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신선혜"
검색결과 총 38건
봉덕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이다. 성덕왕이 태종무열왕을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 경덕왕이 성덕왕을 위하여 대종을 만들려다 죽자, 아들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선 세종 대에 봉덕사는 수몰되었고, 종도 함께 하천에 버려졌다. 속칭 ‘에밀레종’이라고 부르는 이 종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봉덕사는 신라 불교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사찰 중 하나였다.
봉덕사 (奉德寺)
봉덕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이다. 성덕왕이 태종무열왕을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 경덕왕이 성덕왕을 위하여 대종을 만들려다 죽자, 아들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선 세종 대에 봉덕사는 수몰되었고, 종도 함께 하천에 버려졌다. 속칭 ‘에밀레종’이라고 부르는 이 종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봉덕사는 신라 불교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사찰 중 하나였다.
봉림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산에 있었던, 통일신라 승려 심희가 창건한 절이다. 통일신라 선문 중 봉림산파의 중심 사찰로, 법맥이 현욱, 심희, 찬유로 이어진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를 통해 사찰의 성립과 변천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밖에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창원 봉림사지 삼층석탑, 창원 봉림사 불교전적류, 창원 봉림사 목조관음 대세지보살좌상, 『창원 봉림사 자치통감강목』, 『창원 봉림사 증도가』, 『창원 봉림사 함허당득통화상현정론』 등이 있다.
봉림사 (鳳林寺)
봉림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산에 있었던, 통일신라 승려 심희가 창건한 절이다. 통일신라 선문 중 봉림산파의 중심 사찰로, 법맥이 현욱, 심희, 찬유로 이어진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를 통해 사찰의 성립과 변천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밖에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창원 봉림사지 삼층석탑, 창원 봉림사 불교전적류, 창원 봉림사 목조관음 대세지보살좌상, 『창원 봉림사 자치통감강목』, 『창원 봉림사 증도가』, 『창원 봉림사 함허당득통화상현정론』 등이 있다.
봉정암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 소청봉에 있는 암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부속 암자이며, 대표적 불교 성지인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승려 자장이 당나라에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여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에 봉안하였다고 하나, 석탑의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오대산과 자장의 내용을 봉정암 창건설에 끼워 맞춘 것으로 보인다.
봉정암 (鳳頂庵)
봉정암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 소청봉에 있는 암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부속 암자이며, 대표적 불교 성지인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승려 자장이 당나라에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여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에 봉안하였다고 하나, 석탑의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오대산과 자장의 내용을 봉정암 창건설에 끼워 맞춘 것으로 보인다.
보천사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서수면 축성산에 있는 절이다. 백제 무왕 때 신라 승려 혜공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승려 취계당 유문 등이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유문의 승탑인 축계당사리탑 등이 있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사찰지정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보천사 (寶泉寺)
보천사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서수면 축성산에 있는 절이다. 백제 무왕 때 신라 승려 혜공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승려 취계당 유문 등이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유문의 승탑인 축계당사리탑 등이 있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사찰지정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선조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있었던,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신라 성덕왕 1년에 창건하였다는 설과 법흥왕 때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병자호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불을 지르고 도망하여 폐사되었다. 현존하는 유물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이 있다.
선조사 (善祖寺)
선조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있었던,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신라 성덕왕 1년에 창건하였다는 설과 법흥왕 때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병자호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불을 지르고 도망하여 폐사되었다. 현존하는 유물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이 있다.
