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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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도선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상.
도선사 석불 (道詵寺 石佛)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도선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상.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석조 미륵불 입상 (石造 彌勒佛 立像)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石造 毘盧舍▽那佛 坐像)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금강저.
송광사 금강저 (松廣寺 金剛杵)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금강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사리함.
자정국사 사리함 (慈靜國師 舍利函)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사리함.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촌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불교조각.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 (洪川 物傑里 石造臺座)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촌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불교조각.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촌면 대승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불교조각.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 및 광배 (洪川 物傑里 石造臺座 및 光背)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촌면 대승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불교조각.
홍천 물걸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촌면 대승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이다. 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1982년에 새로 지은 전각 안에 다른 불상과 함께 안치되어 있다. 원만한 얼굴, 위축된 신체표현, 형식화된 옷주름 표현, 3단으로 구성된 연화대좌 등 9세기경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지권인을 하고 있는데, 손의 좌우가 바뀌어 있어 일반적인 지권인 형태와는 다르다. 이 불상은 좌우에 석가불과 철불인 노사나불을 배치한 삼신불로 통일신라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홍천 물걸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洪川 物傑里 石造 毘盧遮▽那佛 坐像)
홍천 물걸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촌면 대승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이다. 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1982년에 새로 지은 전각 안에 다른 불상과 함께 안치되어 있다. 원만한 얼굴, 위축된 신체표현, 형식화된 옷주름 표현, 3단으로 구성된 연화대좌 등 9세기경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지권인을 하고 있는데, 손의 좌우가 바뀌어 있어 일반적인 지권인 형태와는 다르다. 이 불상은 좌우에 석가불과 철불인 노사나불을 배치한 삼신불로 통일신라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홍천 물걸리 석조 여래 좌상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촌면 대승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이다. 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팔각의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불상으로 광배는 없어졌다. 머리의 나발이 뚜렷하지 않으며, 얼굴의 마모가 심하다. 상체는 경직되어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 위에 두고 아래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왼쪽 다리 위에 수평으로 두고 있는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석조비로자나불상의 왼쪽에 배치되어 오른쪽 협시인 노사나불과 함께 삼신불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굴조사로 밝혀졌다.
홍천 물걸리 석조 여래 좌상 (洪川 物傑里 石造 如來 坐像)
홍천 물걸리 석조 여래 좌상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촌면 대승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이다. 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팔각의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불상으로 광배는 없어졌다. 머리의 나발이 뚜렷하지 않으며, 얼굴의 마모가 심하다. 상체는 경직되어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 위에 두고 아래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왼쪽 다리 위에 수평으로 두고 있는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석조비로자나불상의 왼쪽에 배치되어 오른쪽 협시인 노사나불과 함께 삼신불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굴조사로 밝혀졌다.
조선후기 선전관청에 소속된 내취의 자치 활동 기구. 내취도가대청.
내취도가 (內吹都家)
조선후기 선전관청에 소속된 내취의 자치 활동 기구. 내취도가대청.
조선후기 군영에서 신호·통신에 사용하던 동으로 만든 관악기.
동대각 (銅大角)
조선후기 군영에서 신호·통신에 사용하던 동으로 만든 관악기.
목대각은 조선 후기 군영에서 신호·통신에 사용하던 나무으로 만든 관악기이다. 순라군의 출동과 대열의에서 각 대장을 부르는 명령에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기능은 소멸되었고 일부 지역에서 농악로 사용하고 있다. 각은 고구려, 백제로부터 전승되며 변화 과정을 거쳤다. 조선 전기 각은 지휘, 통신에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 각은 재료에 따라 동대각과 목대각으로 구분되었다. 목대각은 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조선 전기에 비해 각의 역할이 미미해졌다. 현재 전승되는 각 계통의 악기는 영각·농각·땡각·목덩강 등이 있다.
목대각 (木大角)
목대각은 조선 후기 군영에서 신호·통신에 사용하던 나무으로 만든 관악기이다. 순라군의 출동과 대열의에서 각 대장을 부르는 명령에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기능은 소멸되었고 일부 지역에서 농악로 사용하고 있다. 각은 고구려, 백제로부터 전승되며 변화 과정을 거쳤다. 조선 전기 각은 지휘, 통신에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 각은 재료에 따라 동대각과 목대각으로 구분되었다. 목대각은 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조선 전기에 비해 각의 역할이 미미해졌다. 현재 전승되는 각 계통의 악기는 영각·농각·땡각·목덩강 등이 있다.
