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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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구락부는 1960년 8월 8일 제5대 국회에서 윤재근, 이재형, 윤길중 등 무소속 의원들이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국회를 양분하고 있는 민주당 신·구파를 견제하며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장면 총리의 선출과 지방자치법 개정,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제정 등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민정구락부 (民政俱樂部)
민정구락부는 1960년 8월 8일 제5대 국회에서 윤재근, 이재형, 윤길중 등 무소속 의원들이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국회를 양분하고 있는 민주당 신·구파를 견제하며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장면 총리의 선출과 지방자치법 개정,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제정 등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민정청은 해방 후 소련군이 한반도의 38선 이북 지역을 점령한 후 민정 업무를 다루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레베제프가 책임을 맡았고 13개 부, 78명으로 구성되었다. 연해주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 쉬띄꼬프 상장의 지휘 아래 있었고, 각 도 및 시군에 설치된 소련군 경무사령부와 경비소대를 통제하며 소련군의 북한 점령 통치를 담당하였다.
민정청 (民情請)
민정청은 해방 후 소련군이 한반도의 38선 이북 지역을 점령한 후 민정 업무를 다루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레베제프가 책임을 맡았고 13개 부, 78명으로 구성되었다. 연해주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 쉬띄꼬프 상장의 지휘 아래 있었고, 각 도 및 시군에 설치된 소련군 경무사령부와 경비소대를 통제하며 소련군의 북한 점령 통치를 담당하였다.
민중자결단은 1952년 부산정치파동 당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 통과와 국회 해산을 주장한 친이승만 계열의 단체이다. 1952년 5월 24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민중자결선포대회를 개최하는 등 각종 시위와 폭력 행동에 앞장섰다. 1952년 제2대 정부통령선거에서는 이승만의 재출마운동을 벌였고, 1954년 제3대 총선을 앞두고 이승만이 추진하는 개헌운동에도 동원되었다.
민중자결단 (民衆自決團)
민중자결단은 1952년 부산정치파동 당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 통과와 국회 해산을 주장한 친이승만 계열의 단체이다. 1952년 5월 24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민중자결선포대회를 개최하는 등 각종 시위와 폭력 행동에 앞장섰다. 1952년 제2대 정부통령선거에서는 이승만의 재출마운동을 벌였고, 1954년 제3대 총선을 앞두고 이승만이 추진하는 개헌운동에도 동원되었다.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반공투쟁위원회의 장택상과 일부 비보수계 군소정당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다. 장택상과 박기출을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으나 경찰의 후보 등록 방해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반독재민주수호연맹 (反獨裁民主守護聯盟)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반공투쟁위원회의 장택상과 일부 비보수계 군소정당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다. 장택상과 박기출을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으나 경찰의 후보 등록 방해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사이버외교사절단은 1999년 1월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민간 단체이다.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라고도 불린다. 인터넷 상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잘못된 정보와 오류를 바로잡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이버외교사절단 (사이버外交使節團 VANK)
사이버외교사절단은 1999년 1월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민간 단체이다.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라고도 불린다. 인터넷 상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잘못된 정보와 오류를 바로잡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노동당은 1946년 11월 17일 조선공산당 간부파가 주도하는 좌익 3당합동에 반대해 조선공산당 대회파와 조선인민당 및 남조선신민당의 조건부합당파가 만든 좌익 계열의 정당이다. 남조선노동당과 경쟁하며 좌익 정당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북조선노동당이 남조선노동당의 권위를 인정하고 사회노동당의 대중조직 장악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1947년 2월 27일 해체를 결정하였다.
사회로동당 (社會勞動黨)
사회노동당은 1946년 11월 17일 조선공산당 간부파가 주도하는 좌익 3당합동에 반대해 조선공산당 대회파와 조선인민당 및 남조선신민당의 조건부합당파가 만든 좌익 계열의 정당이다. 남조선노동당과 경쟁하며 좌익 정당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북조선노동당이 남조선노동당의 권위를 인정하고 사회노동당의 대중조직 장악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1947년 2월 27일 해체를 결정하였다.
새서울백지계획은 1966년 8월 11일 김현옥 서울시장이 발표한 3~4천만 평의 토지에 인구 100~1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행정수도 건설 계획이다. 도시 건설 후보지를 정하지 않고 도시 지형 등 다른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백지 위에 설계한 계획으로 비판적 여론에 밀려 폐기되었다.
새서울백지계획 (白紙計劃)
새서울백지계획은 1966년 8월 11일 김현옥 서울시장이 발표한 3~4천만 평의 토지에 인구 100~1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행정수도 건설 계획이다. 도시 건설 후보지를 정하지 않고 도시 지형 등 다른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백지 위에 설계한 계획으로 비판적 여론에 밀려 폐기되었다.
