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주용"
검색결과 총 37건
백옥순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3월 이후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4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미국의 합작 훈련이자 한반도 침투 작전이었던 독수리작전에 참가하여 각종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여 훈련 성과는 실현되지 못하였고, 1946년 4월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백옥순의 이러한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백옥순 (白玉順)
백옥순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3월 이후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4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미국의 합작 훈련이자 한반도 침투 작전이었던 독수리작전에 참가하여 각종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여 훈련 성과는 실현되지 못하였고, 1946년 4월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백옥순의 이러한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송정헌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유영파와 결혼하였다. 1939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40년 6월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일제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송정헌의 이러한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송정헌 (宋靜軒)
송정헌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유영파와 결혼하였다. 1939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40년 6월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일제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송정헌의 이러한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오영선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남편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 충칭에서 성립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3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을 충칭에서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고,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영선 (吳英善)
오영선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남편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 충칭에서 성립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3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을 충칭에서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고,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태화는 일제강점기 중국 지린성에서 대동회에 가입하여 항일 선전문 배포,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룽징에서 일어난 3·13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1924년 11월에는 대동회 선전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4년 12월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 후에도 안투현 일대에서 독립운동 단체와 연락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태화 (張泰嬅)
장태화는 일제강점기 중국 지린성에서 대동회에 가입하여 항일 선전문 배포,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룽징에서 일어난 3·13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1924년 11월에는 대동회 선전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4년 12월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 후에도 안투현 일대에서 독립운동 단체와 연락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한족동맹운동을 벌이다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이일범이다. 정영은 1940년 9월 17일 성립된 한국광복군의 제3징모처에서 활동하였다. 적 후방에서 지하공작을 펼쳤는데, 주로 일본군 학병에서 탈출한 한인 청년들을 한국광복군에 가입시키는 업무를 맡았다. 이후 시안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영 (鄭瑛)
정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한족동맹운동을 벌이다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이일범이다. 정영은 1940년 9월 17일 성립된 한국광복군의 제3징모처에서 활동하였다. 적 후방에서 지하공작을 펼쳤는데, 주로 일본군 학병에서 탈출한 한인 청년들을 한국광복군에 가입시키는 업무를 맡았다. 이후 시안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영순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협조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활동 지역이자 적 점령 지구였던 루안 지역의 협조자로 활동하였다. 이서룡, 차영철, 정태희, 정기주, 권혁상, 정윤희 등과 함께 후방에서 적 활동을 탐지하고 초모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광복군은 군 인원의 확충과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조직의 외연을 확대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적 점령 지역에서 협조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영순 (鄭英淳)
정영순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협조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활동 지역이자 적 점령 지구였던 루안 지역의 협조자로 활동하였다. 이서룡, 차영철, 정태희, 정기주, 권혁상, 정윤희 등과 함께 후방에서 적 활동을 탐지하고 초모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광복군은 군 인원의 확충과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조직의 외연을 확대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적 점령 지역에서 협조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현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동향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광선과 결혼하였고, 1918년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청산리전투 이후 1920년대에 각종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5년에 남편과 난징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고, 1940년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에 가담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현숙 (鄭賢淑)
정현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동향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광선과 결혼하였고, 1918년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청산리전투 이후 1920년대에 각종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5년에 남편과 난징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고, 1940년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에 가담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계림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의 딸로서, 아버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에는 임시정부 외무부원으로서 안두생, 두군혜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3년 6월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전면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계림 (趙桂林)
조계림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의 딸로서, 아버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에는 임시정부 외무부원으로서 안두생, 두군혜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3년 6월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전면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용제는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여동생으로, 1929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한국독립당 재건 때 조소앙을 지원하였으며, 충칭 강북구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였고, 1943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위원으로 선임되어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용제 (趙鏞濟)
조용제는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여동생으로, 1929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한국독립당 재건 때 조소앙을 지원하였으며, 충칭 강북구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였고, 1943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위원으로 선임되어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이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용천군 출신이며, 남편은 한국광복군 제3지대 지하공작대원으로 활동한 박성관이다. 1945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구호대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 쉬저우에 특파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어 한인 신변 보호, 일본군 무장 해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최이옥 (崔伊玉)
최이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용천군 출신이며, 남편은 한국광복군 제3지대 지하공작대원으로 활동한 박성관이다. 1945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구호대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 쉬저우에 특파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어 한인 신변 보호, 일본군 무장 해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한영애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구대장 노복선의 휘하에서 적 정보 수집, 초모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을 담당하였다. 1946년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한영애 (韓永愛)
한영애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구대장 노복선의 휘하에서 적 정보 수집, 초모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을 담당하였다. 1946년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김응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중앙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한국광복군 징모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중국 장시성 진화〔金華〕에서 초모 활동을 전개하면서 대적 선전 활동, 포로 심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김응삼 (金應三)
김응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중앙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한국광복군 징모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중국 장시성 진화〔金華〕에서 초모 활동을 전개하면서 대적 선전 활동, 포로 심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김일환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12월부터 1년간 중국의 철도경호대를 졸업하고, 1940년 3월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단에 입단하여 이듬해 9월 졸업한 후 광복군으로 복무하였다. 1943년 1월 허난성 방면 적구공작에 파견되어 활동하다가 8‧15광복 후인 1946년 6월 귀국하였다.
