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함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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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함경도·경기도·강원도의 3개 지역만을 그린 지도. 도별도.
함경도·경기도·강원도지도 (咸鏡道·京畿道·江原道地圖)
조선후기 함경도·경기도·강원도의 3개 지역만을 그린 지도. 도별도.
조선시대 종6품 동반 토관직.
감부 (勘簿)
조선시대 종6품 동반 토관직.
『관북읍지』는 1894년 함경도 소속 각 읍의 읍지를 총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7책 618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함경도 내 총 14개 지역의 읍지를 통틀어 수록하였다. 채색 지도는 있는 지역도 있고 없는 지역도 있다. 지역별로 작성 기준 등에서 차이가 있으나, 당시 함경도 지방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고종 재위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관북읍지 (關北邑誌)
『관북읍지』는 1894년 함경도 소속 각 읍의 읍지를 총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7책 618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함경도 내 총 14개 지역의 읍지를 통틀어 수록하였다. 채색 지도는 있는 지역도 있고 없는 지역도 있다. 지역별로 작성 기준 등에서 차이가 있으나, 당시 함경도 지방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고종 재위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관북지도』는 조선 후기 함경도 전도와 부·군·현 지도를 수록하여 만든 지도집이다. 2첩의 채색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와 같은 시기에 제작하였다. 함경도를 포함한 각 도의 산맥과 수계, 군현, 교통로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 또한 민호와 전결, 군병 등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어, 조선 후기 영토와 행정 및 교통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관북지도 (關北地圖)
『관북지도』는 조선 후기 함경도 전도와 부·군·현 지도를 수록하여 만든 지도집이다. 2첩의 채색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와 같은 시기에 제작하였다. 함경도를 포함한 각 도의 산맥과 수계, 군현, 교통로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 또한 민호와 전결, 군병 등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어, 조선 후기 영토와 행정 및 교통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박문수는 조선 후기 호조판서, 병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일찍이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이 된 인연으로 영조의 지우(知遇)를 입어 탕평 정권에 참여하여 직간(直諫)하는 신하로 이름을 얻었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다. 소론의 당론을 견지하며 이광좌를 사표(師表)로 삼아 지론이 시종 일관 변하지 않았다. 노론을 견제하다가 곤경에 처하였으며, 결국 을해옥사 때 역모자가 진술한 초사(招辭)에 이름이 나와 문초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정계를 은퇴한 후 사망하였다.
박문수 (朴文秀)
박문수는 조선 후기 호조판서, 병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일찍이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이 된 인연으로 영조의 지우(知遇)를 입어 탕평 정권에 참여하여 직간(直諫)하는 신하로 이름을 얻었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다. 소론의 당론을 견지하며 이광좌를 사표(師表)로 삼아 지론이 시종 일관 변하지 않았다. 노론을 견제하다가 곤경에 처하였으며, 결국 을해옥사 때 역모자가 진술한 초사(招辭)에 이름이 나와 문초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정계를 은퇴한 후 사망하였다.
우리나라의 함경도 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해류.
북한해류 (北韓海流)
우리나라의 함경도 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해류.
단시는 조선 후기에 함경도 회령에서 열린 개시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회령개시의 이칭이다.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인 1638년(인조 16)부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회령과 경원에서 청나라와 무역이 이루어졌다. 이때 회령개시는 1년마다 열렸고, 경원개시는 2년마다 열렸다. 회령개시만 열릴 때를 단시, 회령개시와 경원개시가 같이 열릴 때를 쌍시라고 불렀다. 단시는 자년(子年), 인년(寅年), 진년(辰年), 오년(午年), 신년(申年), 술년(戌年)이 든 해에 열렸다. 이곳에서는 농우(農牛) · 농기(農器) · 식염(食鹽) 등을 무역하였다.
단시 (單市)
단시는 조선 후기에 함경도 회령에서 열린 개시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회령개시의 이칭이다.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인 1638년(인조 16)부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회령과 경원에서 청나라와 무역이 이루어졌다. 이때 회령개시는 1년마다 열렸고, 경원개시는 2년마다 열렸다. 회령개시만 열릴 때를 단시, 회령개시와 경원개시가 같이 열릴 때를 쌍시라고 불렀다. 단시는 자년(子年), 인년(寅年), 진년(辰年), 오년(午年), 신년(申年), 술년(戌年)이 든 해에 열렸다. 이곳에서는 농우(農牛) · 농기(農器) · 식염(食鹽) 등을 무역하였다.
「돈전풀이」는 함경도 망묵굿에서 구송되는 돈전의 내력을 이야기한 무속신화(巫俗神話)이다. 특히 한국 무속신화에서는 찾기 어려운 돈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어 새롭다. 망묵굿에서는 망자가 저승에 가면서 사용하라고 황색과 흰색의 종이돈을 올리는데 그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돈전풀이는 망묵굿과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주인공인 궁상이와 명월각시가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신으로 좌정하는 내용이다.