조선후기 군영의 행진음악 연주에 사용하던 여러 개의 소라를 엮어 만든 타악기.
점자 (點子)
조선후기 군영의 행진음악 연주에 사용하던 여러 개의 소라를 엮어 만든 타악기.
징은 농악·무속음악·불교음악·종묘제례악 등에 사용하는 쇠로 만든 둥근 형태의 금속 타악기이다. 징은 군영의 신호용 악기였으나 군영 음악의 확산으로 농악이나 무속음악 등의 기층음악에서부터 불교음악, 종묘제례악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었다. 오늘날 농악과 대취타, 종묘제례악에서는 징이라 하고 무속에서는 대양, 울징 등으로 부르고, 불교에서는 태징, 금고라고 한다. 징의 음향적 특성은 두 개의 배음렬을 가졌기 때문에 울림이 풍부하고 자연 배음 비율이어서 음고가 정확하다는 것이다. 농악의 경우, 연주할 때 징이 원박을 쳐줌으로써 전체 박자를 잡는다.
징 (鉦)
징은 농악·무속음악·불교음악·종묘제례악 등에 사용하는 쇠로 만든 둥근 형태의 금속 타악기이다. 징은 군영의 신호용 악기였으나 군영 음악의 확산으로 농악이나 무속음악 등의 기층음악에서부터 불교음악, 종묘제례악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었다. 오늘날 농악과 대취타, 종묘제례악에서는 징이라 하고 무속에서는 대양, 울징 등으로 부르고, 불교에서는 태징, 금고라고 한다. 징의 음향적 특성은 두 개의 배음렬을 가졌기 때문에 울림이 풍부하고 자연 배음 비율이어서 음고가 정확하다는 것이다. 농악의 경우, 연주할 때 징이 원박을 쳐줌으로써 전체 박자를 잡는다.
취고수제도는 조선 후기 군영에 소속되어 군사훈련에서의 지휘·통신 및 각종 행진과 연향에서의 연주 등을 담당한 표하군 소속의 취타악대이다. 취고수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명나라 제도를 수용하여 성립된 군영악대이다. 성립 시기는 1593년 이후, 1600년 이전이다. 취고수가 연주한 취타악기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달랐으나, 대개 대각·나각·나발·호적·바라·솔발·자바라·점자·금·정·나·고 등 12종류이다. 규모는 100여명 정도였다. 이 제도는 새로운 악대 제도를 등장시켰으며, 군영음악문화의 창출에서 나아가 조선 후기 음악문화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취고수제도 (吹鼓手制度)
취고수제도는 조선 후기 군영에 소속되어 군사훈련에서의 지휘·통신 및 각종 행진과 연향에서의 연주 등을 담당한 표하군 소속의 취타악대이다. 취고수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명나라 제도를 수용하여 성립된 군영악대이다. 성립 시기는 1593년 이후, 1600년 이전이다. 취고수가 연주한 취타악기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달랐으나, 대개 대각·나각·나발·호적·바라·솔발·자바라·점자·금·정·나·고 등 12종류이다. 규모는 100여명 정도였다. 이 제도는 새로운 악대 제도를 등장시켰으며, 군영음악문화의 창출에서 나아가 조선 후기 음악문화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조선시대 기치와 금고로 구성된 군영의 지휘통신 체계를 가리키는 역사용어.
형명 (形名)
조선시대 기치와 금고로 구성된 군영의 지휘통신 체계를 가리키는 역사용어.
고동은 군영이나 농촌에서 신호용으로 사용하던 소라나 나무(혹은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이다. 현재 군영악기로서의 기능은 소멸되고 농악 등에 쓰인다. 고동은 오늘날 나각 계통과 대각 계통의 두 종류로 전승된다. 소라로 만든 것은 나각, 대나무나 동으로 만든 것은 대각이라고 한다. 나각 계열 고동은 소라의 끝부분을 갈아 취구를 붙여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나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시대부터이다. 대각 계열 고동은 긴 대나무 끝에 쇠뿔을 달아 만들거나 나무로 만든다. 나각과 대각은 단성이라서 두 손으로 잡고 불면 소리가 난다.
