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손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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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농군학교는 1962년에 김용기가 설립한 농민 교육과 사회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교육 기관이다. 1973년에 강원도 원주에 제2 가나안농군학교가 설립되었다. 1981년에 농군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영농 후계자 양성을 전문화하였고 이후 교육 대상을 확대하여 일반 사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90년대부터 해외 사업에 나섰으며 2016년에 유엔 공보국(DPI) 협력 엔지오(NGO) 지위를 획득했다. 2022년에 제1 가나안농군학교의 폐교로, 제2 가나안농군학교가 교명을 가나안농군학교로 바꾸며 명맥을 잇고 있다.
가나안농군학교 (Canaan農軍學敎)
가나안농군학교는 1962년에 김용기가 설립한 농민 교육과 사회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교육 기관이다. 1973년에 강원도 원주에 제2 가나안농군학교가 설립되었다. 1981년에 농군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영농 후계자 양성을 전문화하였고 이후 교육 대상을 확대하여 일반 사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90년대부터 해외 사업에 나섰으며 2016년에 유엔 공보국(DPI) 협력 엔지오(NGO) 지위를 획득했다. 2022년에 제1 가나안농군학교의 폐교로, 제2 가나안농군학교가 교명을 가나안농군학교로 바꾸며 명맥을 잇고 있다.
『기독교사상』은 1957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기독교의 토착화작업·기독교문화 향상 등을 목적으로 창간한 월간지이다. 현재 지령 700호를 넘어 계속 발행중이다. 사회 문화적 변동에 따라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하고 다양한 기독교 신학사상을 현대인에게 입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독교사상 (基督敎思想)
『기독교사상』은 1957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기독교의 토착화작업·기독교문화 향상 등을 목적으로 창간한 월간지이다. 현재 지령 700호를 넘어 계속 발행중이다. 사회 문화적 변동에 따라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하고 다양한 기독교 신학사상을 현대인에게 입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기는 광복 이후, 기독교 농촌 지도자 교육에 힘쓴 개신교인이다. 1935년에 '봉안 이상촌' 건설을 시작한 이래 평생 기독교 농민운동에 헌신하였다. 1962년 새마을운동의 모태라는 평가를 받는 가나안농군학교를 개교하였다. 1982년에는 농촌 후계자 양성을 위해 가나안농군사관학교를 설립하였다. 1966년 막사이사이상(사회 공익 부문)을 수상하였고 사후인 198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하였다.
김용기 (金容基)
김용기는 광복 이후, 기독교 농촌 지도자 교육에 힘쓴 개신교인이다. 1935년에 '봉안 이상촌' 건설을 시작한 이래 평생 기독교 농민운동에 헌신하였다. 1962년 새마을운동의 모태라는 평가를 받는 가나안농군학교를 개교하였다. 1982년에는 농촌 후계자 양성을 위해 가나안농군사관학교를 설립하였다. 1966년 막사이사이상(사회 공익 부문)을 수상하였고 사후인 198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하였다.
김재준은 해방 이후 『낙수』, 『요한계시록주석』, 『황야에 외치는 소리』 등을 저술한 신학자이자 목사, 재야 민주화운동가이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기독교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아빙돈 단권 주석 사건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 논쟁의 중심 인물이며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제명 처분은 1953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한 이래 재야인사로서 한국의 민주화 통일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김재준 (金在俊)
김재준은 해방 이후 『낙수』, 『요한계시록주석』, 『황야에 외치는 소리』 등을 저술한 신학자이자 목사, 재야 민주화운동가이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기독교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아빙돈 단권 주석 사건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 논쟁의 중심 인물이며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제명 처분은 1953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한 이래 재야인사로서 한국의 민주화 통일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김진호는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에게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신민회에 가입하며 민족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배포하고 배재학교 학생을 시위에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상동청년학원, 공옥학교, 배재학교, YMCA에서 성경, 한문, 역사 등을 가르쳤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김진호 (金鎭浩)
김진호는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에게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신민회에 가입하며 민족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배포하고 배재학교 학생을 시위에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상동청년학원, 공옥학교, 배재학교, YMCA에서 성경, 한문, 역사 등을 가르쳤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남대문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서울노회 소속의 교회이다. 제중원교회가 전신이다. 1904년 제중원이 남대문 밖으로 이전하면서 함께 이전하였고 이름도 남대문밖 혹은 남문밖교회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민족 운동가를 배출하였고 신사 참배에도 저항하였다. 1987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였고 2015년 6월에는 창립 130주년 기념식을 했다. 교회 건물은 보존 가치가 높은 고딕 양식의 석조 건축으로 2013년에 서울 미래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남대문교회 (南大門敎會)