돈전풀이
「돈전풀이」는 함경도 망묵굿에서 구송되는 돈전의 내력을 이야기한 무속신화(巫俗神話)이다. 특히 한국 무속신화에서는 찾기 어려운 돈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어 새롭다. 망묵굿에서는 망자가 저승에 가면서 사용하라고 황색과 흰색의 종이돈을 올리는데 그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돈전풀이는 망묵굿과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주인공인 궁상이와 명월각시가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신으로 좌정하는 내용이다.
교제창은 조선 후기에 함경도 기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원산 · 고원 · 함흥 3곳에 설치한 환곡 창고이다. 함경도는 농토가 부족하고 척박한 탓에 곡물이 상시적으로 부족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기근이 발생하면 다수의 아사자가 생겨날 우려가 있었다. 조선 정부는 1732년(영조 8)에 함경도와 운송 경로가 가까운 경상도 연일에 포항창을 설치하고, 이와 짝하여 1737년(영조 13)에 함경도 덕원에도 진휼 창고로 원산창을 설치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성에 자외창, 함흥에 운전창을 추가로 설치하였는데 이를 모두 교제창이라 한다.
교제창 (交濟倉)
교제창은 조선 후기에 함경도 기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원산 · 고원 · 함흥 3곳에 설치한 환곡 창고이다. 함경도는 농토가 부족하고 척박한 탓에 곡물이 상시적으로 부족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기근이 발생하면 다수의 아사자가 생겨날 우려가 있었다. 조선 정부는 1732년(영조 8)에 함경도와 운송 경로가 가까운 경상도 연일에 포항창을 설치하고, 이와 짝하여 1737년(영조 13)에 함경도 덕원에도 진휼 창고로 원산창을 설치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성에 자외창, 함흥에 운전창을 추가로 설치하였는데 이를 모두 교제창이라 한다.
「문굿무가」는 함경도의 망자 천도굿인 「망묵굿」, 「양산복굿」에서 연행하는 서사무가이다. 중국 명대의 강창 문학인 「양산백보권」과 「축영대 설화」를 받아들여 형성된 것으로서, 설화가 무가에 수용된 본보기로 꼽을 수 있다.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을 맺지 못한 채 갈라서게 되지만 사랑의 힘으로 저승에서 사랑을 이루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마침내 이루어졌고, 나삼 자락이 나비가 되거나 쌍무지개가 떴다는 묘사를 통해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이 무가는 젊어서 죽은 망자를 위로하기 위한 굿의 성격에 부합한다.
문굿무가 (門굿巫歌)
「문굿무가」는 함경도의 망자 천도굿인 「망묵굿」, 「양산복굿」에서 연행하는 서사무가이다. 중국 명대의 강창 문학인 「양산백보권」과 「축영대 설화」를 받아들여 형성된 것으로서, 설화가 무가에 수용된 본보기로 꼽을 수 있다.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을 맺지 못한 채 갈라서게 되지만 사랑의 힘으로 저승에서 사랑을 이루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마침내 이루어졌고, 나삼 자락이 나비가 되거나 쌍무지개가 떴다는 묘사를 통해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이 무가는 젊어서 죽은 망자를 위로하기 위한 굿의 성격에 부합한다.
삭방도는 고려 성종 때 시행된 10도(十道)의 하나로서, 지금의 강원도 동부와 함경남도 남부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이다. 신라의 9주(九州) 중에서 명주(溟州) 북부와 삭주(朔州) 북부, 한주(漢州) 동북부, 그리고 고려 초기에 개척한 동북방 일원으로 구성되었다. 관내에 62개 현(縣)을 두고 이를 대략 17개의 주(州)로 편제하였다. 십도제가 폐지된 뒤 동계(東界)로 칭해졌다.
삭방도 (朔方道)
삭방도는 고려 성종 때 시행된 10도(十道)의 하나로서, 지금의 강원도 동부와 함경남도 남부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이다. 신라의 9주(九州) 중에서 명주(溟州) 북부와 삭주(朔州) 북부, 한주(漢州) 동북부, 그리고 고려 초기에 개척한 동북방 일원으로 구성되었다. 관내에 62개 현(縣)을 두고 이를 대략 17개의 주(州)로 편제하였다. 십도제가 폐지된 뒤 동계(東界)로 칭해졌다.
