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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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는 고려 후기에 북계분대어사·감찰어사·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몽골과의 화의 교섭 등에 활약한 인물이다. 몽골의 첫 번째 침입 당시 민희는 몽골 원수 살리타이를 만나 그들의 의도를 살폈다. 이후 몽골군이 개경을 포위하자 화친을 위해 몽골군의 진영을 오갔다. 또한 두 번째 침입 시기에 왕명으로 구주에 가서 몽골에 항복하도록 권유하였다. 서경에 파견되어 몽골의 다루가치를 죽이려는 일로 반란을 겪었다. 홍복원과 필현보 등의 반란을 진압하였지만, 이후 집권자 최항에 의해 유배를 갔다. 그의 사후에 공로를 인정받았다.
민희 (閔曦)
민희는 고려 후기에 북계분대어사·감찰어사·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몽골과의 화의 교섭 등에 활약한 인물이다. 몽골의 첫 번째 침입 당시 민희는 몽골 원수 살리타이를 만나 그들의 의도를 살폈다. 이후 몽골군이 개경을 포위하자 화친을 위해 몽골군의 진영을 오갔다. 또한 두 번째 침입 시기에 왕명으로 구주에 가서 몽골에 항복하도록 권유하였다. 서경에 파견되어 몽골의 다루가치를 죽이려는 일로 반란을 겪었다. 홍복원과 필현보 등의 반란을 진압하였지만, 이후 집권자 최항에 의해 유배를 갔다. 그의 사후에 공로를 인정받았다.
박경량은 고려 후기에 군부판서·첨의평리·흥례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충선왕의 측근으로 출세한 고려 후기 인물이다. 노비 출신인 그는 조비로 인해 충선왕의 측근이 되어 그가 모함을 받았을 때 이를 저지하였다. 이런 공로로 특별하게 등용되었다. 조비 모함 사건 당시에는 원에 잡혀갔지만 이후 더욱 출세하였다. 충선왕의 심복으로 부춘군에 봉하였졌으며, 이후 충선왕이 귀양 가게 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
박경량 (朴景亮)
박경량은 고려 후기에 군부판서·첨의평리·흥례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충선왕의 측근으로 출세한 고려 후기 인물이다. 노비 출신인 그는 조비로 인해 충선왕의 측근이 되어 그가 모함을 받았을 때 이를 저지하였다. 이런 공로로 특별하게 등용되었다. 조비 모함 사건 당시에는 원에 잡혀갔지만 이후 더욱 출세하였다. 충선왕의 심복으로 부춘군에 봉하였졌으며, 이후 충선왕이 귀양 가게 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
박상충은 고려 후기에 전교령·판전교시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북원 외교에 반대하고 친명 정책을 주장하다가 유배 가는 도중 사망한 인물이다. 성균관과 유학 발전에 공헌하였으며, 이인임 등의 친원 외교 정책에 반대하였다가 유배를 가게 되었다. 유배 가는 도중에 사망하였다.
박상충 (朴尙衷)
박상충은 고려 후기에 전교령·판전교시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북원 외교에 반대하고 친명 정책을 주장하다가 유배 가는 도중 사망한 인물이다. 성균관과 유학 발전에 공헌하였으며, 이인임 등의 친원 외교 정책에 반대하였다가 유배를 가게 되었다. 유배 가는 도중에 사망하였다.
박전지는 고려 후기에 전중윤지제교, 원나라 정동성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충선왕 개혁을 보좌한 인물이다. 어릴 때 이장용에게 교육을 받아 과거에 합격한 이후 문한직 등을 거쳐 원에 가서 벼슬을 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충선왕의 세자 시절에 교육을 맡아 이후 측근이 되었다. 충선왕이 사림원을 중심으로 개혁을 할 때 참여하였으며, 이후 정승까지 올랐다. 불교에도 조예가 깊다.
박전지 (朴全之)
박전지는 고려 후기에 전중윤지제교, 원나라 정동성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충선왕 개혁을 보좌한 인물이다. 어릴 때 이장용에게 교육을 받아 과거에 합격한 이후 문한직 등을 거쳐 원에 가서 벼슬을 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충선왕의 세자 시절에 교육을 맡아 이후 측근이 되었다. 충선왕이 사림원을 중심으로 개혁을 할 때 참여하였으며, 이후 정승까지 올랐다. 불교에도 조예가 깊다.
박진록은 고려 후기에 헌납(獻納), 대언(代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말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언관으로 주로 활동한 신흥유신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신돈에 비판적 입장이었으며, 이후 우왕 대 천도 문제에도 관여하였다. 신돈으로 인해 파면되기도 하였으며, 조준의 기양소를 계기로 이와 같은 글의 형식과 절차를 정하였다.
박진록 (朴晉錄)
박진록은 고려 후기에 헌납(獻納), 대언(代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말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언관으로 주로 활동한 신흥유신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신돈에 비판적 입장이었으며, 이후 우왕 대 천도 문제에도 관여하였다. 신돈으로 인해 파면되기도 하였으며, 조준의 기양소를 계기로 이와 같은 글의 형식과 절차를 정하였다.
