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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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회군은 1388년(우왕 14) 명나라의 요동(遼東)을 공략하기 위해 출정했던 이성계(李成桂) 등이 위화도에서 회군해 우왕을 폐위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우왕 재위 기간 내내 고려와 명나라는 갈등을 겪었는데, 1388년 명나라에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고하자 고려는 요동 정벌을 결정하고 5만여 명의 군사를 동원하였다. 군대를 이끌었던 이성계는 정벌 자체에 반대하였고, 출진 이후에도 정벌을 중단하자고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단독으로 회군해 개경을 공격하여 우왕과 최영을 축출하였다.
위화도회군 (威化島回軍)
위화도회군은 1388년(우왕 14) 명나라의 요동(遼東)을 공략하기 위해 출정했던 이성계(李成桂) 등이 위화도에서 회군해 우왕을 폐위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우왕 재위 기간 내내 고려와 명나라는 갈등을 겪었는데, 1388년 명나라에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고하자 고려는 요동 정벌을 결정하고 5만여 명의 군사를 동원하였다. 군대를 이끌었던 이성계는 정벌 자체에 반대하였고, 출진 이후에도 정벌을 중단하자고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단독으로 회군해 개경을 공격하여 우왕과 최영을 축출하였다.
고려 후기에, 김해부사, 경상도도순문사, 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박위 (朴葳)
고려 후기에, 김해부사, 경상도도순문사, 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왜구 (倭寇)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우왕은 고려 제32대(1374~1388) 왕이다. 신돈의 시비(侍婢)인 반야(般若) 소생으로, 1374년(공민왕 23) 공민왕이 시해 당한 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반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었다. 1388년(우왕 14) 명에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보해 오자 최영과 함께 요동 정벌을 단행했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 등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1389년(공양왕 1)에 죽임을 당하였다.
우왕 (禑王)
우왕은 고려 제32대(1374~1388) 왕이다. 신돈의 시비(侍婢)인 반야(般若) 소생으로, 1374년(공민왕 23) 공민왕이 시해 당한 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반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었다. 1388년(우왕 14) 명에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보해 오자 최영과 함께 요동 정벌을 단행했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 등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1389년(공양왕 1)에 죽임을 당하였다.
창왕은 고려 제33대(재위: 1388~1389) 왕이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 이후 왕위에서 물러난 우왕을 이어 9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왕이 직접 명나라 조정에 가는 것으로 왕위 계승을 인정받고자 했으나, 명 측에서 허락하지 않는 가운데, 1389년(창왕 1)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명분으로 폐위되었다가 강화에서 처형되었다. 재위 기간 중 조준(趙浚) 등이 전제(田制)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한 정책을 발의하였다.
창왕 (昌王)
창왕은 고려 제33대(재위: 1388~1389) 왕이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 이후 왕위에서 물러난 우왕을 이어 9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왕이 직접 명나라 조정에 가는 것으로 왕위 계승을 인정받고자 했으나, 명 측에서 허락하지 않는 가운데, 1389년(창왕 1)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명분으로 폐위되었다가 강화에서 처형되었다. 재위 기간 중 조준(趙浚) 등이 전제(田制)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한 정책을 발의하였다.