남대문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서울노회 소속의 교회이다. 제중원교회가 전신이다. 1904년 제중원이 남대문 밖으로 이전하면서 함께 이전하였고 이름도 남대문밖 혹은 남문밖교회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민족 운동가를 배출하였고 신사 참배에도 저항하였다. 1987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였고 2015년 6월에는 창립 130주년 기념식을 했다. 교회 건물은 보존 가치가 높은 고딕 양식의 석조 건축으로 2013년에 서울 미래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다락방전도협회는 1960년에 설립된 기독교 복음 선교 운동체이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던 김활란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다. 초기 명칭은 금란전도협회였으나 1966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외국 선교부의 보조없이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었다. 전국복음화운동의 중심으로 다양한 선교 사업을 시행하였다. 2001년 이화여자대학교 부속기관이 되었으며 2008년부터 교목실에 편입되었다. 현재에도 주로 이화여자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학생 및 동문으로 구성되는 8개의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다락방전도협회 (다락房傳道協會)
다락방전도협회는 1960년에 설립된 기독교 복음 선교 운동체이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던 김활란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다. 초기 명칭은 금란전도협회였으나 1966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외국 선교부의 보조없이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었다. 전국복음화운동의 중심으로 다양한 선교 사업을 시행하였다. 2001년 이화여자대학교 부속기관이 되었으며 2008년부터 교목실에 편입되었다. 현재에도 주로 이화여자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학생 및 동문으로 구성되는 8개의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박형룡은 해방 이후 고려신학교 교장, 장로회신학교 교장, 총회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자 보수주의 신학자이다. 한국 기독교 보수신학의 거두로 손꼽힌다. 1927년 귀국하여 193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진보적인 신학 흐름을 막아내는 데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장로회의 신학교 운영을 놓고 입장을 달리하는 인사들과 갈등하면서 교회 분열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신학자로서 20여 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박형룡 (朴亨龍)
박형룡은 해방 이후 고려신학교 교장, 장로회신학교 교장, 총회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자 보수주의 신학자이다. 한국 기독교 보수신학의 거두로 손꼽힌다. 1927년 귀국하여 193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진보적인 신학 흐름을 막아내는 데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장로회의 신학교 운영을 놓고 입장을 달리하는 인사들과 갈등하면서 교회 분열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신학자로서 20여 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서상륜은 개항기 『예수셩교젼셔 마태복음』, 『말코복음』, 『예수셩교젼셔』 등을 번역한 개신교인이다. 양반 출신이나 13세에 부모를 잃고 의주와 만주를 오가는 홍삼 장사를 하다가 1878년부터 성서 번역에 참여하였다. 1882년에는 영국성서공회 권서로 파송되었다.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장연군 솔내 마을에 자생적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웠다. 장례식이 장로회 총회장으로 엄수되고 1938년 묘지에 총회 기념비가 세워질 정도로 초기 한국기독교 역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서상륜 (徐相崙)
서상륜은 개항기 『예수셩교젼셔 마태복음』, 『말코복음』, 『예수셩교젼셔』 등을 번역한 개신교인이다. 양반 출신이나 13세에 부모를 잃고 의주와 만주를 오가는 홍삼 장사를 하다가 1878년부터 성서 번역에 참여하였다. 1882년에는 영국성서공회 권서로 파송되었다.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장연군 솔내 마을에 자생적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웠다. 장례식이 장로회 총회장으로 엄수되고 1938년 묘지에 총회 기념비가 세워질 정도로 초기 한국기독교 역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손양원은 여순사건 당시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좌익 청년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기독교 목회자이자 순교자이다. 부산의 나병원 교회인 상애원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고 1938년부터는 여수의 나병원 교회인 애양원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해방 이후 출옥하였다. 여순사건 때 자신의 아들들을 죽이는 데 가담한 안재선의 구명 운동을 펼쳐 구해 내고 양자로 삼아 사후에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6·25전쟁 중 공산당원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손양원 (孫良源)
손양원은 여순사건 당시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좌익 청년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기독교 목회자이자 순교자이다. 부산의 나병원 교회인 상애원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고 1938년부터는 여수의 나병원 교회인 애양원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해방 이후 출옥하였다. 여순사건 때 자신의 아들들을 죽이는 데 가담한 안재선의 구명 운동을 펼쳐 구해 내고 양자로 삼아 사후에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6·25전쟁 중 공산당원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아빙돈 성경주석은 1934년 한국 개신교 선교 5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출판된 성서주석 번역서이다. 신생사에서 출판된 이 주석서는 당시 한국 장로교와 감리교의 신학자와 교계 지도자 52명이 번역에 참여하였다. 이 책은 학문적이면서도 성서 전체를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여 당시 한국 교회의 성서 연구에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나 성서비평학을 수용한 이 주석서의 성서 해석 방법이 보수적인 장로교회에서 큰 논란이 되어 장로교와 감리회의 대립의 한 이유가 되었으며 훗날 장로교의 분열의 조짐이 되었다.