승관은 불교 교단이나 승려의 관리 등 불교의 모든 문제를 관장하고 처리하기 위해서 중앙과 지방에 임명된 관리이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후 진흥왕 대에 왕실은 승관을 설치하여 불교계 전반의 체계화를 진행하였다. 550년(신라 진흥왕 11)에 대서성, 소서성의 설치를 시작으로 551년(진흥왕 12)에는 국통, 도유나랑, 대도유나 등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승관의 설치에는 가장 먼저 국통으로 임명되었던 고구려 승려 혜량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승관 (僧官)
승관은 불교 교단이나 승려의 관리 등 불교의 모든 문제를 관장하고 처리하기 위해서 중앙과 지방에 임명된 관리이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후 진흥왕 대에 왕실은 승관을 설치하여 불교계 전반의 체계화를 진행하였다. 550년(신라 진흥왕 11)에 대서성, 소서성의 설치를 시작으로 551년(진흥왕 12)에는 국통, 도유나랑, 대도유나 등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승관의 설치에는 가장 먼저 국통으로 임명되었던 고구려 승려 혜량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신광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성수산에 있는, 조선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신라 흥덕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졌으나 확실하지 않다. 1649년 천해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에 속한 사찰이며, 관련 문화유산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인 신광사대웅전이 있다.
신광사 (新光寺)
신광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성수산에 있는, 조선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신라 흥덕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졌으나 확실하지 않다. 1649년 천해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에 속한 사찰이며, 관련 문화유산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인 신광사대웅전이 있다.
신라 십성은 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신라 불교계에서 성인으로 추앙된 10명의 인물이다. 아도·염촉·혜숙·안함·의상·표훈·사파·원효·혜공·자장을 지칭한다. 십성은 신라에서 불교의 정착과 대중화, 그리고 국가 불교의 성립에 기여한 고승들로 선정되었다. 이들이 흥륜사에 봉안된 시기는 염촉에 대한 추모 사업이 활성화되고 아울러 선종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던 헌덕왕 대나 흥덕왕 대 무렵으로 추정된다.
신라 십성 (新羅 十聖)
신라 십성은 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신라 불교계에서 성인으로 추앙된 10명의 인물이다. 아도·염촉·혜숙·안함·의상·표훈·사파·원효·혜공·자장을 지칭한다. 십성은 신라에서 불교의 정착과 대중화, 그리고 국가 불교의 성립에 기여한 고승들로 선정되었다. 이들이 흥륜사에 봉안된 시기는 염촉에 대한 추모 사업이 활성화되고 아울러 선종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던 헌덕왕 대나 흥덕왕 대 무렵으로 추정된다.
영은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근덕면 태백산에 있는, 통일신라 승려 범일이 창건한 절이다. 범일은 통일신라 말에 굴산사를 개창하였던 인물이다. 조선 명종 때 사명대사가 현 위치에 절을 옮겨 지어 운망사라고 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자 인조 때 승려 벽봉이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영은사로 바꾸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삼척영은사대웅보전과 삼척영은사팔상전, 「영은사사명당대선사진영」, 「삼척영은사괘불」 등이 있다.
영은사 (靈隱寺)
영은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근덕면 태백산에 있는, 통일신라 승려 범일이 창건한 절이다. 범일은 통일신라 말에 굴산사를 개창하였던 인물이다. 조선 명종 때 사명대사가 현 위치에 절을 옮겨 지어 운망사라고 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자 인조 때 승려 벽봉이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영은사로 바꾸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삼척영은사대웅보전과 삼척영은사팔상전, 「영은사사명당대선사진영」, 「삼척영은사괘불」 등이 있다.
황룡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었던, 신라 제24대 왕 진흥왕 때 창건한 절이다. 553년에 새로운 대궐을 본궁 남쪽에 짓다가,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났으므로 이를 불사로 고쳐 황룡사라 하였다. 건립 17년 만인 569년에 완성하였다. 월성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었던 이 절은 7처 가람지 중 하나였다. 절터는 1963년에 ‘경주 황룡사지’라는 이름으로 사적에 지정되었으며, 관련 문화유산으로 2015년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가 있다.
황룡사 (皇龍寺)
황룡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었던, 신라 제24대 왕 진흥왕 때 창건한 절이다. 553년에 새로운 대궐을 본궁 남쪽에 짓다가,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났으므로 이를 불사로 고쳐 황룡사라 하였다. 건립 17년 만인 569년에 완성하였다. 월성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었던 이 절은 7처 가람지 중 하나였다. 절터는 1963년에 ‘경주 황룡사지’라는 이름으로 사적에 지정되었으며, 관련 문화유산으로 2015년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가 있다.
