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윤상원"
검색결과 총 53건
『고사통(故事通)』은 1943년에 육당 최남선이 문화교류사의 관점에서 간행한 한국통사이다. 한국의 역사를 문화와 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정리하여 한국 문화의 가치를 높였다는 의의가 있지만, 결국 한국과 일본 문화의 혼용을 추구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사통 (故事通)
『고사통(故事通)』은 1943년에 육당 최남선이 문화교류사의 관점에서 간행한 한국통사이다. 한국의 역사를 문화와 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정리하여 한국 문화의 가치를 높였다는 의의가 있지만, 결국 한국과 일본 문화의 혼용을 추구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복군사령부는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 민국독립단 그리고 국내의 의용단을 통합하여 설치하려 한 서간도 지방사령부이다. 대한청년단연합회, 민국독립단 그리고 국내의 의용단을 통합하여 설치하려 하였으며, 서간도에서 조직된 광복군총영으로 개편되었다.
광복군사령부 (光復軍司令部)
광복군사령부는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 민국독립단 그리고 국내의 의용단을 통합하여 설치하려 한 서간도 지방사령부이다. 대한청년단연합회, 민국독립단 그리고 국내의 의용단을 통합하여 설치하려 하였으며, 서간도에서 조직된 광복군총영으로 개편되었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서간도 안동현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지방사령부이다. 광복단을 중심으로 민국독립단과 통합하여 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서간도에 설치하려 한 광복군사령부와는 설립 주체가 다르다.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기에 앞서 광복군총영이 이미 조직되어 있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서간도 지방사령부는 광복군총영이 담당하였다.
광복군총영 (光復軍總營)
광복군총영은 1920년 서간도 안동현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지방사령부이다. 광복단을 중심으로 민국독립단과 통합하여 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서간도에 설치하려 한 광복군사령부와는 설립 주체가 다르다.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기에 앞서 광복군총영이 이미 조직되어 있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서간도 지방사령부는 광복군총영이 담당하였다.
남화한인청년연맹은 1930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아나키즘(anarchism)과 조선의 민족 해방을 선전하는 활동, 일제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친일 분자를 숙청하는 직접 행동을 실행하였다. 1937년 조선혁명자연맹으로 개조하고,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남화한인청년연맹 (南華韓人靑年聯盟)
남화한인청년연맹은 1930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아나키즘(anarchism)과 조선의 민족 해방을 선전하는 활동, 일제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친일 분자를 숙청하는 직접 행동을 실행하였다. 1937년 조선혁명자연맹으로 개조하고,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농무계는 1910년대 서간도와 북간도에 유림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단체이다. 1910년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서간도 농무계는 3·1운동 이후 대한독립단에 흡수되었다. 1913년 유림들이 조직한 북간도 농무계는 간민회와 대립, 갈등하다 1914년 해산되었다.
농무계 (農務契)
농무계는 1910년대 서간도와 북간도에 유림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단체이다. 1910년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서간도 농무계는 3·1운동 이후 대한독립단에 흡수되었다. 1913년 유림들이 조직한 북간도 농무계는 간민회와 대립, 갈등하다 1914년 해산되었다.
다물단은 1923년 중국 베이징에서 신채호, 유자명, 이회영 등이 조직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1924년 배천택, 김동삼 등이 조직한 국민당과 통합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다물단은 베이징의 친일 파 밀정 김달하를 처단하고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다물단 (多勿團)
다물단은 1923년 중국 베이징에서 신채호, 유자명, 이회영 등이 조직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이다. 1924년 배천택, 김동삼 등이 조직한 국민당과 통합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다물단은 베이징의 친일 파 밀정 김달하를 처단하고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은 1919년 11월 중국 장백현(長白縣)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투쟁 단체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계 아래 출범하여 군사 활동, 군자금 모집, 대원 모집 활동, 교육기관 설립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1년 군사부를 연해주 이만[지금의 러시아 달네레첸스크]으로 이동시켰으며, 이후 간도에 남은 본부는 광정단(匡正團)으로 재편되었다.
대한독립군비단 (大韓獨立軍備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은 1919년 11월 중국 장백현(長白縣)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투쟁 단체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계 아래 출범하여 군사 활동, 군자금 모집, 대원 모집 활동, 교육기관 설립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1년 군사부를 연해주 이만[지금의 러시아 달네레첸스크]으로 이동시켰으며, 이후 간도에 남은 본부는 광정단(匡正團)으로 재편되었다.
