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국광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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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군사조장, 한국광복군 제5지대 간부, 광복군총사령부 서무과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기성 (朴基成)
일제강점기 때,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군사조장, 한국광복군 제5지대 간부, 광복군총사령부 서무과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승학은 일제강점기 한인 사병과 청년의 초모 활동을 펼쳤던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남방대학에 재학하다가 중국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과 협조하여 일본군의 주둔 위치와 소속 부대 병력 그리고 병력의 이동 규모 등에 관한 군사 정보 수집 보고 등의 활동을 하고, 동지 규합과 한인 사병 및 청년의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충의구국군 총지휘부 참모처의 주요 참모로 임명되어 한인 사병 10여 명을 한국광복군에 입대시켰다.
박승학 (朴承鶴)
박승학은 일제강점기 한인 사병과 청년의 초모 활동을 펼쳤던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남방대학에 재학하다가 중국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과 협조하여 일본군의 주둔 위치와 소속 부대 병력 그리고 병력의 이동 규모 등에 관한 군사 정보 수집 보고 등의 활동을 하고, 동지 규합과 한인 사병 및 청년의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충의구국군 총지휘부 참모처의 주요 참모로 임명되어 한인 사병 10여 명을 한국광복군에 입대시켰다.
민영완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청소년단체 화랑사에 참여하여 총무 겸 재무간사로 활동하였다. 1933년 중국 중앙항공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 공군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직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하였다.
민영완 (閔泳琬)
민영완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청소년단체 화랑사에 참여하여 총무 겸 재무간사로 활동하였다. 1933년 중국 중앙항공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 공군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직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하였다.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광복군 화중지역 공작책임자 · 난징군사특파단 부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윤창호 (尹昌浩)
일제강점기 때 한국광복군 화중지역 공작책임자 · 난징군사특파단 부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임정근 (林正根)
일제강점기 때,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한족동맹회와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였고,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정선 (李正善)
일제강점기 때, 한족동맹회와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였고,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38년 중국의 한커우[漢口]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조선의용대 (朝鮮義勇隊)
1938년 중국의 한커우[漢口]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운동가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해 광복군이 되었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복역하던 중 옥중 출마해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으로 10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75년 등산 중 의문사했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장준하 (張俊河)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운동가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해 광복군이 되었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복역하던 중 옥중 출마해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으로 10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75년 등산 중 의문사했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박영진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국청년훈련공작대, 한국광복군 창설과 함께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OSS 작전에 합류하면서 인도, 미얀마 등지의 전선에서도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박영진 (朴永晋)
박영진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국청년훈련공작대, 한국광복군 창설과 함께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OSS 작전에 합류하면서 인도, 미얀마 등지의 전선에서도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심광식은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반을 졸업하였으며, 1936년 조선혁명당에 입당하였다. 그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및 임시의정원 의원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국독립운동의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다.
심광식 (沈光植)
심광식은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반을 졸업하였으며, 1936년 조선혁명당에 입당하였다. 그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및 임시의정원 의원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국독립운동의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다.
전태산은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나 1935년 중국 뤄양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이청천(지청천)이 이끄는 민족혁명당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창설에도 참여하였으며, 한국광복군 창설 시 현장에 있었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하여 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전태산 (全泰山)
전태산은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나 1935년 중국 뤄양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이청천(지청천)이 이끄는 민족혁명당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창설에도 참여하였으며, 한국광복군 창설 시 현장에 있었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하여 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성도는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인 1934년 중국 낙양군관학교의 한인특별반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고, 토교대가 성립되었을 때 총사령부 경호를 담당하는 보충부대장 및 토교대 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성도 (韓聖島)
한성도는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인 1934년 중국 낙양군관학교의 한인특별반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고, 토교대가 성립되었을 때 총사령부 경호를 담당하는 보충부대장 및 토교대 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영준 (朴英俊)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정숙 (金貞淑)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순호 (申順浩)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안영희는 일제강점기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가입하여 한국청년훈련반을 졸업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된 후 제5지대 의무실에서, 1942년 4월 1일 제5지대가 기존의 제1, 2지대와 통합하여 제2지대로 편성되자 제2지대 의무실에서 한국광복군 부상병과 그 가족을 간호하였다.
안영희 (安英姬)
안영희는 일제강점기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가입하여 한국청년훈련반을 졸업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된 후 제5지대 의무실에서, 1942년 4월 1일 제5지대가 기존의 제1, 2지대와 통합하여 제2지대로 편성되자 제2지대 의무실에서 한국광복군 부상병과 그 가족을 간호하였다.
김상을은 1945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에게 초모되었다. 1945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여 전라도반 제1조로 국내 진입을 시도하였다.
김상을 (金商乙)
김상을은 1945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에게 초모되었다. 1945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여 전라도반 제1조로 국내 진입을 시도하였다.
김석동은 일제강점기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본부요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 6월 『독립신문』 중경판 발행을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3년 3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였다.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 중국지부가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하여 정보파괴반을 수료하였다.
김석동 (金奭東)
김석동은 일제강점기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본부요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 6월 『독립신문』 중경판 발행을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3년 3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였다.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 중국지부가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하여 정보파괴반을 수료하였다.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총무조원 겸 공작조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독수리작전의 국내 정진군 함경도반 반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으로 초모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41년 1월 1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어 제5지대원이 되었으며, 1945년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였다.
김용주 (金容珠)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총무조원 겸 공작조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독수리작전의 국내 정진군 함경도반 반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으로 초모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41년 1월 1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어 제5지대원이 되었으며, 1945년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