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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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 한 쪽이 사망하거나 법률상의 원인이 발생하였을 때 재산적 또는 친족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계승하는 제도.
상속 (相續)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 한 쪽이 사망하거나 법률상의 원인이 발생하였을 때 재산적 또는 친족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계승하는 제도.
궁중음악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제사·조회·연향 등에 쓰인 음악이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도 있지만 현존 궁중음악은 모두 조선에서 정비된 것이 전승된 것이다. 조선은 유학을 국시로 천명하고, 예와 악에 의한 덕치를 이상향으로 삼았다.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 등 거의 모든 의례에는 악이 수반되어 기강이 반듯하면서도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궁중음악이 펼쳐졌다. 조선의 궁중음악은 크게 아악과 속악으로 구별된다. 아악은 유학의 이상을 관념적으로 표현한 의식음악으로 주로 제례에 사용되며, 당악·향악·신악 등이 포함된 속악은 조회와 연향에 주로 쓰였다.
궁중음악 (宮中音樂)
궁중음악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제사·조회·연향 등에 쓰인 음악이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도 있지만 현존 궁중음악은 모두 조선에서 정비된 것이 전승된 것이다. 조선은 유학을 국시로 천명하고, 예와 악에 의한 덕치를 이상향으로 삼았다.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 등 거의 모든 의례에는 악이 수반되어 기강이 반듯하면서도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궁중음악이 펼쳐졌다. 조선의 궁중음악은 크게 아악과 속악으로 구별된다. 아악은 유학의 이상을 관념적으로 표현한 의식음악으로 주로 제례에 사용되며, 당악·향악·신악 등이 포함된 속악은 조회와 연향에 주로 쓰였다.
마을 수호신인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을제사. 무속의례.
산신제 (山神祭)
마을 수호신인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을제사. 무속의례.
망인의 제삿날과 명절날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지하여 망인(亡人)의 명복을 빌기 위해 행하는 불교의식.
관음시식 (觀音施食)
망인의 제삿날과 명절날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지하여 망인(亡人)의 명복을 빌기 위해 행하는 불교의식.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의 묘제(廟制). 조묘·국조묘·선조묘·조고묘.
시조묘 (始祖廟)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의 묘제(廟制). 조묘·국조묘·선조묘·조고묘.
부안 죽막동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의 해신(海神) 제사 관련 항아리·중국 청자 등이 출토된 제사터이다. 해신 제사는 서해안 일대 중요한 해상기점이 있는 해안 절벽 위에서 항해나 어로 등 해상활동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지냈다. 이 유적의 중심 시기는 5세기 전반에서 6세기 전반으로 백제와 가야, 왜의 제사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해상교섭을 위한 목적으로 국가나 최고지배층이 제사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통일신라시대부터는 실내에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제사 유적으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부안 죽막동 유적 (扶安 竹幕洞 遺蹟)
부안 죽막동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의 해신(海神) 제사 관련 항아리·중국 청자 등이 출토된 제사터이다. 해신 제사는 서해안 일대 중요한 해상기점이 있는 해안 절벽 위에서 항해나 어로 등 해상활동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지냈다. 이 유적의 중심 시기는 5세기 전반에서 6세기 전반으로 백제와 가야, 왜의 제사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해상교섭을 위한 목적으로 국가나 최고지배층이 제사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통일신라시대부터는 실내에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제사 유적으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신궁은 신라시대에 시조(始祖)를 제사하던 성소(聖所)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을 근거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설과 김씨왕조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김알지 등 김씨 왕에게 제사지냈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 초월적 신화적 존재로서 곡령(穀靈) 또는 태양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왕이 즉위한 다음 해 또는 후년 봄에 신궁에서 즉위의례를 거행하였다. 6세기 후반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성립과 야와타신[八幡神]신앙의 토대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신궁 (神宮)
신궁은 신라시대에 시조(始祖)를 제사하던 성소(聖所)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을 근거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설과 김씨왕조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김알지 등 김씨 왕에게 제사지냈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 초월적 신화적 존재로서 곡령(穀靈) 또는 태양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왕이 즉위한 다음 해 또는 후년 봄에 신궁에서 즉위의례를 거행하였다. 6세기 후반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성립과 야와타신[八幡神]신앙의 토대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죽은 사람의 기일에 영혼을 위하여 올리는불교의식.
시식 (施食)
죽은 사람의 기일에 영혼을 위하여 올리는불교의식.
