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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현제는 전국을 몇 개의 행정구획으로 나누고 여기에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리던 중앙집권적 지방행정 제도이다. 한국의 군현제는 중국의 것을 도입한 것이나 실제 운용 측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근대사회는 국왕권과 그를 뒷받침하는 관료제에 입각한 집권체제를 기반으로 하였다. 이는 국가의 명령을 지방에 전하고 민으로부터 각종 세역을 수취하여 물적인 토대를 구축할 때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한 토대를 실현하는 매개체가 바로 군현제이다.
군현제 (郡縣制)
군현제는 전국을 몇 개의 행정구획으로 나누고 여기에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리던 중앙집권적 지방행정 제도이다. 한국의 군현제는 중국의 것을 도입한 것이나 실제 운용 측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근대사회는 국왕권과 그를 뒷받침하는 관료제에 입각한 집권체제를 기반으로 하였다. 이는 국가의 명령을 지방에 전하고 민으로부터 각종 세역을 수취하여 물적인 토대를 구축할 때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한 토대를 실현하는 매개체가 바로 군현제이다.
감무(監務)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속군현(屬郡縣)에 파견된 지방 관직이다. 유민의 안집과 권농, 조세 수취, 향리를 감독하는 등 부임한 군현의 지방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감무는 1106년(예종 1)부터 시작하여 인종 대, 명종 대에 걸쳐 대규모로 파견되었다. 1359년(공민왕 8)에 안집별감(安集別監)이라 고쳤다가 1388년(창왕 즉위년)에 다시 현령 · 감무로 바꾸었다. 공양왕 때에는 조선 건국 세력이 군현제를 정비하는 작업의 하나로 감무를 새로 설치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으로 개칭하였다.
감무 (監務)
감무(監務)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속군현(屬郡縣)에 파견된 지방 관직이다. 유민의 안집과 권농, 조세 수취, 향리를 감독하는 등 부임한 군현의 지방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감무는 1106년(예종 1)부터 시작하여 인종 대, 명종 대에 걸쳐 대규모로 파견되었다. 1359년(공민왕 8)에 안집별감(安集別監)이라 고쳤다가 1388년(창왕 즉위년)에 다시 현령 · 감무로 바꾸었다. 공양왕 때에는 조선 건국 세력이 군현제를 정비하는 작업의 하나로 감무를 새로 설치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으로 개칭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현의(玄衣)와 청색 중단(中單)으로 구성된 구한말의 왕실복식.
구장복 (九章服)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현의(玄衣)와 청색 중단(中單)으로 구성된 구한말의 왕실복식.
사단법인 정선아리랑제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9월-10월 경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일대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개최하는 마을축제. 지역축제.
세계대한민국아리랑대축제 및 정선아리랑제 (世界大韓民國아리랑大祝祭 및 旌善아리랑祭)
사단법인 정선아리랑제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9월-10월 경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일대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개최하는 마을축제. 지역축제.
영은 산의 능선이 낮아져 말안장의 움푹 들어간 것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고갯길이다. 고개, 재, 현, 치, 티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렸다. 단층선을 따라 발달하거나 습곡작용이나 암석이 차별 침식을 많이 받은 부분에 발달한다. 영은 일반적으로 지역 또는 국가 간의 경계가 되기 때문에 정치·군사적으로 중요하다. 또 고개의 양쪽을 연결하는 교통로 혹은 문화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고갯길 부근에 상업 요지의 취락들이 많아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시되었다. 최근에는 영 밑으로 곳곳에 터널이 생겨나 영의 기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영 (嶺)
영은 산의 능선이 낮아져 말안장의 움푹 들어간 것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고갯길이다. 고개, 재, 현, 치, 티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렸다. 단층선을 따라 발달하거나 습곡작용이나 암석이 차별 침식을 많이 받은 부분에 발달한다. 영은 일반적으로 지역 또는 국가 간의 경계가 되기 때문에 정치·군사적으로 중요하다. 또 고개의 양쪽을 연결하는 교통로 혹은 문화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고갯길 부근에 상업 요지의 취락들이 많아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시되었다. 최근에는 영 밑으로 곳곳에 터널이 생겨나 영의 기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토산군은 북한의 황해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군이다. 북쪽으로 신계군, 남쪽으로 개성시와 장풍군, 동쪽으로 강원도(북한) 철원군과 이천군, 서쪽으로 금천군과 접해 있다. 고구려 때는 오사함달현이었다. ‘오사함’은 ‘토끼’를 뜻하는 옛말이고, ‘달’은 ‘산’을 의미한다. 757년에 토산현으로 개칭되었다. 농경지가 면적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군에서 생산되는 산림 자원을 이용한 식료품 공업이 발달하였다. 옛 성터인 광성과 월성이 남아 있다. 석봉리에는 석봉 한호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에 세운 비석인 한석봉묘갈명비가 있다.