북간도국민회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직된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이다. 용정(龍井) 3 · 13 만세시위운동 이후 북간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기독교계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다. 산하에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여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끌었다.
북간도국민회 (北間島國民會)
북간도국민회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직된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이다. 용정(龍井) 3 · 13 만세시위운동 이후 북간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기독교계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다. 산하에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여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끌었다.
북경군사통일회는 1921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박용만, 신숙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21년 4월 17일 베이징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조직하였으며,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군사상 총기관을 조직해 군사단체를 통일하고자 하였다.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에서 창조파의 입장을 취하였다.
북경군사통일회 (北京軍事統一會)
북경군사통일회는 1921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박용만, 신숙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21년 4월 17일 베이징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조직하였으며,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군사상 총기관을 조직해 군사단체를 통일하고자 하였다.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에서 창조파의 입장을 취하였다.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은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에 조직된 한인의 자치기관이다. 1918년에 결성된 상해고려교민친목회(上海高麗僑民親睦會)가 임시정부의 산하 조직으로 편제되면서 상해대한인민단(上海大韓人民團)으로 개칭하였으며, 1920년 1월 다시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임시정부의 외곽 단체로 상하이 교민의 생활을 보호하고 임시정부의 기반 조직으로서 기능을 수행하였다. 의경대(義警隊)를 조직하여 운영하였고, 인성학교(仁成學校)를 맡아 운영하여 독립운동가 자제들을 교육시켰다.
상해대한인거류민단 (上海大韓人居留民團)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은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에 조직된 한인의 자치기관이다. 1918년에 결성된 상해고려교민친목회(上海高麗僑民親睦會)가 임시정부의 산하 조직으로 편제되면서 상해대한인민단(上海大韓人民團)으로 개칭하였으며, 1920년 1월 다시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임시정부의 외곽 단체로 상하이 교민의 생활을 보호하고 임시정부의 기반 조직으로서 기능을 수행하였다. 의경대(義警隊)를 조직하여 운영하였고, 인성학교(仁成學校)를 맡아 운영하여 독립운동가 자제들을 교육시켰다.
소독단(消毒團)은 1919년 밀정 소탕을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의 외곽에 조직된 비밀단체이다. 중국 상하이 한인 사회에 들어오는 밀정의 감시와 색출, 제거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경무국장 김구(金九)의 직계 조직으로 단장 손두환(孫斗煥)과 20여 명의 청년으로 구성되었다.
소독단 (消毒團)
소독단(消毒團)은 1919년 밀정 소탕을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의 외곽에 조직된 비밀단체이다. 중국 상하이 한인 사회에 들어오는 밀정의 감시와 색출, 제거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경무국장 김구(金九)의 직계 조직으로 단장 손두환(孫斗煥)과 20여 명의 청년으로 구성되었다.
화성 제암리 삼일운동 순국 유적(華城 堤岩里 三一運動 殉國 遺蹟)은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화성 제암리 지역민을 교회에 모이게 한 후 학살한 사건이 발생한 장소이다. 1982년 사건 발생 주변을 발굴 조사하여 수습된 희생자들의 유해는 교회 뒤편 합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1982년 12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華城 堤岩里 三一運動 殉國 遺蹟)
화성 제암리 삼일운동 순국 유적(華城 堤岩里 三一運動 殉國 遺蹟)은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화성 제암리 지역민을 교회에 모이게 한 후 학살한 사건이 발생한 장소이다. 1982년 사건 발생 주변을 발굴 조사하여 수습된 희생자들의 유해는 교회 뒤편 합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1982년 12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상해(上海)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도 부른다. 해외 독립운동 전선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봉창 · 윤봉길의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당 본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기기도 하였다. 1935년 7월 5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결성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한국독립당 (韓國獨立黨)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상해(上海)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도 부른다. 해외 독립운동 전선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봉창 · 윤봉길의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당 본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기기도 하였다. 1935년 7월 5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결성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조선인거류민회는 1920년 5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관이 한인들을 회유,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신한촌(新韓村)에 사무소를 두었으며, 일제가 한인들을 회유하기 위한 기관으로 관광단, 음악단을 꾸려 경성을 시찰하기도 하였다.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전개했던 간화회(墾話會)와는 차별성을 가졌다.