홍산대첩은 1376년(우왕 2) 7월 최영(崔塋)이 홍산(鴻山,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이다. 당시 왜구는 금강(錦江)을 따라 부여(扶餘), 공주(公州), 논산(論山) 일대 등 내륙 지역까지 약탈하고 있었는데, 이 전투로 그 기세가 크게 꺾였다. 이 싸움은 고려가 왜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대표적인 전투로 손꼽힌다. 이 승리로 최영은 왜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홍산대첩 (鴻山大捷)
홍산대첩은 1376년(우왕 2) 7월 최영(崔塋)이 홍산(鴻山,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이다. 당시 왜구는 금강(錦江)을 따라 부여(扶餘), 공주(公州), 논산(論山) 일대 등 내륙 지역까지 약탈하고 있었는데, 이 전투로 그 기세가 크게 꺾였다. 이 싸움은 고려가 왜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대표적인 전투로 손꼽힌다. 이 승리로 최영은 왜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덕물산 최영 장군 사는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후기 무신 최영 관련 사당이다. 장군사는 ‘장군님당’ 또는 ‘장군당’이라고도 불렀다. 사당의 정확한 건립 연대와 창건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개성의 동남쪽 교외에 있는 해발 200m 정도인 덕물산 꼭대기에 있었다. 고려 말의 충신 최영을 위시하여 그의 가족과 여러 무신(巫神)을 모신 사당이다. 덕물산 최영 장군사는 무당들이 으뜸가는 성지로 여겼다. 조선조에는 민간의 처녀를 뽑아 그곳에 살면서 장군을 모시게 한 풍속이 있었다. 광복 후 미신타파운동으로 철거되었다.
덕물산 최영 장군 사 (德物山 崔塋 將軍 祠)
덕물산 최영 장군 사는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후기 무신 최영 관련 사당이다. 장군사는 ‘장군님당’ 또는 ‘장군당’이라고도 불렀다. 사당의 정확한 건립 연대와 창건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개성의 동남쪽 교외에 있는 해발 200m 정도인 덕물산 꼭대기에 있었다. 고려 말의 충신 최영을 위시하여 그의 가족과 여러 무신(巫神)을 모신 사당이다. 덕물산 최영 장군사는 무당들이 으뜸가는 성지로 여겼다. 조선조에는 민간의 처녀를 뽑아 그곳에 살면서 장군을 모시게 한 풍속이 있었다. 광복 후 미신타파운동으로 철거되었다.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변안열 (邊安烈)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일신은 고려후기 찬성사로 정천기, 최화상 등과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1352년(공민왕 1)에 사망했다. 충선왕 때의 공신 조인규의 손자이다. 공민왕이 원나라에서 숙위하던 시절에 수종(隨從)하였다. 공민왕이 즉위한 후 정방의 복구를 요구하거나 윗사람을 능멸하는 등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였다. 대간의 탄핵으로 위기를 맞게 되자 정천기, 최화상, 장승량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변란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최화상을 먼저 살해하고 장승량 등을 효수하게 했으며, 정천기는 하옥시켰다. 이후 더욱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왕명에 의해 주살되었다.
조일신 (趙日新)
조일신은 고려후기 찬성사로 정천기, 최화상 등과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1352년(공민왕 1)에 사망했다. 충선왕 때의 공신 조인규의 손자이다. 공민왕이 원나라에서 숙위하던 시절에 수종(隨從)하였다. 공민왕이 즉위한 후 정방의 복구를 요구하거나 윗사람을 능멸하는 등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였다. 대간의 탄핵으로 위기를 맞게 되자 정천기, 최화상, 장승량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변란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최화상을 먼저 살해하고 장승량 등을 효수하게 했으며, 정천기는 하옥시켰다. 이후 더욱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왕명에 의해 주살되었다.
목호의 난은 1374년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목호란 말을 키우는 몽골인들을 뜻하는 말로, 몽골 제국에서 제주도에 설치한 목마장에서 일하던 몽골인들을 가리킨다. 몽골 제국이 무너진 후 고려 정부는 제주도의 말을 명나라에 보내기로 약속하였는데, 제주 목호들은 이 결정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정부는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2만 5000여 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목호의 난 (牧胡의 亂)
목호의 난은 1374년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목호란 말을 키우는 몽골인들을 뜻하는 말로, 몽골 제국에서 제주도에 설치한 목마장에서 일하던 몽골인들을 가리킨다. 몽골 제국이 무너진 후 고려 정부는 제주도의 말을 명나라에 보내기로 약속하였는데, 제주 목호들은 이 결정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정부는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2만 5000여 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고려후기 우왕복위와 창왕폐위모의사건 당시의 장수.