박충좌는 고려 후기에 판전민도감사, 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백이정 아래에서 주자학을 배웠으며, 충선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였다. 이후 충숙왕 아래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원칙적으로 행정을 처리하였다. 충목왕 즉위 이후 서연관이 되었으며 정방을 맡았다. 이곡, 이제현, 민사평 등의 당대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박충좌 (朴忠佐)
박충좌는 고려 후기에 판전민도감사, 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백이정 아래에서 주자학을 배웠으며, 충선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였다. 이후 충숙왕 아래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원칙적으로 행정을 처리하였다. 충목왕 즉위 이후 서연관이 되었으며 정방을 맡았다. 이곡, 이제현, 민사평 등의 당대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반부는 고려 후기에 좌사의, 우사의대부, 간의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몽골이 일본과의 국교를 원하는 가운데 주로 외교 부문에서 활동하였다. 몽골은 끈질기게 일본과의 국교를 추진하였는데, 반부는 두 차례 사신으로 갔다 왔지만, 일본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후 그는 몽골의 일본 원정 준비를 위한 전함 제조와 함께, 이후 일본 원정에도 참여하였다. 주로 외교 관계를 담당하여 활약하였다.
반부 (潘阜)
반부는 고려 후기에 좌사의, 우사의대부, 간의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몽골이 일본과의 국교를 원하는 가운데 주로 외교 부문에서 활동하였다. 몽골은 끈질기게 일본과의 국교를 추진하였는데, 반부는 두 차례 사신으로 갔다 왔지만, 일본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후 그는 몽골의 일본 원정 준비를 위한 전함 제조와 함께, 이후 일본 원정에도 참여하였다. 주로 외교 관계를 담당하여 활약하였다.
백문보는 고려 후기에 춘추검열, 우상시, 전리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공민왕대 개혁 방안을 올린 인물이다. 성리학을 공부하였으며, 공민왕의 서연 개설 때 강의를 맡았다. 이후 충목왕대 정치도감에서 활동하다가 기삼만 사건으로 장형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고려실록 편찬에도 노력하였다.
백문보 (白文寶)
백문보는 고려 후기에 춘추검열, 우상시, 전리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공민왕대 개혁 방안을 올린 인물이다. 성리학을 공부하였으며, 공민왕의 서연 개설 때 강의를 맡았다. 이후 충목왕대 정치도감에서 활동하다가 기삼만 사건으로 장형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고려실록 편찬에도 노력하였다.
백문절은 고려 후기에 국자좨주, 보문각학사, 국학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주로 문장과 함께 절개를 가지고 활약한 인물이다. 벼슬은 한림원에서 시작하여 주로 문한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원종 폐위 사건에서 자신의 뜻을 국왕에게 관철하여 표문을 작성하였다. 이후 낭사 관리들과 함께 권세가 자제 임용에 반대하였다가 파면되기도 하였다. 또한 왕의 노여움으로 감옥에 갔던 심양 등을 석방하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백문절 (白文節)
백문절은 고려 후기에 국자좨주, 보문각학사, 국학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주로 문장과 함께 절개를 가지고 활약한 인물이다. 벼슬은 한림원에서 시작하여 주로 문한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원종 폐위 사건에서 자신의 뜻을 국왕에게 관철하여 표문을 작성하였다. 이후 낭사 관리들과 함께 권세가 자제 임용에 반대하였다가 파면되기도 하였다. 또한 왕의 노여움으로 감옥에 갔던 심양 등을 석방하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백원항은 고려 후기에 별감사, 밀직사, 첨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일찍이 대성할 재목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군인 선발 등의 행정 업무를 잘 처리하여 신임을 받았다. 그가 전영보의 비리를 캐다가 갈등으로 인해 유배를 가기도 하였으나, 충숙왕 즉위 이후 고위직이 되었다. 이후 충선왕의 환국 요청을 하는 등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백원항 (白元恒)
백원항은 고려 후기에 별감사, 밀직사, 첨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일찍이 대성할 재목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군인 선발 등의 행정 업무를 잘 처리하여 신임을 받았다. 그가 전영보의 비리를 캐다가 갈등으로 인해 유배를 가기도 하였으나, 충숙왕 즉위 이후 고위직이 되었다. 이후 충선왕의 환국 요청을 하는 등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손수경은 고려 후기에 판삼사사, 도첨의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국왕의 측근으로 성장한 고려 후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충숙왕 아래에서는 원의 입성 책동을 저지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충혜왕의 측근으로 조적의 난 등을 평정하여 다시 공신이 되었으며, 충정왕 당시 최고위직에 올랐다. 이후 공민왕 대 석기 추대 반란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손수경 (孫守卿)
손수경은 고려 후기에 판삼사사, 도첨의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국왕의 측근으로 성장한 고려 후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충숙왕 아래에서는 원의 입성 책동을 저지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충혜왕의 측근으로 조적의 난 등을 평정하여 다시 공신이 되었으며, 충정왕 당시 최고위직에 올랐다. 이후 공민왕 대 석기 추대 반란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송서는 고려 후기에 도첨의정승, 우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 세가 출신이며 아버지 송분의 덕으로 장군이 되었다가 원의 다루가치에 의해 일가와 함께 곤욕을 치루었다. 공민왕이 즉위한 이후 원로로서 수상이 되었다. 그는 공민왕과 가까운 조일신으로 인해 우정승까지 되었으나 조일신의 축출 이후 1년여 만에 사망하였다.