강천사는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신라 진성왕 1년(887)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혹은 신령(信靈)이 광덕산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강천사 오층석탑과 금강문, 197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순창 삼인대, 석등 등이 있다.
강천산 강천사 (剛泉山 剛泉寺)
강천사는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신라 진성왕 1년(887)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혹은 신령(信靈)이 광덕산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강천사 오층석탑과 금강문, 197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순창 삼인대, 석등 등이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千佛山, 혹은 靈龜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 도선(道詵)이 천불천탑(千佛千塔)과 함께 사찰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석탑 21기, 석불 80기, 그 밖에 불재 및 탑재 관련 유물이 남아 있다. 구층석탑과 석조불감(石造佛龕), 원형다층석탑(圓形多層石塔)이 보물로 지정되었고, 와형석조여래불(臥形石造如來佛)을 비롯하여 총 11점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천불산 운주사 (千佛山 雲住寺)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千佛山, 혹은 靈龜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 도선(道詵)이 천불천탑(千佛千塔)과 함께 사찰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석탑 21기, 석불 80기, 그 밖에 불재 및 탑재 관련 유물이 남아 있다. 구층석탑과 석조불감(石造佛龕), 원형다층석탑(圓形多層石塔)이 보물로 지정되었고, 와형석조여래불(臥形石造如來佛)을 비롯하여 총 11점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연은 고려 후기에 『삼국유사』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고려 희종(熙宗) 2년(1206)에 태어나 충렬왕(忠烈王) 15년(1289)에 사망했다. 고종(高宗) 6년(1219),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수행을 거듭해 구산문 사선의 으뜸이 되었다. 몽고 침입 후에 무주암에서 깨달음을 얻고 남해 정림사에서 대장경 제작에 참여했다. 이어 원종(元宗)의 부름을 받아 강화도의 선월사에 머물며 설법하였다. 1277년부터 4년간 청도 운문사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 즈음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283년에 국사가 되었다.
일연 (一然)
일연은 고려 후기에 『삼국유사』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고려 희종(熙宗) 2년(1206)에 태어나 충렬왕(忠烈王) 15년(1289)에 사망했다. 고종(高宗) 6년(1219),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수행을 거듭해 구산문 사선의 으뜸이 되었다. 몽고 침입 후에 무주암에서 깨달음을 얻고 남해 정림사에서 대장경 제작에 참여했다. 이어 원종(元宗)의 부름을 받아 강화도의 선월사에 머물며 설법하였다. 1277년부터 4년간 청도 운문사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 즈음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283년에 국사가 되었다.
심곡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미륵산(彌勒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 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성왕 때 승려 무염(無染)이 수도를 하기 위하여 장소를 찾다가 미륵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이를 입증할 만한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웅전, 칠층석탑, 목조삼존불, 명부전 지장보살상 그리고 칠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이 보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미륵산 심곡사 (彌勒山 深谷寺)
심곡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미륵산(彌勒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 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성왕 때 승려 무염(無染)이 수도를 하기 위하여 장소를 찾다가 미륵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이를 입증할 만한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웅전, 칠층석탑, 목조삼존불, 명부전 지장보살상 그리고 칠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이 보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안심사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군)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大芚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비구니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절의 사적비는 1759년(영조 35)에 세워졌는데, 당시에는 30여 개의 당우와 12개의 암자가 부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2005년 보물로 지정된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이 있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1984년에는 안심사 사적비, 2005년에는 안심사 소장 동종 등이 지정되었다.
대둔산 안심사 (大芚山 安心寺)
안심사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군)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大芚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비구니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절의 사적비는 1759년(영조 35)에 세워졌는데, 당시에는 30여 개의 당우와 12개의 암자가 부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2005년 보물로 지정된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이 있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1984년에는 안심사 사적비, 2005년에는 안심사 소장 동종 등이 지정되었다.