이정회는 1948년 9월 8일 국회 내에서 정당 세력을 견제하고 비판적 입장에서 정부를 편달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결성된 원내 단체이다. 결성 직후에는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 세력을 견제하며 정부를 지지 옹호하였고, 1949년 4월 일민구락부가 조직되어 여당 역할을 담당한 뒤에는 동성회, 신정회와 함께 국회내 소장파로 활동하였다. 1949년 7월 국회법 개정에 따라 원내교섭단체가 설치되면서 자연 해소되었다.
이정회 (以正會)
이정회는 1948년 9월 8일 국회 내에서 정당 세력을 견제하고 비판적 입장에서 정부를 편달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결성된 원내 단체이다. 결성 직후에는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 세력을 견제하며 정부를 지지 옹호하였고, 1949년 4월 일민구락부가 조직되어 여당 역할을 담당한 뒤에는 동성회, 신정회와 함께 국회내 소장파로 활동하였다. 1949년 7월 국회법 개정에 따라 원내교섭단체가 설치되면서 자연 해소되었다.
전국학생문학회는 1948년 12월 15일 좌익 학생들의 문학 운동에 대항하여 우익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문학 단체이다. 박종화, 김진섭, 김동리, 조지훈 등이 고문을 맡았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외곽 단체로서 문학강좌를 개최하고 문예지 『학생문학』을 발간하였다.
전국학생문학회 (全國學生文學會)
전국학생문학회는 1948년 12월 15일 좌익 학생들의 문학 운동에 대항하여 우익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문학 단체이다. 박종화, 김진섭, 김동리, 조지훈 등이 고문을 맡았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외곽 단체로서 문학강좌를 개최하고 문예지 『학생문학』을 발간하였다.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1946년 2월 24일 조선학술원, 조선문학가동맹, 조선신문기자회 등 25개의 좌익 계열 문화예술 단체가 모여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이다. 예술과 학술, 언론·체육·교육 부문 단체들이 총망라되었으며, 조선공산당의 통일전선 결성 방침에 영향을 받았다. 종합예술제를 개최하고 문화공작단을 지방에 파견하는 등 국수주의 극복과 민족문화 수립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였다.
조선문화단체총연맹 (朝鮮文化團體總聯盟)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은 1946년 2월 24일 조선학술원, 조선문학가동맹, 조선신문기자회 등 25개의 좌익 계열 문화예술 단체가 모여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이다. 예술과 학술, 언론·체육·교육 부문 단체들이 총망라되었으며, 조선공산당의 통일전선 결성 방침에 영향을 받았다. 종합예술제를 개최하고 문화공작단을 지방에 파견하는 등 국수주의 극복과 민족문화 수립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였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 협력을 위해 설립했으며, 1961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에 약 2천 명의 단원과 직원을 파견하여 영어 교육 및 공중보건 프로그램을 진행한 단체이다. 미국 국무부 직속기관으로 민간 봉사단체를 표방하였으며, 평화봉사단원들은 2년간 저개발국가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제공하였다. 설립 이래 2024년 현재까지 60여 개 국에 24만 명 이상의 평화봉사단이 파견되어 2천 6백여 곳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평화봉사단 (平和奉仕團|The Peace Corps)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 협력을 위해 설립했으며, 1961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에 약 2천 명의 단원과 직원을 파견하여 영어 교육 및 공중보건 프로그램을 진행한 단체이다. 미국 국무부 직속기관으로 민간 봉사단체를 표방하였으며, 평화봉사단원들은 2년간 저개발국가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제공하였다. 설립 이래 2024년 현재까지 60여 개 국에 24만 명 이상의 평화봉사단이 파견되어 2천 6백여 곳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한글전용촉진회는 1949년 6월 12일 한글전용법 실천을 주도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조선어학회의 협력 단체로 결성된 조직이다. 최현배가 위원장을 맡은 한글전용촉진회는 전국 각 지역에 도지회 및 분회를 조직하고 한국전쟁 발발로 활동이 중단될 때까지 교과서와 공문서의 한글 전용, 관청과 상점 간판의 한글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글전용촉진회 (―專用促進會)
한글전용촉진회는 1949년 6월 12일 한글전용법 실천을 주도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조선어학회의 협력 단체로 결성된 조직이다. 최현배가 위원장을 맡은 한글전용촉진회는 전국 각 지역에 도지회 및 분회를 조직하고 한국전쟁 발발로 활동이 중단될 때까지 교과서와 공문서의 한글 전용, 관청과 상점 간판의 한글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라단은 1945년 9월 7일 일본 군대 등에서 귀환한 제주 읍내 청년들을 중심으로 친일파를 응징하여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결성된 단체이다. 사설 치안단체로서 치안활동을 벌이던 중 건국준비위원회 및 인민위원회 산하의 치안대와 갈등을 빚었고, 제주도 내에서 미군과 인민위원회가 처음으로 충돌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한라단 (漢拏團)
한라단은 1945년 9월 7일 일본 군대 등에서 귀환한 제주 읍내 청년들을 중심으로 친일파를 응징하여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결성된 단체이다. 사설 치안단체로서 치안활동을 벌이던 중 건국준비위원회 및 인민위원회 산하의 치안대와 갈등을 빚었고, 제주도 내에서 미군과 인민위원회가 처음으로 충돌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헌정동지회는 1960년 4·19혁명 후 자유당에서 탈당한 의원 42명이 구성한 원내교섭단체이다. 내각책임제 개헌 후 새롭게 실시될 총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구성되었으나 실제 7·29총선에서는 대부분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였고 당선자도 3명에 그쳤다.
