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명창은 판소리를 잘 부르는 예능인이다. 소리꾼이라고도 한다. 판소리는 개화기 이후의 말이고 전통사회에서는 ‘소리’라고 했다. 명창은 소리 실력의 등급을 의미하는 말로 명창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득음’이다. 권삼득·염계달·송흥록 등 19세기 전반기 빼어난 명창을 전기 팔명창이라 한다. 박유전·이날치·정창업 등은 19세기 후기 팔명창이다. 또한 20세기 전반에는 오명창으로 송만갑·김창룡·정정렬 등을 꼽는다. 1964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도가 시행되어 박녹주(1905), 김연수(1907) 등이 지정되었다.
명창(名唱)이란 ‘노래를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 ‘노래를 잘 불러 이름이 난 사람’이란 뜻이다. 판소리명창이란 ‘판소리를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을 일컫지만, 현대에 와서는 판소리 하는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말로 쓰인다.
현대 말에는 ‘판소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 ‘판소리를 부르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가 없어서 명창, 소리꾼, 창자(唱者), 연주자(演奏者), 가수(歌手) 등 다양한 말이 사용된다. 그 가운데 ‘명창’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소리를 학습하고 있는 사람, 아직 소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사용하기는 어렵다.
‘소리꾼’이란 노래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지만, 판소리만을 뜻하지 않고, 당사자들은 오히려 폄하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꾼’이란 접미사가 ‘나무꾼’, ‘노름꾼’처럼 천시하거나 폄하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인’이나 ‘광대’와 같은 조선시대의 용어를 빌어서 쓸 수 있지만, 신분사회를 연상케 하여 당사자들이 매우 싫어한다.
‘창자(唱者)’란 소리하는 사람을 객관화시켜서 부르는 학술적인 용어로 일반인들에게는 낯설다. 연주자(player)는 통상 기악을 연주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가수는 서양음악이나 대중가요를 부르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판소리는 개화기 이후에 쓰인 말이고, 전통사회에서 판소리는 그냥 ‘소리’라고 하였고, 동사는 ‘소리하다’이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판소리를 부르는 사람을 한역(漢譯)하여 ‘재인(才人)’, ‘광대(廣大)’, ‘창우(倡優)’, ‘배우(俳優)’, ‘창부(唱夫)’, ‘가객(歌客)’, ‘명창(名唱)’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하였다.
재인은 「정해소지(丁亥所志)」의 ‘팔도재인등 등장(八道才人等 等狀)’이나 「갑신완문(甲申完文)」의 ‘등장팔도재인(等狀 八道才人)’, 즉 ‘팔도 재인들의 청원서’와 같은 용례처럼 신분을 뜻하는 말이다. 광대는 가장 널리 쓰인 말로, 본래는 큰 가면을 쓰고 탈놀음을 하는 사람을 뜻하였지만, 연희(演戱)나 가창(歌唱)을 직업으로 삼는 직능(職能)을 총칭하는 말로 의미가 확대되었고, 창우나 배우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줄광대, 소리광대, 어릿광대와 같이 기능에 따라서 구분하기도 한다. 창부나 가객은 직업으로 노래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이며, 명창은 선가(善歌)와 같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란 뜻의 일반명사이므로 판소리 연주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명창의 상대어로 실력이 낮은 소리꾼을 ‘또랑광대’라고 하는데, 판소리의 경우에만 사용된다.
명창은 직업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소리 실력의 등급을 의미하는 말이다. 19세기 전반기에 가장 빼어난 명창 여덟을 꼽아서 전기 팔명창( 권삼득 · 염계달 · 송흥록 · 김제철 · 모흥갑 · 고수관 · 신만엽 · 방만춘)이라 하고, 19세기 후반에는 후기 팔명창(송우용 · 박만순 · 김세종 · 정춘풍 · 박유전 · 이날치 · 정창업 · 전해종)이라고 한다. 왜 팔명창(八名唱)을 꼽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재효의 「광대가」를 보면 명창의 소리 특징을 중국의 시인이나 문인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가 판소리명창에 유추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세기 전반에는 오명창( 김창환 · 송만갑 · 이동백 · 김창룡 · 정정렬)을 꼽는다. 팔명창이나 오명창에 든다는 것이 판소리계에서는 평가의 절대적인 잣대가 된다.
광복 후에는 오명창에 필적할 만한 실력을 지닌 명창이 없고, 대신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임방울에게 ‘국창’이란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1964년부터는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도가 시행되었고, 예능보유자를 일러서 속칭 ‘인간문화재’라는 말을 사용했다. ‘인간문화재’는 본래 1960년 예용해(芮庸海)가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기능을 지닌 사람을 신문에 소개하면서 사용한 말인데, 중요무형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관례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제도적으로 공인된 것이므로 매우 영예롭게 생각하였다. 1960∼70년대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박녹주(1905), 김연수(1907), 김여란(1907), 정광수(1909), 박초월(1913), 김소희(1917), 정권진(1927), 박동진(1916), 박봉술(1922), 한승호(1924) 등 예능보유자들은 일제강점기 이후 전승이 단절되고 변형된 판소리의 원형을 회복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들을 현대 명창으로 꼽는 데는 대체로 이의가 없다.
신재효는 소리광대의 조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를 꼽았다. 이 가운데 사설치레는 말이나 재담을 잘 하는 것이고, 너름새는 발림이라고도 하며 연기력을 뜻한다. 사설치레와 너름새는 현장에서의 공연능력과 관계되는 것이다. 판소리 명창을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득음’으로, 좁은 의미로는 발성법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음악적 수행능력 전체를 의미한다. 혼자서 장시간을 공연하는 만큼 발성법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천부적인 미성을 ‘청구성’이라고 하고, 오랜 훈련을 통해서 얻게 되는 걸걸하고 쉰 듯한 목소리를 ‘수리성’이라고 한다. 이 둘은 판소리 명창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이다. 반면 훈련되지 않은 되바라진 가벼운 소리나 음정이 맞지 않는 소리로는 명창이 될 수 없다. 좋은 목을 갖추고 있더라도 아니리나 재담 같은 임기응변이 서투르고, 발림에 능하지 못하면 흠결로 친다.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소리를 달리 짜기도 하고, 즉흥성도 많기 때문에 작사 · 작곡자와 연주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조선창극사』를 보면 뛰어난 명창들은 대개 자신의 더늠을 가지고 있다. 장기로 부르는 대목이나 새로 만든 대목을 ‘더늠’이라고 하는데, 권삼득의 ‘제비가’, 송흥록의 ‘귀곡성’, 김성옥의 ‘진양조’ 등이나 김창환의 ‘제비노정기’, 임방울의 ‘쑥대머리’도 그런 예이다. 이러한 더늠은 판소리 음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므로 뛰어난 명창은 훌륭한 연주가이기도 하지만, 작곡 능력 또한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원형의 회복과 전승’이 시급한 과제가 되다 보니 1970년대 이후에는 스승의 소리를 판박이로 하는 ‘사진소리’, ‘박음소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져서 예술성과 창의력을 지닌 명창을 찾기 어려워졌다. 현대에는 대체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소리꾼을 명창이라고 하며, 소리꾼을 대우하는 말로도 쓴다. 신춘문예가 문인의 등용문인 것처럼, 판소리 경연대회 수상자를 명창의 등용문으로 삼는 경향이 있으나 실력이 천차만별이므로 특별한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