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성주현"
검색결과 총 73건
일제강점기 대동일보 사장, 시사신문 대표 등을 역임한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원식 (閔元植)
일제강점기 대동일보 사장, 시사신문 대표 등을 역임한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개항기 동부승지, 대사성 등을 역임한 관리.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철훈 (閔哲勳)
개항기 동부승지, 대사성 등을 역임한 관리. 친일반민족행위자.
바하이교는 1921년에 전래된 이슬람교 계통의 외래 신종교이다. 빠하교, 바하이한국중앙회, 바하이한국공동체,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라고도 한다. 바하이교는 1844년 바하 올라로 알려진 미르자 호세인 알리 누리(1817∼1892)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교조 바하 올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고, 바하이는 바하 올라를 따르는 교도를 말한다. 이들은 예언자 바압, 교조 바하 올라, 바하 올라의 아들 압둘 바하를 숭배한다. 한국에는 1921년 아그네스 알렉산더 여사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966년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가 설립되었다.
바하이교 (Baha’i敎)
바하이교는 1921년에 전래된 이슬람교 계통의 외래 신종교이다. 빠하교, 바하이한국중앙회, 바하이한국공동체,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라고도 한다. 바하이교는 1844년 바하 올라로 알려진 미르자 호세인 알리 누리(1817∼1892)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교조 바하 올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고, 바하이는 바하 올라를 따르는 교도를 말한다. 이들은 예언자 바압, 교조 바하 올라, 바하 올라의 아들 압둘 바하를 숭배한다. 한국에는 1921년 아그네스 알렉산더 여사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966년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가 설립되었다.
박기양은 일제강점기 서화협회 고문, 경학원 부제학,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56년(철종 7)에 태어나 1932년에 사망했다. 1888년 문과에 급제한 후 경기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대한제국기에는 중추원 의관, 철도학교 교장, 궁내부 특진관을 지냈다. 일제 침략에 협력한 대가로 일본 정부의 남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귀족관광단이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조선귀족회 간사로 활동했다. 서화협회의 고문과 조선미술전람회 평의원으로 활동했는데 금(琴)·기(棋)·행서(行書)·묵죽(墨竹)에 능했다고 한다.
박기양 (朴箕陽)
박기양은 일제강점기 서화협회 고문, 경학원 부제학,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56년(철종 7)에 태어나 1932년에 사망했다. 1888년 문과에 급제한 후 경기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대한제국기에는 중추원 의관, 철도학교 교장, 궁내부 특진관을 지냈다. 일제 침략에 협력한 대가로 일본 정부의 남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귀족관광단이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조선귀족회 간사로 활동했다. 서화협회의 고문과 조선미술전람회 평의원으로 활동했는데 금(琴)·기(棋)·행서(行書)·묵죽(墨竹)에 능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지사, 경상북도 지사,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 ·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서규 (金瑞圭)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지사, 경상북도 지사,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 ·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한성판윤, 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남정철 (南廷哲)
일제강점기 한성판윤, 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함경남도·평안남도 참여관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승봉 (朴勝鳳)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함경남도·평안남도 참여관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봉상사 제조, 규장각 제학, 일제강점기 남작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용대 (朴容大)
일제강점기 봉상사 제조, 규장각 제학, 일제강점기 남작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황해도 관찰사, 황해도 세무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이양 (朴彛陽)
일제강점기 황해도 관찰사, 황해도 세무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이조판서, 시종원경, 남작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영철 (金永哲)
일제강점기 이조판서, 시종원경, 남작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74년(고종 11)에 태어나 1959년에 사망했다.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수양아들이다. 1897년에 관비장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군의 통역관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의친왕의 통역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중추원 참의, 황해도 지사, 충청북도 지사 등을 역임했다.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고문 등 친일 활동에 가담하였다.
박중양 (朴重陽)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74년(고종 11)에 태어나 1959년에 사망했다.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수양아들이다. 1897년에 관비장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군의 통역관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의친왕의 통역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중추원 참의, 황해도 지사, 충청북도 지사 등을 역임했다.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고문 등 친일 활동에 가담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야마토동맹 이사, 대의당 당수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춘금 (朴春琴)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야마토동맹 이사, 대의당 당수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이토[伊藤博文]의 양녀가 되어 일본의 조선 정보원으로 활동한 밀정. 친일반민족행위자.
배정자 (裵貞子)
일제강점기 이토[伊藤博文]의 양녀가 되어 일본의 조선 정보원으로 활동한 밀정.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제국기 한성판윤, 궁내부대신, 의정부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규 (閔泳奎)
대한제국기 한성판윤, 궁내부대신, 의정부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기는 농상공부 대신, 군부대신 서리, 이왕직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58년(철종 9)에 태어나 1927년에 사망했다. 1879년 무과에 급제하고 운봉 현감, 서산 군수,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김홍집 내각에서 조사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되었고 귀국 후 탁지부와 농상공부 대신을 역임했다. 대한제국기에는 안경수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형을 받았는데, 이후 재임용되어 중추원 고문, 동양척식회사 부총재 등을 지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협력한 대가로 일본 정부의 남작 작위를 받았다.
민영기 (閔泳綺)
민영기는 농상공부 대신, 군부대신 서리, 이왕직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58년(철종 9)에 태어나 1927년에 사망했다. 1879년 무과에 급제하고 운봉 현감, 서산 군수,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김홍집 내각에서 조사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되었고 귀국 후 탁지부와 농상공부 대신을 역임했다. 대한제국기에는 안경수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형을 받았는데, 이후 재임용되어 중추원 고문, 동양척식회사 부총재 등을 지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협력한 대가로 일본 정부의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궁내부 특진관, 동지돈녕부사, 규장각 제학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린 (閔泳璘)
일제강점기 궁내부 특진관, 동지돈녕부사, 규장각 제학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호조판서, 궁내부 대신, 중추원 의장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소 (閔泳韶)
일제강점기 호조판서, 궁내부 대신, 중추원 의장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궁내부 협판, 육군 참장,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찬 (閔泳瓚)
일제강점기 궁내부 협판, 육군 참장,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고원훈은 일제강점기 때, 보성전문학교 교수, 조선체육회 초대 이사장,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기업인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1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했다. 1910년 7월 메이지대학을 졸업했다. 1920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이 되고, 7월에 조선체육회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1933년 전라북도 지사가 되었다. 1938년 동광생사주식회사 사장이 되었다. 1939년부터 해방 때까지 중추원참의로 활동했다. 1944년 9월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 발기인으로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했다. 1950년 7월 하순경, 납북되었다.
고원훈 (高元勳)
고원훈은 일제강점기 때, 보성전문학교 교수, 조선체육회 초대 이사장,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기업인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1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했다. 1910년 7월 메이지대학을 졸업했다. 1920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이 되고, 7월에 조선체육회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1933년 전라북도 지사가 되었다. 1938년 동광생사주식회사 사장이 되었다. 1939년부터 해방 때까지 중추원참의로 활동했다. 1944년 9월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 발기인으로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했다. 1950년 7월 하순경, 납북되었다.
일제강점기 강원도 참여관, 강원도 지사, 전북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손영목 (孫永穆)
일제강점기 강원도 참여관, 강원도 지사, 전북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