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정애"
검색결과 총 39건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000회를 맞은 수요시위를 기념하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건립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이다. 이후 건립된 ‘위안부' 기림비를 통칭하여 ‘소녀상’으로 부른다. 일본 정부의 소녀상 건립 반대 및 철거 주장에 대응하여 국내외에 소녀상 건립이 확산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 (平和의 少女像)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000회를 맞은 수요시위를 기념하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건립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이다. 이후 건립된 ‘위안부' 기림비를 통칭하여 ‘소녀상’으로 부른다. 일본 정부의 소녀상 건립 반대 및 철거 주장에 대응하여 국내외에 소녀상 건립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는 대한민국과 타이완, 중국, 필리핀 등 위안부 피해를 입은 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및 활동가, 시민들이 국경을 넘어 ‘위안부‘ 문제 해결 모색을 위해 조직한 국제연대회의이다. 1992년 8월부터 개최되기 시작하여 1~2년마다 회의를 열어 위안부 문제 현안에 대응하고 있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에 대한 전시 성 노예 문제 제기, 일본군 성 노예 전범 처벌을 위한 2000년 여성국제법정 개최 등 국제 인권운동과 여성운동 진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日本軍 ‘慰安婦’ 問題解決을 위한 亞細亞連帶會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는 대한민국과 타이완, 중국, 필리핀 등 위안부 피해를 입은 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및 활동가, 시민들이 국경을 넘어 ‘위안부‘ 문제 해결 모색을 위해 조직한 국제연대회의이다. 1992년 8월부터 개최되기 시작하여 1~2년마다 회의를 열어 위안부 문제 현안에 대응하고 있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에 대한 전시 성 노예 문제 제기, 일본군 성 노예 전범 처벌을 위한 2000년 여성국제법정 개최 등 국제 인권운동과 여성운동 진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韓日 日本軍 ‘慰安婦’ 合意)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의 정치적 합의이다. 2014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국장급 및 고위급 협의를 병행해 온 한일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공동기자회견 방식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하였다. 정부 주도의 합의 과정은 비민주적이었으며, 피해자 중심 접근도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은 해산되었으며, 일본 정부의 출연금 잔액은 처리되지 못한 상태이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韓日 日本軍 ‘慰安婦’ 合意)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韓日 日本軍 ‘慰安婦’ 合意)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의 정치적 합의이다. 2014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국장급 및 고위급 협의를 병행해 온 한일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공동기자회견 방식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하였다. 정부 주도의 합의 과정은 비민주적이었으며, 피해자 중심 접근도 반영되지 않았다. 현재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은 해산되었으며, 일본 정부의 출연금 잔액은 처리되지 못한 상태이다.
평양성도 병풍은 조선 후기, 평양성 일대의 경관을 연폭 병풍에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평양부의 실제 경관을 8폭 병풍에 그렸다. 평양성 일대의 산과 하천을 비롯해 행정, 군사, 제례, 문화 관련 시설 등 자연적, 인문적 형세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시설물과 화풍의 특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병풍 형식 평양기성도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올라간다.
평양성도 병풍 (平壤城圖 屛風)
평양성도 병풍은 조선 후기, 평양성 일대의 경관을 연폭 병풍에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평양부의 실제 경관을 8폭 병풍에 그렸다. 평양성 일대의 산과 하천을 비롯해 행정, 군사, 제례, 문화 관련 시설 등 자연적, 인문적 형세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시설물과 화풍의 특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병풍 형식 평양기성도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올라간다.
2012년 5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설립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박물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戰爭과女性人權博物館)
2012년 5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설립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박물관.
2015년 12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실상을 알리고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부산광역시 남구에 건립된 역사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國立日帝强制動員歷史館)
2015년 12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실상을 알리고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부산광역시 남구에 건립된 역사관.
불특정인을 상대로 일정한 대가를 주고받기로 하고 성관계 또는 유사 성행위를 하는 매매행위. 매춘·매매춘·윤락·매음·추업.
성매매 (性賣買)
불특정인을 상대로 일정한 대가를 주고받기로 하고 성관계 또는 유사 성행위를 하는 매매행위. 매춘·매매춘·윤락·매음·추업.
