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배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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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창가수는 일제강점기 이후 한 시대를 대표할 정도로 훌륭한 명창을 일컫는 가수이다. 국창이란 ‘나라의 명창’이란 뜻으로 전통음악에서 빼어난 명창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들어가 임금 앞에서 소리를 했다고 하여 ‘어전 광대’란 말이 쓰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왕조가 몰락하면서 국창이란 말이 쓰였다. 국창의 기준은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 전국민적 인기로 변화했다.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제도 이후에는 국가 차원에서 행정적으로 공인된 중요무형유산 예능보유자 중에서 기량이 특히 뛰어나고 인기가 높은 명창을 지칭할 때 쓰이고 있다.
국창가수 (國唱歌手)
국창가수는 일제강점기 이후 한 시대를 대표할 정도로 훌륭한 명창을 일컫는 가수이다. 국창이란 ‘나라의 명창’이란 뜻으로 전통음악에서 빼어난 명창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들어가 임금 앞에서 소리를 했다고 하여 ‘어전 광대’란 말이 쓰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왕조가 몰락하면서 국창이란 말이 쓰였다. 국창의 기준은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 전국민적 인기로 변화했다.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제도 이후에는 국가 차원에서 행정적으로 공인된 중요무형유산 예능보유자 중에서 기량이 특히 뛰어나고 인기가 높은 명창을 지칭할 때 쓰이고 있다.
판소리 한 바탕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 소리의 눈.
눈대목
판소리 한 바탕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 소리의 눈.
판소리 명창은 판소리를 잘 부르는 예능인이다. 소리꾼이라고도 한다. 판소리는 개화기 이후의 말이고 전통사회에서는 ‘소리’라고 했다. 명창은 소리 실력의 등급을 의미하는 말로 명창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득음’이다. 권삼득·염계달·송흥록 등 19세기 전반기 빼어난 명창을 전기 팔명창이라 한다. 박유전·이날치·정창업 등은 19세기 후기 팔명창이다. 또한 20세기 전반에는 오명창으로 송만갑·김창룡·정정렬 등을 꼽는다. 1964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도가 시행되어 박녹주(1905), 김연수(1907) 등이 지정되었다.
판소리 명창 (판소리 名唱)
판소리 명창은 판소리를 잘 부르는 예능인이다. 소리꾼이라고도 한다. 판소리는 개화기 이후의 말이고 전통사회에서는 ‘소리’라고 했다. 명창은 소리 실력의 등급을 의미하는 말로 명창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득음’이다. 권삼득·염계달·송흥록 등 19세기 전반기 빼어난 명창을 전기 팔명창이라 한다. 박유전·이날치·정창업 등은 19세기 후기 팔명창이다. 또한 20세기 전반에는 오명창으로 송만갑·김창룡·정정렬 등을 꼽는다. 1964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도가 시행되어 박녹주(1905), 김연수(1907) 등이 지정되었다.
1989년에 창립된 한국 음향자료 수집과 연구를 위한 민간 학술 및 동호인 단체.
한국고음반연구회 (韓國古音盤硏究會)
1989년에 창립된 한국 음향자료 수집과 연구를 위한 민간 학술 및 동호인 단체.
또랑광대전국협의회에서 새로운 판소리에 대한 모색으로 개최된 창작 판소리 경연대회. 창작판소리경연대회.
또랑광대콘테스트 (또랑광대contest)
또랑광대전국협의회에서 새로운 판소리에 대한 모색으로 개최된 창작 판소리 경연대회. 창작판소리경연대회.
사단법인 임방울국악진흥재단이 매년 가을 광주광역시에서 임방울 명창의 업적을 기리고, 판소리 계승 발전을 목적으로 개최하는 경연대회. 국악경연대회.
임방울국악제 (林芳蔚國樂祭)
사단법인 임방울국악진흥재단이 매년 가을 광주광역시에서 임방울 명창의 업적을 기리고, 판소리 계승 발전을 목적으로 개최하는 경연대회. 국악경연대회.
해방 이후 광주호남 국악원, 전남미술예술학원, 남도국악학원 등에서 소리선생으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
공대일 (孔大一)
해방 이후 광주호남 국악원, 전남미술예술학원, 남도국악학원 등에서 소리선생으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
일제강점기 서편제 판소리의 명창.
박동실 (朴東實)
일제강점기 서편제 판소리의 명창.
박동진은 해방 이후 판소리 「적벽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이다. 1916년에 태어나 2003년에 사망했다. 1930년대 김창진, 정정렬 등 여러 소리꾼에게 소리를 배우며 다양한 소리제를 경험했다. 1960∼70년대에 판소리 5바탕을 완창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전」 등 여러 창작 판소리를 지었다. 1973년 국가무형유산 「적벽가」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창극단장을 역임하였다. 그의 소리 공력과 공연 능력은 당대 최고로 꼽히고 있다. 현재 『박동진 애창곡집 판소리 다섯 마당』 등 많은 음반과 공연 실황 녹음이 남아 있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박동진 (朴東鎭)
박동진은 해방 이후 판소리 「적벽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이다. 1916년에 태어나 2003년에 사망했다. 1930년대 김창진, 정정렬 등 여러 소리꾼에게 소리를 배우며 다양한 소리제를 경험했다. 1960∼70년대에 판소리 5바탕을 완창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전」 등 여러 창작 판소리를 지었다. 1973년 국가무형유산 「적벽가」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창극단장을 역임하였다. 그의 소리 공력과 공연 능력은 당대 최고로 꼽히고 있다. 현재 『박동진 애창곡집 판소리 다섯 마당』 등 많은 음반과 공연 실황 녹음이 남아 있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해방 이후 방송을 통해 많은 작품 활동을 한 판소리의 명창.
안향련 (安香蓮)
해방 이후 방송을 통해 많은 작품 활동을 한 판소리의 명창.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오정숙 (吳貞淑)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해방 이후 판소리 「수궁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판소리명창.
정광수 (丁珖秀)
해방 이후 판소리 「수궁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판소리명창.
대한제국기 원각사에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
정재근 (鄭在根)
대한제국기 원각사에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
일제강점기 가야금 명인이자 판소리의 명창.
한성태 (韓成泰)
일제강점기 가야금 명인이자 판소리의 명창.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한승호 (韓承鎬)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판소리 흥보가 중의 한 대목으로, 놀보에게 쫓겨난 흥보 내외가 가난하게 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
가난타령 (가난打令)
판소리 흥보가 중의 한 대목으로, 놀보에게 쫓겨난 흥보 내외가 가난하게 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
판소리 단가. 역대 덕행·문장·권력을 지닌 인물들도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함.
공도난리 (公道難離)
판소리 단가. 역대 덕행·문장·권력을 지닌 인물들도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함.
1973년 김지하(金芝河)가 창작한 담시(譚詩) 「분씨물어(糞氏物語)」를 1985년 임진택이 작곡하여 「똥바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창작 판소리. 공연시간 약 1시간.
똥바다
1973년 김지하(金芝河)가 창작한 담시(譚詩) 「분씨물어(糞氏物語)」를 1985년 임진택이 작곡하여 「똥바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창작 판소리. 공연시간 약 1시간.
판소리 단가로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느끼는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함. 김연수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절가」 또는 「이 산 저 산」이라고도 함.
사시풍경 (四時風景)
판소리 단가로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느끼는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함. 김연수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절가」 또는 「이 산 저 산」이라고도 함.
판소리 단가.
역려과객 (逆旅過客)
판소리 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