「살풀이굿 무가」는 함경도 지역에 전승되는 서사무가이다. 함경도 무녀 강춘옥이 연행한 것이 유일하다. 「살풀이 무가」의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망묵굿 무가」가 별도로 수록되어 있어 「살풀이 무가」는 망묵굿에서 연행하는 무가는 아님이 분명하다. 전실의 자식과 후실의 갈등이 중심이 되는 무가로 전북 지역의 「칠성 무가」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살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굿을 부탁한 사람의 살이 풀려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부른 무가로 보인다. 전체 분량이 작고 내용도 소략하여 문학적인 의미를 찾기 어려운 무가이다.
살풀이굿무가 (煞풀이굿巫歌)
「살풀이굿 무가」는 함경도 지역에 전승되는 서사무가이다. 함경도 무녀 강춘옥이 연행한 것이 유일하다. 「살풀이 무가」의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망묵굿 무가」가 별도로 수록되어 있어 「살풀이 무가」는 망묵굿에서 연행하는 무가는 아님이 분명하다. 전실의 자식과 후실의 갈등이 중심이 되는 무가로 전북 지역의 「칠성 무가」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살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굿을 부탁한 사람의 살이 풀려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부른 무가로 보인다. 전체 분량이 작고 내용도 소략하여 문학적인 의미를 찾기 어려운 무가이다.
외방별과는 조선시대 서울 이외의 지방에서 위무를 목적으로 시행한 특별 시험이다. 해당 지역의 거주자를 중심으로 응시 자격이 주어졌으며, 우수자들에게는 직부전시 이하의 은사를 내리고 이후의 식년시나 증광시 등에 응시하도록 했다. 주된 실시 지역은 평안도, 함경도, 제주도 등이다.
외방별과 (外方別科)
외방별과는 조선시대 서울 이외의 지방에서 위무를 목적으로 시행한 특별 시험이다. 해당 지역의 거주자를 중심으로 응시 자격이 주어졌으며, 우수자들에게는 직부전시 이하의 은사를 내리고 이후의 식년시나 증광시 등에 응시하도록 했다. 주된 실시 지역은 평안도, 함경도, 제주도 등이다.
조선전기 공조판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유담년 (柳聃年)
조선전기 공조판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중기에 사용하던 유통식 화포(火砲).
중완구 (中碗口)
조선 중기에 사용하던 유통식 화포(火砲).
조선 중종 때 함경도·평안도의 사민업무(徙民業務)를 주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청.
입거청 (入居廳)
조선 중종 때 함경도·평안도의 사민업무(徙民業務)를 주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청.
조선시대 함경도와 평안도의 큰 고을에 둔 향리직.
주사 (主事)
조선시대 함경도와 평안도의 큰 고을에 둔 향리직.
『진법언해』는 조선후기 함경 감영에서 한문을 모르는 군병들을 위하여 국문으로 번역하여 간행한 병서이다. 단권 목판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부터 한문으로 된 병법서만 있어 한글로 된 교범서가 필요하여 편찬하였다. 1693년 또는 1753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저자는 불분명하다. 내용은 절목총론, 오행진법, 장조법, 사면조, 주습야조로 구성되어, 맹세 의식, 군호, 진법, 군호, 훈련 절차, 기습 대응 등을 설명한다. 순 한글로된 병법서라는 특징을 가지며 표기법상으로는 근대국어 시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진법언해 (陣法諺解)
『진법언해』는 조선후기 함경 감영에서 한문을 모르는 군병들을 위하여 국문으로 번역하여 간행한 병서이다. 단권 목판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부터 한문으로 된 병법서만 있어 한글로 된 교범서가 필요하여 편찬하였다. 1693년 또는 1753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저자는 불분명하다. 내용은 절목총론, 오행진법, 장조법, 사면조, 주습야조로 구성되어, 맹세 의식, 군호, 진법, 군호, 훈련 절차, 기습 대응 등을 설명한다. 순 한글로된 병법서라는 특징을 가지며 표기법상으로는 근대국어 시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황천혼시 무가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에 전승되는 서사무가이다. 손진태가 1926년에 조사한 자료가 유일하다. 저승사자를 후하게 대접하여 목숨을 잇는 연명담으로 제주도의 「맹감본」, 호남 지역의 「장자풀이」와 내용이 같다. 황천혼시 무가는 무속의 죽음관과 사후관, 저승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황천혼시 무가 (黃泉혼시 巫歌)
황천혼시 무가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에 전승되는 서사무가이다. 손진태가 1926년에 조사한 자료가 유일하다. 저승사자를 후하게 대접하여 목숨을 잇는 연명담으로 제주도의 「맹감본」, 호남 지역의 「장자풀이」와 내용이 같다. 황천혼시 무가는 무속의 죽음관과 사후관, 저승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1883년~1907년 의정부에서 편찬한 함경도에 관하여 기록한 지리서. 영지.
관북영지 (關北營誌)
1883년~1907년 의정부에서 편찬한 함경도에 관하여 기록한 지리서. 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