고동
고동은 군영이나 농촌에서 신호용으로 사용하던 소라나 나무(혹은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이다. 현재 군영악기로서의 기능은 소멸되고 농악 등에 쓰인다. 고동은 오늘날 나각 계통과 대각 계통의 두 종류로 전승된다. 소라로 만든 것은 나각, 대나무나 동으로 만든 것은 대각이라고 한다. 나각 계열 고동은 소라의 끝부분을 갈아 취구를 붙여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나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시대부터이다. 대각 계열 고동은 긴 대나무 끝에 쇠뿔을 달아 만들거나 나무로 만든다. 나각과 대각은 단성이라서 두 손으로 잡고 불면 소리가 난다.
왕이 거둥할 때 바라(哱囉) 혹은 나각(螺角)을 불어 군악을 시작한다는 것을 왕의 수레 앞에서 계문(啓聞)하는 일을 하는 선전관.
계라선전관 (啓螺宣傳官)
왕이 거둥할 때 바라(哱囉) 혹은 나각(螺角)을 불어 군악을 시작한다는 것을 왕의 수레 앞에서 계문(啓聞)하는 일을 하는 선전관.
조선전기 궁중의 통신 · 시위 때 각(角)을 연주한 군사를 말한다. 내취각인(內吹角人)이라고도 한다. 궁중에서 근무한다는 점에서 병조에서 근무하는 외취라치(外吹螺赤)와 구분된다. 시위는 노부(鹵簿)의 시위와 전좌(殿座)의 시위 두 종류가 있었다. 노부는 대가노부 · 법가노부 · 소가노부의 세 종류, 전좌는 근정전배표 · 정조 · 동지 · 탄일 · 정전조하(正殿朝賀), 정조 · 동지 회백관(會百官), 회례연(會禮宴) 등이다. 통신은 임금이 교령을 내릴 때와 입직을 볼 때 담당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악문화를 전승해 온 점에 의의가 있다.
내취라치 (內吹螺赤)
조선전기 궁중의 통신 · 시위 때 각(角)을 연주한 군사를 말한다. 내취각인(內吹角人)이라고도 한다. 궁중에서 근무한다는 점에서 병조에서 근무하는 외취라치(外吹螺赤)와 구분된다. 시위는 노부(鹵簿)의 시위와 전좌(殿座)의 시위 두 종류가 있었다. 노부는 대가노부 · 법가노부 · 소가노부의 세 종류, 전좌는 근정전배표 · 정조 · 동지 · 탄일 · 정전조하(正殿朝賀), 정조 · 동지 회백관(會百官), 회례연(會禮宴) 등이다. 통신은 임금이 교령을 내릴 때와 입직을 볼 때 담당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악문화를 전승해 온 점에 의의가 있다.
세악내취는 선전관청에 소속되어 피리2·대금1·해금1·장구1·북1의 다섯 종류 여섯 개의 악기로 편성된 삼현육각으로 행진과 연향에서 연주를 담당한 선전관청 소속 연주자이다. 어영청과 용호영 소속 세악수 가운데서 선발하였다. 세악내취의 삼현육각 편성은 조선 전기 관아음악 문화를 토대로 하여 군영에서 발생하였으며, 이 군영음악은 다시 관아음악으로 수용되어 민간과 궁중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세악내취는 새로운 군영음악문화의 창출과 삼현육각이라는 독특한 악기편성, 새로운 연향악 연구 형태를 창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음악적 의의가 있다.
세악내취 (細樂內吹)
세악내취는 선전관청에 소속되어 피리2·대금1·해금1·장구1·북1의 다섯 종류 여섯 개의 악기로 편성된 삼현육각으로 행진과 연향에서 연주를 담당한 선전관청 소속 연주자이다. 어영청과 용호영 소속 세악수 가운데서 선발하였다. 세악내취의 삼현육각 편성은 조선 전기 관아음악 문화를 토대로 하여 군영에서 발생하였으며, 이 군영음악은 다시 관아음악으로 수용되어 민간과 궁중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세악내취는 새로운 군영음악문화의 창출과 삼현육각이라는 독특한 악기편성, 새로운 연향악 연구 형태를 창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음악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