안정사는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벽발산(碧鉢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법화종에 속하는 사찰로, 만력(萬曆) 8년(1580)의 명(銘)이 새겨진 동종과 숙종 28년(1702)에 조성한 33척(약 10m)의 영산회 괘불도가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병영 사찰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왕실과 국가를 위한 수륙재를 봉행하였고 1500년대의 의례집을 수차례 발간하여 소장하고 있다.
벽발산 안정사 (碧鉢山 安靜寺)
안정사는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벽발산(碧鉢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법화종에 속하는 사찰로, 만력(萬曆) 8년(1580)의 명(銘)이 새겨진 동종과 숙종 28년(1702)에 조성한 33척(약 10m)의 영산회 괘불도가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병영 사찰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왕실과 국가를 위한 수륙재를 봉행하였고 1500년대의 의례집을 수차례 발간하여 소장하고 있다.
수도암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산에 있는 청암사(靑巖寺)의 부속 암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 헌안왕(재위 857~861) 3년(859)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수도 도량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된 약광전 석불 좌상과 동‧서 삼층석탑,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남아 있다.
수도산 수도암 (修道山 修道庵)
수도암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산에 있는 청암사(靑巖寺)의 부속 암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 헌안왕(재위 857~861) 3년(859)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수도 도량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된 약광전 석불 좌상과 동‧서 삼층석탑,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남아 있다.
보흥사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사찰이다.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전통 사찰로, 원강정 마을 북쪽 계곡 광대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때 창건되어 광덕사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이후 북수사로 불렸으나, 보수공사 중 발견된 상량문에 보흥사라는 사찰명이 보여 개칭하였다. 경내에 강정리 5층 석탑이 있는데,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조성된, 고려 중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마이산 보흥사 (馬耳山 寶興寺)
보흥사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사찰이다.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전통 사찰로, 원강정 마을 북쪽 계곡 광대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때 창건되어 광덕사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이후 북수사로 불렸으나, 보수공사 중 발견된 상량문에 보흥사라는 사찰명이 보여 개칭하였다. 경내에 강정리 5층 석탑이 있는데,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조성된, 고려 중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상주사(上柱寺)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서수면 취성산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대에 혜공이 창건하여 상주사(上住寺)라 하였고, 고려 공민왕 대에 나옹 혜근이 중창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웅전과 목조 삼세불이 남아 있다. 대웅전에는 2개의 업경대와 3개의 전패목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삼존불과 영산회상도, 신중·지장보살·독성·칠성·산신 등의 불화가 모셔져 있다.
취성산 상주사 (鷲城山 上柱寺)
상주사(上柱寺)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서수면 취성산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대에 혜공이 창건하여 상주사(上住寺)라 하였고, 고려 공민왕 대에 나옹 혜근이 중창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웅전과 목조 삼세불이 남아 있다. 대웅전에는 2개의 업경대와 3개의 전패목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삼존불과 영산회상도, 신중·지장보살·독성·칠성·산신 등의 불화가 모셔져 있다.
선국사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있는 남북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며, 산성 내에 있다고 하여 산성절이라 부르기도 하고, 용천(龍泉)이 있다고 하여 용천사, 선국암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군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일대 접전을 벌였다. 2007년에 보물로 지정된 남원 선국사 건칠 아미타여래 좌상 및 복장 유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한 마른 옻칠 기법으로 조성된 불상과 함께 복장 유물로 14세기 말에서 15세기 말의 자료들이 남아있다.
교룡산 선국사 (蛟龍山 善國寺)
선국사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있는 남북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며, 산성 내에 있다고 하여 산성절이라 부르기도 하고, 용천(龍泉)이 있다고 하여 용천사, 선국암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군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일대 접전을 벌였다. 2007년에 보물로 지정된 남원 선국사 건칠 아미타여래 좌상 및 복장 유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한 마른 옻칠 기법으로 조성된 불상과 함께 복장 유물로 14세기 말에서 15세기 말의 자료들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