아빙돈 성경주석 (아빙돈 聖經註釋)
아빙돈 성경주석은 1934년 한국 개신교 선교 5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출판된 성서주석 번역서이다. 신생사에서 출판된 이 주석서는 당시 한국 장로교와 감리교의 신학자와 교계 지도자 52명이 번역에 참여하였다. 이 책은 학문적이면서도 성서 전체를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여 당시 한국 교회의 성서 연구에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나 성서비평학을 수용한 이 주석서의 성서 해석 방법이 보수적인 장로교회에서 큰 논란이 되어 장로교와 감리회의 대립의 한 이유가 되었으며 훗날 장로교의 분열의 조짐이 되었다.
영락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이다. 1945년 12월 2일 한경직 목사에 의해 베다니전도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교회는 북한 서북지방 피난민을 수용하며 빠르게 성장하였다. 월남 피난민 교회의 성격이 강해 신탁통치 반대와 반공운동에 앞장섰으며 피난민 구제와 교육 및 사회복지에도 힘써 왔다. 1995년 창립 50주 년을 맞이하여 북한 선교에 중점을 두면서도 사회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영락교회 (永樂敎會)
영락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이다. 1945년 12월 2일 한경직 목사에 의해 베다니전도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교회는 북한 서북지방 피난민을 수용하며 빠르게 성장하였다. 월남 피난민 교회의 성격이 강해 신탁통치 반대와 반공운동에 앞장섰으며 피난민 구제와 교육 및 사회복지에도 힘써 왔다. 1995년 창립 50주 년을 맞이하여 북한 선교에 중점을 두면서도 사회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영모는 양평학교 교사, 오산학교 교사,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종교인, 종교철학자이다. 호는 다석(多夕)이다. 1905년 기독교 신자가 되었으며 오산학교 재직 시절 톨스토이를 연구하면서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동서양의 정신 문화를 창조적으로 융합한 종교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유영모 (柳永模)
유영모는 양평학교 교사, 오산학교 교사,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종교인, 종교철학자이다. 호는 다석(多夕)이다. 1905년 기독교 신자가 되었으며 오산학교 재직 시절 톨스토이를 연구하면서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동서양의 정신 문화를 창조적으로 융합한 종교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장로는 개신교 교회에서 목사를 도와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평신도 최고의 직급이다.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 행정 수행, 교회 재산 관리, 심방과 인사의 책임을 맡는다. 원래 장로교의 제도이나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대체로 35세에서 40세 이상의 흠결이 없는 입교인을 제한 조건으로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교단에서 여성의 장로 임명을 제한하고 있다.
장로 (長老)
장로는 개신교 교회에서 목사를 도와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평신도 최고의 직급이다.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 행정 수행, 교회 재산 관리, 심방과 인사의 책임을 맡는다. 원래 장로교의 제도이나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대체로 35세에서 40세 이상의 흠결이 없는 입교인을 제한 조건으로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교단에서 여성의 장로 임명을 제한하고 있다.
장로교는 기독교(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종교 개혁자 칼뱅의 신학과 신앙 고백을 중심으로 발전한 개혁교회의 한 지파로 한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파이다. 한국에는 1884년 알렌이 첫 정주 선교사로 입국하였고 같은 해 사상륜 등에 의해 황해도 장연 솔내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1887년 새문안교회가 장로교 직제를 갖춘 첫 조직교회로 설립되었다. 1907년 선교회 간의 협력으로 독로회를 조직하였고 1912년에는 총회가 조직되었다. 해방 이후 분열을 거듭하여 2018년 현재 300개가 넘는 장로교 교파가 있다.
장로교 (長老敎)
장로교는 기독교(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종교 개혁자 칼뱅의 신학과 신앙 고백을 중심으로 발전한 개혁교회의 한 지파로 한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파이다. 한국에는 1884년 알렌이 첫 정주 선교사로 입국하였고 같은 해 사상륜 등에 의해 황해도 장연 솔내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1887년 새문안교회가 장로교 직제를 갖춘 첫 조직교회로 설립되었다. 1907년 선교회 간의 협력으로 독로회를 조직하였고 1912년에는 총회가 조직되었다. 해방 이후 분열을 거듭하여 2018년 현재 300개가 넘는 장로교 교파가 있다.