조선인거류민회 (朝鮮人居留民會)
조선인거류민회는 1920년 5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관이 한인들을 회유,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신한촌(新韓村)에 사무소를 두었으며, 일제가 한인들을 회유하기 위한 기관으로 관광단, 음악단을 꾸려 경성을 시찰하기도 하였다.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전개했던 간화회(墾話會)와는 차별성을 가졌다.
중광단(重光團)은 1911년 3월 북간도에서 대종교단(大倧敎團)에 의해 설립된 무장단체이다. 초기에는 민족학교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1917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북간도의 3 · 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19년 5월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으로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
중광단 (重光團)
중광단(重光團)은 1911년 3월 북간도에서 대종교단(大倧敎團)에 의해 설립된 무장단체이다. 초기에는 민족학교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1917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북간도의 3 · 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19년 5월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으로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
천진불변단(天津不變團)은 1919년 4월 중국 톈진[天津]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조만식(趙晩埴), 명제세(明濟世) 등이 조직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외곽 단체로 승인받았다. 제2차 독립만세운동 계획과 실행의 임무를 안고 국내로 파견되어 독립운동자금 모집, 조선총독부 고관 처단 등을 시도하였다.
천진불변단 (天津不變團)
천진불변단(天津不變團)은 1919년 4월 중국 톈진[天津]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조만식(趙晩埴), 명제세(明濟世) 등이 조직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외곽 단체로 승인받았다. 제2차 독립만세운동 계획과 실행의 임무를 안고 국내로 파견되어 독립운동자금 모집, 조선총독부 고관 처단 등을 시도하였다.
철혈단(鐵血團)은 1920년 6월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불평을 가진 청년들을 흡수해 조직한 단체이다. 철혈단원들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내부 분열 상황으로 인해 독립운동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이에 불만을 품었으며, 줄곧 임시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철혈단 (鐵血團)
철혈단(鐵血團)은 1920년 6월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불평을 가진 청년들을 흡수해 조직한 단체이다. 철혈단원들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내부 분열 상황으로 인해 독립운동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이에 불만을 품었으며, 줄곧 임시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한국독립유일당북경촉성회는 1926년 10월 2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원세훈(元世勳)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창조파(創造派), 흥사단원(興士團員) 등이 사회주의자들과 민족유일당(民族 唯一黨) 결성을 목표로 만든 단체로서, 중국 관내 각지에 다수의 촉성회를 만들어 ‘대독립당(大獨立黨)’을 결성하려 하였다. 1927년 상하이[上海], 광둥[廣東], 우한[武漢], 난징[南京]의 촉성회 설립에 큰 자극을 주며 민족유일당운동을 주도하였지만,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의 대립 고조 등으로 실패하였다.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 (韓國獨立唯一黨 北京促成會)
한국독립유일당북경촉성회는 1926년 10월 2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원세훈(元世勳)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창조파(創造派), 흥사단원(興士團員) 등이 사회주의자들과 민족유일당(民族 唯一黨) 결성을 목표로 만든 단체로서, 중국 관내 각지에 다수의 촉성회를 만들어 ‘대독립당(大獨立黨)’을 결성하려 하였다. 1927년 상하이[上海], 광둥[廣東], 우한[武漢], 난징[南京]의 촉성회 설립에 큰 자극을 주며 민족유일당운동을 주도하였지만,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의 대립 고조 등으로 실패하였다.
한국동포연합회는 1922년 9월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세계 각지의 한인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동아일보』의 기사를 제외한 다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존재 자체가 의문시된다.
한국동포연합회 (韓國同胞聯合會)
한국동포연합회는 1922년 9월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세계 각지의 한인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동아일보』의 기사를 제외한 다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존재 자체가 의문시된다.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는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독립운동 세력의 이념 대립을 해소하고, 최고지도기관의 성립을 위한 좌우합작운동이자 민족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이후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모체가 되었다.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 (韓國唯一獨立黨 上海促成會)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는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독립운동 세력의 이념 대립을 해소하고, 최고지도기관의 성립을 위한 좌우합작운동이자 민족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이후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모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