예조는 고려·조선시대 예악·제사·연향·조빙·학교·과거 등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남궁(南宮)·춘관(春官) 또는 의조(儀曹)라고도 한다. 982년 당나라의 제도를 참작해 예관(禮官)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1389년에 예조로 개칭되었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속아문은 홍문관·예문관·춘추관·성균관·승문원·통례원·봉상시·예빈시·전의감·사역원·관상감·교서관·내의원·장악원·세자시강원·종학·종묘서·소격서·사직서·빙고·전생서·사축서·혜민서·도화서·활인서·귀후서·사학(四學)·각전(各殿)·각릉(各陵)이다. 육조 안에서 예조의 서열은 조선 세종 즉위 이후 이조·호조에 이어 세 번째로 운영되었다.
예조 (禮曹)
예조는 고려·조선시대 예악·제사·연향·조빙·학교·과거 등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남궁(南宮)·춘관(春官) 또는 의조(儀曹)라고도 한다. 982년 당나라의 제도를 참작해 예관(禮官)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1389년에 예조로 개칭되었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속아문은 홍문관·예문관·춘추관·성균관·승문원·통례원·봉상시·예빈시·전의감·사역원·관상감·교서관·내의원·장악원·세자시강원·종학·종묘서·소격서·사직서·빙고·전생서·사축서·혜민서·도화서·활인서·귀후서·사학(四學)·각전(各殿)·각릉(各陵)이다. 육조 안에서 예조의 서열은 조선 세종 즉위 이후 이조·호조에 이어 세 번째로 운영되었다.
봉사(奉祀)는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 등의 조상에 대한 제사이다. 『경국대전』의 봉사법은 차등적 삼대봉사와 장자 승계를 규정한 남계·부계 중심의 가부장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남녀윤회봉사 등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사대봉사, 적장자 단독 승계 등이 확립되었고, 이는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전통으로 각인되어 1960년 제정 민법에 호주제로 정착되었다. 호주제는 2005년 민법의 개정으로 2008년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다양한 봉사 방식이 존재하며 남녀평등적인 15세기로 회귀하였다.
봉사 (奉祀)
봉사(奉祀)는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 등의 조상에 대한 제사이다. 『경국대전』의 봉사법은 차등적 삼대봉사와 장자 승계를 규정한 남계·부계 중심의 가부장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남녀윤회봉사 등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사대봉사, 적장자 단독 승계 등이 확립되었고, 이는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전통으로 각인되어 1960년 제정 민법에 호주제로 정착되었다. 호주제는 2005년 민법의 개정으로 2008년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다양한 봉사 방식이 존재하며 남녀평등적인 15세기로 회귀하였다.
나라의 제사와 증시(贈諡) 등을 맡아보던 관아.
전사청 (典祀廳)
나라의 제사와 증시(贈諡) 등을 맡아보던 관아.
발해시대의 중앙관부.
태상시 (太常寺)
발해시대의 중앙관부.
수진궁은 조선시대 한성 중부 수진방에 자리하면서, 후사가 없이 죽은 왕의 자녀 및 후궁 등의 제사를 관리하던 궁가이다.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궁가였다가 중종의 본궁이 되면서 수진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구된 뒤 효종의 비(妃)이자 숙종의 모후(母后)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명으로 후사 없는 왕의 자녀 및 후궁의 사판에 대한 시향과 묘제를 전담하기 시작했다. 1909년(융희 3)에 폐지되었다.
수진궁 (壽進宮)
수진궁은 조선시대 한성 중부 수진방에 자리하면서, 후사가 없이 죽은 왕의 자녀 및 후궁 등의 제사를 관리하던 궁가이다.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궁가였다가 중종의 본궁이 되면서 수진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구된 뒤 효종의 비(妃)이자 숙종의 모후(母后)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명으로 후사 없는 왕의 자녀 및 후궁의 사판에 대한 시향과 묘제를 전담하기 시작했다. 1909년(융희 3)에 폐지되었다.
해방 이후 국립무용단 단장,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 무용교육자.