토산군 (兎山郡)
토산군은 북한의 황해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군이다. 북쪽으로 신계군, 남쪽으로 개성시와 장풍군, 동쪽으로 강원도(북한) 철원군과 이천군, 서쪽으로 금천군과 접해 있다. 고구려 때는 오사함달현이었다. ‘오사함’은 ‘토끼’를 뜻하는 옛말이고, ‘달’은 ‘산’을 의미한다. 757년에 토산현으로 개칭되었다. 농경지가 면적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군에서 생산되는 산림 자원을 이용한 식료품 공업이 발달하였다. 옛 성터인 광성과 월성이 남아 있다. 석봉리에는 석봉 한호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에 세운 비석인 한석봉묘갈명비가 있다.
모루(牟婁)는 512년(백제 무령왕 12), 백제가 가야(임나)에서 빼앗은 '임나4현(任那四縣)'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광양으로 비정된다. 백제 때 광양의 지명이 마로(馬老)라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임나4현은 『일본서기(日本書紀)』 계체기(繼體紀) 6년(512년)조에 보이는 지명으로 상다리(上哆唎), 하다리(下哆唎), 사타(娑陀), 모루(牟婁) 등이다.
모루 (牟婁)
모루(牟婁)는 512년(백제 무령왕 12), 백제가 가야(임나)에서 빼앗은 '임나4현(任那四縣)'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광양으로 비정된다. 백제 때 광양의 지명이 마로(馬老)라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임나4현은 『일본서기(日本書紀)』 계체기(繼體紀) 6년(512년)조에 보이는 지명으로 상다리(上哆唎), 하다리(下哆唎), 사타(娑陀), 모루(牟婁) 등이다.
조선시대 외명부 중 문관·무관의 적처에게 내린 정·종2품의 위호(位號).
정부인 (貞夫人)
조선시대 외명부 중 문관·무관의 적처에게 내린 정·종2품의 위호(位號).
조선후기 제16대 인조의 왕비.
인열왕후 (仁烈王后)
조선후기 제16대 인조의 왕비.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는 조선후기 두문동 72현'과 관련된 비.
두문동비 (杜門洞碑)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는 조선후기 두문동 72현'과 관련된 비.
고려 후기에, 예의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민안부 (閔安富)
고려 후기에, 예의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옛 지명.
밀성 (密城)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옛 지명.
고려시대 왕경을 뜻하는 적현[赤縣, 京縣]과 함께 경기를 구성했던 개경 인근의 군현.
기현 (畿縣)
고려시대 왕경을 뜻하는 적현[赤縣, 京縣]과 함께 경기를 구성했던 개경 인근의 군현.
고려 후기에, 집의, 한림학사, 집현전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고 (李皐)
고려 후기에, 집의, 한림학사, 집현전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의 수도 개경을 보호하는 기보(畿輔) 지역으로서의 경기(京畿), 경현(京縣).
적현 (赤縣)
고려의 수도 개경을 보호하는 기보(畿輔) 지역으로서의 경기(京畿), 경현(京縣).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문인.
최광유 (崔匡裕)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문인.
고려후기 제19대 명종의 둘째 딸인 공주.
수안궁주 (壽安宮主)
고려후기 제19대 명종의 둘째 딸인 공주.
고베 나가타구 한인촌은 효고현 고베시 나가타구의 고반초, 로쿠반초를 중심으로 한국식 음식점과 식자재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1920~1930년대 7천7백여 명의 한인들이 나카타구의 고무공장에서 일했다. 해방 이후 귀환하지 않고 잔류한 한인들은 고베의 합성피혁 신발 산업에 주요 노동력으로 참여했다. 나가타구의 합성피혁 산업은 1970년대에는 번성했으나, 1980년대 후반 엔고와 1990년대 중국산 저가 제품의 수입으로 쇠퇴했다. 2010년 기준 나가타구 거주자 중 약 4.6%가 한국·조선인이며, 이는 효고현 내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고베 나가타구 한인촌 (Kôbe[神戶] Nagata[長田]區 韓人村)
고베 나가타구 한인촌은 효고현 고베시 나가타구의 고반초, 로쿠반초를 중심으로 한국식 음식점과 식자재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1920~1930년대 7천7백여 명의 한인들이 나카타구의 고무공장에서 일했다. 해방 이후 귀환하지 않고 잔류한 한인들은 고베의 합성피혁 신발 산업에 주요 노동력으로 참여했다. 나가타구의 합성피혁 산업은 1970년대에는 번성했으나, 1980년대 후반 엔고와 1990년대 중국산 저가 제품의 수입으로 쇠퇴했다. 2010년 기준 나가타구 거주자 중 약 4.6%가 한국·조선인이며, 이는 효고현 내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사타는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이다. 실제는 백제가 대가야로부터 수복한 영토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려우나 섬진강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순천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사타 (娑陀)
사타는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이다. 실제는 백제가 대가야로부터 수복한 영토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려우나 섬진강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순천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1172년(명종 2) 6월경에 지방관의 탐학에 시달리던 성주(成州) 주민들이 일으킨 민란.
성주민란 (成州民亂)
1172년(명종 2) 6월경에 지방관의 탐학에 시달리던 성주(成州) 주민들이 일으킨 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