전도사는 목사를 도와 교회 행정·예배·심방·전도를 하는 개신교의 교직자이다. 해방 전에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며 한국 선교 초기인 개화기에는 실질적인 교회의 건설자이자 개화 사상의 전파자로서 영향을 미쳤다. 현재에도 교회 안팎의 여러 문제들을 맡아 처리하는 광범위한 기능을 행사하고 있다.
전도사 (傳道師)
전도사는 목사를 도와 교회 행정·예배·심방·전도를 하는 개신교의 교직자이다. 해방 전에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며 한국 선교 초기인 개화기에는 실질적인 교회의 건설자이자 개화 사상의 전파자로서 영향을 미쳤다. 현재에도 교회 안팎의 여러 문제들을 맡아 처리하는 광범위한 기능을 행사하고 있다.
추수감사절은 기독교에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신에게 감사하는 절기이다.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절기지만 성경의 감사절과 서구 교회, 특히 미국 교회의 영향을 받아 1900년대부터 시행되었다. 장로교(長老敎)와 감리교(監理敎)가 합의하여 1921년부터 11월 둘째 일요일 후 수요일을 공동 추수감사절로 한때 운영하였지만 현재 범교파적으로 정해진 날은 없다. 요즘은 드물게 추석을 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도 생기고 있다.
추수감사절 (秋收感謝節)
추수감사절은 기독교에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신에게 감사하는 절기이다.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절기지만 성경의 감사절과 서구 교회, 특히 미국 교회의 영향을 받아 1900년대부터 시행되었다. 장로교(長老敎)와 감리교(監理敎)가 합의하여 1921년부터 11월 둘째 일요일 후 수요일을 공동 추수감사절로 한때 운영하였지만 현재 범교파적으로 정해진 날은 없다. 요즘은 드물게 추석을 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도 생기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1989년 한국 기독교의 보수, 복음주의적인 교단들이 모여서 만든 연합기관이다. 진보적인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한국 교회의 반공적 입장을 비판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보수 · 복음주의 연합운동의 결과이다. 출범 이후 봉사 활동, 이단 심사, 보수적 전통 윤리 수호, 북한 선교 및 인도적 지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00년대 들어 보수적 정치 세력화를 강하게 추구하였다. 이후 내부 갈등의 심화로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한때 보수적 기독교를 대표하는 기관이었으나 현재는 대표성을 상실하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韓國基督敎總聯合會)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1989년 한국 기독교의 보수, 복음주의적인 교단들이 모여서 만든 연합기관이다. 진보적인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한국 교회의 반공적 입장을 비판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보수 · 복음주의 연합운동의 결과이다. 출범 이후 봉사 활동, 이단 심사, 보수적 전통 윤리 수호, 북한 선교 및 인도적 지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00년대 들어 보수적 정치 세력화를 강하게 추구하였다. 이후 내부 갈등의 심화로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한때 보수적 기독교를 대표하는 기관이었으나 현재는 대표성을 상실하였다.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개신교계의 연합예배이다. 제1회 부활절 연합예배는 일제 강점기 일본 신도의 총본산이었던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 터에서 교회 재건과 교파 연합의 의미를 담아 개최되었다. 1962년까지 교파와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신자가 함께 연합하여 예배를 드려왔으나 이후로는 교단 및 연합 기구의 분열 등을 이유로 연합과 분리를 거듭하고 있다.
부활절 연합예배 (復活節 聯合禮拜)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개신교계의 연합예배이다. 제1회 부활절 연합예배는 일제 강점기 일본 신도의 총본산이었던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 터에서 교회 재건과 교파 연합의 의미를 담아 개최되었다. 1962년까지 교파와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신자가 함께 연합하여 예배를 드려왔으나 이후로는 교단 및 연합 기구의 분열 등을 이유로 연합과 분리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1976년 설립된 한국 기독교 청년 단체이다. 교회일치운동을 전개하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교회의 생명력을 갱신하고자 설립되었다. 국내외의 진보적 기독교 연합기관들과 대외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에큐메니컬 신학과 신앙 고백에 입각한 기독교 청년운동을 이끌었다는 데 의의가 있으며 민중과 함께하는 실천적 삶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 (韓國基督靑年協議會)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1976년 설립된 한국 기독교 청년 단체이다. 교회일치운동을 전개하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교회의 생명력을 갱신하고자 설립되었다. 국내외의 진보적 기독교 연합기관들과 대외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에큐메니컬 신학과 신앙 고백에 입각한 기독교 청년운동을 이끌었다는 데 의의가 있으며 민중과 함께하는 실천적 삶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