헌정동지회 (憲政同志會)
헌정동지회는 1960년 4·19혁명 후 자유당에서 탈당한 의원 42명이 구성한 원내교섭단체이다. 내각책임제 개헌 후 새롭게 실시될 총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구성되었으나 실제 7·29총선에서는 대부분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였고 당선자도 3명에 그쳤다.
호헌동지회는 1954년 11월 29일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해 위헌적으로 개헌안 통과를 결정하자 야당계 의원 61명이 자유당에 대항하는 신당 결성을 목표로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발족 직후 신당촉진위원회를 구성해 원내외 야당계 인사들을 총망라한 신당 결성 작업을 추진하였으나 조봉암의 참여를 둘러싸고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로 분열되어 자유민주파만이 1955년 9월 19일 민주당을 결성하였다.
호헌동지회 (護憲同志會)
호헌동지회는 1954년 11월 29일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해 위헌적으로 개헌안 통과를 결정하자 야당계 의원 61명이 자유당에 대항하는 신당 결성을 목표로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발족 직후 신당촉진위원회를 구성해 원내외 야당계 인사들을 총망라한 신당 결성 작업을 추진하였으나 조봉암의 참여를 둘러싸고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로 분열되어 자유민주파만이 1955년 9월 19일 민주당을 결성하였다.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21일 창당되어 2012년 2월 12일까지 존속한 정당이다.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이 합당해 출범시켰으며,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당선시켰다.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한나라당 (한나라黨)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21일 창당되어 2012년 2월 12일까지 존속한 정당이다.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이 합당해 출범시켰으며,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당선시켰다.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자유민주연합은 1995년 3월 30일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되어 2006년 3월 10일까지 존속한 정당이다. 충청도에 지지 기반을 두었으며 의원내각제를 당론으로 삼았다. 국민의 정부 시기인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공동 여당이었다.
자유민주연합 (自由民主聯合)
자유민주연합은 1995년 3월 30일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되어 2006년 3월 10일까지 존속한 정당이다. 충청도에 지지 기반을 두었으며 의원내각제를 당론으로 삼았다. 국민의 정부 시기인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공동 여당이었다.
새누리당은 2012년 2월 13일 한나라당이 당명을 교체하여 새로 출범한 보수주의 정당이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켰으나 2016년 발생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등 위기에 몰리자 2017년 2월 13일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새누리당 (새누리黨)
새누리당은 2012년 2월 13일 한나라당이 당명을 교체하여 새로 출범한 보수주의 정당이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켰으나 2016년 발생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등 위기에 몰리자 2017년 2월 13일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십이칠법난(十二七法難)은 1980년에 신군부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및 관련자들을 강제로 연행해 수사한 사건이다. 153명이 강제 연행되어 수사를 받았고, 전국의 사찰 및 암자에서도 불순분자를 검거한다는 구실로 1,776명이 검거되었다. 이는 계엄령 상태에서 국가 공권력을 남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정권의 유지와 안정을 위해 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반하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이다.
10·27법난 (十二七法難)
십이칠법난(十二七法難)은 1980년에 신군부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및 관련자들을 강제로 연행해 수사한 사건이다. 153명이 강제 연행되어 수사를 받았고, 전국의 사찰 및 암자에서도 불순분자를 검거한다는 구실로 1,776명이 검거되었다. 이는 계엄령 상태에서 국가 공권력을 남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정권의 유지와 안정을 위해 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반하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이다.
김윤환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 정무1장관, 민주자유당 사무총장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조선일보사 주일 특파원과 정치부장, 편집국장 대리 등을 역임하고 1979년 정계에 입문하여 제10, 11, 13,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민주국민당에서 활동하였다.
김윤환 (金潤煥)
김윤환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 정무1장관, 민주자유당 사무총장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조선일보사 주일 특파원과 정치부장, 편집국장 대리 등을 역임하고 1979년 정계에 입문하여 제10, 11, 13,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민주국민당에서 활동하였다.