김저 (金佇)
고려후기 우왕복위와 창왕폐위모의사건 당시의 장수.
고려 후기에, 좌상시, 대사헌, 문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전녹생 (田祿生)
고려 후기에, 좌상시, 대사헌, 문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지윤은 고려 후기 우왕 대 문하찬성사를 지낸 권신(權臣)이자 무신이다. 그는 군졸에서 시작하여 공을 세운 무신으로서는 최고위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우왕 즉위 이후 이인임과 함께 북원(北元)과의 외교관계 재개에 반대하는 문신 세력을 제거하고 독자 세력화를 도모하였으나, 이인임과 사이가 벌어져 이인임, 최영 등에 의해 처형되었다.
지윤 (池奫)
지윤은 고려 후기 우왕 대 문하찬성사를 지낸 권신(權臣)이자 무신이다. 그는 군졸에서 시작하여 공을 세운 무신으로서는 최고위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우왕 즉위 이후 이인임과 함께 북원(北元)과의 외교관계 재개에 반대하는 문신 세력을 제거하고 독자 세력화를 도모하였으나, 이인임과 사이가 벌어져 이인임, 최영 등에 의해 처형되었다.
복주천도는 1361년 11월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공민왕이 개경에서 복주(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로 도읍을 옮긴 사건이다. 원나라 말엽 원의 지배에 저항하는 홍건적이 발흥하였는데 홍건적의 일부가 원나라의 군사에 쫓겨 고려에 두 차례 침입하였다. 제2차 침입 때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자 공민왕은 복주를 임시 수도로 삼고 반격을 준비하였다. 1362년 1월 고려군 20만 병력이 집결하여 개경을 탈환하였고 공민왕은 환도하였다. 개경 환도 이후에 흥왕사의 반란 등으로 공민왕의 개혁 정치가 위축되고 이성계 등 신흥무인이 세력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복주천도 (福州遷都)
복주천도는 1361년 11월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공민왕이 개경에서 복주(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로 도읍을 옮긴 사건이다. 원나라 말엽 원의 지배에 저항하는 홍건적이 발흥하였는데 홍건적의 일부가 원나라의 군사에 쫓겨 고려에 두 차례 침입하였다. 제2차 침입 때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자 공민왕은 복주를 임시 수도로 삼고 반격을 준비하였다. 1362년 1월 고려군 20만 병력이 집결하여 개경을 탈환하였고 공민왕은 환도하였다. 개경 환도 이후에 흥왕사의 반란 등으로 공민왕의 개혁 정치가 위축되고 이성계 등 신흥무인이 세력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 후기에, 밀직제학, 첨서밀직, 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정사도 (鄭思道)
고려 후기에, 밀직제학, 첨서밀직, 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서북면부원수, 찬성사, 제조정방 등을 역임한 무신.
양백연 (楊伯淵)
고려후기 서북면부원수, 찬성사, 제조정방 등을 역임한 무신.
안종원은 고려후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까지 문신으로 활동하였다. 1225년 출생으로 1341년 과거에 급제하여 공민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郎)에 이르렀다가 신돈(辛旽) 집권기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우왕 대에 환관의 폐단이나 사신들의 밀무역에 대한 간언을 하기도 했다. 조선 건국 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나 1394년 사망하였다.
안종원 (安宗源)
안종원은 고려후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까지 문신으로 활동하였다. 1225년 출생으로 1341년 과거에 급제하여 공민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郎)에 이르렀다가 신돈(辛旽) 집권기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우왕 대에 환관의 폐단이나 사신들의 밀무역에 대한 간언을 하기도 했다. 조선 건국 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나 1394년 사망하였다.
조선 전기에, 상의중추원사, 도총제 등을 역임한 무신.
곽충보 (郭忠輔)
조선 전기에, 상의중추원사, 도총제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제23대 고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안경공 (安慶公)
고려후기 제23대 고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고려 후기에, 삼사우사, 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
석문성 (石文成)
고려 후기에, 삼사우사, 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