김일환 (金一煥)
김일환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12월부터 1년간 중국의 철도경호대를 졸업하고, 1940년 3월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단에 입단하여 이듬해 9월 졸업한 후 광복군으로 복무하였다. 1943년 1월 허난성 방면 적구공작에 파견되어 활동하다가 8‧15광복 후인 1946년 6월 귀국하였다.
김준엽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재학 중 1944년 일본 제국주의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중국 국민정부 군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장준하, 노능서 등과 활동하였다. 특히, 미국의 OSS작전에 투입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준엽 (金俊燁)
김준엽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재학 중 1944년 일본 제국주의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중국 국민정부 군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장준하, 노능서 등과 활동하였다. 특히, 미국의 OSS작전에 투입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민영수는 일제강점기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창설 이후 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5월부터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지대의 한미 합작 특수훈련 당시 OSS 군사작전에 참여하였다.
민영수 (閔泳秀)
민영수는 일제강점기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창설 이후 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5월부터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지대의 한미 합작 특수훈련 당시 OSS 군사작전에 참여하였다.
박영진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국청년훈련공작대, 한국광복군 창설과 함께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OSS 작전에 합류하면서 인도, 미얀마 등지의 전선에서도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박영진 (朴永晋)
박영진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국청년훈련공작대, 한국광복군 창설과 함께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OSS 작전에 합류하면서 인도, 미얀마 등지의 전선에서도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백정갑은 1944년 1월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일본군에 복무하다가 중국 쉬저우에서 탈출하여 한국광복군 초모처에서 운영하는 한국광복군 훈련반에서 간부훈련을 받고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의 경위대, 총사령부 부관처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백정갑 (白正甲)
백정갑은 1944년 1월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일본군에 복무하다가 중국 쉬저우에서 탈출하여 한국광복군 초모처에서 운영하는 한국광복군 훈련반에서 간부훈련을 받고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의 경위대, 총사령부 부관처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심광식은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반을 졸업하였으며, 1936년 조선혁명당에 입당하였다. 그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및 임시의정원 의원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국독립운동의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다.
심광식 (沈光植)
심광식은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반을 졸업하였으며, 1936년 조선혁명당에 입당하였다. 그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및 임시의정원 의원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국독립운동의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다.
오성행은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1939년 중국군사위원회 제18집단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에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한 후 다시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배속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초모 활동에 주력하였다.
오성행 (吳成行)
오성행은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1939년 중국군사위원회 제18집단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에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한 후 다시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배속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초모 활동에 주력하였다.
전태산은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나 1935년 중국 뤄양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이청천(지청천)이 이끄는 민족혁명당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창설에도 참여하였으며, 한국광복군 창설 시 현장에 있었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하여 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전태산 (全泰山)
전태산은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나 1935년 중국 뤄양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이청천(지청천)이 이끄는 민족혁명당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창설에도 참여하였으며, 한국광복군 창설 시 현장에 있었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하여 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