최현 (崔賢)
해방 이후 국립무용단 단장,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 무용교육자.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은 5세기 경 창녕을 조망할 수 있는 서쪽에 만들어진 토축 산성을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한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을 겪던 창녕과 현풍 지역민을 보호하던 입보 산성이기도 하다. 초축된 화왕산성의 둘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둘레는 고려 말~조선시대 전기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조씨 득성지로 알려진 집수지에서는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확인되어 진산에 만든 성을 제사처로 활용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창녕 화왕산성 (昌寧 火旺山城)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은 5세기 경 창녕을 조망할 수 있는 서쪽에 만들어진 토축 산성을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한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을 겪던 창녕과 현풍 지역민을 보호하던 입보 산성이기도 하다. 초축된 화왕산성의 둘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둘레는 고려 말~조선시대 전기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조씨 득성지로 알려진 집수지에서는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확인되어 진산에 만든 성을 제사처로 활용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서천봉선리유적(舒川鳳仙里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백제시대에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2003년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 공사 중 처음 확인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금강 하구로 유입되는 길산천 충적평야를 동으로 마주하는 구릉지 사면에 자리한다. 청동기시대 처음 취락이 형성된 후 원삼국시대에 들어 지역의 중심 묘역으로 발전하였고, 백제 시기에도 그 성격이 유지되었다. 2006년 고속도로에 편입되지 않은 서쪽 구릉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 · 보호하고 있다.
서천 봉선리 유적 (舒川 鳳仙里 遺蹟)
서천봉선리유적(舒川鳳仙里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백제시대에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2003년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 공사 중 처음 확인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금강 하구로 유입되는 길산천 충적평야를 동으로 마주하는 구릉지 사면에 자리한다. 청동기시대 처음 취락이 형성된 후 원삼국시대에 들어 지역의 중심 묘역으로 발전하였고, 백제 시기에도 그 성격이 유지되었다. 2006년 고속도로에 편입되지 않은 서쪽 구릉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 · 보호하고 있다.
사전(祀典)은 고려 및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행하는 각종 제사에 관한 규범이나 규정이다. 『고려사』 예지(禮志)는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의 오례(五禮)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유교적 체제로 정리되어 있으나, 연등회, 팔관회도 포함하고 있어 고려가 유교 일변도의 의례로 운영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지에 등재된 의례 외에도 불교, 도교 등의 국가 행사가 자주 거행되었다.
사전 (祀典)
사전(祀典)은 고려 및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행하는 각종 제사에 관한 규범이나 규정이다. 『고려사』 예지(禮志)는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의 오례(五禮)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유교적 체제로 정리되어 있으나, 연등회, 팔관회도 포함하고 있어 고려가 유교 일변도의 의례로 운영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지에 등재된 의례 외에도 불교, 도교 등의 국가 행사가 자주 거행되었다.
조선후기 시인 정지윤의 시 「작시유감」·「관동상매」·「전춘시」 등을 수록하여 1854년에 간행한 시집.
하원시초 (夏園詩鈔)
조선후기 시인 정지윤의 시 「작시유감」·「관동상매」·「전춘시」 등을 수록하여 1854년에 간행한 시집.
잔치나 제사를 지낸 뒤 목판에 몫몫이 담아서 이웃이나 친척에게 나누어 주던 음식.
반기 (頒器)
잔치나 제사를 지낸 뒤 목판에 몫몫이 담아서 이웃이나 친척에게 나누어 주던 음식.
작헌례(酌獻禮)는 조선시대에 유교적 제사 의식에서 제기에 술을 담아 신위 앞에 올리는 절차이다. 유교적 제사 의식은 정형화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신을 맞이하여 음식을 올린 후, 신위 앞에 술을 올리는 절차를 가리켜 작헌례라고 하였다. 국가 제례 가운데 가장 등급이 높은 대사(大祀)의 경우 작헌례는 초헌-아헌-종헌의 삼헌례로 이루어졌으며, 이보다 등급이 낮은 경우인 소사(小祀), 삭망제, 기고제 등에서는 단헌(單獻)을 행하였다.
작헌례 (酌獻禮)
작헌례(酌獻禮)는 조선시대에 유교적 제사 의식에서 제기에 술을 담아 신위 앞에 올리는 절차이다. 유교적 제사 의식은 정형화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신을 맞이하여 음식을 올린 후, 신위 앞에 술을 올리는 절차를 가리켜 작헌례라고 하였다. 국가 제례 가운데 가장 등급이 높은 대사(大祀)의 경우 작헌례는 초헌-아헌-종헌의 삼헌례로 이루어졌으며, 이보다 등급이 낮은 경우인 소사(小祀), 삭망제, 기고제 등에서는 단헌(單獻)을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