(Clinton Street) 1028번지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한인들이 줄어들어 유지가 곤란해지자 1958년 6월에 델라노한인교회는 폐지되었다. 교인수는 많을 때는 70여 명이었고, 적을 때는 10여 명에 불과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 있는 한인 동포들의 구제와,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다뉴바·리들리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델라노 한인교회 (Delano 韓人敎會)
1930년 2월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 델라노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감리교회이다. 1954년 10월 1일 교회 건물을 클린턴 스트리트(Clinton Street) 1028번지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한인들이 줄어들어 유지가 곤란해지자 1958년 6월에 델라노한인교회는 폐지되었다. 교인수는 많을 때는 70여 명이었고, 적을 때는 10여 명에 불과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 있는 한인 동포들의 구제와,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다뉴바·리들리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리들리 한인장로교회는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리들리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교회이다. 6~7마일 떨어진 다뉴바로 예배를 보러가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감리교회로 인가를 받았으나 1936년 한국 감리교단의 신사참배 결정에 반대하며 장로교회로 변경하였다. 매년 3.1절 기념식 개최, 한인 아동의 국어교육, 민중기도회, 순국선현기념식, 국치기념식 등을 개최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78년에 팔려 지금은 연합 오순절교회가 되었다. 미주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다뉴바·델라노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리들리 한인장로교회 (Reedley 韓人長老敎會)
리들리 한인장로교회는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리들리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교회이다. 6~7마일 떨어진 다뉴바로 예배를 보러가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감리교회로 인가를 받았으나 1936년 한국 감리교단의 신사참배 결정에 반대하며 장로교회로 변경하였다. 매년 3.1절 기념식 개최, 한인 아동의 국어교육, 민중기도회, 순국선현기념식, 국치기념식 등을 개최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78년에 팔려 지금은 연합 오순절교회가 되었다. 미주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다뉴바·델라노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