공창제는 1916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에 의해 식민지 조선에서 실시된 성매매 관리제도이다. 포주가 여성의 성을 팔고 남성이 성을 사는 것을 국가가 합법화 혹은 묵인하면서 법으로 관리하는 성매매 관리제도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일본에 존재하던 제도인데, 일제는 조계지·식민지·점령지 등에 이 제도를 이식했다. 해방 후 ‘공창제 폐지령‘을 실시하여 공식적으로는 공창제를 폐지했으나 ’묵인·관리‘를 특성으로 하는 공창제는 해체되지 않은 채 한국 성매매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2004년에 이르러서야 법률 제정으로 성매매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공창제 (公娼制)
공창제는 1916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에 의해 식민지 조선에서 실시된 성매매 관리제도이다. 포주가 여성의 성을 팔고 남성이 성을 사는 것을 국가가 합법화 혹은 묵인하면서 법으로 관리하는 성매매 관리제도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일본에 존재하던 제도인데, 일제는 조계지·식민지·점령지 등에 이 제도를 이식했다. 해방 후 ‘공창제 폐지령‘을 실시하여 공식적으로는 공창제를 폐지했으나 ’묵인·관리‘를 특성으로 하는 공창제는 해체되지 않은 채 한국 성매매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2004년에 이르러서야 법률 제정으로 성매매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유곽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조성된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 또는 그 집결지를 일컫는 말이다. 본래 17세기 초반,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공창제에 법적 근거를 두고 국가권력의 허가를 받아 성매매 영업을 하는 집결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일본의 정치력이 미쳤던 모든 지역에 이식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876년 조선이 개항된 직후부터 부산과 원산, 인천의 개항장에 일본인 유곽 업자와 창기들이 나타났다. 해방 이후 공창제는 폐지되었지만 공공연한 사창 영업과 국가권력의 묵인은 여전히 남아 탈식민의 과제가 되었다.
유곽 (遊廓)
유곽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조성된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 또는 그 집결지를 일컫는 말이다. 본래 17세기 초반,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공창제에 법적 근거를 두고 국가권력의 허가를 받아 성매매 영업을 하는 집결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일본의 정치력이 미쳤던 모든 지역에 이식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876년 조선이 개항된 직후부터 부산과 원산, 인천의 개항장에 일본인 유곽 업자와 창기들이 나타났다. 해방 이후 공창제는 폐지되었지만 공공연한 사창 영업과 국가권력의 묵인은 여전히 남아 탈식민의 과제가 되었다.
송계월은 일제강점기 잡지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이자 항일운동가·소설가·평론가이다. 1911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출생했다.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3차례 동맹휴교를 주도하였으며, 1930년 서울여학생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출감 후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내가 신여성이기 때문에」 등 여성차별과 해방에 관한 많은 글을 썼다. 「가두 연락의 첫날」, 「공장 소식」, 「젊은 어머니」 등의 소설도 집필했다. 1933년 수감 생활 중 얻은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송계월 (宋桂月)
송계월은 일제강점기 잡지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이자 항일운동가·소설가·평론가이다. 1911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출생했다.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3차례 동맹휴교를 주도하였으며, 1930년 서울여학생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출감 후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내가 신여성이기 때문에」 등 여성차별과 해방에 관한 많은 글을 썼다. 「가두 연락의 첫날」, 「공장 소식」, 「젊은 어머니」 등의 소설도 집필했다. 1933년 수감 생활 중 얻은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이일정은 일제강점기 국채보상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남편 이준과 함께 반일운동 및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876년 출생하여 1935년 사망했다. 이준의 후처 또는 첩으로 알려져 있다. 1905년 봄 서울 안현동(지금 안국동 일대)에 한국 최초의 '부인상점'을 개업해 1910년경까지 운영하였다. 기독교인이면서 신교육을 받았던 이일정은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언론을 통해 자신의 시국인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1907년 헤이그로 파견된 이준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하얼빈,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았지만 별 성과 없이 돌아왔다.
이일정 (李一貞)
이일정은 일제강점기 국채보상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남편 이준과 함께 반일운동 및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876년 출생하여 1935년 사망했다. 이준의 후처 또는 첩으로 알려져 있다. 1905년 봄 서울 안현동(지금 안국동 일대)에 한국 최초의 '부인상점'을 개업해 1910년경까지 운영하였다. 기독교인이면서 신교육을 받았던 이일정은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언론을 통해 자신의 시국인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1907년 헤이그로 파견된 이준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하얼빈,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았지만 별 성과 없이 돌아왔다.
해방 이후 마산결핵요양원 간호원장을 역임한 의료인. 간호사.
이효정 (李孝貞)
해방 이후 마산결핵요양원 간호원장을 역임한 의료인. 간호사.
강릉 회암영당에 보관되어 있는 주희(朱熹)의 초상화.
강릉 회암영당 주희 영정 (江陵 晦庵影堂 朱熹 影幀)
강릉 회암영당에 보관되어 있는 주희(朱熹)의 초상화.
평양기성도는 조선시대 평양부 내외의 실제 경관을 담은 그림이다. 평양은 기성(箕城)·낙랑(樂浪)·서경(西京)·서도(西都) 등 다양한 명칭으로 지칭되었다. 16세기 후반부터 기자조선에 대한 논의가 증대되면서 ‘기성도’로 지칭하는 관습이 생겼다. 18세기 평양에서 상업과 무역이 성행함에 따라 그 수요도 증가하여 20세기 초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평양의 산·하천·동굴·섬·기암·폭포 등의 천연 경관과 공적 시설물 및 고적·누대·사찰 등 역사 경관과 문화 경관이 조합되어 있다.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 개인 소장품 등으로 전하는 작품이 상당히 많다.