송서 (宋瑞)
송서는 고려 후기에 도첨의정승, 우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 세가 출신이며 아버지 송분의 덕으로 장군이 되었다가 원의 다루가치에 의해 일가와 함께 곤욕을 치루었다. 공민왕이 즉위한 이후 원로로서 수상이 되었다. 그는 공민왕과 가까운 조일신으로 인해 우정승까지 되었으나 조일신의 축출 이후 1년여 만에 사망하였다.
신아는 고려 후기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자신의 딸을 우왕에게 바쳐 출세한 인물이다. 이후 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비리를 일으켜 아들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이후 창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었지만 공양왕 즉위 후 다시 유배되었다.
신아 (申雅)
신아는 고려 후기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자신의 딸을 우왕에게 바쳐 출세한 인물이다. 이후 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비리를 일으켜 아들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이후 창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었지만 공양왕 즉위 후 다시 유배되었다.
안방열은 고려 후기에 판사천국사, 판태사국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 천문과 지리, 점과 관련한 직책을 주로 맡았던 관료이다. 백승현이 삼랑성에 임시 궁궐을 짓는 것의 가부를 결정짓는 일에 동원되었으며, 개경 환도 시에도 점을 쳤다. 결국 삼별초를 따라 진도로 가서 참언으로 도와주다가 정부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안방열 (安邦悅)
안방열은 고려 후기에 판사천국사, 판태사국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 천문과 지리, 점과 관련한 직책을 주로 맡았던 관료이다. 백승현이 삼랑성에 임시 궁궐을 짓는 것의 가부를 결정짓는 일에 동원되었으며, 개경 환도 시에도 점을 쳤다. 결국 삼별초를 따라 진도로 가서 참언으로 도와주다가 정부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안보는 고려 후기에 동지공거, 정당문학, 동경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원나라 과거에 합격한 순흥 안씨 가문의 인물이다. 고려 과거 시험에 합격 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이곡 등과 교류하였다. 그는 효도를 중시하였으며, 음양술을 싫어하는 성리학자였다. 청렴한 성품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안보 (安輔)
안보는 고려 후기에 동지공거, 정당문학, 동경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원나라 과거에 합격한 순흥 안씨 가문의 인물이다. 고려 과거 시험에 합격 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이곡 등과 교류하였다. 그는 효도를 중시하였으며, 음양술을 싫어하는 성리학자였다. 청렴한 성품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김돈시는 고려 전기 의종의 측근으로, 정중부의 난 당시 살해된 문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김부식이며 형은 김돈중이다. 그는 의종이 관란사(觀瀾寺)에 행차하려고 하자, 백성을 동원하여 그곳의 조경 공사를 한 공로로 의종의 측근이 되었다. 의종이 김돈시의 집을 별궁(別宮)으로 삼을 정도였는데, 정중부의 난으로 김돈시는 살해되었다.
김돈시 (金敦時)
김돈시는 고려 전기 의종의 측근으로, 정중부의 난 당시 살해된 문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김부식이며 형은 김돈중이다. 그는 의종이 관란사(觀瀾寺)에 행차하려고 하자, 백성을 동원하여 그곳의 조경 공사를 한 공로로 의종의 측근이 되었다. 의종이 김돈시의 집을 별궁(別宮)으로 삼을 정도였는데, 정중부의 난으로 김돈시는 살해되었다.
김신련은 고려 전기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문신이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금주판관 등의 지방관을 거친 후에 인종이 내시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하여, 진군하다가 적진에서 화살을 맞았다. 개선한 후에 삼사판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중국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이후 지방관으로 업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김신련 (金臣璉)
김신련은 고려 전기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문신이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금주판관 등의 지방관을 거친 후에 인종이 내시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하여, 진군하다가 적진에서 화살을 맞았다. 개선한 후에 삼사판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중국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이후 지방관으로 업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김안 (金安)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김의원 (金義元)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김이영은 고려 전기 대령후 왕경 유배사건과 관련된 문신이다. 인종의 신임을 받은 정항(鄭沆)의 딸과 결혼한 후에 문과 급제하였지만, 시험문제의 오류로 합격이 취소되려 하였는데, 정항과 왕비 등의 간청으로 모면하였다. 의종 즉위 이후 의종의 동생 대령후 유배 사건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강등되었다가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 후에 복귀되어 상서(尙書)가 되었다.
김이영 (金貽永)
김이영은 고려 전기 대령후 왕경 유배사건과 관련된 문신이다. 인종의 신임을 받은 정항(鄭沆)의 딸과 결혼한 후에 문과 급제하였지만, 시험문제의 오류로 합격이 취소되려 하였는데, 정항과 왕비 등의 간청으로 모면하였다. 의종 즉위 이후 의종의 동생 대령후 유배 사건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강등되었다가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 후에 복귀되어 상서(尙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