평양기성도 (平壤箕城圖)
평양기성도는 조선시대 평양부 내외의 실제 경관을 담은 그림이다. 평양은 기성(箕城)·낙랑(樂浪)·서경(西京)·서도(西都) 등 다양한 명칭으로 지칭되었다. 16세기 후반부터 기자조선에 대한 논의가 증대되면서 ‘기성도’로 지칭하는 관습이 생겼다. 18세기 평양에서 상업과 무역이 성행함에 따라 그 수요도 증가하여 20세기 초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평양의 산·하천·동굴·섬·기암·폭포 등의 천연 경관과 공적 시설물 및 고적·누대·사찰 등 역사 경관과 문화 경관이 조합되어 있다.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 개인 소장품 등으로 전하는 작품이 상당히 많다.
변호사 이태영(李兌榮)이 중심이 되어 1956년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법률 구조 기관이자 여성운동 단체이다. 현실에 도움이 되는 법률 상담과 여성의 의식 개혁을 위한 교육 사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66년에 법무부의 인가를 받아 사단법인이 되었다. 다양한 무료 법률 상담과 함께 가족법 제·개정 운동을 주도하였다. 상담자는 대부분 가정 내 불평등과 부당 대우를 호소하는 여성들이었다. 2000년대에는 그간의 가족법 개정 운동에서 성과를 보지 못한 호주제를 폐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2008년부터 다문화가정을 위한 영어 상담도 시작하였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韓國家庭法律相談所)
변호사 이태영(李兌榮)이 중심이 되어 1956년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법률 구조 기관이자 여성운동 단체이다. 현실에 도움이 되는 법률 상담과 여성의 의식 개혁을 위한 교육 사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66년에 법무부의 인가를 받아 사단법인이 되었다. 다양한 무료 법률 상담과 함께 가족법 제·개정 운동을 주도하였다. 상담자는 대부분 가정 내 불평등과 부당 대우를 호소하는 여성들이었다. 2000년대에는 그간의 가족법 개정 운동에서 성과를 보지 못한 호주제를 폐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2008년부터 다문화가정을 위한 영어 상담도 시작하였다.
진주성(晋州城) 내외의 경관을 10폭의 병풍에 재현한 19세기 회화식 지도.
진주성도 (晋州城圖)
진주성(晋州城) 내외의 경관을 10폭의 병풍에 재현한 19세기 회화식 지도.
「기성도병」은 평양성 내외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과 풍정을 재현한 19세기 산수화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155.9㎝, 가로 419.9㎝이다. 가로로 연결되는 8첩 병풍에 평양부성, 대동강 일대, 인근의 산악 풍경과 평안감사 행렬을 담았다. ‘기성’이라는 지명은 평양이 고대 기자조선의 수도라는 인식에서 붙여졌다. 풍경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조망해 담았다. 주요 경물 옆에 해서로 명칭을 부기하였다. 짜임새 있는 구도와 안정된 필묵법이 적용되었고, 제작 당시 평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각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기성도병 (箕城圖屛)
「기성도병」은 평양성 내외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과 풍정을 재현한 19세기 산수화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155.9㎝, 가로 419.9㎝이다. 가로로 연결되는 8첩 병풍에 평양부성, 대동강 일대, 인근의 산악 풍경과 평안감사 행렬을 담았다. ‘기성’이라는 지명은 평양이 고대 기자조선의 수도라는 인식에서 붙여졌다. 풍경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조망해 담았다. 주요 경물 옆에 해서로 명칭을 부기하였다. 짜임새 있는 구도와 안정된 필묵법이 적용되었고, 제작 당시 평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각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관서명승도첩은 평안도의 명승도 16폭으로 꾸며진 19세기 화첩이다. 200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43.3㎝, 가로 32㎝이다. 앞쪽 내지에 찍인 인장으로 보아 진주 하씨 집안의 소장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명승도와 같이 각 장면은 누정이나 정자를 중심으로 일대 자연 경관을 포괄하였다. 이례적으로 평양의 경관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망한 점이나 묘향산이나 육육동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화풍상으로는 청록채색 기법을 적용하였다. 조선시대 평안도의 명승지에 대한 관심과 재현 양상을 엿볼 수 있다.
관서명승도첩 (關西名勝圖帖)
관서명승도첩은 평안도의 명승도 16폭으로 꾸며진 19세기 화첩이다. 200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43.3㎝, 가로 32㎝이다. 앞쪽 내지에 찍인 인장으로 보아 진주 하씨 집안의 소장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명승도와 같이 각 장면은 누정이나 정자를 중심으로 일대 자연 경관을 포괄하였다. 이례적으로 평양의 경관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망한 점이나 묘향산이나 육육동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화풍상으로는 청록채색 기법을 적용하였다. 조선시대 평안도의 명승지에 대한 관심과 재현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무신(武臣) 임득의(林得義, 1558-1612)의 정장관복본(正裝官服本) 초상화.
임득의 초상 (林得義 肖像)
조선 후기에 제작된 무신(武臣) 임득의(林得義, 1558-1612)의 정장관복본(正裝官服本) 초상화.
중국 유학의 시조인 공자의 행적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한 그림. 성적도·공부자성적도·성적지도.
공자성적도 (孔子聖蹟圖)
중국 유학의 시조인 공자의 행적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한 그림. 성적도·공부자성적도·성적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